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03
보라색 전광을 번득이던 검은 슬피 우는 듯한 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툭 떨어져 어느 산봉우리 꼭대기에 박혔다. 그 산봉우리 꼭대기에서부터 파동이 확산돼 바위와 돌조각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산꼭대기에 박힌 검 주위로 수많은 자갈이 응집됐다. 그러더니 자갈은 검을 석상으로 만들었다. 이어서 그 옆에 주인의 석상을 석상이 된 검 끝에 종의 모습과 같은 석상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울퉁불퉁하고 조잡해 보였던 석상은 오랜 시간의 흐르면서 마치 영혼을 가진 듯 점차 또렷해졌다.
지금 한제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석상의 손 모양이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석상의 손은 다채롭고 강렬한 빛을 냈고 순간 석상이 살아난 듯 돌로 만들어진 눈이 반짝였다. 동시에 어떤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나와 같은 혈통을 가진 후손이여, 금제를 풀고 나를 깨워라. 그대의 힘이 부족하거든 이 사실을 대대손손 알려라.”
목소리가 들려오자 한제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낙인이 나타나 그의 체내에 깊게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그는 도저히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노인을 만난 이후로 줄곧 이어져 온 격렬한 통증이 체내에서 폭발했다.
‘큭!’
한제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곧장 그 기이한 상태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체내에 타오르는 느낌이 들게 했던 그 힘이 온몸으로 흘러들면서 머릿속에 남아 있는 낙인을 몰아냈다.
번쩍 두 눈을 뜬 한제는 찬 숨을 들이마시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너무나도 기이한 석상이었다. 허나 한제는 지금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석상의 그 손 모양은 어떤 선술을 발휘하는 결인일 것이다. 그 선술은 일종의 유산을 전수해주는 역할을 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대대손손 이어지는 노예의 낙인이었다.
허나 세상 모든 신통술은 세월의 흐름을 피해갈 수 없다. 당시에는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을지도 모르는 선술이었지만 지금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약해져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제는 노인이 전해준 힘과 그로 인한 통증이 아니었다면 방금 보았던 환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허나 그 통증과 작열감은 낙인을 몰아내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을 뿐, 실제로 그것을 몰아낸 것은 낙인 그 자체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느껴졌나?”
이원이 멍하니 석상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걱정 말게. 그 낙인은 자네를 노예로 만들지 않아. 알아서 없어질 거야. 왜냐하면 그에게는 이미 노예가 있거든. 금제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나의 선조께서는 아주 오래 전 이 산의 꼭대기에 이르렀지. 그 후 이 선인의 노예가 되었어. 그리고 그 선조의 후손들까지 대대로 머릿속에 그 낙인이 찍힌 채 태어나게 된 거지.”
이원은 석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한제에게 하는 말 같기도 스스로에게 하는 혼잣말 같기도 했다.
“이 선인의 석상은 부술 수 없어.”
이원이 조용히 중얼거리며 오른손을 들어 그 석상을 짚더니 체내의 선력을 토해냈다. 그러자 석상에는 곧장 징그러운 뱀과 같은 균열이 생겨 석상 전체를 뒤덮었고 이내 석상은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으로 무너져 내렸다.
허나 그 돌조각들은 곧장 다시 응집되어 순식간에 원상태로 회복되었다.
“이렇단 말이지.”
이원은 몸을 돌려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더니 조용히 말했다.
“아주 오래 전, 우리 이가(李家)는 파멸금으로 이 나천성역에서 이름을 날렸다네. 나천성역의 6대 상고 수련자 가문 중 하나이기도 했어. 우리 가문 사람들은 금제를 수련해 모두 첫 번째 단계를 돌파해 두 번째 단계에 진입했지. 당시에는 그야말로 높디높은 명성을 누렸단 말일세.”
이원의 목소리는 아련하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뇌의 선계가 처음으로 열리고 선조 한 분이 들어오셨고 그 후로 우리 가문에는 첫 번째 단계를 돌파한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게 되었네. 마치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 가문 사람들의 모든 잠재력이 어떤 존재에게 전부 흡수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뿐만 아니라 수명도 줄어 버렸지. 우리 가문 사람의 수명은 같은 경지에 이른 다른 수련자의 3할에 불과하네. 이 모든 것이 바로 그 노예 낙인 때문일세.”
