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86
잠시 후, 한 줄기의 보라색 빛이 휙 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그 빛 안에는 한 사람이 올라탄 목검이 하나 있었다.
“아주 시끄러운 곳이로군.”
목검 위의 사내에게서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느릿하게 들려왔다.
한기를 내뿜고 있는 보라색 목검으로부터 더욱 짙은 보라색 빛이 마치 검광처럼 발산되고 있었다. 그 빛은 연못 밖에서 중첩되었다.
검 위의 사내는 서른을 조금 넘긴 듯한 얼굴에 수염은 없었는데 매우 준수했다. 다만 한 쌍의 봉황 눈에는 그 하얀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속내가 담겨 있었다.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옷을 입은 사내의 눈은 신공호를 지나쳐 연못 안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제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내의 눈동자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살짝 졸아들었으며, 온몸의 솜털이 순간적으로 쭈뼛 섰다.
한편, 그자가 나타난 순간 신공호의 낯빛은 어두워졌고 그의 뇌수 또한 적대적인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낮게 울부짖었다.
한쪽에 엎드려 있던 은각뇌수 역시 불쾌한 기색으로 곁에 있는 천둥번개를 만지작거렸다. 그 줄기줄기의 천둥번개는 은각뇌수의 통제 아래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녀석의 몸에 흘렀다.
멀지 않은 자갈층의 선위 꼭두각시는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이곳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의 임무는 주인을 보호하는 것으로 누군가가 주인을 해하려 한다면 곧장 목숨을 걸고 공격해올 것이다. 하지만 그 위협이 닥쳐오기 전까지는 상대가 코앞에서 위협을 가해오더라도 꼼짝하지 않았다.
“전공열!”
신공호가 외쳤다.
보라색 빛 속의 사내는 조심스럽게 한제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그가 보기에 한제의 수준은 겨우 문정기 후기에 불과했지만 연못 안쪽으로 진입하는 것은 그 수준의 수련자에게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상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법보를 가지고 있거나 수준을 감추고 있는 것이라 봐야 했다.
게다가 그는 은각뇌수와 선위 꼭두각시까지 확인한 상태였기에 이런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분명 무슨 법보를 가지고 있겠지. 실제 수준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 터! 한데 어째서 여기에 뇌수가 두 마리나 있는 거지? 설마 저자도 뇌선전의 사자는 아니겠지?’
사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천둥번개의 연못 안쪽에 진입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두렵고 놀라운 일이었다. 양의의 수준을 꽉 채운 그로서도 안쪽으로는 진입할 수 없었다.
“신공 가문의 신공호였군. 아까까지는 미처 몰라봤어. 자네의 수준이 어째 한참 떨어진 모양이야.”
사내, 전공열은 마음을 다잡고 신공호를 향해 외쳤다.
신공호는 속으로 차게 웃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않고 약간 어두워진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
“이곳은 네가 머물 곳이 아니다. 썩 물러가지 못할까!”
신공호는 내상을 입은 상태로 수준도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지만 한제가 있는 이상 뇌선전의 전주가 직접 온다 해도 상대에게 호통치듯 말할 수 있었다.
전공열은 미간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연못 깊은 곳에 있는 한제를 힐끗 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말이 심하군. 설마 이곳이 신공 가문의 것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후배의 수련을 돕겠다고 다른 이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겠다니…”
신공호는 그 말을 듣고 냉소했다.
“셋 셀 때까지 물러가지 않는다면 도망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하나!”
본래 신공호는 천부적인 자질이 뛰어난 데다가 속을 알 수 없는 전공열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실력 차가 작지 않았더라면 진즉 상대를 처치했을 것이다. 또한, 만약 전공열이 사리분별 못 하고 선배의 수련을 방해한다면 자신이 회복하지 못할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그는 선배가 힐끗 보는 것만으로도 전공열은 곧장 붕괴해버릴 것임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뇌선전의 사자도 아니었다. 상대를 죽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한제가 있는 이상 그것 정도야 큰 문제라고 할 수 없었다.
“둘!”
전공열은 말없이 신공호를 응시하다가 물러났다. 허나 원체 신중한 편인 그는 물러나면서도 연못 안쪽의 한제를 힐끔거리면서 더욱 깊은 의심을 품게 됐다.
