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02
“이 산에 들어온 이상 자네의 수준으로는 내 허락이 없는 이상 이곳에서 떠날 수 없어!”
덤덤한 표정의 한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매화십팔금(梅花十八禁)이라면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그의 말에 이원은 흠칫 놀다. 그러더니 마치 한제를 처음 본 사람처럼 살피다가 피식 웃었다.
“매화십팔금의 술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지. 자네가 아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야.”
한제는 이원을 마주보며 웃었다.
“역시 매화십팔금이 맞았군!”
그 순간, 뒤로 늘어진 그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선위 꼭두각시가 튀어나오더니 곧장 주먹으로 뒤편의 허공을 때렸다. 그러자 산봉우리가 휘청거렸다. 이어서 회오리가 하나 생겨났는데 이는 외부로 연결된 통로였다.
선위는 주먹을 거두고 다시 한제의 그림자로 돌아갔다.
한제는 싸늘한 눈빛으로 이원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말했다.
“이곳은 나를 막아두지 못한다!”
이원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는 한참이나 한제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를 과소평가한 모양이군. 하지만 자네에게 선위 꼭두각시가 있다 해도⋯⋯.”
한제는 대답 대신 오른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능천후의 검기 한 줄기가 곧장 튀어나왔다. 문정기 절정에 이른 후로 검기를 다루는 능력은 한층 무르익은 상태였다.
능천후의 검기가 내뿜는 기세가 온 산봉우리를 뒤덮였다. 검기는 진짜 보검처럼 눈 깜짝할 사이 달려들더니 칼날의 끝을 이원의 미간에 겨누었다.
이원은 곧 찌를 듯 자신의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검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보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자네가 원하는 게 뭔지 말해보게.”
머리가 비상한 자답게 이원이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보자 한제의 눈빛이 기이하게 변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네 매화십팔금이다!”
사실 매화심팔금에 대해 한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 금제가 상고 시대에 매우 유명했으나 지금은 사라지면서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고 당시에도 직계 자손들에게만 전해졌다는 것이었다. 직계 자손 중에도 신분의 차이에 따라 배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오직 장문인만이 십팔금 전체를 다 익힐 수 있었다.
한제가 요령의 땅 안 저택에서 본 것은 매화십팔금의 잔존본이었다. 때문에 이원이 매화십팔금을 발휘했을 때 한제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원에게서 받은 옥패를 슬쩍 훑었을 때 머릿속에 열여덟 개의 조각상이 떠올랐고 비록 매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으나 매화십팔금의 은은한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이것이 그가 묵묵히 이원을 따라온 이유였다.
한제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 안에서 몇 가지 단서를 찾아냈다.
방금 그가 한 말은 사실 이원을 떠보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이원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한제는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원이 자신을 막지만 않는다면 그냥 떠날 생각이었다.
한데 그의 예상과 달리 이원은 피식 웃었다.
“그리 비싼 대가는 아니로군. 매화십팔금이 마음에 든다면 주도록 하지.”
그는 곧장 저물대에서 옥패를 하나 꺼내더니 뭔가를 새긴 후 한제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매화십삼금까지 들어 있다. 나머지는 산에 들어간 후에 주지.”
옥패를 신식으로 훑은 한제는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옥패 안에 새겨진 것은 구결이 아니라 열세 개의 거대한 조각상이었는데 그 발치에는 열세 송이의 매화가 모종의 규칙에 따른 듯 일정한 간격으로 피어 있었다.
그때까지 갈 씨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세상 어떤 일도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그녀는 그저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묵묵히 산봉우리만 바라보았다.
“나의 장기는 매화십팔금이 아니야. 4대 금술(禁術)이라 불리는 금제들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원은 한제가 옥패만 가지고 도망갈 것이 두렵지도 않은 듯 몸을 돌려 산봉우리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제는 옥패를 거둔 뒤 이원의 뒤를 따랐다.
