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98
이원
한제는 굳은 눈빛으로 부적을 한참 더 살폈으나, 결국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한제는 생각을 접고 부적을 거둔 후 몸을 훌쩍 날려 동굴 밖으로 나갔다. 선위 꼭두각시도 허상이 되어 그의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 번개산 아래에는 이 조각의 가장자리가 있었는데 그 너머에는 뇌광이 번득이고 있었다. 이 뇌광은 녹이 슨 무쇠처럼 갈색을 띠고 있었고 사슬처럼 엮인 채 아득히 먼 어둠 속까지 뻗은 상태였다.
“우의 선계에는 전송진이 있었지만 뇌의 선계는 천둥번개의 힘이 너무 강하니 전송진을 설치할 수 없겠지. 직접 이동하는 수밖에…”
한제는 곧장 이 조각을 떠나는 대신 낮게 비행하며 신식을 조심스레 펼쳐 선력의 파동이 느껴지는 곳을 찾았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한제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저 멀리서 두 갈래의 검광이 빠르게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검광 안에는 한 쌍의 남녀가 있었다.
서른 전후인 남색 옷의 사내는 머리를 옅은 남색 끈으로 묶은 상태로 눈빛이 날카롭고 용모가 준수했다. 곁의 여인은 스물예닐곱 정도로 무척 아름다웠지만 봉황을 닮은 눈은 날카로웠고 꽤나 성깔이 있어 보였다.
두 사람도 한제의 존재를 알아차리고는 흠칫하더니 신중하게 신식으로 이쪽을 훑어보았다. 그들을 한제가 문정기 절정의 수련자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한시름 놓고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말없이 떠나갔다.
한제 역시 그들이 문정기 절정 수준임을 파악했다. 또한 원력이 포화 상태인 한제와 달리 그들의 원신에는 원력이 그리 많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곧장 자리를 떠났고 한제 역시 시선을 거둔 뒤 계속해서 신식으로 주위를 훑었다.
뇌의 선계는 지금까지 꽤 많이 열렸기 때문에 갈수록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은 줄었다. 대신 이제 얻을 수 있는 수확은 그 품질이 극도로 높을 가능성이 있었다.
한제는 우의 선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익숙하게 주위를 탐색했다. 그러는 동안 한 달이 훌쩍 지나갔는데 마주친 수련자는 겨우 네댓 명이었다. 그중 음의의 수련자는 없었고 대부분은 문정기였다. 심지어 원영기 수련자도 있었다.
한 달 동안 대륙을 훑어본 한제는 별다른 수확이 없자 탐색을 그만두고 빠른 속도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행 중이던 한제의 눈빛이 돌연 우뚝 굳어졌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 하나의 진법 금제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금제는 숨겨져 있었지만 한제의 눈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분명 이전에 이 길을 탐색했을 때는 없었던 금제다!’
금제의 범위는 단 1천 척 정도로 넓지 않았다. 주위의 바위 몇 개와 서로 교차되어 있어 잘 숨겨져 있었는데 그 안에서 선력이 피어오른다는 점이 가장 기묘했다.
“하지만 그 탓에 허점도 생겼다. 두 종류의 다른 선력을 짧은 시간 안에 완벽하게 융합하기란 힘든 법이니까.”
시선을 거둔 한제는 막 그 안으로 발을 들이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아니! 이렇게까지 묘하게 만들어놓았을 정도라면 이런 허점을 남겼을 리가 없어. 금제의 선력을 모두 뽑아내서라도 더욱 완벽하게 숨기려 했겠지. 이 정도의 금제를 설치한 자가 절대 이런 실수를 했을 리가 없다.’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신식으로 주변을 살폈다. 허나 반경 몇 리 안에서는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군, 분명 금제의 기운이 있는데 보이지는 않다니…”
한제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살짝 눈을 번득이더니 몸을 훌쩍 날려 곧장 하늘 끄트머리로 돌진했다. 이내 그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한 시진쯤 지난 뒤, 금제의 우측으로 1백 척 떨어진 바위 위의 허공이 일렁인다 싶더니 그 안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 달 전 한제와 마주쳤던 바로 그 문정기 절정 수준의 남녀였다.
