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09
여덟 자루의 단검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지만 정신술 역시 일반적인 술법이 아니었다. 한제의 수준에 한계가 있는 탓에 오랫동안 이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단검의 움직임을 고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찰나의 순간,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마수의 두개골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때 그를 쫓아온 허상이 바로 뒤에 붙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이는 한제가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다. 상대는 볼 수도 신식으로 감지할 수도 없는 존재였으니 자신을 공격하려 달려든 순간을 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으나 그의 미간에서 빛이 번득이더니 인과의 채찍이 곧장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이어서 묵직한 느낌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온몸에 느껴지던 한기가 사라졌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마수의 두개골을 움켜쥐어 금제로 봉인한 후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그 무렵, 정신술에서 벗어난 여덟 자루의 비검은 다시 한제를 뒤쫓기 시작했다.
산골짜기는 협소해 몸을 숨기기도 쉽지 않았다. 특히 형태 없는 허상은 한기를 숨겼다가 지척에 이르러서야 다시 발산시키는 바람에 한제는 몇 번이나 위험한 순간을 넘겨야 했다. 게다가 녀석이 출구를 막고 있어서 골짜기를 벗어나기도 힘들었다.
뒤에서는 비검들이 흩어졌다가 사방팔방에서 달려들었는데 검기에는 선력이 배어 있었다. 이 단검들은 서로 교차하면서 검진을 이루었기 때문에 살기가 한층 짙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제가 마수의 두개골을 손에 넣은 순간, 산골짜기의 지면을 가득 덮은 빽빽한 유해에서 녹색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각각이 하나의 허상을 이루어 달려들었다. 심지어 유해들을 갉아먹고 있던 작은 벌레들도 한제에게로 돌진했다.
그야말로 온 골짜기가 그를 단단히 옭아매고 있는 상황. 한제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이 모든 것이 자연히 생성된 것일 리는 없다. 모두 외부에서 옮겨진 것일 터. 그렇다면 이 산도 기반을 갖지 못했겠지.”
한제는 몸을 날려 단검과 녹색 안개, 그리고 날벌레들을 피한 뒤 곧장 가까운 산골짜기 옆의 암벽으로 향했다.
“하앗!”
한제는 낮은 기합과 함께 체내의 선력과 천둥번개를 오른손에 응집시켜 암벽을 꾹 눌렀다. 그러자 그 순간 하늘을 뒤흔들 듯 요란하고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르릉!
바위가 덩어리째 떨어져 내리면서 끝없이 피어오른 모래 먼지가 사방으로 퍼졌다. 10리 밖에서 기다리던 이원도 이 장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저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진동만큼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이원의 곁에 서 있던, 한제와 영혼으로 연결된 선위가 옆으로 한 걸음 내딛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주먹을 산맥에 내리쳤다.
콰르릉!
이 모습에 이원은 찬 숨을 들이마셨다. 한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장이 쿵쾅대는 것을 느끼며 쓰게 웃었다.
‘허 형은 정말 미친 게 아닐까?’
만약 한제 자신의 힘만을 이용했다면 산맥을 진동시키는 데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위의 힘이 더해지니 산맥은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한편, 한제는 두 눈이 새빨개진 상태로 산맥을 꽉 움켜쥔 채 힘껏 날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선위도 더욱 강한 압력을 받고는 두 손으로 산맥을 꽉 붙잡은 채 들어 올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저물대 공간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선위 꼭두각시는 금빛을 번쩍이면서 산맥 전체를 받쳐 들었다.
격렬한 진동이 산골짜기까지 전해지자 여덟 자루의 단검은 움찔거렸다. 사방을 채운 초록색 연기도 이제 한제를 내팽개치고 산맥을 향해 달려들었다. 심지어 해골을 갉아먹고 있던 날벌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 선위 꼭두각시의 온몸에서는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이를 악물더니 오히려 산맥을 조금 더 들어 올린 채 날아오르더니 아래로 내던졌다.
콰르릉!
대지가 진동하면서 더 많은 균열이 생겨났고 공간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했다. 그러나 산맥에 짓눌린 균열들은 맞물릴 수밖에 없었고 한제는 그 틈을 타 산골짜기에서 튀어나왔다.
