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94
한제는 신식으로 그 너머를 살펴보았다.
통로 안쪽으로는 어느 방향으로 뻗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셀 수 없이 많은 굽은 길이 있었다.
한제는 망설임 없이 통로로 들어섰다. 그러는 도중에 신식을 펼쳐 출구를 찾았고 동시에 서로 다른 위치에서 신통력을 발휘해 위쪽으로 솟구쳐 올라봤지만 모든 길은 법술로 막혀 있어 도저히 뚫고 나갈 수가 없었다.
앞으로 한동안 나아가던 중 신식을 통해 한 갈림길에서 출구를 발견한 한제의 눈빛이 번득였다. 그는 곧장 출구로 향했다.
‘한데 뭔가 이상하다. 출구를 찾는 게 이리도⋯⋯ 쉽다는 게 의심스러워.’
한제는 속도를 조금 늦춘 후 생각을 정리했다.
한데 그때, 갑자기 신식을 고정해둔 출구에서 빛이 한 번 깜빡이고 사라지더니 출구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순간 걸음을 우뚝 멈춘 한제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좀 전까지 출구가 있던 곳에 이른 한제는 한동안 그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는 말없이 방향을 틀어 다른 갈림길로 향했다.
그는 여전히 신식을 펼쳐 통로의 각 교차점을 면밀히 관찰했다.
반 시진 뒤, 신식에 다시 하나의 출구가 나타났다. 출구 밖으로는 회색 하늘과 번개가 보였고 이를 통해 출구가 지면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한제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돌진했다. 비록 순간이동은 할 수 없었지만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 그는 마침내 그 출구로부터 1백 척 앞에 이르렀다.
허나 그 순간, 출구는 하얀 빛을 번득이며 사라져버렸다.
한제는 전에 없이 싸늘한 눈으로 출구가 있던 곳을 노려보며 숨을 고른 뒤 자리를 떠났다.
“누군지 몰라도 장난질을 좋아하는 모양이군.”
그는 말없이 이 끝없는 통로 안을 질주했다. 이제는 마음을 완전히 진정시킨 상태였다. 초조해하면 이곳에서 벗어나기는 더욱 어려워질 터였다.
한편, 뇌의 선계 모처에서는 한 백발노인이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나와 연이 닿은 자로다. 7일 안에 그 안에서 빠져나간다면 나와의 연이 깊다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정말 재미있을 거야. 이 뇌의 선계에는 나와 연이 닿은 자에게 적합한 곳이 아주 많거든.”
순식간에 사흘이 흘렀다.
지난 사흘 동안 반 시진마다 하나의 신식에 출구가 포착됐지만 한제는 그 출구로 돌진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모든 통로를 한 번씩 다녀본 상태로 그의 머릿속에는 이곳의 지도가 완벽하게 그려져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 벗어나는 방법 역시 이미 찾아낸 상태였다.
‘이곳이 내가 추락하면서 생긴 구덩이라면 불안정할 거야. 그렇다면 누군가 법술로 가둬놓았다 해도 뇌의 선계가 무너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겠지.’
한제는 통로 한쪽에 서 있었다. 이곳의 모든 통로를 머릿속에 잘 정리한 뒤 고른 장소로 모든 통로가 연결되는 곳이었다. 거의 모든 갈림길이 이 길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다.
‘일정한 시간마다 출구가 나타나게 한 것은 나를 짜증나게 하려는 속셈이었겠지. 변태적인 유희랄까?’
한제의 눈빛이 한층 서늘해졌다. 그의 성격상 다른 사람에게 희롱당하는 것을 참을 수는 없었다.
통로의 천장을 덮은 진흙층을 바라보던 한제는 저물대에서 사신차를 꺼냈다. 사신차는 곧장 뇌수로 변했다.
“캬아아아!”
뇌수는 포효하더니 한제의 생각을 간파한 듯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곧장 온몸에서 전광을 번득였다. 뇌수의 몸을 타고 흐르던 대량의 전광은 은빛 뿔에 응집됐다.
바로 그때, 뿔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고 뇌수는 포효를 내지르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격렬한 진동이 일었다. 통로의 지면에 서 있던 한제는 그 강렬한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흔들림은 온 통로에 영향을 미쳤다.
뇌수는 거대한 반동에 견디지 못하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온몸을 가볍게 떨었지만 두 눈만큼은 전의와 불굴의 의지로 불타고 있었다.