여인은 한제가 사라진 하늘 쪽을 바라보면서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네 금제는 감쪽같아서 이 대륙의 수련자들을 다 끌어들일 수 있을 거라더니 왜 방금 그 사람은 속지 않은 거지?”
곁에 있던 사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로 떠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무턱대고 나오시면⋯⋯.”
“말 돌리지 말고! 내가 물었잖아!”
여인이 냉랭하게 일갈했다.
“어쩌면 아까 그 사람은 간파했을지도⋯⋯.”
사내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낮게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을 과대평가하지 마. 방금 그 사람이 한 이야기 못 들었어? 그 사람은 금제를 보지도 못했다고! 이전에 내가 말했지. 허점을 더 드러내게 하라고! 그런데 내 말 안 듣고 네 멋대로 했잖아!”
여인은 잔뜩 화가 난 듯 더욱 흥분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사내의 눈 깊은 곳에는 경멸의 빛이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이곳에 올 정도의 수련자라면 최소한 1천 년 이상 살아온 노련한 이들일 겁니다. 금제에 허점을 많이 드러내면 누구도 믿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허점이 없다면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들까지 끌어들일지도 모르죠. 전 아무한테도 간파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여인은 눈을 번득이며 냉소했다.
“이원, 담도 크구나. 그런 말로 수련 기간이 짧은 나를 비웃어?”
사내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공손하게 말했다.
“제 명혼이 아가씨 가문의 수중에 들어있는데 어찌 감히 아가씨를 비웃겠습니까?”
“잘 기억하고 있구나. 내 할아버님께서 널 불쌍히 여겨 단약을 주지 않았다면 넌 1백 년 전의 그 부상으로 이미 죽었을 거야!”
여인의 차가운 목소리에 이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이내 표정이 급변하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얼른 금제 안으로 돌아가세요! 누가 옵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파문은 이내 사라졌고 다시 일반적인 바위가 되어 신식으로도 어떤 단서를 찾아낼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이 사라진 후, 한 줄기 검광이 날카로운 바람과 함께 날아들었다. 상공에서 잠시 맴돌던 검광은 곧 땅에 착지하더니 한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금제를 응시하며 가볍게 비웃더니 그쪽을 한참이나 살폈다. 그러더니 이내 눈을 번득이며 신식을 펼쳐 사방을 훑고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저물대에서 목각인형을 하나 꺼냈다.
이 목각인형에는 문양과 문자가 잔뜩 새겨져 있었고 거기서 하얀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남자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주문을 중얼중얼 외다가 손짓을 했고 그러자 목각인형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점차 민첩해졌고 결국에는 진짜 사람과 같아지자 목각인형은 폴짝 뛰어올라 금제 안으로 들어서서 몇 걸음 내딛었다.
“폭발!”
남자의 목소리에 목각인형은 경련을 일으켰고 몸에서 피어오르던 하얀 빛이 짙어졌다.
펑!
목각인형이 폭발하면서 그 충격으로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곧장 금제는 망가지더니 동굴 입구가 하나 나타났다. 남자는 희열에 찬 눈으로 망설임 없이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그러나…
“끄아아!”
머지않아 끔찍한 비명이 들려오더니, 방금 동굴로 들어선 중년 남자의 원신만이 잔뜩 겁에 질린 채로 동굴 밖으로 튕겨 나왔다. 하지만 그 원신은 동굴 안에서 튀어나온 녹색 그림자에 휘말려 다시 안으로 끌려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그로부터 수십 척 밖의 바위에서 다시 파문이 일더니 이원과 여인이 걸어 나와 새카만 동굴 입구를 바라보았다. 이원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으나, 여인은 잔뜩 흥분한 채 얼른 동굴로 달려가 뭔가를 찾듯 손을 넣어 휘적거리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착하지, 이제 하나만 더 먹고 자리를 옮기자. 이번에는 이 뇌의 선계가 네 배를 충분히 채워줄 거야.”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허공이 일렁이더니 돌연 한제가 나타났다.
