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0
신해는 깊은 물처럼 가라앉은 얼굴로 차게 웃으며 물었다.
“죽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좋아, 어느 문파 녀석이 죽였지?”
처음으로 꿇어앉은 제자가 잠시 망설였다. 신해가 손을 흔들자 순간 빛의 장막이 표묘종의 사람들을 감쌌다. 상관운은 고개를 들고 그 광경을 보며 픽 비웃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가린 뒤 신해가 제자에게 눈짓을 했다. 제자는 얼른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신해의 두 눈에 서늘한 빛이 감돌았다. 한참 후 콧방귀를 뀐 그가 말했다.
“너희는 내 뒤에 서 있어라. 대체 그 녀석에게 어떤 힘이 있는 것인지 봐야겠구나.”
말을 마친 그가 손을 다시 휘둘러 빛의 장막을 거두었다.
옆에 서 있던 상관운이 불쑥 입을 열었다.
“신형, 어찌 허미 도우가 여태 오지 않는 건지 모르겠소.”
신해는 상관운을 흘깃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허미 도우는 통천탑에 사자님을 모시러 갔네. 곧 올 거야.”
그때 진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결명곡 밖의 사람들은 웅성거림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등화원은 주먹을 바르쥐며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한제가 나오기만 하면 곧장 그와 연결된 저주를 이용해 단숨에 그 곁으로 다가가서는 끔찍하게 죽여 버릴 작정이었다.
빛을 발하던 진 안에서 열세 명의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등화원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깃발 위에 나타난 다른 얼굴 하나를 쥐어, 그 영혼을 산산조각 낸 뒤 냉소했다.
“한제, 네가 네 친척들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잔혹한 녀석이라면 이 등화원이 널 얕잡아본 모양이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도망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등화원이 원영기 중기에 이른 뒤에는 더욱 강해진 저주의 힘으로 반드시 널 찾아내고 말 것이다.”
결명곡 밖의 수많은 수련자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걸. 보통은 맨 처음 나온 종파의 사람이 가장 많고 갈수록 적어지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로 나타난 종파 사람 수가 더 많잖아?”
“그러게. 근데 저건 어느 종파 사람들이지?”
“합환종이야. 저기 이영이라는 음탕한 계집애를 알고 있지.”
사람들이 쑤군거리는 사이, 합환종의 두 원영기 고수인 진환과 진연이 그늘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그들의 안색은 곧 정상으로 돌아왔다.
합환종 제자들은 모두 잔뜩 풀이 죽은 채 복잡한 얼굴로 진환과 진연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이영이 얼른 소리 전달 옥패 하나를 꺼내들었다.
미간을 구긴 진환은 그것을 받아들고 이마에 올려놓고 신식을 펼쳤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굳은 표정으로 이영에게 조용히 물었다.
“정말이냐?”
이영이 공손하게 말했다.
“시조님, 저희가 직접 보고 들은 것입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제자들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진연은 사람들을 훑어본 뒤 진환의 손에서 그 옥패를 받아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 내용을 살폈다. 한참 뒤 그녀는 냉소하며 옥패를 꽉 쥐었다. 옥패는 순간 폭발하듯 부수어지더니 재로 변해 흩어져버렸다.
순간, 정도 문파가 모여 있던 곳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진환과 진연은 곧장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해가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환과 진연은 표묘종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신해가 보인 행동을 옥패를 확인한 후에야 완벽하게 알 수 있었다.
등화원은 미간을 구긴 채 진환과 진연, 그리고 신해를 몇 번 흘끔거렸다. 좋지 못한 예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대체 무슨 문제가 발생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고민했지만 여전히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한 그가 속으로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다시 검은 깃발에 떠있는 영혼 하나를 꽉 쥐어 부수어버렸다.
다시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고리형의 빛이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났다. 공중에 떠오른 이 빛의 고리는 서서히 커지더니, 직경이 1백 척에 달했을 때 그 고리 안에서 사람 네 명이 걸어 나왔다.
앞에 선 사람은 너무 살이 쪄서 몸이 마치 공 같았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가 나타난 순간 골짜기 밖에 모여 있던 모든 원영기 고수들이 곧장 하늘로 날아올라, 허리를 숙이며 그의 양쪽으로 나뉘어 섰다.
그 뚱뚱한 남자 조나라에 주재하는 사자 임학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상급 사자가 역외 전장으로 향하는 통로를 여는 데 협조하기 위함이다. 너희의 자격 경쟁에 간섭하기 위함이 아니니, 다들 걱정 말거라.”
임학의 뒤에 선 세 사람은 각각 흑천과 표묘종의 백발 도인, 그리고 천도문의 빼빼 마른 노인이었다. 이 세 사람은 임학과 함께 땅으로 내려와 한쪽 공터에 섰다. 다른 원영기 고수들도 분분히 그들을 따라 내려와서는 그 곁에 섰다.