“소문에 따르면 이 세상이 처음 열렸을 때 규칙이 생겼다고 하더군. 아주 먼 옛날, 그 규칙이 아홉 개로 나뉘었고 그중 하나가 금(禁), 혹은 진(陣)으로 불렸다고 하네. 또한 그 금제는 오래 전부터 천(天,) 지(地), 현(玄), 황(黃)의 네 등급으로 나뉘었지.”
이원은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한데 그 천, 지, 현, 황 위에 또 하나의 등급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허(虛)라고 부른다네. 허는 또한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것이 바로 4대 금술이야. 이 산은 그 4대 금술 중 파멸금(破滅禁)으로 배치된 것일세.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 산 꼭대기에 오른 사람은 없어. 왜냐하면 이 산에는 끝이 없거든!”
이원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한제의 귀로 흘러들었다.
“한데 이상한 일 아닌가? 어떻게 내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을까?”
이원은 한 걸음 내딛어 불쑥 튀어나온 바위를 건너더니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허공에 휘둘렀다. 그 손짓에 산이 휘청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산봉우리는 순식간에 반으로 줄어들었다. 비록 아직도 산꼭대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전보다 훨씬 낮아졌다는 것만큼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산의 꼭대기에는 어떻게 오를까? 정확한 방법이란 없다네. 온 산을 뒤져도 안개 너머를 꿰뚫어볼 수는 없으니까.”
이원은 몸을 돌려 한제를 마주보며 물었다.
“질문 있나?”
한제는 그런 이원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툭 내뱉었다.
“말이 많군!”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이원은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추억에 젖은 눈으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살피며 묵묵히 걸었다.
산의 중턱에 이르렀을 때 이원이 오른손으로 좀 전보다 더 복잡해진 결인을 그린 후 허공을 때렸다. 그러자 그 순간 산봉우리가 다시 진동했다.
콰르릉!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에 이어 산이 또 한 번 축소됐다. 이제는 어렴풋이 산꼭대기가 보일 것도 같았다.
한데 그때, 한제의 귓가에 신식을 통한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저자는 미친 자입니다. 저자는⋯⋯.”
갈 씨 여인의 목소리였으나, 그녀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갈홍, 말을 하려거든 신식으로 하지 말고 입으로 해.”
이원이 냉랭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는데 그의 눈빛에는 비웃음이 얼핏 묻어났다.
갈홍은 두려운 듯 몸을 바르르 떨며 몇 걸음 물러나 한제 곁에 이르렀다. 그제야 다소 마음을 놓은 듯 이를 악물고 외쳤다.
“네가 누군지 안다! 네가 우리 갈에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어!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거겠지!”
이원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갈홍은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어째서 나지? 당시 네 주인의 물건을 빼앗아간 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 가문의 선조가 아니더냐!”
이원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미소를 지었다.
“너는 그 도둑놈의 직계 자손이니까. 너희 갈가(葛家)를 통틀어 너만이 유일한 그의 직계다.”
갈홍의 눈이 더더욱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저물대를 꺼내며 날카롭게 외쳤다.
“다 주겠다! 이 안에는 그림도 있고 무쇠 검도 있고 나침반도 있어! 모두 다 줄 테니 나를 놓아주어라! 목숨만은… 살려달란 말이다.”
이원은 저물대를 받아 들고 복잡한 눈빛으로 안에 든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이전에 봤던 무쇠 검과 오래되어 보이는 나침반, 그리고 그림 족자였다.
족자를 펼쳐 그림을 묵묵히 바라보던 이원의 눈빛이 슬픔으로 물들었다.
그 족자의 그림에 담긴 것은 산이었다. 매우 높아 그 중턱에 구름이 가득한 산의 아래쪽에는 허공을 날고 있는 검 한 자루도 그려져 있었다. 또한 그 검 위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는데 그림이 약간 흐릿해 허상인 것도 같았다. 그리고 검의 날 끝에도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 뒷모습이 이원과 매우 흡사했다.