“재미있군.”
한제의 목소리에 여인은 표정이 급변해 몸을 홱 돌렸다. 그녀는 불쾌한는 듯 미간을 구긴 채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지만 그 순간 이원이 그녀의 앞을 막아서더니 한제를 향해 포권을 했다.
“도우, 이전의 금제 일에 관해서는 미안하네. 지금은⋯⋯.”
“뭘 구구절절 설명을 해? 기껏해야 우리와 같은 수준인데. 같이 저자를 잡아서 내 애완동물의 먹이로 주면 되잖아.”
여인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앞으로 한 발 나서더니 저물대에서 부채를 하나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부채에 달려 있던 깃털이 순간 날아오르더니 번득이는 살기를 내뿜으며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원은 쓰게 웃으며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금제의 잔영이 나타나 부채의 깃털과 결합하더니 한제에게 공격을 가했다.
한제는 여전히 덤덤했다. 수련의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자가 아니라면 그가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는 단 한 걸음을 내딛으며 오른손 검지를 튕겨 한 줄기 짙은 천둥번개를 만들어냈다.
쾅!
천둥번개가 깃털을 공격한 순간, 전광이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깃털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우웩!”
그 반동으로 여인은 피를 한 움큼 토해내며 뒤로 한참 밀려났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어렸다.
그 무렵 이원의 금제는 흩어져 열여덟 갈래로 나뉘었다가 서로 중첩되면서 단단히 결합했다.
한제는 사실 저 부채보다는 이원의 금제에 더 관심이 있었다. 굉장히 기이한 금제였다. 그 금제를 풀려면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었으니 한제는 그저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내리쳤다. 순간 그의 체내에서 천둥번개가 다시 나타나 눈부신 빛을 번득이면서 허상의 손바닥을 이루었다. 번개처럼 번득이는 손바닥은 금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펑! 펑!
손바닥과 맞닿은 순간 폭발음이 이어지면서 열여덟 갈래의 금제는 하나하나 무너져 내렸다. 한데 마지막 하나의 금제까지 무너뜨린 후로도 손바닥의 허상은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원의 가슴팍을 향해 돌진했다.
“크윽!”
이원은 선혈을 토해내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창백한 얼굴로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충격과 공포가 어려 있었다.
이때, 한제는 두 번째 걸음을 옮겼다. 그 한 걸음으로 두 사람을 곧장 뛰어넘어 이전의 금제가 설치되어 있던 곳 내부로 들어간 한제는 그 안의 깊은 구덩이를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한제의 눈빛이 기이하게 변하더니 가볍게 외쳤다.
“천귀(天鬼)로군!”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눈을 부릅뜬 여인이 날카롭게 외쳤다.
“저 녀석을 삼켜!”
천귀는 두개골 형태였고 몸에서는 주위까지 물들일 듯한 녹색 빛이 피어올랐다.
천귀가 집어삼키려 달려들던 그 순간, 한제의 미간이 번득이면서 인과의 채찍이 나타났다.
채찍이 허공을 가른 순간, 달려들던 천귀는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녹색 안개에 휩싸인 채 후퇴했다. 그러나 한제가 그대로 도망가게 둘 리가 없었다. 몸을 훌쩍 날린 한제는 인과의 채찍으로 천귀를 옭아매서는 저물대에서 존혼번을 꺼내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게 있으면 두 번째 선위 꼭두각시를 제련하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겠군.”
흡족한 듯 중얼거린 한제는 몸을 돌려 덤덤한 눈으로 이원과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잔뜩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그녀의 가문에서 오랫동안 길러온 천귀가 이토록 쉽게 잡혀버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원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져 있었다. 방금 한제에게서 갑자기 채찍이 나타났을 때부터 그는 경악을 금치 못하더니, 복잡한 얼굴로 포권을 했다.
“선배님, 저희 두 사람은⋯⋯.”
“너희 두 사람이 진으로 만든 금제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해친 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날 공격하려 한 것은 쉽게 용서할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