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05
“난 수만 년 전 네가 처음으로 윤회에 스며들어 태어났을 때 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너는 네 목표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구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를 끌어들이지는 않았을 터! 네 눈에 들었던 것은 나의 정신술이 아니라 이것이었어!”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인과의 채찍이 허공에서 짝, 짝 소리를 냈다.
이원은 기이한 눈으로 인과의 채찍을 응시했다.
“똑똑한 자로구나!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은 윤회와 인과의 경지가 녹아든 바로 그 법기다! 그것이 없다면 7할의 확신만 가졌을 것이나 그것이 있으면 9할 이상의 확신을 가질 수 있지!”
말을 마친 그는 한제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나타나 있던 검은 선은 곧장 꼬리와 머리를 문 채 하나의 원을 이루어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허나 한제는 여전히 침착했다.
“이번에도 너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네 주인 스스로가 깨어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야!”
“닥쳐라!”
이원의 감정이 처음으로 크게 동요했다. 그는 살기를 내뿜으며 몸을 날렸다. 이어서 오른손을 휘두르자 그의 손바닥에서 다시 세 갈래의 검은 선이 나타났다. 그 선들은 서로 교차하면서 세 자루의 예리한 검이 되더니 곧장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하하! 종의 영혼 따위가 감히 나를 해하려 하다니, 우습구나!”
한제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입을 쩍 벌려 한 줄기 하얀 빛을 토해냈다. 이 빛은 한 폭의 병풍이 되었는데 그 안에 담긴 산수도는 엄청난 위엄을 발산했다.
한제도 처음 사용해보는 이 병풍이 나타난 순간, 주위의 하늘에 산수도가 나타났다. 이때 한제는 그림 속의 사람이 된 듯했고 그를 향해 달려든 검은 선들은 곧장 그 병풍으로 녹아들어 그림 속 요소가 된 듯 한제를 향해 느릿하게 다가왔다.
“수만 년 전 너는 지금과 같이 세 개의 법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갈가 사람의 원신도 바쳤다. 그런데 왜 성공하지 못했겠느냐? 그것은 네 주인 스스로가 그런 방식으로 깨어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종이 그 뜻을 모르다니, 그러면서도 아직도 네 스스로 틀리지 않았다 할 것이냐!”
그림에서 흘러나온 한제의 목소리는 우렁찬 천둥소리처럼 하늘 가득히 울려 퍼졌다. 그러자 이원은 덜덜 떨기 시작했고 얼굴에서는 다시 갈등의 기운이 묻어났다.
한제는 다시 한 번 채찍을 휘두르며 외쳤다.
“석상이 된 네 주인의 두 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똑똑히 봐라!”
인과의 채찍이 허공을 가르며 다가와 자신의 몸을 때리자 이원은 격렬하게 몸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뭔가에 이끌린 듯 고개를 돌려 주인의 석상을 바라보았다.
이원이 고개를 돌린 순간, 화염이 모두 석상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줄기줄기 붉은 빛이 그 균열에서 발산되었는데 피비린내가 풍기는 것으로 보아 제물로 바친 갈홍의 피인 듯했다.
석상의 두 눈 아래에도 많은 균열이 일었고 그 안에서도 붉은 빛이 발산되었다. 마치 석상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틀렸단 말인가⋯⋯?”
이원은 멍한 눈으로 그 석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실 한제가 껄끄러워 하는 것은 이원 자체가 아니라 그 체내에 깃든 노예 낙인에 기인한 강력한 기운이었다. 줄곧 이원으로부터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던 것도 그 기운의 존재 때문이었다.
한제가 처음 그 기운을 발견한 것은 이원이 석상 아래에서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던 그때였다. 아주 짧은 순간 경련을 일으키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이원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허나 그때까지만 해도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죽기 전 굳이 석상을 바라보는 갈홍을 봤을 때에는 마치 번개에 맞은 듯 순식간에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갈가야말로 선인의 후손이다!’
선조의 실수 한 번으로 가문 전체가 쇠락의 길을 걷고 모든 구성원이 노예로 전락했으니 이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제한되고 깎인 수준과 수명은 불멸의 선혼이 회복하는 데 쓰이고 있었으니 어쩌면 이가 사람들은 정말로 반란을 일으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매번 실패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찍혀 있던 노예 낙인은 수만 년이 흐르면서 그 주인만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종의 혼 역시 함께 자양시켰다. 이가에서 태어났다던,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그 선조도 바로 잔혼에 의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잔혼이 깃든 채 태어난 선조는 이가에 찍혀 있는 노예의 낙인을 제거하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그 주인을 부활시킬 생각을 하고 있던 셈이었다.
