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12
“봉인!”
그 순간, 감옥이 압축되면서 결국 그 붉은 침을 봉인하는 데 성공했다.
한제는 그 붉은 침을 집고 내려와 바닥에 착지했다.
혈조가 힘이 거의 바닥난 상태가 아니었다면 한제는 그 침을 결코 봉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도 완전히 봉인한 것은 아니었다. 침은 언제든 봉인을 뚫고 나갈 것 같았다.
“혈조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분명 매우 약해진 상태일 터. 어쨌든 회복을 마치면 곧바로 날 죽이려 들겠지.”
한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붉은 침을 바라보았다. 반투명해진 침은 거의 죽음에 이른 듯한 기운을 풍겼다.
“혈조의 곁으로 돌아가려는 건가? 좋아,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한제는 결정을 내리고는 붉은 침을 내던졌다. 침은 한 번 휘청대더니 곧장 먼 곳으로 내달렸다. 한제는 그 침을 뒤따라가며 체내의 선력을 조종했다.
그 붉은 침은 한제에게 봉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뒤를 쫓아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 ★ ★
뇌의 선계의 모처. 셀 수도 없이 많은 미세한 핏방울이 허공에 떠 있었다. 이 핏방울들은 푸른 빛을 번득이고 있어 언뜻 보면 매우 화려했다.
각각의 핏방울 안에는 혈조의 원신과 거대한 원력이 배어 있었다. 저물대 공간 안에서 붕괴되는 와중에 혈조는 혈혼단 세 개의 위력을 이용해 가문의 비술을 발휘했고 이를 통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천성역에 왔을 때만 해도 스스로 지나치게 자신했던 혈조는 미리 혈혼단을 복용하지도 않았다. 만약 미리 복용했더라면 이 비술을 발휘했을 때 그는 연맹성역의 혈성 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허공 속 핏방울들은 느릿하게 모여들었다. 그것들이 모두 융합되면 혈조는 깨어날 수 있었다. 허나 이 과정은 매우 천천히 진행됐다.
세 달 뒤, 넓은 범위에 분포되어 있던 핏방울은 이미 꽤 가까워진 상태였고 그중 몇몇은 이미 융합된 상태이기도 했다.
혈조의 원신 역시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다. 그가 깨어나면 회복 속도는 배로 증폭될 터였다.
6할 이상의 핏방울이 융합을 마친 상태였고 혈조의 원신도 혼수상태에서 점점 깨어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허공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가닥 전광이 날아들었다. 이 전광에는 은색 뿔이 달린 뇌수가 한 마리 들어 있었고 그 뇌수의 목에는 누군가가 틀어쥔 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또한 뇌수의 온몸에는 수많은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기도 했다. 심지어 뇌수의 머리에 달린 뿔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에도 쇠고리가 걸려 있었다.
뇌수의 눈빛은 아주 불쌍해 보였다. 지난 시간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봐라, 이제야 이 몸의 신분에 걸맞은 모습이 되었구나. 이래야 뇌수지. 지금 네 모습은 금각 뇌수들이 보더라도 감탄할 게다. 넌 뇌수 중 가장 특별한 녀석이야! 날 믿어라. 그래, 너는 나와 인연이 있는 녀석이라니까!”
뇌수의 등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의 오른손에는 뇌수의 목과 연결된 사슬이 쥐어져 있었다. 노인은 마치 말을 모는 듯 유유자적했다.
그의 뒤편 저 멀리에서는 수많은 전광이 마치 유성처럼 따라오고 있었다. 각각의 전광에는 뇌수가 한 마리씩 들어 있었는데 뇌수들의 눈에는 모두 짙은 두려움이 어린 상태였다.
노인은 수시로 왼손을 들어 뇌수의 은각에 달린 쇠고리를 만지작거리며 만족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와 이리도 연이 깊은 네놈을 그 녀석에게 넘기고 싶지는 않은데⋯⋯.”
뇌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 뇌수는 노인에 대해 질겁한 상태로 녀석에게 ‘연이 있다’는 노인의 말은 마치 악몽처럼 들렸다.
뇌수는 영원히 등에 탄 노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노인이 ‘인연’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그의 몸에 붙거나 걸리는 기괴한 물건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었다.
허나 다른 것들은 몰라도 뿔에 걸린 쇠고리만큼은 나름 마음에 든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바로 여기다. 흐흐, 정열기 중기 수련자도 오늘과 같은 날을 맞는구나. 이 역시 연이 닿았기 때문이지!”
노인은 멀리서 모여들고 있는 핏방울들을 바라보며 두 눈을 번득였다.
“이 용신화혈법(溶神化血法)은 요 씨 가문 직계 자손의 신통력이지. 이것은 이제 내 것이다!”
노인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두 눈을 번득이더니 그 핏방울이 모이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과연 나와 연이 닿은 자로구나. 이런 방법으로 정열기 수련자에 대적하다니. 좋아, 이리 두고 볼 수만은 없지. 한 번 도와줘야겠군.”
