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93
남색 옷의 사내는 비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신공호의 표정은 덤덤했다.
“제비 따위가 봉황의 뜻을 알기는 쉽지 않듯, 비천한 인물은 큰 인물의 뜻을 알기 쉽지 않은 법이지. 당언풍, 자네가 내 뜻을 알 리가 있겠는가.”
신공호의 말에 당언풍은 음산하게 웃었다.
“그 큰 인물이 품은 뜻이 무엇인지 꼭 물어보고 싶군.”
신공호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지난 20년간 그는 가문과 뇌선전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아왔다. 모두 그가 한제에게 의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문에서는 그의 경솔한 결정을 힐난했다. 아무리 뇌선전의 사자라고는 해도 가문의 선배에게는 대항할 수 없었다.
뇌선전에서는 다른 존재에게 의탁한 사자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 문제로 그에게 구체적인 제재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신공호는 뇌선전이 그를 멀리한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예컨대 지금도 그의 천부적인 자질이라면 다른 뇌선전 사자들과 함께 다른 방법으로 뇌의 선계에 진입해야 했다. 이곳에도 뇌선전의 사자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지위나 신분으로 따지자면 감히 신공호와 비할 수가 없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신공호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 백번 옳았다고 믿었다. 당언풍에게 한 말도 사실은 가문의 선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가문의 대장로께서도 시종일관 정열기에서 나아가지 못하시는 중이지. 전설 속의 세 번째 단계에 닿기란 묘연한 일이야. 한데 그들에게 내 인생에 대해 지적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신공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편, 당언풍은 냉소했다. 신공호는 같은 또래 중 처음으로 뇌선전의 사자가 된 자였다. 그런 자가 한 번의 판단 착오로 이 지경이 되고 보니 그간 알게 모르게 쌓였던 열등감이 싹 풀리는 듯했다.
한데 그때, 저 멀리에서 눈부신 빛이 한 줄기 나타나더니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폭풍이 밀려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 그 자리의 모든 수련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 그 빛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거의 유성에 비할 수 있을 만큼 믿어지지 않는 속도였다.
이 자리의 수련자들은 모두 강력한 자들로 특히 떠돌이 수련자들은 모두 막강한 자들인 만큼 신식을 저 유성 같은 번개에 고정시키려 했다. 그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실마리라도 잡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조차 이토록 빠른 번개에는 신식을 고정시킬 수 없었다.
번개는 다른 수련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 순식간에 뇌의 선계의 문 앞까지 이르렀다.
“엇!”
모든 사람들이 휘둥그레 뜬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이 엄청난 기세의 번개는 거대한 암적색 번개에 부딪혔다. 그러더니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드⋯⋯ 들어간 건가?”
수련자 중 하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다른 수련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뇌의 선계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뇌의 선계의 문이 열리기도 전에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당언풍은 멍하니 그 선계의 문을 바라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게 어떻게⋯⋯ 어떻게 문이 열리기도 전에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설마, 문이 열리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었던 건가?”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그만은 아니었다.
그때, 한 사람만 훌쩍 앞으로 나섰다. 그 사람의 등 뒤에서 걸어 나온 분신은 그의 손짓 아래 긴 빛을 그리며 암적색 번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른 수련자들의 시선이 쏠린 사이, 분신은 암적색 번개에 닿았다. 그리고 곧장 경련을 일으키더니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뿐만 아니라 한 갈래의 암적색 번개가 문 안에서 분리되어 나오더니 방금 분신을 내보냈던 수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헛!”
음의의 수준인 그 수련자는 깜짝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그는 그 암적색 번개 앞에서 머리가 저릿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미처 순식간에 암적색 번개에 따라잡히고 말았다. 암적색 번개는 그의 체내로 들어가 한 바퀴를 돈 뒤 빠져나왔다.
“끄으으…”
수련자는 경련을 일으키더니 곧이어 원신이 무너져 내렸고 심지어 저물대까지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주위는 적막에 휩싸였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중 누구도 지금 고개를 숙인 신공호의 눈빛이 흥분으로 번득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신공호는 도혼을 통해 그 유성과도 같은 번개 안에 자신의 주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신공호는 틀리지 않았다! 주인님은 과연 대단한 분이야. 선계의 문이 열리기도 전에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니⋯⋯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수준이야!’
★ ★ ★
파편으로 무너진 어느 대륙의 수많은 번개로 둘러싸인 새카만 산봉우리 위에 한 노인이 서 있었다. 그의 흰머리는 바람에 휘날렸고 품이 넉넉한 옷도 마구 펄럭였다.
뒷짐을 진 채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재미있군.”
흥미롭다는 듯 어느 한 곳을 바라보던 노인은 바람이 불어오자 수많은 빛으로 부서져 산 위에서 사라졌다. 만약 한제가 노인을 보았다면 그가 사라진 순간 본원으로 돌아가는 기운이 은은하게 풍겼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을 터였다.
암적색 번개를 통과한 순간, 한제를 이끌고 뇌의 선계에 들어간 번개에 포함된 힘이 미친 듯이 커져 배로 늘었다. 마치 용 한 마리가 체내에서 꿈틀거리는 듯 한순간에 한제의 온몸은 뻣뻣해졌고 원신마저 묶여 버렸다.
한제는 생각을 정리할 정신조차 없었다. 마치 정신술에 적중당한 것처럼 몸이 바르르 떨리며 굳어졌다. 주위를 살필 수도 없었다. 한제를 감싼 번개는 더욱 맹렬한 속도로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처럼 뇌의 선계의 부서진 한 대륙 위에 떨어졌다.
쾅!
