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82
거대한 손은 망월의 뼈를 쥐었던 손바닥을 천천히 펼치더니 다시 한제에게 손짓하기 시작했다.
한제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 거대한 팔을 주시했다. 망월의 뼈를 부술 때 그 손에서 발휘된 힘이 얼마나 강했을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망월이 신통력으로 만들어낸 고대 신의 손가락에 비교해도 결코 약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심지어 세상 그 어떤 것도 저 팔에는 당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 거대한 손이 발휘한 것은 한제의 신통력인 참라결과 비슷한 규칙이었다. 다만 참라결보다 훨씬 더 강력할 뿐이었다.
한참 뒤, 거대한 팔은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는데 마지막까지도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그 뒤쪽의 거대한 문도 팔과 함께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순간, 사방을 둘러싼 보라색 빛이 모여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 하나의 점으로 수축했다. 그러더니 이내 보라색 빛을 반짝거리며 천천히 흩어져 천역주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모든 힘을 방출한 천역주는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한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던 천역주를 손에 쥐었다.
지극히도 평범해 보이는 구슬 겉면에서는 별다른 특이한 점이 없었다. 1천 년 전, 한제가 그 절벽 동굴에서 발견했을 당시의 모습과 똑같았다.
한제는 천역주에 신식을 주입해 그 안을 살폈다. 모완의 원영과 이평, 그리고 청희의 혼백은 여전히 그 안에 있었다. 게다가 이전보다 훨씬 더 생기가 돌고 있었는데 특히 모완의 원영은 전보다 더욱 빠르게 응결되는 중이었다.
“천역주의 내력은 대체 뭘까? 아까의 그 문은 또 어디로 통하는 거지? 그리고… 그 팔은⋯⋯?”
한제가 침묵했다.
한제는 자신이 천역주를 처음으로 손에 넣은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자신 이전에도 천역주를 손에 넣고 그 속성을 다 채웠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의 주인들은 천역주의 속성을 다 채워 그 거대한 문이 나타났을 때, 결국 그 안으로 들어가는것을 선택했을 터였다.
한제는 미간을 구긴 채 생각에 잠겼다.
오행 속성을 다 채우자 한제는 오히려 이 천역주에 대해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설마 그 문이 원고 시대의 선역으로 통하는 문일까?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어째서 그 팔은 그렇게 손짓을 해놓고 가까이 접근한 것을 파괴했을까? 이 천역주는 대체… 뭐지?”
한제는 진중한 얼굴로 한참을 더 고민하다가 천역주를 미간에 집어넣었다. 천역주는 그의 원신에 천천히 녹아들면서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한제는 더 이상 천역주의 비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그 거대한 문과 문 너머의 존재였다.
“천역주의 오행의 힘이 소진됐으니 다시 모아야겠군.”
한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금 있었던 일로 이 수련성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다.
“보물 같은 곳이었는데 안타깝군. 하지만 원신은 자갈층 깊은 곳에 더욱 크게 감응했지. 육신도 회복됐으니 그곳을 살펴봐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한 줄기의 번개처럼 튀어나갔다.
그가 수련성 밖의 자갈층에 이르렀을 때, 자갈층은 이미 반 정도가 흩어진 상태였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사신차를 꺼냈고 밖으로 나온 사신차에서는 곧장 뇌수가 나타났다.
“캬오오!”
뇌수는 오랜 시간 저물대에 갇혀 있던 것이 답답했는지, 하늘을 향해 크게 포효했다. 허나 곧 거대한 두 눈으로 한제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한제는 뇌수의 등에 오르더니 녀석의 머리를 두드리며 웃었다.
“왜 그리 보는 게냐? 똑똑한 녀석이니 저 앞에서 뭔가를 느꼈겠지?”
뇌수는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녀석에게 지금의 한제는 인간이 아닌 천둥번개의 형태로 보였고 이에 뇌수는 한제에게 더욱 강한 친밀감을 느꼈다. 그 자신조차 오랫동안 느껴본 적이 없던 감정이었다. 특히 한제가 머리를 두드렸을 때에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고 기쁨에 겨워 포효했다.
뇌수는 빠른 속도로 자갈층 사이를 지나 점점 깊은 곳으로 향했다. 주위의 자갈은 갈수록, 많아졌고 몇몇 자갈에는 전광이 흐르기도 했다. 허나 이는 한제에게나 뇌수에게나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뇌수는 연거푸 기쁨의 포효를 내질렀다.
한제는 다시 천역주에 대해 생각했다. 솔직히 실망스럽기도 했다. 1천 년의 세월, 게다가 망월에 맞서 육신을 잃어가면서까지 고생한 이유는, 속성을 다 채우면 천역주가 단박에 주인을 알아보고 많은 신통력을 발휘하며 큰 도움이 될 것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허나 현실은…
“대체 정체가 뭐지?”