이원은 고개를 들어 석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한이 가득 어려 있었지만 곧 그 한은 슬픔으로 바뀌어갔다. 그는 속으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는 듯했다.
한제는 말없이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때, 이원의 옷이 마치 비에 젖은 것처럼 땀에 흠뻑 젖어버렸다. 또한 그는 순간 폭삭 늙어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감정이 격해지면 낙인을 통제하기가 힘들어진다네.”
이원은 노쇠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몇 개의 낙인을 미간에 찍었다. 각각의 낙인은 셀 수 없이 많은 금제로 조합되어 있었다. 여러 차례 낙인이 중첩되자 그의 눈은 점차 맑은 빛을 되찾아갔다.
이원은 탁한 숨을 한 움큼 뱉어냈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노예 낙인 때문에 우리 가문은 점점 쇠락해져 갔어. 가족들은 하나둘 요절했고 수준은 첫 번째 단계에 머물게 되면서 천천히 옛날의 영광을 잃어갔지. 그러던 중, 수만 년 전, 우리 가문에 아주 빼어난 재목이 태어났어. 다른 어떤 선조보다도 그 자질이나 금제에 대해 빼어났지. 만약 우리 가문이 노예가 되기 전이었다면 그분은 가문 역사상 가장 강한 수련자가 되고도 남았을 거야!”
이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분의 수준은 문정기 절정에 불과했지만 금제에 대한 이해도와 응용력이 뛰어나 두 번째 단계의 수련자도 그분께 함부로 대적하지 못했지. 그분은 우리 가문에 찍힌 노예 낙인을 제거하기 위해 나천성역을 떠나 금제에 뛰어난 수련자를 찾아다녔어. 그리고 연맹성역에서 그분은 금제 술법을 어떤 수련자가 가지고 있던 그림 족자 하나와 바꾸셨지. 풍(風)의 선계 아래에 있는 운진성역(雲塵星域)에서는 가문 대대로 모아온 자금을 가지고 나침반 하나와 바꾸셨고…”
연맹성역 이야기가 나오자 한제는 잠시 몇몇 얼굴이 떠올랐으나,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원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그분은 수명이 끝에 다다르기 전, 다시 가문으로 돌아오셨다네. 당시 우리 가문 사람의 절반 이상은 스스로 생명을 바쳤고 그분은 그들의 영혼으로 선인들의 검을 흉내 내어 무쇠 검 하나를 만들어내셨지! 그 검으로 혼을 모으고 나침반으로 응축시키고 마지막으로 족자를 통해 봉인을 해제하실 생각이었다네!”
한제는 비록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 선조라는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이 이야기의 끝도 다소 궁금해졌다.
“그분께서는 이 세 개의 물건을 가지고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뇌의 선계로 들어가셨어. 우리 가문 사람들의 모든 기대와 자신감을 안은 채로… 허나 안타깝게도 그 후로 소식이 끊겼지. 우리 가문은 절망했고 쇠락은 더욱 빨라졌지. 가족들은 계속해서 죽어갔고 낙인은 끝나지 않는 저주처럼 우리를 옭아맸어. 결국 이제 우리 가문에는 나를 포함해 단 세 명만 남게 됐다네.”
이원의 목소리는 이제 비통함과 슬픔으로 가득했다. 한제는 비록 자신의 일은 아니었으나 그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한데 이 절망적인 상황이 1천 년 전부터 바뀌게 되었어. 나의 부친께서는 어느 구석진 수련성에서 운명처럼 무쇠 검을 보셨다더군! 비록 워낙 오랜 시간이 흘렀고 남은 우리 가문 사람 중 그 검을 직접 본 사람은 없었으나 결코 잘못 보신 것은 아니었어! 그 검은 수많은 우리 가문 사람들의 영혼을 바쳐 만들어진 것! 아버지는 그 검 안에서 가문 사람들의 혼백이 분노하고 원통해 하는 소리를 들으셨다네.”