한제는 당시의 시도가 실패한 이유가 갈가 사람에게 변고가 있었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한데 이원이 굳이 자신을 끌어들인 것을 보면 꼭 그 이유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원이 충분히 준비된 상태였다면 굳이 한제를 끌어들였을 리가 없다. 석상을 목격하고 이가와 갈가 사이의 이야기를 모두 파악한 뒤 한제는 뭔가를 깨달았다.
이원은 인과의 채찍 때문에 한제를 끌어들여야겠다고 결심했을 터였다. 왜냐하면 인과의 채찍이 공격할 수 있는 것은 인과였기 때문이다.
수만 년 전의 첫 번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선인의 석상 스스로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선인은 후손의 목숨을 대가로 부활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것이 결과였다.
그러니 선인을 부활시키려면 갈홍 한 사람의 피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뇌의 선계 밖 갈가에서는 그들 스스로 목숨을 바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제 성공적으로 선인을 부활시키기 위해 남은 것은 하나. 선인의 혼 안에 존재하는 저항의 의지를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한데 선인의 혼이 그렇게 쉽게 타격을 받을 리는 없으니 인과의 채찍으로 그 원인과 결과를 공격했다가는 어쩌면 한제 자신까지도 그 안에 휘말려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한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원은 첫 번째 실패를 토대로 삼아 다른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는 못했을 터였다.
한제는 이원의 저물대에 아마도 인과의 경지와 비슷한 유형의 법기가 들어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래야만 어째서 갈가가 수만 년 전 선인의 부활이 실패한 이후 그 세 가지 법기를 여태까지 가지고 있었는지, 어째서 그 사실을 꽁꽁 숨기지 않았는지가 설명이 된다. 갈가 사람들의 목적은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가에 찍혀 있는 노예의 낙인이 두 번째로 태어날 그때를…
이원이 갈가에 갔을 때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제는 이원과 갈홍이 함께했던 지난 여정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이원은 조금씩 성격이 바뀌어왔다. 여기에 석상 아래에서 보였던 변화까지 감안한 한제는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진정한 이원의 혼은 흩어져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원의 체내에 존재하는 혼은 하나지만 그 혼에는 두 가지 의지가 존재했다. 하나는 진정한 이원의 의지였고 나머지 하나는 노예의 낙인 속에 존재했던 잔혼의 것이었다.
그 두 가지 의지의 충돌 아래, 이가의 금제는 그 위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원이 금제를 발휘할 때마다 그 금제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기미를 보였다. 매화십팔금도 파멸금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것을 다 파악한 한제는 산수도 안에서 멍하니 있는 이원이 가엾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는 주인의 부활을 위해 어떤 대가도 아끼지 않은 충직한 종일뿐이었다.
고신의 피갑(皮甲)
석상의 손 모양을 통해 보게 된 환각 속에서, 주인의 죽음을 목격한 칼끝 위의 종이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두 눈에는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수만 년 동안의 기다림과 두 번의 시도는 결국 그 인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원은 멍하니 석상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주인님⋯⋯ 제가⋯⋯ 정말 틀린 것입니까⋯⋯?”
이 무렵, 석상에는 균열이 빽빽했고 그 안의 붉은 빛은 매우 짙어진 상태였다.
“어째서 깨어나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저는 그저 검의 자루 위가 더 이상 비어 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주인님께서 영원히 그 자리에 서 계시기를 그리고 검 끝에 제가 선 채 주인님을 보좌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원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
한제는 산수화 안에 선 채 묵묵히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원과는 깊은 원한을 가진 사이는 아니었기에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인과의 채찍을 거두었다.
‘저자의 신념은 수만 년 전 첫 번째 시도의 실패 후 이미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다. 두 번째 시도의 실패로 신념마저 망가져 이미 무너져버렸어.’
이제는 검 모양의 석상과 종의 석상도 모두 균열로 뒤덮여 있었다. 그 균열 안에서 발산되는 짙은 붉은 빛이 멀리서 보면 꼭 노을빛처럼 하늘을 물들였다. 석상의 짙은 붉은 빛은 끊임없이 번득였고 마침내 천천히 뻗어 나가 그림 족자에 흡수되었다.
처음에는 붉은 빛을 흡수하는 속도가 더뎠으나, 이는 점점 빨라졌다. 나중에는 붉은 빛이 마치 강물처럼 족자로 흘러 들어갔고 이 기이한 광경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이원의 두 눈은 격앙되었다.
“주인님⋯⋯.”