한제는 미간을 문지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천역주의 놀라운 변화
천둥번개에 매우 민감한 뇌수는 자갈들 사이를 오가면서 점차 깊은 곳으로 진입했다.
그때, 음울한 천둥소리가 들려와 한제의 생각을 끊어놓았다. 한제는 번개처럼 번득이는 눈으로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원신을 통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여기야.”
자갈층을 지나 나아가던 뇌수가 우뚝 멈춰 섰다. 거대한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한제 또한 전방에 펼쳐진 광경에 놀란 듯 찬 숨을 들이마셨다.
“대체 저게 뭐지?”
그곳에는 수련성이 아니라 끝없이 길게 이어진 거대한 천둥번개의 연못이 있었다. 사방이 전광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천둥번개의 지옥이라 할 수 있었다. 좀 전까지 머물렀던 수련성은 이곳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였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천둥번개의 연못 속에서 천둥번개는 마치 뇌룡처럼 요란한 소리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캬아아!”
뇌수는 낮게 포효하면서 거대한 천둥번개의 연못을 주시했다. 뇌수 역시 망설이고 있었다. 이곳의 천둥번개는 너무나 강력해 뇌수도 감당할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한제는 뇌수의 등에서 내려와 신중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이어서 선위를 소환해 경계를 세운 뒤 천천히 천둥번개의 연못으로 향했다.
연못의 가장자리에서 한제는 한참이나 그 안쪽을 살피다가 마침내 한 걸음을 옮겼다.
“큭!”
그 한걸음에 천둥번개가 곧장 발을 타고 온몸으로 흘러들었다. 한제는 온몸이 저릿해지는 느낌에 숨을 고른 뒤에야 다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연달아 스무 걸음 정도를 안으로 들어선 후에야 자리에 멈춘 그는 천둥번개로 온몸이 완전히 뒤덮인 상태였다. 원신 역시 끊임없이 천둥번개의 위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허나 더 이상은 들어갈 수 없었다. 한제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여기가 한계였다.
한제는 천천히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아 두 눈을 감고 호흡했다.
뇌수는 바깥쪽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망설이다가 한참 뒤에야 조심스레 몇 걸음 걸어 들어왔다. 연못 안의 엄청난 천둥번개의 위력을 느낀 녀석은 그 자리에 엎드려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천둥번개를 흡수했다.
사실 한제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이곳의 천둥번개는 체내의 천둥번개보다 더욱 강력했다. 만약 지금 그의 육신이 천둥번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면 연못의 가장자리에 이르렀을 때부터 견디지 못했을 터였다.
“이곳이야말로 뇌원술을 수련하기 가장 좋은 곳이로군.”
점점 이곳에 적응하기 시작한 후로 온통 천둥번개뿐인 그곳에서 한제와 뇌수는 그렇게 수련을 시작했다. 특히 한제는 뇌원술 수련에 매진했다.
한편, 그 무렵 자갈층 밖 저 멀리 우주에서는 한 줄기 전광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것은 한 마리 뇌수였는데 머리에는 뿔 대신 무르익어가고 있는 듯한 혹이 하나 있었다. 또한, 이 뇌수는 검은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때문에 더욱 거칠고 용맹해 보였다.
그 등에는 한 중년 남자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검은 머리를 뒤로 나부끼는 무표정한 남자는 곧장 자갈층 방향으로 돌진해오는 중이었다.
“뇌의 선계가 곧 열리겠지. 이번에는 뇌옥에서 더욱 많은 원력을 흡수해야 해.”
검은 머리의 사내는 뇌수의 거대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뇌의 선계 안에 또 어떤 법보와 선술들이 있을까? 뇌선전의 사자들 사이에 또 한 번의 엄청난 쟁탈전이 벌어질지도 몰라.”
그는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뇌수는 전광이 되어 질주했다.
“소문에 따르면 나천성역 남역의 자갈층 안쪽이 바로 그 당시 신비의 천역주가 처음으로 나타났던 곳이라지. 그 구슬의 출현으로 그곳에 천둥번개가 나타나는 변이가 일어나면서 뇌옥이 됐고 때문에 천둥번개류의 신통력을 수련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 됐다고…”
한편, 한제는 전광이 흐르는 연못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머릿속으로는 뇌원술의 주문을 떠올리며 자세히 파악했다. 뒤이어 그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두 눈을 감았다.
뇌원술은 기이한 방식으로 천둥번개 안에 있는 원력을 뽑아내 자신의 원력으로 삼는 신통술이었다.
이런 신통술은 수련의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선 수련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매우 귀한 보물처럼 여겨져 외부로는 절대 유출되지 않는 법이었다.
