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89
“기왕 나왔으니 바로 돌아가지 말고 산봉우리 1만 리 안에서 원고 시대의 검기를 깨닫도록 해라.”
허이국은 그 말에 감격한 듯 흠칫 놀라더니 충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닙니다, 주인님. 이 허이국은 주인님 곁에 붙어 있을 겁니다. 주인님 곁에 있어야만 마음이 편안한걸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조심스럽게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곁에 붙어있도록 해라.”
허이국은 얼른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입을 비죽였다.
‘이 녀석, 정말 1만 리 안에서 마음껏 돌아다녀도 좋다는 건가? 그럴 리가! 이한제가 그렇게 마음 좋게 굴 리가 없지. 분명 거짓말이었을 거야. 내가 정말 1만 리까지 가기라도 하면 그 핑계로 또 나를 괴롭힐 참이어겠지. 흥! 이 허이국이 그런 술수에 넘어갈 줄 알고?’
속으로 중얼거리던 허이국은 의기양양해져서 얼른 모습을 응결시킨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허나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또 불안해진 그는 수시로 한제를 힐끔거렸다.
한편, 한제는 허이국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저물대에서 흡혈마수와 뇌와를 꺼냈다. 흡혈마수는 편안한 자세로 뇌와 위에 엎드려 있다가 저물대 밖으로 나오자마자 한제를 향해 인사하듯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다시는 떨어지기 싫다는 듯 뇌와 위로 돌아가 납죽 엎드렸다.
뒤이어 흡혈마수 몇 마리가 더 나타났다. 당시 한제의 흡혈마수를 따라온 어린 녀석들로 아직 다 성장하지는 못한 상태였지만 매우 사나워 보였다.
뇌와는 등에 흡혈마수를 업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된 듯했다. 녀석은 뱃속에서 천둥소리를 울리면서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자려는 듯 엎드렸다.
뒤이어 사신차가 날아들더니 공중에서 펑 하고는 뇌수로 변했다.
“캬오오!”
뇌수는 뇌와를 보자마자 낮게 포효했다.
본래는 게으른 모습이었던 뇌와는 두 눈을 번쩍 떠 뇌수를 올려다보았다. 복부에서는 우르릉 하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등에 탄 흡혈마수도 정신을 차리고 흥미롭다는 듯 뇌수를 바라보았다.
허이국은 한쪽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뇌수를 힐끔거렸다.
‘과연 주인님답구나. 그새 이렇게 많은 짐승들을 모아놓다니. 허나 이놈들아, 주인님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은 나 허이국이다! 한데 주인님은 짐승과 정말 연이 깊군. 내가 미인들과 연이 깊은 것처럼 말이지.’
허이국은 요령의 땅에서 미인과 함께하던 기억을 회상하며 추억에 젖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안타까움도 컸다.
한제는 계속해서 법보를 제련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더 중한 곳에 집중해야 했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보았던 세 번째 단계에 근거하여 신통술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한제는 고민했다. 그의 신통술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참라결이었다. 하지만 만약 첫 번째 단계의 수준을 돌파하여 음의의 경계에 이르지 못하면 이 술법을 발휘할 때마다 원력이 소모될 터였다.
다음으로 강력한 것은 정신술로 강력하기로는 참라결에 뒤지지 않았다. 또한 종종 특수한 때에는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강력함으로는 적멸지, 화마지, 황천지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도의 황천과 응결된 천혼(泉魂), 마지막으로 황천력도 있었다.
한제가 조정하려고 하는 것은 적멸지, 화마지, 그리고 황천지였다. 이 세 신통력은 완전하지 않은 데다가 신체에도 무리가 갔으며, 계속 이대로 사용하다가는 세 번째 단계에 이르는 데 큰 위협이 될 터였다.
한제는 오른손을 펼쳐 세 가지 신통술을 하나하나 발휘했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점차 빨라졌고 적멸지, 화마지, 황천지가 끊임없는 순환을 이루면서 발휘됐다. 그리고 이를 점차 개선시켜나갔다.
이 과정은 적지 않은 힘이 들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는 무척 피로해졌다. 허나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곧바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 ★ ★
또다시 2년이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한제는 신통술을 개선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허나 아직까지도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한제는 자신이 너무나 조급하게 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했기에 멈추지 않았다.
사실 두 번째 단계 규열이나 쇄열에 이른 수련자가 지금의 그를 보았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조정은 하나의 신통술을 가지고 그 근본적인 선술까지 연화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는 천운자 등이라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2년 동안 뇌와와 뇌수는 서로를 적대시했지만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뇌와는 수준이 부족하여 상대를 쉽게 공격할 수 없었고 뇌수는 불쾌하기는 했지만 상대로부터 잠재적인 위협만을 느꼈기 때문이다.
흡혈마수는 이제 뇌와보다 뇌수에게 흥미를 느낀 듯 수시로 그 주위를 맴돌았다. 뇌수의 등에 한 번 타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는 못했고 그럴수록 뇌수에 대한 흥미는 커져갔다.
허이국은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한제가 이미 자신을 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다가 하루는 1천 척 밖에서 검은 안개로 변했고 점차 반경을 넓혀 가다가 이제 1만 리 범위를 쏘다녔다.
한제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그는 1만 리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1만 리 안에서는 사람 그림자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년 반 전, 밖에서 감히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쭈뼛거리던 몇몇 수련자를 환술로 꾀어내 한참 가지고 놀다가 밖으로 내보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후로 근처에 발을 들이는 수련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허이국은 점차 무료해졌다.
또다시 무료하게 1만 리 안을 쏘다니던 허이국은 무의식중에 이 범위 안으로 발을 들이는 일반인들을 기다리다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흥분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두 눈을 번득이던 허이국은 저 멀리의 짙은 안개 속을 바라보며 흥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마침내 사람이 왔다!”