신해는 기회를 틈타 백발 도인에게 소리를 죽여 뭔가를 전했다. 백발 도인, 표묘종의 최고 고수인 허미 진인은 신해의 말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이때 진이 다시 밝아지더니 다섯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음한기가 몰아쳤다. 눈이 붉게 충혈된 이들은 아무 말도 없이 진 밖으로 걸어 나와서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한쪽 구석으로 가 가부좌를 튼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저들은 어느 문파 소속이지?”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드디어 만난 원수
한참이 지나도록 누구도 답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여러 가지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임학 곁에 서 있던 허미 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사자님, 저들은 시음종의 제자들입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시음종에는 비밀스러운 법술이 있어, 제자와 시체를 하나로 융합할 수 있다더군요. 저 다섯 명의 제자들이 바로 그 시체인 듯합니다.”
임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저 다섯 명은 확실히 시체로군.”
천도문의 비쩍 마른 노인이 미간을 구긴 채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양유재 도우는 오지 않았군요.”
임학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음종은 규칙대로 영패를 골짜기에 가져가지 못했다. 해서 이미 자격을 잃었지. 그러니 양유재가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또다시 진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등화원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신이 건 저주의 힘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느낀 그의 얼굴에 피에 굶주린 맹수와 같은 기색이 어렸다.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 ★
번쩍이는 진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순간이동을 하려던 등화원이 멈칫한 채 그 사람의 인영을 바라보았다. 분노가 불쑥 솟아올랐다. 진 안에서 나타난 사람은 한제가 아니라 무봉골의 제자였다.
등화원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 검은색 깃발에 봉인 되어 있는 영혼 중 몇 개를 부수고 나서야 손을 거두고 침묵했다.
무봉골의 제자는 등화원과 까무잡잡한 얼굴의 노인 앞으로 황급히 달려오더니 철푸덕 소리를 내며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는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조님, 그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이반 대사형도 죽었습니다. 저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도망칠 수 있었지만.”
얼굴이 까무잡잡한 노인은 제자를 응시하다가 그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친 뒤 소리 죽여 말했다.
“다 죽어버린 이상, 네 녀석 혼자 살아서는 안 되지.”
“팡!”
노인의 손바닥에 가격당한 제자의 머리는 마치 깨진 수박처럼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가벼운 바람이 불어오자 피비린내가 퍼져나갔다. 골짜기 밖에서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작은 문파의 수련자들은 모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무봉골에 대해 비웃던 자들도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사방이 적막에 휩싸인 순간, 진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진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비교적 많았다. 하나둘 진 밖으로 나오는 그들을 훑어본 등화원은 그들이 현도종이라는 것을 알아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등화원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며 얼굴에 살기가 떠올랐다. 몸을 훌쩍 날린 그의 모습이 순간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이미 현도종의 제자들 근처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잔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침내 나왔구나!”
말을 마친 그는 손을 꽉 움켜쥐었다. 방금 막 진에서 걸어 나온 청년이 그의 손에 끌려 나왔다.
등화원 쪽으로 끌려 나온 청년이 순간 사라졌다가 허공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사방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자입니다. 저 자가 대사형을 죽였습니다.”
“저 사람이 우리의 영패를 가져갔습니다. 시조님, 저 사람이에요!”
“저 자가 무봉골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명곡에서 나온 각 문파의 제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흥분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골짜기 안에서 한제의 위력에 잔뜩 겁을 먹고 지난 3개월 동안 숨소리조차 마음대로 내지 못했던 그들이었지만 각자의 시조들을 곁에 두고 있는 지금 더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한편 상대가 순간이동을 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던 등화원은 흠칫 놀랐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음산한 기색이 맴도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한제, 어디로 도망치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그때, 합환종 쪽에서 누군가 외쳤다.
“저 자에게 영패가 적어도 다섯 개는 있을 거예요!”
그 말에 골짜기 밖에 있던 모든 조나라 수련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은 허공에 떠 있는 그 청년에게 고정됐다. 심지어 임학마저도 흥미로운 듯 그쪽을 바라보다가 흠칫 놀랐다.
“내 증손자를 죽인 저 자와는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저 자를 죽일 겁니다. 저 자가 가진 물건은 마음대로 해도 좋으나, 나를 저지할 생각이라면 그건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등화원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임학이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좋다. 조나라의 수련자들은 저 둘 사이에 관여치 말라. 등화원이 감히 저 자에게 손을 댈 수 있는지 보고 싶으니.”
임학의 말에 모든 사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낸 사람은 없었지만 저마다 마음속으로는 임학이 한 말에 숨겨진 의미를 추측하고 있었다.
등화원은 임학 앞에서 감히 오만하고 방자하게 굴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구겨지는 미간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역시 상대의 말에 담긴 묘한 의미를 알아챘기 때문이다.
허공에 떠 있는 청년을 바라보는 흑천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보면 볼수록 어딘가 낯이 익었지만 한참을 생각해도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더욱 임학이 한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 청년은 겨우 축기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원영기 고수들이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제는 서늘한 눈길로 사방 가득한 수련자들을 훑어보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주목에도 전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때, 거대한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마치 하늘의 위엄을 드러내듯 매우 뜨거운 기운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청년의 머리와 적삼은 하늘하늘 흔들렸다. 그의 몸에서 영력이 발산된 것이었다.
그곳의 수련자들, 특히 원영기 고수들은 모두 흠칫 놀랐다. 심지어 막 순간이동을 하려고 준비하던 등화원도 그 자리에 멈춰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