형태 없는 허상도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 그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고 누구도 한제를 쫓지 않았다.
확실한 준비
산골짜기 밖으로 나온 한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세 번째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좀 전의 상황에 영향을 받은 세 번째 골짜기에서는 금제의 빛이 끊임없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곳의 수많은 금제가 이번 일로 무너져 내린 듯했다.
한제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곧장 세 번째 산골짜기로 달려들었다.
그의 목표는 고신의 피갑이었다. 두 개의 산골짜기에 없었으니 마지막 세 번째 산골짜기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공간을 만든 선인은 누군가가 이곳에 들어와 산맥을 내던져 금제들을 제거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찬 숨을 들이마시며 평정심을 되찾은 이원은 쓰게 웃으며 한제의 뒤를 따랐다.
한편 엄청난 힘을 소모한 선위는 한제의 그림자로 녹아들어 휴식을 취했다.
잠시 후, 한제와 이원은 세 번째 골짜기 근처에 이르렀다.
그곳은 꽤 심각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본래는 협소했을 입구가 지금은 팔(八) 자 형태로 벌어져 있었고 금제의 빛이 사방에서 끊임없이 번득였다. 한제는 그 골짜기 안에 사당이 하나 있음을 단박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사당은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로 심지어 문도 없어진 채였다. 또한 사당 앞에는 유해가 두 구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고신의 피갑을 걸치고 있었다.
다른 유해는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는 않았고 금빛이 번쩍이는 오른손 손가락이 고신의 피갑을 입은 유해의 머리에 깊이 꽂혀 있었다. 이는 아마도 고신의 피갑을 입은 유해의 두개골에 생긴 여러 개의 균열과 관련이 있을 듯했다. 둘은 생전에 무척 격렬하게 서로를 공격한 모양이었다.
한제가 허공을 움켜쥐자 해골에 걸쳐져 있던 고신의 피갑이 곧장 날아들었다. 피갑에 손에 닿은 순간, 한제는 피비린내와 동시에 짙은 슬픔을 느꼈다.
이 조잡한 피갑은 무척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듯했는데 강력한 기운이 한 줄기 남아 있었다.
앞으로 몇 걸음 다가온 이원은 다른 해골 옆에 이르러 그 금빛으로 번쩍이는 손가락뼈를 바라보다가 그 손가락을 하나씩 부러뜨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고개를 든 이원은 문 없는 사당을 보더니 표정이 급변했다.
“허 형, 저기를 보십시오!”
고개를 들고 사당 쪽으로 몇 걸음 나아간 한제는 그답지 않게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재빨리 신식으로 사당을 훑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으로 들어섰고 이원도 곧장 뒤따랐다.
사당은 두 층이었는데 1층에는 그저 벽마다 몇 폭의 벽화만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벽화는 총 아홉 개였는데 그것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던 이원은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이건… 무슨 신통력이지?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사람이 있을 수가⋯⋯.”
이마에 별 같은 반점 여덟 개가 있는 거인을 수많은 선인들이 각종 법보를 이용해 미친 듯이 공격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선인의 몸집은 거인에 비하면 개미만도 못해 보였다. 거인의 눈빛은 냉랭했는데 생동감 넘치는 그림 속에서 유독 그 눈빛만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아홉 개의 그림이 모두 그랬다.
‘팔성급 고신⋯⋯.’
한제는 말없이 고개를 들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는 천천히 그 계단을 올랐으나, 이원은 1층에 남아 멍하니 그림들을 보고 있었다. 고신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이원이 놀라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2층에는 탁자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 위에는 노란 종이 한 장이 깔려있었고 옆에는 그림용 붓이 몇 필 있었다. 이곳의 주인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듯했다.
탁자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는 향로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타고 남은 향의 재뿐이었다.
한제는 탁자 옆으로 다가가 문진에 깔려 있는 종이를 바라보았다. 문진에서 짙은 선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분명 보통 물건은 아니었지만 한제의 시선은 문진이 아니라 종이를 향해 있었다.
선계 을경(乙庚) 16년, 고신의 강림에 여러 선인이 나가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나의 망가진 법보는 오직 이곳에서만 제련될 수 있다. 하지만 전공을 인정받아 부여받은 그 고신의 가죽 한 부분으로 피갑을 만들었다.
