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92
무척 화창한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한제는 뇌정을 든 채 횡운봉 꼭대기에 섰다. 겨우 손바닥만 한 이 솥에서는 번개가 흐르면서 맑은 소리를 냈다.
한제의 미간에는 보일 듯 말 듯 미세한 금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붉은 빛이 발산되었다. 지금 그의 모습은 매우 기이했고 몸에서는 사악한 기운이 흘렀다.
이 모든 것은 미간의 그 미세한 금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르고 맑았던 하늘에 천둥번개를 품은 구름이 몰려들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천둥소리가 구름층 안에서 맴돌았다. 그와 동시에 한제의 손에 들린 뇌정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며 전보다 더욱 짙은 번개의 빛을 드러냈다.
바로 그때, 하늘의 구름층에서 갑자기 한 줄기 굵은 번개가 곧장 한제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릉!
한제는 기이한 눈빛으로 그 번개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번개가 뇌정을 향해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그 힘에 이끌려 뇌의 선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임을 알아챘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한제는 돌연 쥐고 있던 뇌정을 거두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선뢰(仙雷)로군⋯⋯.”
그의 눈빛은 더욱 기이하게 변해갔고 뒤이어 그는 뇌의 선계가 열린 이래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뇌의 선계가 열리면 선계의 번개가 생성된다. 그리고 이 번개에는 뇌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어째서 그런 작용이 일어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아주 오래 전부터 일어난 일이라 당연하게 여길 뿐이었다. 몇몇 수준 높은 수련자들은 그 안에 담긴 비밀을 연구하기도 했은데 결국 답을 얻어낸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는 그 비밀을 탐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수련자들이 아는 사실은 그저 뇌정을 가지고 있으면 뇌의 선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청령성에서 한제가 뇌정을 거둔 그 순간, 짙은 선기를 품은 채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미처 이르기도 전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르릉!
한제는 체내의 원신을 미친 듯이 일으켰다. 번개의 빛이 체내를 돌아다니면서 심지어는 몸 밖에까지 영향을 미쳐 지면을 따라 사방으로 확산됐다.
한제는 마치 유성처럼 튀어 올라 돌진하더니 입을 쩍 벌려 그 천둥번개를 한 입에 집어삼켰다.
엄청난 광경이었다.
한제가 천둥번개를 집어삼킨 그때, 바람과 구름의 기세가 변했고 온 세상이 순간 어두워졌다. 요란했던 천둥소리는 다소 음울한 포효로 바뀌어 한제의 체내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제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선뢰(仙雷)를 집어삼킨 순간, 그는 마치 고대 신의 주먹질에 적중당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의 온몸은 마치 끈 떨어진 연처럼 나풀거리다 체내에서 콰쾅 하고 울리는 소리와 함께 곧장 땅으로 뚝 떨어져 버렸다.
그 순간, 격렬한 천둥번개가 한제의 체내에서 튀어나와 사방으로 퍼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경 10리 안에 번개의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콰아아!
이 엄청난 번개 폭풍에 지면에는 깊은 구덩이가 파였고 한제의 몸은 내부에서부터 들려오는 폭발음과 함께 바닥 아래까지 꽂혔다. 그의 몸은 번개의 빛으로 격렬하게 번쩍거렸고 두 눈은 굳게 감겨 있었다. 원신은 미친 듯이 선뢰의 힘을 흡수함과 동시에 뇌원술을 발휘해 끊임없이 천지의 원력을 흡수했다. 마치 자갈층 안 천둥번개의 연못 안에서 펼쳐졌던 것과 같은 장면이었다.
번개를 품은 구름층 안에서도 우렁찬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선계의 위엄에 대한 도전을 허용치 않겠다는 호령 같았다.
선뢰를 쏘아낸 하늘의 구름층은 흩어질 기미를 보이며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 지면의 깊은 구덩이 속에서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에서는 짙은 번개의 빛이 번득였다.
한제는 입술을 핥았다. 선뢰에 포함된 원력은 심지어 천둥번개의 연못에서 흡수한 것보다 몇 배나 더 짙고 풍부했다. 문정기 절정에 이르면서 한계가 늘어난 원신의 원력이 한층 차올랐다.
한제는 눈을 뜨자마자 구덩이에서 튀어나오면서 다시 뇌정을 꺼냈다. 그러자 사라질 기미를 보였던 구름이 곧장 다시 응집되었고 곧이어 또 하나의 선뢰를 내리쳤다.