이원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순간 한 줄기 금제의 빛이 번득이면서 회오리치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놀란 표정의 갈홍이 나타났다. 그녀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회오리에 갇힌 채 석상 옆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 무쇠 검을 가지고 있던 것이 바로 갈가였지!”
이원의 눈에 분노와 원통함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우리 가문이 강성했던 시절이었다면 갈가 정도야 단번에 멸족시켰겠지. 허나 낙인으로 인한 제한이 생긴 이상, 금제술이 있다 해도 두 번째 수준에 이른 수련자가 두 명이나 있는 가문과 맞서 싸울 수는 없었지. 그래서 수년 전, 나는 위장을 하고 갈가로 들어가 모든 것을 알아냈네.”
이원은 씁쓸한 얼굴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갈가 사람은 일찍이 내 정체를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시의 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지. 그저 갈홍에게 세 개의 법기를 주어 나와 함께 뇌의 선계로 보냈을 뿐이야. 그들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난 당시의 일을 알아냈지!”
이원은 악에 받친 눈으로 갈홍을 노려보았다.
“오늘 이 이원은 선조의 유언을 완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네 피로 우리 가문이 수만 년 동안 겪은 절망을 상쇄할 수 있는지 확인해봐야겠지!”
말을 마친 이원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갈홍은 곧장 그에게로 끌려왔다.
“사… 살려 줘!”
이원은 갈홍의 정수리를 움켜쥐었다. 갈홍은 절망감이 어린 눈으로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을 열지는 못했다.
그때, 한제가 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도우, 자네 가문과 갈가 사이의 일은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데 어째서 나를 끌어들인 거지?”
이원은 한제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자네가 음의의 수준인 수련자와 싸워 이기는 것을 금제를 통해 봤다네. 그 전투 중 자네가 사용했던 신통술이 내 계획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지. 걱정 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도움을 바라는 것은 아니야. 일이 성사된다면 완전한 매화십팔금과 우리 가문의 직계 자손만이 배울 수 있는 파멸금까지 주겠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주게. 일단 제물부터 바쳐야 하니까.”
이원은 한이 서린 눈빛을 번득이며 체내의 선력을 한 움큼 토해냈다. 그 선력은 폭주하듯 갈 씨 여인의 체내로 파고들었고 갈홍의 얼굴은 고통으로 물들었다. 한데 그녀는 발버둥을 치면서도 고개를 돌려 핏발이 선 눈으로 석상을 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뭔가를 깨달은 듯 입을 쩍 벌렸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펑!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피 안개로 흩어져 버렸다. 그 피 안개는 온 산꼭대기와 석상을 뒤덮었고 그녀의 원신은 석상에 흡수되었으며, 혼백 역시 피 안개 속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이원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진중한 얼굴로 긴 한숨을 토해내며 조용히 읊조렸다.
“선조님, 후손 이원이 선조님께서 완수하지 못한 일을 이어나가려 합니다.”
혈조의 강림
산바람이 불어와 넓게 퍼진 주위의 피 안개를 흩어버렸다.
한제는 덤덤하게 모든 광경을 보았다.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니 개입할 마음은 없었다. 갈홍의 운명은 이원이 뇌의 선계에 발을 들인 순간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원… 놀라운 자로군. 만약 저자의 말이 진실이라면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갈홍을 눈앞에 두고도 얼마나 참아야 했을까? 두려울 정도의 자제심이다! 이 산봉우리에 오르고 나서야 모든 것을 밝힌 것은 이곳에 금제가 가득하기 때문이겠지. 그 역시 저자의 선조와 막대한 연관이 있을 터. 허나 그렇다고 저자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이원을 바라보았다.
‘한데 갈홍은 어째서 죽기 전에 기어코 고개를 돌려 저 석상을 본 것일까?’
그 무렵, 이원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몸을 돌려 한제를 향해 포권을 하더니 침착하게 말했다.
“내 금제는 당시 선조의 금제에 비할 바가 못 되네. 하여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멀리 떨어져 있던 음의의 수련자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법술 말일세.”
한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내심 경계심은 더욱 커졌다. 이원은 자신과 허봉한의 싸움을 어디까지 지켜본 것일까?
