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91
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한제는 저물대에서 돌 하나를 꺼냈다. 이 돌은 곧장 거대한 선산(仙山)이 됐는데 그 선산에서는 선력이 짙게 피어올라 은연중에 강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한제가 오른손으로 돌을 누르자 돌은 부르르 진동하더니 오래된 기운을 피워 올렸다. 이 기운은 한제의 오른손 아래에서 줄기줄기 안개가 되어 응집하더니 주먹만 한 안개 덩어리를 이루었다.
“추령술(抽靈術)! 겨우 문정기 수련자가 어떻게 저런 신통술을…?”
노인은 충격을 받은 듯 뒤로 물러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한제는 말없이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안개 덩어리가 순간 앞으로 튀어나가 엄청난 위압감을 품은 채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한제 또한 그 안개 덩어리를 뒤따르면서 한 줄기 번개를 오른손에 응집시켰다.
꽈르릉!
순간, 우주에서 천둥번개의 포효가 들려왔고 번개가 번쩍인다 싶더니 한제의 오른손에 한 줄기의 실체화된 번개가 모여들었다.
한제는 천둥과 번개를 장악한 신선처럼 손에는 번개를 들고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노인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경악한 노인은 다시 뒤로 물러나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미간에 찍었다. 그러자 그의 미간이 꿈틀거리더니 마치 세 번째 눈이 나타난 듯 틈이 하나 벌어졌다.
마치 한순간에 모든 피가 얼굴로 몰려들기라도 한 것처럼 노인의 얼굴은 시뻘겋게 변했다. 체내의 원력 역시 미친 듯이 돌면서 미간으로 응집됐다.
“크으윽!”
생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엄청난 고통이 전신으로 퍼진 찰나, 노인의 미간에 생겨난 세 번째 눈이 느릿하게 떠졌다. 노인은 한제를 노려보면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자신의 두 귓구멍에 찍었다.
순간, 세 번째 눈이 번쩍 떠지면서 한 줄기 붉은 빛이 발산되어 부채꼴 모양으로 빠르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기이한 신통력에 한제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이에 그는 움직임을 조금 늦추었고 대신 선산의 혼이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붉은 빛 속에서 선산의 혼은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그 순간, 한제는 곧장 오른손에 쥐고 있던 번개를 내던졌다.
우르릉! 쾅!
천지를 뒤흔들며 번개가 노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노인은 아직 음의에 이른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이라 본디 이 신통력을 사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붉은 빛은 금세 사라졌고 세 번째 눈 역시 곧장 닫혔다.
그 순간, 번개와 아직 완전히 와해되지 않은 선산의 혼이 달려들었다. 이에 노인은 이를 악물며 저물대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어 올렸다.
한제는 곧바로 손을 휘둘러 노인이 꺼낸 것을 가져왔다. 바로 뇌정이었다.
허나 뇌정을 손에 넣은 한제는 곧바로 떠나지 않고 노인에게 물었다.
“방금 그 신통력, 나와 교환하겠나?”
노인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허! 무슨 소릴 하는 게냐? 내가 네놈을 당해내지 못한 것은 음의에 이른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이다. 몇 년 후였다면 네게 아무리 많은 법보가 있다한들 내 적수가 되지는 못했을 게야!”
한제는 산혼을 거두고 선산을 회수하며 덤덤하게 말했다.
“나와 신통술을 교환하겠느냐고 물었는데…”
노인이 냉소했다.
“꿈도 꾸지 마라! 뇌정을 손에 넣었으니 어서 꺼져!”
한제는 말없이 손가락 하나를 뻗었다. 그러자 순간 한 줄기 검은 빛이 튀어나갔고 그 순간 노인은 생기가 뽑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이게 무슨…?”
검은 빛은 노인을 지나쳐 날아간 후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노인은 신식을 펼쳐 빛이 어느 평원에 떨어졌고 그 순간 그 평원 위의 모든 식물이 말라죽는 것 보았다. 또한 그 죽은 식물들로부터 빠져나온 모든 생기가 빠르게 한제의 체내로 녹아드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신통력은 적멸지라 한다.”