‘저 신공호가 심한 내상을 입은 상황인데도 대체 뭘 믿고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분명 믿을 만한 구석이 있다는 것일 텐데⋯⋯ 그게 설마 문정기 수준에 불과한 저 녀석은 아니겠지!’
전공열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신공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셋!”
신공호는 비릿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그의 몸에 번개가 흐르며 파지직 소리를 냈다. 그가 앞으로 나서자 곁에 있던 뇌수가 포효라며 그 뒤를 바짝 따랐다. 하지만 녀석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경외심이 어린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런 뇌수의 눈빛에 전공열은 순간 심장이 덜컥하면서 불길한 예감이 밀려들었다. 뭔가를 모략하는 듯한 신공호의 눈빛과 달리 뇌수의 눈빛은 경외심 그 자체였다.
뇌수의 눈빛에서 불길함을 느끼고 물러나면서도 전공열은 떠보듯 외쳤다.
“신공호, 난 두려울 것이 없으나 이곳에서 너와 내가 싸운다면 너희 신공 가문의 후배가 수련하는 데 영향이 미칠 것이다. 그러니 나와 싸우고자 한다면 바깥의 자갈층에서 겨루도록 하자.”
그는 ‘후배’라는 두 글자를 일부러 강조하며 말했다.
신공호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면서 한 발만 연못 밖으로 내놓은 채 차게 웃었다.
“번거롭게 그럴 필요가 있겠나? 그냥 여기서 하지.”
신공호의 반응에 전공열의 의심은 깊어졌다.
전공열은 눈을 번득이면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보라색 번개 한 줄기가 나타났고 그의 발을 받치고 있는 보라색 목검은 짙은 검기를 풍겼다. 찰나의 순간, 두 손에서 나타난 보라색 빛이 그 검기와 융합되면서 웅장한 위엄을 발산했다.
그 안에는 천지의 원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첫 번째 공격인데도 원기까지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전공열이 얼마나 경계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신공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늘의 번개를 끌어들이려는 듯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뇌수는 포효하면서 온몸에 셀 수 없이 많은 번개를 응집시켰고 그 번개들은 서로를 끌어들이면서 놀라운 기세를 드러냈다.
한데 그때, 한제가 두 눈을 뜨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신공호, 이 전투에서 나는 널 돕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종속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이라고 치자. 실패한다면 도혼을 돌려주겠다.”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지만 사실 무척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다. 신공호나 전공열 모두 그가 대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한제로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신공호가 진다면 자신의 처지 역시 곤란해질 터였다.
신공호는 순간 몸을 부르르 떨더니 전의 어린 눈빛을 번득였다. 전공열을 곧게 주시하던 그는 공손한 말투로 한제에게 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주인님! 이 신공호는 지지 않을 겁니다.”
이어서 숨을 깊게 들이마신 신공호는 저물대에서 단약 한 병을 꺼냈다.
반면 신공호의 눈에 드러난 숭배의 감정을 본 전공열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게다가 뇌수 또한 저 연못 안 사내의 목소리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낀 듯 몸을 부르르 떨었으니, 전공열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구나 신공호는 상대를 ‘주인님’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들처럼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든 수련자의 입에서 쉽게 나올 칭호가 아니었다.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의지할 강대한 존재만이 주인님이라는 칭호를 가질 수 있었다.
저 오만한 신공호가 누군가의 종이 되어 진심으로 상대에게 복종하다니,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전공열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뒤엉켰다.
‘설마⋯⋯ 저자가 연못 저 깊은 곳까지 들어선 것이 법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수준 덕분이었단 말인가?’
전공열은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다시 뒤로 물린 뒤 입을 열었다.
“신공호, 충동적으로 굴지 말게.”
신공호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손에 쥐고 있던 약병을 깨뜨렸다. 그 안에는 붉은 빛을 발하는 단약 한 알이 들어 있었는데 신공호는 그것을 단번에 집어삼켰다. 순간 그의 기운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도망칠 수 없다, 진공열! 이미 늦었다!”
낮게 외치며 신공호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체내에서 원력이 미친 듯이 튀어나오더니 신룡과 같은 번개 한 줄기가 내리쳤다. 그 번개는 연못에 파동을 일으켰고 셀 수 없이 많은 천둥번개의 빛이 흐르듯 신공호를 향해 몰려들었다.
