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90
마침내 한제가 이 청령성에 온 지 18년이 되던 해에 한제의 생사윤회의 경지는 완벽한 절정에 이르렀다. 이는 선력이 충분해져 첫 번째 단계의 절정에 이른 수련자가 됐다는 뜻이었다.
저물대 안에 선옥이 있긴 했지만 그 양이 충분하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충분하지 않다면 선액을 마실 작정이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문정기 후기의 절정에 이르러 첫 번째 단계의 절정을 뛰어넘어야만 했다.
“수련의 첫 번째 단계⋯⋯.”
한제는 눈을 번득였다.
“당시 문정기에 이르렀을 때, 고요 배이라가 말했지.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사람은 천벌을 받을 수 있다고… 내가 첫 번째 단계를 돌파하여 음의의 경지에 이르는 날이 오면 천벌을 받게 될지 어쩔지 모르겠군.”
한제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서늘하게 빛났다.
청령성 서북쪽의 끝없이 광활한 황량한 땅 위에는 일정한 질서에 따라 놓인 선옥이 거대한 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 진 안에서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은 채 호흡하는 중이었다. 한 번의 호흡을 할 때마다 진에서 발산된 대량의 선기가 그의 체내로 흡수됐다. 호흡을 반복함에 따라 한제 체내의 선력은 천천히 응결되어갔다.
문정기의 절정에 이르기 어려운 것은 경지나 선옥이 아닌 원력 때문이었다. 문정기에 이르기 위해 천지의 원력과 원신을 결합할 때 원력이 부족하다면 문정기에 이를 수는 있다 해도 결국 절정에 이르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원력이 충분하다 해도 문정기 수준에서 부상을 입어 원신이 다치고 그로 인해 원신와 융합한 원력이 흩어진다면 문정기 절정에 이르기 어려웠다.
이처럼 원력은 첫 번째 단계의 절정에 이르는 데 필수적이고 중요한 요소였다.
게다가 문정기 수련자는 원력을 자체적으로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한 양을 보충하기도 힘들었다. 이 또한 절정에 이르는 데 성공한 사람이 적은 이유였다.
한제의 원력은 천둥번개 연못에서의 수련을 통해 이미 원신과 융합할 수 있는 최대치에 이른 상태였다. 또한 경지의 승화 아래 체내의 수준을 움직이게 할 수도 있었다. 이제 대량의 선기를 흡수하면서 한제는 서서히 문정기 절정을 향해 다가가는 중이었다.
다만 첫 번째 단계의 절정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선기의 양은 놀랄 정도였다. 1년 정도 지나 선옥이 바닥나자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선액을 한 방울 마셨다.
선액이 체내로 들어가자 짙은 취기가 느껴졌다. 한제의 온몸에서는 안개가 발산됐고 술의 향을 가득 품은 안개는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선액은 흘러넘칠 듯한 선력이 되어 체내 곳곳으로 달려들었다.
생각만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 그리고 기를 통해 선력을 다루는 것. 이것이 바로 문정기 절정으로 한 사람의 경지가 대성을 이루면서 조금의 흠결도 남지 않으며, 도심이 굳건해지고 체내의 선력이 가득 차 내뱉는 숨에도 선기가 배게 된다.
한제가 청령성에 온 지 19년하고도 8개월이 된 시점, 그는 마침내 문정기 절정에 이르렀다.
반경 몇 리 안에 쌓아두었던 모든 선옥은 재로 변해 버렸고 황량했던 지면에는 파르스름한 빛이 돌면서 생기를 드러냈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눈 안에는 구름이 흘러가는 푸른 하늘이 담겨 있었다.
“1천 년… 1천 년이 걸려 마침내 절정에 이르렀구나.”
한제는 짧은 숨을 토해내며 빙긋 웃었다.