이 신통술은 천둥번개를 체내로 들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수준이 부족하면 오히려 몸을 상할 뿐이었고 까딱하다가는 정신적인 손상마저 입을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질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한제에게는 그 어떤 공법보다도 적합했다. 그의 원신은 천둥번개를 내포하고 있었고 새롭게 응결된 육신 역시 천둥번개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한제는 두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한 번 흔들었다. 그 순간, 전광으로 이루어진 대량의 파문이 일어났다가 천천히 흩어졌다.
흔들리는 한제의 두 손에는 아홉 개의 손자국이 배어 있었는데 이를 빠르게 발산하면 천둥번개에 찍을 수 있었다.
콰르릉!
천둥소리에 이어 전광이 흐르는 연못에 존재하는 거대한 천둥번개의 힘 한 줄기가 마치 배출구를 찾은 물줄기처럼 뽑혀 나왔다. 그러더니 한 마리 뇌룡처럼 성난 포효를 내지르며 모든 것을 집어 삼키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한제의 육신에 닿은 그 순간, 그 뇌룡과도 같던 천둥번개의 힘은 흩어져 그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체내에 들어온 천둥번개의 힘은 마구 날뛰었지만 한제의 심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려 뇌원술을 발휘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거대한 맷돌이라도 된 듯이 끊임없이 회전하면서 체내로 들어온 천둥번개의 힘에서 압도적인 원력을 조금씩 뽑아내기 시작했다.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뇌원술은 처음 사용할 때 더 어려운 술법이었다. 실행자의 몸이 한편으로는 천둥번개의 위력에 저항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안의 원력을 흡수해야 하니 일정한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한제는 온 마음과 정신을 원력을 제압하는 데 쏟았고 한참의 시간이 걸린 후에 드디어 체내로 들어왔던 천둥번개를 완전히 무너뜨려 한 줄기의 원력으로 바꾸었다.
이 원력은 너무나 적어 자세히 살피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고 다소 불순하기까지 했으나, 한제는 마치 진귀한 보물을 얻은 것처럼 잔뜩 흥분했다. 수련의 첫 번째 단계 수련자들에게 원력은 사치스러운 힘이었다. 세상에서 원력을 전환해내는 것은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러 우연과 인연이 겹치지 않았다면 한제로서도 결코 불가능했을 터였다.
한제는 차오르는 기쁨과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조심스럽게 이 불순한 원력을 원신에 밀어 넣었다. 원신을 통해 흡수하고 다시 제련하고 압축해야만 불순물들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원력은 더 적어지겠지만 제련을 통해 순수해진 원력만이 사용 가능할 터였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한제는 대충대충 일을 처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온 정신을 집중했다.
한데 바로 그때, 변고가 발생했다. 불순한 원력 한 줄기가 한제의 원신에 닿은 그 순간, 마치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난폭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손 쓸 틈도 없이 일어난 것이라 대응조차 불가능했다.
원력은 미친 듯이 원신 안으로 뚫고 들어갔지만 융합되지 않고 순식간에 그 원신의 미간에 이르렀다. 그곳은 바로 천역주가 있는 곳이었다.
‘안 돼!’
한제가 손 쓸 겨를도 없이, 이 한 줄기 불순한 원력은 눈 깜짝할 사이 천역주 안으로 녹아들었다.
한제는 머릿속에서 콰르릉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는 그의 체내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거대한 산봉우리에 가격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한제의 얼굴은 창백했고 체내의 원신은 진동했으며, 육신 역시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때, 한제가 소환하지도 않았는데 천역주가 스스로 원신에서 빠져나오더니 미간 밖으로 솟아나왔다.
한제는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심신이 급격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천역주가 허공에 떠오른 순간, 전광이 흐르는 연못은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전광이 줄기줄기 뇌룡이 되어 연못 안에서 솟아올랐다.
엄청난 파동에 주위의 자갈들은 분분히 이 천둥번개에 이끌리듯 전광을 발산했고 선위 꼭두각시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심지어 뇌수조차 연못 안의 변화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더니 다시 다가오지 못했다.
연못 안에서는 전광들이 셀 수 없이 많은 뇌룡의 형태를 이루어 휘휘 소리를 내면서 천역주 안으로 미친 듯이 뚫고 들어왔다. 이 충격적인 광경에 한제는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천역주는 천천히 회전했고 한 바퀴 돌 때마다 대량의 천둥번개를 흡수했다. 그러더니 점차 한 줄기 보라색 빛이 그 위에서 번득이기 시작했다.
한제에게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얼마 전에 수련성에서도 똑같은 변화가 있지 않았던가.
눈부신 보라색 빛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그 기이한 금제가 다시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한제의 시야에 그 거대한 문이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