붉은 빛이 모조리 족자 안으로 흡수되자 석상은 전과는 달리 평범한 석상처럼 변해버렸다.
한편, 붉은 빛을 모두 흡수한 족자는 눈부신 빛을 발했고 그림 네 귀퉁이에서 화염이 피어올랐다. 화염은 가장자리에서부터 그림을 태워 들어갔다. 푸른 연기가 피어올라 하늘로 치솟았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이원의 눈빛은 격하게 흔들렸다.
한제는 굳은 눈빛으로 이 광경을 자세히 살폈다.
그림을 태우던 화염은 어느덧 검의 자루를 밟고 선 선인에 이르러 있었다. 그 순간, 그림은 마치 영혼이 깃들기라도 한 듯 화염 속에서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잠시 후에는 그림이 완전히 화염 속에 잠겨 버렸고 이내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재는 곧 불어온 바람에 날려 흩어졌다.
그러나 푸른 연기는 바람에도 흩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맴돌다가 어렴풋한 인간의 형상을 이루었다. 뚜렷한 모습은 아니었으나, 한제는 그 인간 형상의 발을 푸른 연기로 이루어진 검이 받치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형상이 서 있는 곳은 검의 자루 부분이었다.
그 형상은 하늘로 올라가다가 손을 들어 무릎을 꿇고 앉은 이원을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이원의 몸이 순간 경련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그의 미간에서 복잡한 낙인이 하나 번득였다. 노예의 낙인이었다. 그 낙인은 번득이다가 이원의 이마에서 떨어져 한 줄기 잔혼이 되더니 하늘로 올라가 푸른 연기로 이루어진 검의 칼끝에 내려앉았다. 이윽고 푸른 연기는 일렁이며 하늘 가장자리로 향하다 사라졌다.
“…”
한바탕 꿈을 꾼 듯했다.
한제는 멍한 얼굴로 영혼을 잃은 석상을 바라보다가 그 석상의 오른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전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원고 시대의 선계, 하늘로 올라간 선검, 그리고 검의 자루와 검의 끝에 선 두 사람의 환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그 검의 자루 위에 선 선인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들려온 소리는 달랐다.
“나는 죽었고 혼도 죽었도다.”
산꼭대기 위의 석상은 조각조각 무너져 내려 잔해만 남게 되었다.
선인은 당시에 이미 죽고 혼도 흩어진 상태에서 그저 그 종의 잔혼만이 헛된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추측한 대로인지 한제는 알 수 없었다. 푸른 연기로 이루어진 형상처럼 그것이 진실인지 환상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으로 푸른 연기로 이루어진 형상을 보았을 때에는 오히려 더욱 모호해졌다. 모든 것이 거짓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답은 없었다.
“이곳은, 어디지⋯⋯?”
미약한 목소리가 이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멍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다가 한제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 ★ ★
뇌의 선계의 수많은 조각에는 선인들의 동굴과 유적들이 매우 많은데 그 안에는 다양한 금제가 설치되어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뇌의 선계는 셀 수도 없이 열렸지만 몇몇 금제는 아직까지 해제되지 않았다. 이 금제들은 굉장히 강력해서 심지어는 수련자가 아예 건드릴 수 없는 것도 있었다.
“허 형, 여길 보십시오. 이곳의 금제는 전형적인 선금팔법(仙禁八法) 중 네 번째 방법으로 이루어진 겁니다. 사방의 환경을 교란시켜 신식을 숨기는 것이 그 목적이지요!”
진흙으로 이루어진 검은색 조각 위의 대륙 어느 곳에서 이원은 몸을 숙여 흙을 매만지며 말했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 금제를 해제하면 이곳에 선인의 저택 하나가 나타날 겁니다!”
그의 곁에 있던 한제가 그쪽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형의 말은, 이곳의 금제가 진흙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겁니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대륙은 그리 크지 않았고 땅은 새카맸다. 하늘도 이상하리만치 어두워 천둥번개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이따금씩 우르릉 하는 천둥소리는 들려왔다.
반경 1만 리 안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그저 황량하기만 한 곳이었다.
이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금제에 대한 허 형의 이해력에 매번 감탄합니다. 함께했던 보름 내내 제가 한마디만 해도 단박에 알아듣는군요.”
이원은 흙을 한 줌 집어 저물대에 챙겨 넣으며 말을 이었다.
“허 형도 이 금제의 흙을 챙겨두시지요. 뇌의 선계를 떠난 뒤, 선금의 환경을 잃은 흙은 모종의 변화를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이가로 돌아가 금제 나침반을 만드는 재료로 쓸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