그때, 한제 뒤쪽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선위 꼭두각시가 튀어나와 좀 전에 뇌수의 은빛 뿔이 공격했던 바로 그곳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쾅!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격렬한 진동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쿠르릉!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선위 꼭두각시는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이에 진동은 더욱 격렬해졌고 반동은 더욱 강력해졌다.
다섯 번의 주먹질 후 물러난 선위 꼭두각시는 온몸에서 번득이던 금빛도 약해진 상태였고 불안정한 기운을 보였다.
허나 한제의 눈빛은 덤덤했다.
그는 선위가 물러난 순간 저물대에서 선검은 꺼내 곧장 휘둘렀다. 그러자 선검에 깃든 허이국은 걸쭉한 욕설을 뱉어내며 진흙층을 향해 달려들었다.
펑! 우르릉!
뇌수와 꼭두각시, 선검의 연속적인 공격에 뇌의 선계의 이 조각은 격렬하게 흔들렸다. 특히 지하 통로 안의 그 중심지는 연속적으로 모든 통로에 계속해서 진동을 일으켰다.
“하앗!”
낮은 기합과 함께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한제는 선력을 급격하게 끌어올리고 원신으로 천둥의 위엄을 발산했다. 그러자 번개가 줄기줄기 그의 손에 응결됐다.
한제는 망설임 없이 번개를 집어 던졌고 동시에 뇌수가 포효하면서 은빛 뿔을 쳐든 채 번개가 날아든 곳으로 돌진했다. 또한 선위 꼭두각시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콰르릉!
연속된 공격에 이 뇌의 선계의 조각은 더욱 격렬하게 진동했고 통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한 통로의 붕괴는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켜 그것과 연결된 다른 모든 통로들을 무너뜨렸다.
그 찰나의 순간, 붕괴 범위가 확산되면서 사방의 진흙이 뭉텅뭉텅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그 진흙층 밖에서 가닥가닥 서로 연결된 원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빽빽하게 모인 이 얇은 원력의 가닥들이 교차된 부분은 많지 않았지만 교차하는 곳마다 빛의 문이 나타났다.
“이럴 수가… 선계의 조각이 붕괴되는데도 영향을 받지 않는 신통력이라니…”
한제는 경악했으나, 대신 이제 출입구가 훤히 드러나게 됐다.
반 시진마다 나타나던 출입구 중 이번에 나타날 차례인 문으로 몸을 날린 한제는 연기처럼 빠른 속도로 곧장 그곳으로부터 달려 나왔다. 선위 꼭두각시와 뇌수가 뒤를 따랐다.
문을 벗어나자마자 빠른 속도로 이동한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직도 자신을 가둬두고 있는 얇은 실 형태의 원력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뇌수와 선위 꼭두각시를 거두었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지면을 뒤덮은 이 원력의 가닥은 어딘가 두려웠다.
한제는 사방을 둘러보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곳은 뇌의 선계다.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 입장에서 이곳의 선옥은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물건이지.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력이 아니라 원력이니까.”
한데 어째서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들도 여기에 들어오려고 그렇게 안달인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신공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뇌의 선계 안에는 선옥 외에 선단과 선보도 있다고 했다. 뇌의 선계가 열릴 때마다 누군가가 선단과 선보를 찾아내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선단과 선보가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완전한 선술도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아직 진짜로 이를 찾았다는 자는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뇌의 선계 안에서 완벽하게 보존된 선인의 시체가 벌써 여덟 구나 발견됐다는 사실이었다. 이 시체는 뇌선전에 팔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선인의 시체를 찾은 수련자의 자질이 충분하다면 뇌선전의 10대 대장로 중 한 명의 제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뇌선전의 대장로를 사부로 섬길 수 있다면 그 수련자의 앞길은 창창하게 보장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작 나천성역의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원력갱(元力坑)이었다.
지금까지 뇌의 선계에서 발견된 원력갱은 1만 년 전에 발견된, 반쯤 폐기된 것 하나뿐이었다. 이를 발견한 자는 문정기 수련자였는데 원력갱 안에서 수련한 결과 수준이 빠르게 성장하여 결국 수련의 두 번째 단계에 이르는 데 성공했다.
이 일이 어떤 경로를 통해 알려졌고 당연히 수많은 수련자가 몰려들었다.