그는 1천 년 전 대산파에 입문했던 소년을 떠올렸다. 이제 그는 첫 번째 단계의 절정에 이르러 이미 당시의 주작을 뛰어넘은 상태였다. 하지만 주작성의 그 어떤 사람도 한제가 지금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할 터였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금빛으로 반짝이는 붓 한 자루가 나타났다. 한제는 한손으로 그 붓을 쥐고 춤을 추듯 손을 움직여 허공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일곱 개의 획을 그리는 것이 한계였지만 이번에는 거기서 다시 한 번 붓을 움직였다. 여덟 번째 획이 마치 태양처럼 눈부신 금빛을 뿜어내며 나타났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앗아갈 듯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여덟 획의 위엄이구나. 이전의 그 어떤 문양보다 훌륭해.”
지금 한제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워 박학다식한 선비 같아 보였다.
붓을 거두자 문양이 사라졌고 그 문양이 품고 있던 원신도 한제의 체내로 돌아왔다.
한제는 앞으로 한 발 내딛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보름 뒤, 한 줄기 번개가 청령성 상공에서 나타나 하늘을 갈랐다. 이 번개 속에서 한제는 뇌수의 등에 올라 눈을 감고 말없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 순간, 청령성의 모든 수련자가 분분히 고개를 돌려 공손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떠나기 전, 한제는 10년 전 심었던 승선과와 나머지 원한의 기운을 수집한 옥패들을 챙겼다. 황천 안의 천혼(泉魂)은 이미 깨어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천둥소리와 함께 한제는 거의 20년간 머물렀던 청령성에서 떠나갔다.
이곳은 그의 동굴이었다. 뇌정(雷鼎)을 손에 넣은 후에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뇌의 선계로 가는 것이 훨씬 안전했다.
우르릉! 쾅!
뇌수의 등에 올라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우주로 질주해 나간 한제는 눈을 번쩍 뜨고 고민했다.
뇌의 선계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뇌정이 필요했다. 허나 이 나천성역과 연맹성역은 달라서 뇌정이 무작위로 흩어져 있지 않았다. 또한 이 뇌정은 어째서인지 뇌선전에만 나타나며, 그 때문에 뇌선전 사람들이 각 가문의 세력에 따라 그것을 분배했다.
사실 신공호를 찾는다면 뇌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공호의 수준은 매우 높았기 때문에 자주 접할수록 한제의 거짓말이 들통 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중대한 일이 아닌 이상 그를 찾을 생각은 없었다.
이제 뇌의 선계가 열릴 때까지 남은 시간은 3개월뿐이었다. 각 가문이 뇌정을 획득할 시간이기도 했다.
한제는 결단을 내렸다.
“뇌정이 없다면 하나 훔치면 되지.”
뇌의 선계에 진입하는 수련자가 모두 두 번째 단계일 리는 없다.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는 그 수가 많지 않으니 대부분은 영변기나 문정기 수준일 터였다.
한제는 오른손을 뇌수의 머리 위에 얹고 가볍게 두드렸다. 뇌수는 즐거운 듯이 고개를 들고 포효했다.
선산(仙山)
나천성역 남역.
한제는 신공호가 준 옥패를 가지고 한 수련성을 찾았다. 이곳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옥패에는 이 수련성에 수련자 가문이 두 개이고 매번 뇌의 선계가 열릴 때마다 두 가문이 한두 개의 뇌정을 차지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 두 가문 안에 문정기 절정에 이른 수련자는 없었다.
한제는 신식으로 두 가문의 강자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둘 다 이 수련성에 있지 않았다.
★ ★ ★
시간은 천천히 흘러 뇌의 선계가 열릴 때까지 한 달이 남은 시점이 됐다.
열 개가 넘는 유성 같은 빛이 저 멀리서 날아들었다.
그중에는 음의의 경계에 이른 수련자가 한 명이었고 나머지 수련자의 수준은 영변기부터 문정기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들다가 우뚝 움직임을 멈추더니 앞에 있는 한제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음의의 수준에 이른 수련자는 노인이었다. 머리카락은 은백색이었고 두 눈은 밝은 빛으로 반짝였다. 체내의 원력이 많지 않고 불안정한 것으로 보아 음의의 경계에 이른 지 오래지 않은 듯했다.