“하하하! 그래, 오너라!”
한제는 재빨리 뇌정을 거두고 다시 한 번 냉큼 선뢰를 삼켰다. 만약 다른 수련자들이 이 행동을 봤다면 분명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온 청령성을 뒤흔들 듯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대지가 바르르 진동했다. 한제의 몸은 다시 대지로 처박혔다. 허나 이번에는 대지로 떨어짐과 동시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온몸을 격렬하게 떨었다.
한제에게는 흡수할 시간조차 없었다. 두 번의 천둥번개가 떨어진 뒤, 구름이 흩어지기 시작했는데 전보다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의 정수리 위에서 푸른 빛이 발산됐다. 이 빛은 곧장 푸른 안개가 됐고 그 안개 속에서 한제의 원신이 빠져나갔다.
그 순간, 한제의 저물대 안에 있던 뇌정이 빠르게 날아들어 원신을 휘감더니 곧장 그 안에 녹아들어 하늘을 향해 튀어 올랐다.
빠르게 흩어지고 있던 구름은 마치 짜증을 내듯 좀 전보다 더 격렬한 소리를 내더니 다시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노를 토해내듯 모든 구름들을 한데 모아 이전의 번개들보다 훨씬 더 강한 선뢰를 만들어냈다.
콰르릉!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졌고 그 순간 온 하늘의 구름층이 그 안에 흡수되어 버렸다. 이는 마치 번개가 아니라 거대한 회오리 같았다.
번개를 품은 구름층으로 이루어진 회오리 아래쪽 끄트머리에 이전보다 강력한 세 번째 선뢰가 있었다.
온 청령성 수련자들은 순간 감히 신식을 펼칠 수도 없었고 모든 일반인들은 집에 엎드려 제발 살려달라고 각종 신령에 대고 빌었다.
한제의 원신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천둥번개의 회오리를 보며 쓰게 웃었다.
“일을 너무 크게 벌였나?”
이어서 한제의 원신은 몸을 훌쩍 날려 빠르게 늘어나더니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변화를 마쳤을 때는 태고의 뇌룡과 닮은 모습이었다.
“그래, 와봐라! 누가 이기나 해보자!”
한제의 원신은 포효를 내지르며 다시금 천둥번개를 한입에 집어삼키려 했지만 절반 정도만 삼킨 뒤 곧장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천둥번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잔뜩 화가 난 듯 뇌룡을 바짝 뒤쫓았다.
한제의 원신은 눈 깜짝할 새 지면으로 되돌아오더니 뇌정을 내던지고는 곧장 육신의 정수리를 통해 체내로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두 눈을 번쩍 뜬 한제는 오른손으로 뇌정을 움켜쥐었다.
바짝 쫓아오던 천둥번개는 곧장 뇌정에 떨어졌고 그 뒤에 따라온 거대한 회오리 역시 뇌정으로 돌진했다.
뇌정 안의 번개가 미친 듯이 번쩍였다. 그것을 쥐고 있는 한제의 오른손이 저릿해지다 못해 두려워질 정도였다.
뇌정은 급속도로 회전하며 구름 회오리와 선뢰를 미친 듯이 흡수했다. 거대한 회오리는 엄청난 속도로 순식간에 뇌정에 녹아들었다.
쩍!
회오리가 청령성에서 사라진 순간, 뇌정에는 균열이 일었다. 한제는 알지 못했지만 뇌의 선계가 열린 이래 뇌정에 균열이 생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뇌정은 그 수가 고정되어 있었고 그것은 망가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매번 뇌의 선계가 닫힌 뒤 이 뇌정들은 나타날 때처럼 허공으로 돌아갔고 다음에는 여전히 같은 수가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모든 것에 변화가 생겨버렸다.
한제는 자신이 너무 과한 짓을 벌인 모양이라 생각하며 쓰게 웃었다. 뇌정이 완전히 부서진다면 뇌의 선계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뇌의 선계의 물건인데 이 정도로 부서지지는 않겠지.”
한제가 애써 위안을 삼으려 하던 그때, 뇌정은 모든 천둥번개를 흡수했다. 그러더니 균열이 점차 늘어났고 결국 부서지고 말았다.
“제길!”