“그 신통술은 정말 강력하더군. 세상 만물이 그 순간 그대로 멈춘 듯했으니까. 자네가 그 신통술로 도와준다면 난 저 석상을 완전히 부술 수 있네. 그럼 우리 가문은 낙인에서 벗어나게 되겠지. 물론 자네 역시 매화십팔금과 파멸금을 보답으로 받을 수 있게 될 걸세!”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이원을 바라보았다. 만약 상대의 말대로 그렇게 간단하게 끝날 일이라면 한 번 도와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았다. 그를 통해 파멸금은 물론 매화십팔금까지 얻을 수 있다면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한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면서 그 손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석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한제는 어안이 벙벙했다. 선인의 모습이었던 그 석상은 이제 어딘가 갈홍과 비슷해 보였다.
“내 수준으로는 금제의 위력을 더한다 해도 자네가 발휘한 검기를 당해낼 수가 없네. 한데 무엇을 고민하는 겐가? 좋아, 이 이원의 성의를 표시하기 위해 일단 매화십팔금의 나머지 부분을 주겠네. 봉인을 완전히 제거하고 나면 파멸금을 넘겨주지!”
이원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한제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원은 곧장 옥패를 꺼내 매화십팔금의 남은 부분을 기록한 뒤 한제에게 넘겼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아까와 같은 금제의 석상들이었다.
“거래는 성사됐군.”
한제는 옥패를 저물대에 넣으며 말했다. 허나 속으로는 더욱 경계심을 높였다. 줄곧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털어놓았음에도 한제의 눈에는 여전히 이원이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는 것처럼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런 한제의 마음을 모르는지, 이원은 기쁜 얼굴로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저물대에서 무쇠 검을 꺼냈다. 이어 검으로 왼손바닥을 살짝 베었다. 그러자 피가 검을 타고 흘렀고 검에서는 요사스러운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원은 잘 들리지 않는 주문을 중얼중얼 외기 시작했다. 주문이 이어질수록 검을 타고 흐른 피에서는 짙은 원한의 기운이 피어올랐는데 이는 한 줄기가 아니라 여러 줄기가 조합된 것이었다.
화르륵!
이내 한 줄기 화염이 검에서 솟아올랐다. 불빛처럼 번득이는 그 화염 안에서 원한의 기운들이 각각 사람의 얼굴이 되더니 계속해서 변해갔다. 미간에 똑같은 낙인이 찍혀 있는 그 얼굴들은 화염 속에서 일렁였다.
그때, 이원이 혀끝을 깨물어 한 움큼의 선혈을 토해냈다. 그러자 화염이 더욱 부풀어 올랐고 곡성과 고함소리가 그 안에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원의 얼굴은 그 붉은 빛에 휩싸인 채 더욱 잔인하게 일그러진 상태였다. 그는 곧이어 저물대에서 나침반을 꺼내 곧장 화염 안으로 집어던졌다.
화염 안에서 나침반의 바늘이 빠르게 회전했고 한 바퀴 돌 때마다 파문이 일었다. 이 파문은 확산되면서 화염을 빠르게 퍼뜨렸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무쇠 검에서 피어오른 화염은 수십 척 높이로 솟아오르며 끊임없이 붉은 빛을 번득였다.
펑!
화염이 격렬하게 요동치자 나침반이 깨져버렸고 그 순간 화염은 더욱 강렬해졌으며, 무쇠 검 역시 금세 시뻘겋게 달아오른 쇳물이 되었다. 그 순간, 화염은 순식간에 한 번 더 부풀어 올랐고 이제는 석상에 이를 정도로 그 기세가 강렬해졌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화염은 선인의 석상과 그 옆의 검, 그리고 종 모양의 석상까지 뒤덮어 버렸다.
석상은 마치 붉은 화염 속에서 제련되는 것 같았다. 그 화염 안에 가득했던 원한의 기운들은 줄기줄기 석상 안으로 뚫고 들어갔고 석상에는 점차 균열이 일기 시작하면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이원은 형형하게 빛나는 눈으로 저물대에서 옥병을 하나 꺼내더니 앞으로 내던졌다. 그러자 병 안에서 하얀 빛줄기들이 튀어나와 끊임없이 그 화염에 섞이더니 석상의 균열로 흘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