한제는 기이한 눈으로 신공호의 신통력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원력을 이용해 하늘의 번개를 소환하는 극강의 신통력은 원력화정(元力化鼎)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원력화정만큼 웅대하지는 않았지만 위력만큼은 더욱 격렬한 신통력이었다.
신공호
“크아아아!”
낮은 포효와 함께 신공호의 오른손이 경미하게 흔들렸다. 그는 지난 2년간 내상을 약간 회복했고 뇌선전의 단약까지 먹은 덕에 잠시간은 절정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하늘의 번개를 소환하는 술법을 부리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오른손을 세차게 휘둘렀다. 그 순간, 허공에서 번개가 나타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위엄을 내뿜었다.
콰르릉!
전공열은 어두워진 얼굴로 두 손을 빠르게 움직여 결인을 그린 뒤 목검을 향해 원기를 한 움큼 분출했다. 그러자 목검은 휙 소리를 내며 더욱 짙은 검기를 내뿜으면서 번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쾅!
번개와 목검이 충돌하면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번개가 무너져 내리고 목검이 뒤로 튕겨나는 사이 주변의 자갈들은 가루로 부서졌다.
전공열은 몸을 휘청거리면서 뒤로 끊임없이 밀려났다. 창백한 얼굴로 신공호를 노려보던 그의 눈동자는 분노한 듯 이글거렸다.
신공호는 천둥번개의 연못 안까지 밀려난 후에야 겨우 버티고 설 수 있었다. 그는 입가에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으나, 전공열을 바라보면서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렇게 맞붙기 전까지는 네게 이런 재주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구나! 허나 난 본래 음산한 네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편,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양의의 경계에 이른 수련자들의 전투를 구경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두 사람이 방금 원력을 통해 발휘한 신통력 중 어느 것도 자신으로서는 당해내기 힘들 터였다.
하지만 그는 몇몇 문제점도 발견했다. 신공호의 신통력은 완벽하지 않아 번개의 위력이 몇 배는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았다.
한제는 세 번째 단계를 봤을 뿐만 아니라 천둥번개의 안쪽으로 진입했을 때 흐릿하게나마 번개의 규칙을 확인한 상태였다. 때문에 신공호의 신통력에 담긴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문제점을 찾아냈다고 해서 자신이 그런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신공호, 네 원력 신통술은 번개의 위엄을 가지고 있으나 번개의 혼을 가지고 있지는 않구나. 네 도심이 그것과 융합되어 있기는 하나 충분치는 않다. 네 신념에 번개의 힘이 없는 모양이구나.”
신공호는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뇌선전의 전주와 신공 가문의 선배들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임에도 한제의 입을 통해 나오니 남달랐다.
신공호는 얼른 공손하게 대답했다.
“부디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주인님.”
한제의 목소리에 놀란 것은 전공열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한제의 지적은 자신에게도 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가의 선배 역시 그에게 스스로의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문제와 해결 방법은 말로 설명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선배들 역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후배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랐다.
만약 선배의 가르침이 잘못된 방향이라면⋯⋯?
어느 누구도 자신이 오른 길이 진정한 도로 향하는 길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세 번째 단계의 입구조차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한제는 달랐다. 그는 세 번째 단계를 목격했고 그 방향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맞는지 그른지 알지 못했고 확신하지 못해 감히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한제는 자신이 말한 것이, 자신이 걷는 방향이 반드시 옳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순간,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가득 뒤덮을 정도로 강력한 기세를 내뿜으며 싸우고 있던 신공호와 전공열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싸우기를 멈추고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눈빛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신공호의 눈에는 맹목적인 숭배가 담긴 반면 전공열의 눈빛에는 약간의 의심이 담겨 있었다.
허나 한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이런 일은 너무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흐릿하고 몽매한 상태에서 그것을 이해한다면 이해하는 것이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저 운을 시험해 보거나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제멋대로 움켜쥐었다. 그러자 한 줄기의 번개가 날아들어 그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 번개의 위력은 신공호와 전공열이 보기에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찬 숨을 들이마셨다. 그 번개는 한제의 눈빛이 닿은 순간 기이하게 번득였고 그가 손을 살짝 흔들자 곧장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보일 듯 말 듯한 빛 하나뿐이었으나, 그 어스름한 빛은 곧 무너져 사라져 버렸다.
사실 지금 한제는 위험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허장성세를 부린 것으로 두 눈에 드러난 피로감을 숨기기 위해 재빨리 눈을 감고는 툭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