한제가 한탄하는 사이, 하늘을 뒤흔드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청령성에 한 차례 폭풍이 일어났다. 그러자 산산조각 난 뇌정의 파편들은 번개에 의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다행이군. 파편들만 온전히 남아 있다면 다시 복원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순간, 뇌정이 한 차례 더 무너지더니 아예 가루로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
뇌정은 본래 파멸시킬 수 없는 물건이었다. 두 번째 단계에 진입한 수련자라 해도 그럴 수는 없었다. 정말로 뇌정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럴 이유가 없을 터였다.
한제는 더욱 씁쓸하게 웃었다.
한데 뇌정이 무너져 흩어진 그 순간, 그 안에 있던 천둥번개가 한 번 더 폭발하면서 어마어마한 번개를 생성했다.
우르릉!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번개는 한제의 몸을 휘감더니 부서진 뇌정의 가루와 함께 빠른 속도로 하늘로 솟아올랐다.
“크윽!”
어찌나 빠른지, 한제는 육신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는 보통 뇌정을 가지고 선뢰를 맞았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허공을 부수고 우주와는 전혀 다른 공간에 이른 순간까지, 한제는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 그저 휩쓸려가기만 했다.
뇌의 선계
나천성역 사방에서 수많은 수련자가 선뢰의 힘에 이끌려 뇌의 선계 대문 앞에 이르렀다. 이들의 몸에서 발산되는 번개의 빛을 제외한다면 눈길이 닿는 곳은 모두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한데 바로 이때, 그 어느 것보다 눈부신 번개 한 줄기가 갑자기 나타나 마치 유성처럼 강력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 번개가 지나가는 기세에 가까이 있던 수련자들을 감싼 번개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깜빡거렸다.
이 수련자들은 안색이 크게 변해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그 번개가 지나쳐간 곳을 살폈지만 이미 그 번개는 반짝이면서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저⋯⋯ 저게 뭐지?”
그중 한 수련자가 중얼거렸다.
한편, 한제는 유성과도 같은 속도에 심지어 신식조차 펼칠 수가 없었다. 이런 속도에서 신식을 펼쳤다가는 신식이 극한까지 펼쳐지면서 원신을 다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제는 엄청난 속도로 뇌의 선계 대문이 있는 곳까지 돌진했다.
먼저 그곳에 도착해 있던 수련자들은 화들짝 놀랐고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우왕좌왕했다. 자제력이 뛰어난 수련자들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신식을 펼칠 엄두도 내지 못했고 만약 펼친다 해도 그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유성에 고정시키기는 어려웠다.
★ ★ ★
허상의 공간 안쪽 끄트머리에 뇌의 선계의 대문이 있었다. 허나 뇌의 선계의 ‘문’ 또한 하나의 번개였다. 어두운 붉은색의 이 번개는 너무도 커서, 단 한 줄기에 불과한데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양쪽 끝은 허공에 녹아들어 마치 긴 강 같아 보이기도 했다. 다만 그 번개에서는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천성역에서는 이 번개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소문은 이 뇌의 선계에는 원래 문이 없었다는 이야기로 온통 천둥번개로 가득 차 있어 문이 필요 없었다는 것이다. 이 암적색 번개는 뇌의 선계가 붕괴했을 때 나타난 선계의 선혼들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후부터 ‘문’이 됐다고 했다.
그 암적색의 번개 아래, 많은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묵묵히 선계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뇌선전의 사자들 외에도 나천성역에서는 보기 드문 떠돌이 수련자들도 있었다.
가문 위주로 구성된 나천성역에는 본래 떠돌이 수련자가 많지 않았다. 압도적인 능력이 있지 않은 이상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의 대부분의 떠돌이 수련자들은 극강의 존재라 할 수 있었다.
뇌의 선계의 ‘문’ 아래 모인 이들은 서로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다른 곳에서 이끌려온 수련자들이 속속 도착했는데 먼저 이곳에 도착한 이들은 대부분 이미 두 번째 단계에 진입한 수련자들이었다. 서로 아는 자끼리는 포권을 하며 짧게 인사만 나눈 뒤 다른 곳으로 가 혼자 앉곤 했다.
신공호 곁에는 한 중년 수련자가 앉아 있었다. 남색 옷을 입은 이 사내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이 배어 나왔다.
“고고하기로 소문난 신공호에게 주인이 생겼다기에 믿지 않았는데 신공 형의 도혼이 온전치 않은 걸 보면 그저 뜬소문은 아닌 모양이야. 안타깝군, 안타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