뇌정(雷鼎)
산봉우리로부터 1만 리 안의 범위 안, 검은 안개의 가장자리 쪽에 죽음의 기운이 드리운 파리한 얼굴의 장신해가 있었다. 그의 곁에는 무척 긴장한 듯 보이는 중년 남자가 한 명 붙어 있었는데 수준은 장신해와 같은 원영기의 절정으로 검을 옷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 정말 가야 하는 겁니까?”
중년 남자는 저 멀리의 검은 안개가 겁난다는 듯 낮게 물었다.
“당연히 가야지. 이 아비의 수명이 곧 다할 것이다. 이번에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것은 선배님의 명령을 완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를 선배님께 소개하기 위함이야. 그래야 내가 떠난 뒤에도 네가 날 대신하여 선배님이 맡기신 일을 처리할 것 아니냐. 그래야 우리 장가도 오래도록 번영을 누릴 것이고…”
장신해가 말했다.
중년 남자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 다른 도우들이 말하길 그 선배님이 좀⋯⋯ 이상하다고 하던데요. 1년쯤 전에 몇몇 도우들이⋯⋯.”
허나 장신해가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바람에 중년 남자는 결국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허이국은 유혼처럼 그들 가까이로 다가갔다. 검은 안개 속에 숨은 탓에 장 씨 부자는 허이국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에 허이국은 더욱 흥분해서는 중얼거렸다.
“훌륭해, 훌륭해! 늙은이야 곧 죽을 지경이라 내 괴롭힘을 당해내지 못하겠군. 이 할아비가 선심을 베풀어주지. 하지만 어린 녀석은⋯⋯ 흐흐⋯⋯.”
허이국은 광기 어린 눈을 번득이며 검은 안개 속에서 중년 사내의 몸을 살폈다. 상당히 음탕한 눈빛이었다.
허이국은 마른기침을 한 번 하더니 당당한 말투로 외쳤다.
“게 누구냐! 이름을 대라!”
장신해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산봉우리로부터 1만 리 안의 범위에 들어가기도 전에 포권을 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후배 장신해입니다. 분부하신 임무를 완수하여 선배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의 거친 목소리가 검은 안개 안쪽으로 흘러들었다.
허이국은 눈을 한 번 굴린 뒤 입을 열었다.
“늙은 놈은 들어오너라. 주인님께 안내하겠다.”
장신해는 흠칫 놀라 잠시 망설이다가 걸음을 내딛었다. 그 순간, 장신해는 자신의 주위가 미친 듯한 바람으로 둘러싸이는 것과 온몸이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봉우리 위에 이르자 미친 듯한 바람은 사라졌고 어느새 한제가 앞에 있었다.
장신해는 얼른 공손하게 자세를 고쳤다.
“선배님, 선배님께서 분부하신대로 청령성의 모든 일반인들로부터 원한의 기운을 모았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저물대에서 옥패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총 1천 개가 넘는 옥패를 바닥에 내려놓은 그는 공손하게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한편, 장신해를 올려보낸 허이국은 잔뜩 흥분한 채 아까 그곳으로 들어와 검은 안개 너머에 선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흐흐흐. 이리 오너라. 들어오라니까, 겁내지 말고. 이 할아비가 좋은 경험 시켜주마.”
그는 중년 남자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 곧장 호통을 쳤다.
“어서 들어오래도!”
중년 남자는 이를 악물고 검은 안개 속으로 들어섰다.
그 무렵, 한제는 신식으로 옥패들을 살폈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원한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짙고 많은 원한의 기운은 마치 폭풍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좋아, 네가 데려온 이는 앞으로 이 횡운봉의 사자가 될 것이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단약 한 알을 꺼내 장신해에게 건넸다.
“네 아들에게 먹이도록 해라. 천부적인 자질만 충분하다면 화신기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장신해는 감격한 표정으로 얼른 그것을 받아들어 소중하게 품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 원한의 기운은 헛되고 실속 없는 것이라 언제든 다시 생길 수 있다. 너희 장가는 앞으로 몇 년 마다 다시 일반인들로부터 원한의 기운을 모아오도록 해라.”
한제는 말을 마친 뒤 저물대에서 많지 않은 몇 개의 붉은 씨앗을 꺼내더니 그것도 장신해에게 건넸다. 이 승선과는 천규자의 저물대에서 얻은 것이었다.
“이것은 승선과라는 것이다. 가문 사람들을 시켜 심게 하고 수련자 체내의 영력으로 촉발시키면 된다. 앞으로 10년 동안 최대한 많이 심고 가꾸어라.”
장신해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답했다.
얼마 후, 장신해 부자가 횡운산 봉우리를 떠났지만 장신해의 아들은 마치 뭔가를 회상하듯 표정이 얼떨떨했다.
한편 한제는 허이국의 외출을 금지했다. 만약 허이국이 지나치게 심한 장난을 쳤다면 한제는 아예 허이국을 그대로 제련해버렸을 터였다.
1천 척 안으로 이동이 제한된 허이국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빌었지만 소용없었다.
‘잠깐 몸만 빌려서 재미 좀 보려고 했을 뿐인데… 아쉽다, 아쉬워.’
한제는 허이국을 벌할 시간이 없어 이동 범위만 제한해놓고 다시 신통력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지금 그는 장신해가 모아놓은 원한의 기운을 흡수하여 황천 안에 녹여 넣는 중이었다.
원한의 기운을 흡수하자 황천이 변해가면서 점차 한 줄기 천혼(泉魂)의 모습을 이루기 시작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신통력을 개선하느라 한제는 끝없이 힘을 소모했다. 비록 전부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세 번째 단계의 방향으로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한제의 경지는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