번개는 마치 운석처럼 허공을 뚫고 대지에 떨어지면서 폭풍을 일으켰고 맹렬한 기세의 폭풍이 사방으로 확산되면서 먼지 연기가 피어올라 30척 밖을 내다볼 수가 없게 됐다.
맹렬하게 뒤흔들리던 대지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모래 폭풍이 흩어지면서 서서히 안정되어갔다. 하지만 대륙의 동쪽 지면에는 깊은 구덩이 하나가 남아 있었다.
푸른 연기가 그 구덩이로부터 줄기줄기 피어오르다가 불어온 바람에 흩어졌다.
이 구덩이의 가장자리 진흙에는 번개가 맴돌았고 탄 자국도 남아 있었다.
구덩이는 너무나 깊어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그 구덩이 가장 깊은 곳에 한제가 쓰러져 있었다. 그의 눈과 코, 귀, 그리고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몸 곳곳에도 심한 상처가 나 있었다.
뇌의 선계는 우의 선계보다는 안정적인 상태이긴 했지만 여전히 붕괴의 위험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엄청난 번개의 충격으로 이 대륙은 더욱 불안정해졌다.
한제가 쓰러져 있는 구덩이는 곧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무너져 내렸고 이내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가 흩어지면서 구덩이를 그대로 메워버렸다.
그때, 백발노인은 허공에서 돌연 나타나더니 좀 전까지 구덩이가 있던 곳을 살피며 피식 웃었다.
“내 오래 살아왔지만 이렇게 욕심 많은 녀석은 처음 보는군. 이런 방식으로 이 뇌의 선계에 들어오려 하다니⋯⋯ 음?”
잠시 구덩이가 있던 곳을 살피던 노인의 눈빛이 갑자기 굳어졌다.
“녀석의 원신에 천둥의 위엄이 어려 있군! 심지어 육신도 천둥으로 이루어져 있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야. 녀석은 대체 사람인가 영혼인가? 이런 식으로 수련해나간다면 언젠가 천둥의 영혼이 될 텐데! 녀석이 떨어진 곳도 흥미롭군. 좋아, 내가 녀석을 발견하게 된 것도 다 인연일 터.”
노인은 재미있는 일이라도 발견한 듯 웃으며 오른손을 들어 아래로 꾹 눌렀다. 그러자 한 줄기 빛이 온 대지를 한 번 휩쓸었다. 노인은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평생 연이 닿은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그들은 모두 불행하게 삶을 마감하고야 말았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지하 깊은 곳에서 눈을 뜬 한제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눈살을 찌푸렸다. 원신마저도 제대로 이용할 수가 없었다.
한제는 쓰게 웃으며 사방을 살폈다.
그곳은 무너져가는 흙집으로 천장에서는 진흙이 계속해서 떨어졌다.
주변을 몇 번 살핀 한제는 몸부림을 치듯 일어나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눈을 감고 호흡했다.
천천히 원신을 가동하던 한제는 체내에서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천둥의 힘을 발견했다. 이 힘이 바로 원신이 제대로 운행되지 못하는 원인이었다.
사방에서는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제는 호흡에만 집중했고 선위 꼭두각시가 그의 맞은편에서 경계를 섰다.
인연
빠르게 시간이 흘러 7일째 되던 날,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고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탁한 숨을 뱉어냈다. 이 숨에는 천둥의 힘이 약간 섞여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모험을 해서는 안 되겠어. 원신에 영향을 미친 천둥의 힘이 많지 않았기에 그나마 이렇게 빨리 그 힘을 다 제거할 수 있었던 거지.”
그는 천둥번개의 힘을 다 몰아내자 상태가 호전됐다. 원신은 회복됐고 육신의 상처 또한 대부분 회복된 상태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제는 머리 위의 진흙 벽을 바라보다가 몸을 날렸다.
“어디 뇌의 선계는 우의 선계와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구경이나 해볼까?”
흐르는 빛으로 변한 한제가 발을 딛으려는 찰나, 벽 위쪽의 흙에 빛이 흘렀다.
쾅!
빛이 흐르는 흙벽에 부딪힌 순간, 한제는 마치 철판에 부딪힌 것처럼 좀 전에 쓰러져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바닥으로 떨어진 한제는 놀란 얼굴로 몇 걸음 물러났다.
“이 흙에… 천지의 원력이 포함되어 있군. 허나 이것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원력이 아니라 누군가의 신통력으로 구성된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거야.”
한제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선위 꼭두각시를 이용해 확인해보았으나, 전방을 제외한 상하좌우는 뚫고 지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한제의 경계심이 더욱 드높아졌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일부러 조성해놓은 상황이다. 빠져나갈 구멍을 단 하나만 남겨둬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수작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게 된 한제는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며칠간 묵묵히 부상을 치료했다.
“뇌의 선계가 정식으로 열릴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았지? 나를 여기 가둬둔 자의 정체는 뭘까?”
의문점은 많았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선계 한구석에 누군가를 감금해놓을 수 있을 정도라면 수준은 결코 만만치 않을 터! 한데 나를 가둬두고 앞으로만 나갈 수 있게 해둔 이유는 뭐지? 내게 적의를 품었다면 곧장 공격을 해도 됐을 텐데⋯⋯.”
한제는 잠시 더 고민하다가 전방의 벽에 선위 꼭두각시의 주먹이 남긴 흔적을 바라보았다.
“됐어. 여기 머물러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가보는 수밖에…”
한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저물대에서 금빛으로 번쩍이는 붓을 꺼냈다. 그 붓을 손에 쥔 순간, 미간의 금이 붉은 빛을 조금씩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빛이 발산됨에 따라 한제는 점점 사악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이어서 그가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선력 한 줄기가 휘몰아치더니 전방의 흙벽을 사방으로 흩으며 통로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