을경 19년, 엄청난 변화가 일었다! 미친 선제가 하늘을 가리키며 죽었다. 난 내 눈으로 그 광경을 직접 보았다. 선제가 죽었을 당시, 하늘에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선인이 된 이래 고신과 전쟁을 치를 때에도 두렵지 않았건만 그 순간 나는 너무도 겁이 났다. 보지 말아야 했을 것을 보았기에⋯⋯.
여러 선인들이 나아가 전투를 치르는 동안 나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나를 한 쌍의 눈동자가 계속해서 쫓았다. 난 내가 보았던 것을 그려내야만 한다.
글씨체는 글을 쓴 사람의 초조한 심경을 드러내듯 갈수록 엉망이었다.
난 그려냈다. 하지만… 이건 무엇일까? 내가 그린 것은 대체… 무엇일까?
글은 거기서 끝나 있었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탁자 앞에 앉아 당시 붓을 들고 이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 선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느껴보았다.
한제는 붓을 들고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한참 뒤 눈을 번쩍 뜬 그는 종이 위에 적힌 글씨대로 붓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점차 당시의 그 선인이 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붓을 쥔 손을 움직일수록 마음은 초조해졌다. 당황스러움과 황망함이 방 안의 공기에 섞여 여태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듯했다.
결국 한제의 오른손은 허공에서 우뚝 멈추었다. 고개를 든 그는 2층의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이 선인은 자신이 본 것을 모두 그려냈지만 마음은 더욱 아득해졌어. 이에 글을 남기다가 뭔가 뜻밖의 일을 맞닥뜨린 거야. 아마도 누군가가 찾아왔겠지.”
한제는 붓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몇 가지 단서를 찾아낸 한제는 탁자 위에 놓인 종이 몇 장을 바라보다가 손을 휘둘러 탁자 위의 종이들을 말끔하게 태워버렸다. 그리고 문진만 챙긴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원은 벽에 걸린 그림을 떼어 저물대에 챙겨 넣는 중이었다.
한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형, 그 그림을 가져갈 생각이라면 조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 그림을 봤다가는 큰 화를 당할지도 모릅니다.”
이원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저물대 공간에는 아직 찾지 못한 법보나 옥패들이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허 형께서는 더 찾지 않으시렵니까?”
이원이 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한제는 고개를 저었다.
종이에 적혀 있던 글을 읽은 뒤 그의 마음은 선계의 붕괴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 찼다. 특히 두 번째 산골짜기를 본 뒤 한제는 이곳에 정말로 아직 법보들이 남아 있다고 한들 그 양은 극히 적을 것이라 생각했다. 중요한 법보인 마수의 뼈는 이미 자신이 챙겼기 때문이다.
그 마수의 뼈는 선인이 제련 중이라고 했던 파손된 법보임이 틀림없었다.
“좋습니다. 저는 붕괴용 금제를 배치해놓으면서 법보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이곳을 빠져나갈 출구도 찾아야 하고요. 만약 출구가 없다면 연결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겁니다.”
이원은 한제를 향해 포권을 한 뒤 사당의 2층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 위로 올라가지는 않고 밖으로 나가더니 이내 멀어져 갔다.
사당 밖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제는 저물대에서 마수의 뼈 아홉 개를 꺼내 살피기 시작했다.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갔다.
그동안 이원은 수확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당시 한제를 공격했던 두 번째 골짜기의 단검 여덟 자루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적지 않은 수확이었기에 이원은 만족한 듯했다.
불과 한 달 만에 그 단검들을 장악한 모습에 한제는 내심 놀랐으나, 이원이 금제에 얼마나 뛰어난지를 떠올리니 수긍이 됐다.
지난 한 달 동안 이원은 이 공간의 곳곳에 금제를 배치해놓았다. 혈조를 처리하는 일에 대해 한제보다 이원이 더 열성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평소라면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을 정도의 강력한 수련자를 잡는 데 자신이 배치한 금제가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이원은 숨까지 가빠졌다. 그는 생각이 깊고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금제에 대해 맹목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단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