한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노인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내가 음의에 이르지 못했다면 탐이 났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계륵 신통력일 뿐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노인은 내심 적멸지에 무척 놀란 상태였다. 특히 상대의 생기를 흡수하는 능력에는 내심 두려움이 일었다.
한제는 오른손 손가락을 다시 뻗었다. 그러자 요사스러운 검은 기운 한 줄기가 그 끝에서 맴돌다가 한제가 손가락을 튕기자 바람이 일며 노인의 앞에서 멈추었다.
“이것은 화마지라는 것이다. 체내의 선기를 마기(魔氣)로 바꿀 수 있지.”
노인은 약간 고민하다가 손을 뻗어 눈앞의 검은 기운을 움켜쥔 후 신식으로 살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한제를 향해 느릿하게 말했다.
“동림성의 수련자가 마기를 이용하는 신통술을 다루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던데 이제 보니 네놈은 동림성의 사람이구나! 허나 이 신통력 역시 내게는 계륵과 같다.”
한제는 잠시 고민했다. 사도환에게서 배운 것 중 남은 하나는 황천지였으나, 이는 교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었다. 당시 사도환이 가장 신경 쓰던 술법이었기도 하고 결함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여주겠다. 쇄열기에 이른 선배로부터 배운 것이지.”
노인은 불신의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마음속으로 명을 내렸고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선위 꼭두각시가 곧장 한 줄기 금색 유성이 되어 날아갔다. 그 움직임을 본 노인의 얼굴에는 다시 두려움이 감돌았다.
잠시 후, 선위 꼭두각시는 한 마리 마수를 쥔 채 돌아왔다. 상당히 흉악해 보이는 그 마수의 온몸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했고 입에는 사람의 팔뚝이 절반 정도 나와 있었다. 인간을 사냥하여 먹던 중에 잡혀 온 모양이었다.
한제는 오른손의 손가락 두 개를 펼쳐 아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살육 선결을 발휘했다. 당시 수많은 살육의 기운을 응집하여 선위 꼭두각시에게 적용하고 그 나머지는 전투에서 소모한 바 있었다.
하지만 살육 선결은 한제에게 남다른 술법이었다. 그가 1백 년 이상 공을 들여 깨달은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한제가 손가락을 휘두르자 한 줄기 검기가 발산되어 곧장 좀 전의 그 마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캬오오!”
마수가 비참한 비명을 내지른 순간, 노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수의 몸이 빠르게 말라 들어가더니 결국 뼈만 남았기 때문이다.
한 줄기 회색 기운이 그 마수의 뼈에서 흘러나와 한제의 손가락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한제가 손가락을 가볍게 휘두르자 이 회색 기운은 곧장 하나의 낙인이 되어 노인에게로 날아갔다.
“이 신통술의 이름은 살육 선결이라고 한다.”
노인은 놀란 얼굴로 그 낙인을 쥐고는 얼른 신식으로 살폈다.
전무후무
시간이 지날수록 노인의 표정이 굳어갔고 두 눈에 탐욕과도 같은 빛이 차올랐다.
낙인에는 일정한 방어력도 있었으며 회색 기운은 공격력도 가지고 있었다. 노인의 수준이라면 단번에 살육 선결의 강력함을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이는 유달리 강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여러 차례 누적하여 사용할 수도 있는 술법이었다.
“이 낙인은 살육 선결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살육을 통해 생기의 힘을 얻고 그 힘을 이용해 생의 낙인을 응결시킬 수 있어. 낙인이 많을수록 방어력 역시 강해지지. 당시 내게 그 술법을 전수해준 선배가 말하길, 온몸을 억만 개의 낙인으로 방어하면 수련성이 무너진다 해도 무사할 것이라고 하더군.”
이는 실제로 당시 회색 옷을 입고 있던 천운자가 했던 말이었다.
지금까지와 달리 노인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살육 선결은 그의 마음이 움직일 만한 술법이었다. 그는 경험과 식견이 풍부해 살육 선결이 얼마나 강대한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이는 일반적인 수련자가 가지고 있을 법한 술법은 결코 아니었다. 쇄열기 선배가 전수해줬다는 말에도 믿음이 갔다.