노인은 가까이 다가와 한제를 자세히 살피더니 놀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사자님께서 우리 성단성(聖壇星)에 오시다니, 어쩐 일이십니까?”
한제는 두 눈을 가늘게 뜨더니 조용히 물었다.
“뇌정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인가?”
노인은 표정이 약간 변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헌데 사자님께서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뇌정이 하나 필요하다.”
그 말에 노인은 한제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에는 오만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노인은 눈을 번득이며 호통치듯 말했다.
“이번에 뇌선전에 갔다가 누가 뇌선전의 사자를 사칭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네놈이 바로 사자를 사칭하고 다니는 그 자로구나!”
“허?”
한제는 재미있다는 듯 노인을 바라보았다.
“뇌선전의 사자라면 그에 의탁한 수련자 가문이 적지 않을 터! 뇌정이 필요하다면 자신에게 의탁한 가문에 가 찾으면 될 일이지. 게다가 난 이 나천성역 남역의 모든 뇌선전 사자를 다 보았다. 헌데 너는 전혀 본 적이 없어! 무엇보다 이번에 뇌의 선계가 열릴 때까지 모든 뇌선전의 사자는 뇌선전에 모이게 되어 있다. 이렇게 밖에 나와 돌아다닐 리가 없지.”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간, 그의 뒤쪽으로 늘어진 그림자가 움직이더니 온몸으로 금빛을 번쩍이는 선위 꼭두각시가 쑤욱 빠져나오면서 주먹을 날렸다.
쒜엑!
그 주먹은 공기를 찢으며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헛!”
노인은 순간 안색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문정기 절정에 불과한 한제가 이렇게 강력한 꼭두각시를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탓이었다.
허나 음의의 수준에 오른 수련자답게 노인은 금세 평정심을 되찾고는 코웃음을 치더니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순간 한 줄기 시커먼 화염이 노인의 손에서 튀어나왔다.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다!”
노인이 호통을 치며 손가락을 튕기자 화염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퍼져나가더니 셀 수 없이 많은 불꽃이 되어 사방으로 확산됐다.
곁에 있던 가문 사람들은 거리를 벌린 채 멀리서 이 전투를 지켜보았다.
선위 꼭두각시는 그 불꽃들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의 주먹은 어느새 용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노인의 몸을 가격하기 직전이었다.
노인은 안색이 약간 변해 곧장 뒤로 물러나면서 동시에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화염으로 이루어진 방패가 나타나 그의 앞을 막았다.
콰쾅!
선위의 주먹과 화염 방패가 충돌한 순간, 고막이 터질 듯한 폭발음이 울렸다.
화염 방패에는 균열이 이는가 싶더니 순간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노인은 창백해진 얼굴로 빠르게 뒤로 물러났고 선위 꼭두각시 역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한 줄기 검은 화염이 선위의 팔을 따라 타오르면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뇌정 하나면 된다.”
한제는 덤덤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노인은 한제를 바라보았다. 방금 맞닥뜨린 선위 꼭두각시의 주먹에 그는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만약 원력을 이용한 신통력이 아니었다면 결코 막아내지 못했을 터였다.
‘이 정도 수준의 꼭두각시를 가지고 있다면 절대 일반적인 인물은 아닐 터! 뇌선전의 사자를 사칭했다고는 하지만 그 일과 나는 조금의 관련도 없다. 다만⋯⋯ 이렇게 뇌정 하나를 내어준다면 우리 장가의 면목이⋯⋯.’
노인은 고민에 빠졌다. 만약 한제의 수준이 두 번째 단계에 이르렀다면 곧장 뇌정을 넘겼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이번에 장가에서 얻은 뇌정은 세 개였으니 하나 정도 넘겨줘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정기 수련자에게 넙죽 뇌정 하나를 넘겨준다면 자신의 체면은 바닥에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