그 순간, 한제의 눈빛이 변했다. 저 그림은 이 뇌의 선계가 무너지기 전에 그려진 것으로 보였는데 그림 속의 남자가 이원이 맞다면 이원은 선인이라는 뜻이 된다. 허나 한제는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원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족자를 거두어 다른 것들과 함께 조심스레 저물대에 챙겨 넣더니 갈홍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가라.”
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계속해서 산꼭대기를 향해 올랐다.
잠시 머뭇거리던 갈홍은 이내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산 아래쪽으로 내달렸다.
이원은 그녀를 개의치 않는 듯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걸음만 옮겼다.
“분명 묻고 싶은 것이 많겠지만 묻지 말게. 꼭대기에 오르고 나면 알려주겠네. 사실 나도 모든 것을 또렷하게 알지는 못해.”
이원의 목소리는 어딘가 이상했으나, 한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걷는 도중 몇 차례 금제를 맞닥뜨렸으나, 모두 이원의 손에 해제되었다. 또한 그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갈수록 복잡한 금제를 발휘하여 산의 높이를 몇 차례나 줄여나가기도 했다.
이제 확연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산꼭대기에는 중년 남자를 조각한, 1백 척이 넘는 석상이 하나 있었다. 그 옆에는 비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는데 그 비검 끝에도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석상을 본 이원은 감개가 무량한 듯한 표정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 산꼭대기 위에 오르더니 슬픔 가득한 눈으로 곧장 석상으로 다가갔다.
산꼭대기에 이른 한제도 석상을 바라보았다. 압도적인 석상에서는 짙은 위엄이 풍겨 나왔고 금제의 기운도 느껴졌다. 특히 석상의 오른손은 간단해 보이는 결인을 그리고 있었는데 실상은 매우 복잡한 결인이었다.
그 결인을 본 순간, 한제의 심신은 마치 기이한 힘에 이끌려 육체로부터 뽑혀나가려는 듯 철렁 내려앉았다. 귓가에는 수많은 검들로부터 나는 듯한 쉭쉭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쳤고 눈앞은 흐릿해졌다. 눈 닿는 곳곳마다 선기로 휩싸인 선인들이 가득했는데 그들은 각자의 법보를 손에 쥔 채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며 하늘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전광이 번득였고 그들이 손을 들 때마다 엄청난 천둥번개의 신통력이 하늘로 돌진했다.
반면 하늘에는 아무런 적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말끔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열심히 공격을 하던 선인들이 하나둘 폭발하듯 숨을 거두었다.
한데 그때, 선인들 사이에서 한 줄기 검광이 날아들었다. 한제를 얼떨떨하게 만들 정도로 강한 검기가 발산되는 그 보검은 보라색 전광을 번득였고 그 자루에는 석상으로 조각된 중년 사내가 타고 있었다. 검의 날 끝에도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의 모습은 이원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았다.
그 검이 나타남과 동시에 주위에 있던 선인들은 물러났고 번득이는 검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검기가 발산되어 하늘로 달려들었다.
한제는 순간 이 소리 없는 환상 속에서 침착한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죽어도 혼은 죽지 않는다!”
그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하늘로 달려들었던 보검의 자루에 서 있던 사내가 경련을 일으키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노예 낙인
한편, 검 끝에 서 있던 사내는 멍한 얼굴로 텅 비어버린 검의 자루 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의 눈이 슬픔으로 얼룩졌다. 자루 위에 서 있던 자신의 주인을 오랫동안 하늘처럼 모셨던 그에게는 하늘이 무너진 것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종은 하늘을 바라보다가 검의 끝에 선 채 주인의 발자취를 따라 하늘로 돌진했다.
“주인이 죽었으니 종도 뒤따르겠다!”
그가 하늘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했을 때, 부드러운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그러자 종은 순식간에 조각상이 되어 대지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