원력갱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이전까지 뇌의 선계가 그렇게나 많이 열렸는데도 이를 발견한 자도 없었다.
어쨌든 원력갱 안의 원력은 그 양도 많고 매우 짙어서 심지어 제련할 필요조차 없다고 한다.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저 호흡하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소문에 점점 많은 사람이 뇌의 선계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는 원력갱뿐만 아니라 뇌의 선계의 두 번째 단계 수련자들이 원기(源器)라고 부르는 법기도 있었다. 원기 안에는 선력이 배어 있는데 선옥의 그것과는 다른 일종의 기이한 힘이었다. 만약 첫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이를 흡수하면 체내에서 선력이, 두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흡수하면 원력이 생성됐다.
이 모든 것이 한제가 뇌의 선계에 온 이유였다.
한제는 어째서 이런 것들이 연맹성역의 우의 선계와 다른지 궁금했지만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우의 선계가 뇌의 선계에 비해 작고 어쩌면 아직 완전히 개방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내 수준이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한탄하던 한제는 전광이 되어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한데 그때 돌연 지면에 드러난 원력의 가닥이 서로 무너지면서 빈틈을 드러내는 것을 보게 됐다.
한제는 그곳을 유심히 관찰했다.
무너진 지면 깊은 곳에서 은은한 선력의 파동이 나타나더니 천천히 확산되면서 회백색의 호형 손잡이가 지면 밖으로 반쯤 드러났다.
선력의 파동은 바로 그 손잡이로부터 발산되고 있었다.
동림성의 허가
한편, 뇌의 선계의 어느 대륙 위, 백발노인은 뒷짐을 진 채 구름을 뚫고 높이 솟은 거대한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막 자리를 옮기려다가 뭔가를 느낀 듯 순간 우뚝 멈추더니 웃었다.
“교활한 녀석이로군. 그런 수를 쓰지 않았다면 7일 안에 빠져나오기란 힘들었을 테지. 하지만 교활하다고 해도 상관없다. 네놈은 나와 인연이 닿을 모양이로구나. 허나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지난 수만 년간 재료를 수집해왔고 이제 성공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일이지. 저 선산의 혼을 수거해 나천대진을 배치한 후에 네놈을 다시 찾아주겠다.”
노인의 눈에 흥분의 빛이 차오르더니 껄껄대며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러더니 곧 구름 위로 높이 솟은 산봉우리로 돌진했다.
“난 나천성역의 일인자가 될 것이다! 이 계획이 완성되고 나면 연맹성역을 소탕하고 그 빌어먹을 중현자를 저승으로 보내버릴 것이야!”
그 무렵, 한제는 땅에 내려서더니 진흙 속에서 빼꼼 드러나 있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자세히 살피니 마치 주전자에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보였다.
땅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몇 개의 파동이 더 일고 있었다.
“어째서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을까? 방금 붕괴로 선력의 파동이 생겨난 것일까?”
한제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에서 돌연 한 줄기 빛이 나타났다. 짙은 마기를 띤 듯한 이 검은 빛은 부근을 지나다가 뭔가를 느낀 듯 방향을 살짝 틀더니 곧장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마기에는 적나라한 살기와 패기가 배어 있었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고 썩 꺼져라! 안 그러면 네놈을 죽일 것이다!”
그 소리는 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염(魔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새카만 마염은 원신을 태울 듯이 이글거렸다. 하늘의 얼마 안 되는 구름층은 이 마염에 침식된 듯 충만한 마기로 채워졌다. 엄청난 폭풍을 일으킬 것만 같은 기세였다.
끓는 물처럼 뜨거운 빗물이 미친 듯한 바람에 휘말려 쉭쉭 소리를 내며 대지로 뿌려졌다. 이에 사방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마기로 뒤덮여 버렸고 멀리서도 끝없는 마기가 뿔 달린 거대한 생명체의 허상을 이룬 채 허공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허상의 머리 위에는 보라색 옷을 입은 흑발의 청년이 서 있었다. 그의 눈은 피에 굶주린 듯했다.
청년이 긴 머리와 옷을 나부끼며 허상 위에 선 채 지면으로 돌진했다.
한제는 고개를 들고 덤덤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더니 좀 전에 찾아낸 부서진 손잡이를 얼른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그때 마기의 허상이 가까워졌고 그 위의 청년은 한제를 내려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