다만 그가 가진 제삼의 눈을 구현하는 신통력은 가문의 유산으로 쉽게 외부인에게 넘겨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술법의 내력은 불분명했지만 아마도 오래 전 어느 선조가 우연히 얻은 것으로 추정됐다.
연맹성역과 달리 가문 위주로 구성된 나천성역에서는 모든 가문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통력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런 술법을 쉽게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노인의 가문에서 이 신통력을 독점적으로 차지하게 된 이래 이를 익히는 데 성공한 유일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잠시 기다리던 한제는 계속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노인을 보다가 소매를 휘두르며 몸을 돌려 뇌수에 올랐다.
“됐네, 도우가 원하지 않는다면 이 일은 없던 것으로 하지. 뇌정 일은 미안하게 됐네.”
말을 마친 한제는 뇌수와 함께 번개가 되어 멀어져갔고 선위 꼭두각시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그러자 노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생의 낙인은 곧장 무너져 내려 재로 흩어져 버렸다. 그 순간, 노인은 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것처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노인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멈추게! 이 살육 선결에 이전에 봤던 그 적멸지와 화마지까지 더한다면 교환하겠네!”
한제가 움직임을 멈추자 영특한 뇌수는 명을 받지 않았는데 몸을 돌려 노인 앞으로 돌아왔다. 허나 노인 1백 척 앞에서 멈춘 뇌수는 불쾌하다는 듯 코로 번개를 내뿜었다.
“바꾸세, 바꾸세. 허나 이 술법을 절대 다른 곳에 유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게.”
노인이 이를 악문 채 말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저물대에서 세 개의 옥패를 꺼내 세 개의 신통술을 상세히 기록한 뒤 노인에게 건넸다.
옥패를 받아 든 노인은 내심 한제의 행동에 놀랐다. 저 청년은 자신이 말을 번복하고 이 옥패를 가지고 도망칠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 듯했다.
노인은 묵묵히 옥패를 꺼내 제삼의 눈을 구현하는 신통술을 기록한 뒤 한제에게 넘겼다. 하지만 그는 그 안에 약간의 수작을 부려 둔 상태였다. 기록된 대로 술법을 익혀나간다면 성공이야 하겠지만 드러나지 않는 큰 문제가 생길 터였다.
한제는 옥패를 받아들고 자세히 한 번 살폈다. 그는 옥패에 기록된 설명에 약간의 허점이 있는 것도 파악했으나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무려 3개의 신통력을 넘겼으니 손해 보는 거래 같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포권을 하며 말했다.
“도우, 살육의 기운의 수는 10만 개를 넘어서는 안 되네. 그 수를 넘었다가는 위험해질 수 있어. 그럼 이만.”
말을 마친 한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그의 뒷모습에서는 보기 드문 조급함이 느껴졌다.
노인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 손에 쥔 옥패들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몸을 돌렸다. 곧장 폐관수련을 시작해 뇌의 선계가 열리기 전까지 이 신통술들을 모두 익힐 생각이었다.
한편, 한제는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긴, 문제가 있던 세 개의 법술을 세 번째 단계의 방향과 부합한 하나의 법술로 바꿨으니 꼭 손해라고 할 수는 없지.”
한제는 손에 쥔 옥패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노인은 이 신통술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있으나, 한제가 보기에는 매우 강력할 뿐만 아니라 본원으로 회귀하는 기운까지 품고 있었다. 물론 그가 세 번째 단계를 목격하지 못했다면 이 술법의 진정한 가치를 눈치채지 못했을 터였다.
한제는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옥패를 다시 자세히 살폈다.
상대가 그 안에 남겨 놓은 허점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자신이 건넨 세 신통술의 문제점을 고치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뇌수는 매우 빠른 속도로 우주를 갈랐다.
이번 목적지는 한제 자신의 수련성인 청령성이었다.
청령성 수련자들은 한제가 떠난 것을 기뻐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다시 돌아오자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횡운봉으로부터 1만 리는 다시 금지 구역이 되었다.
한제는 곧장 제삼의 눈을 구현하는 신통술을 연구하고 익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반년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