노인은 입술을 핥더니 손을 앞으로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핏방울들은 저항하는 기색 하나 없이 노인에게 붙잡혔다. 그리고 노인이 손을 꽉 쥐자 그 핏방울들은 순식간에 한곳으로 모여들었고 곧장 혈조의 원신이 융합되더니 깨어났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반드시 사례하도록 하겠습니다!”
모여든 핏방울 속에서 깨어난 혈조의 신식은 기쁨도 슬픔도 읽어낼 수 없는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했다.
“위장하지 말거라. 마음속 깊은 곳에 두려움이 가득하구나. 내가 다른 마음을 먹고 너를 단약으로 제련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허나 이것만은 명심하거라. 너희 가문의 혈신자가 온다 해도 나는 두렵지 않다.”
노인은 뇌수의 은빛 뿔에 달린 쇠고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찌되었든 도와주신 은혜에 대해서는 감사를⋯⋯.”
혈조는 잠시 침묵하다 신식을 통해 말했다.
“최소한의 도리만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봐라, 어쨌든 내가 널 도와 융합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주지 않았느냐. 음⋯⋯ 용신화혈법으로 융합을 완성시켰다면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도움으로 융합되면서 네 수준이 한참 낮아져 이제 규열기 후기 상태가 되었구나. 하지만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니 너무 원망하지는 말거라.”
노인은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혈조는 차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선배님께서 알고 하신 일이 아니니 이 역시 제 운명이지요. 별다른 볼일이 없으시다면 이제 신통력을 거두고 절 보내주십시오.”
노인은 하하 웃으며 두 눈을 번득였다.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좋다, 너와 나는 연이 닿은 사이다!”
그 말에 뇌수가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혈조를 향한 녀석의 눈에는 동정심이 묻어났지만 그보다는 타인의 고통을 보게 된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혈조는 침묵했다.
“네 입으로 꼭 사례하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이제 사례를 해야지!”
노인은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융합된 피에서 소생된 혈조의 원신을 꽉 틀어쥔 노인은 손에 힘을 더 주어 원신 반쪽을 찢어냈고 손을 휘둘러 피도 반 정도 거두었다.
“음, 원신 반쪽에 혈신(血身) 반쪽, 이 정도면 내 도움에 대한 사례로 받기 충분하겠구나.”
킬킬 웃으며 손을 휘두른 노인은 남아 있는 혈조의 원신 반쪽을 피가 있던 쪽으로 내던진 뒤 그쪽에 숨을 한 줌 불어넣었다. 그러자 끓어오르던 피는 무너져 내려 셀 수 없이 많은 핏방울로 흩어졌고 혈조의 원신은 한 줄기 신식도 내보내지 못한 채 곧장 다시 수면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이 몸의 계획은 분명 성공할 것이나 요 씨 녀석의 원신 반쪽과 혈신 반쪽까지 더한다면 더욱 확실하게 성공할 것이야!”
★ ★ ★
한제는 어두운 얼굴로 전방의 붉은 침을 따라 날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 붉은 침은 붉은 빛을 강하게 번득이면서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더니 단번에 한제의 봉인을 뚫고 나갔다.
“설마 혈조가 완전히 부활한 것인가?”
한제의 두 눈에 충격이 어렸다.
한데 그 순간, 침이 곧장 어두워져 이전보다 더 허약한 상태가 되었다. 언제라도 흩어져 사라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상태에서도 붉은 침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이 기회에 혈조를 죽여야 뒤탈이 없으리라!’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허공을 가르는 한제는 이미 시간의 흐름도 잊은 상태였다. 허나 기묘한 노인을 만난 후로 체내에서 느껴지는 작열감으로 인해 생겨났던 고통은 이제 더 이상 처음처럼 격렬하지 않았다.
붉은 침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 이제 한제로서는 따라잡기도 힘들 정도였다.
한데 바로 그때, 한제는 돌연 우뚝 멈춰 서서 서늘한 눈으로 전방을 살폈다. 그곳에서는 크기가 서로 다른 핏방울 십여 개가 흩어져 있었다. 그 핏방울들은 모여들려는 듯 서로를 맴돌았고 붉은 침은 훌쩍 날아들어 그중 하나의 핏방울 안에 섞여들었다.
순간, 한 줄기 피비린내 어린 기운이 퍼져 나왔고 붉은 침이 녹아든 핏방울이 기이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그 곁의 핏방울들을 빠르게 삼켜댔다.
“혈조?”
한제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는 생각할 여유도 없이 저물대에서 바위를 꺼냈다. 그 바위에서 혼을 뽑아낸 한제는 곧장 그 혼을 앞으로 떠밀었다.
쉭!
바위는 핏방울들을 향해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허나 바위의 힘은 핏방울들이 가진 힘보다 한참 모자랐고 이에 핏방울들은 점점 빠르게 모여들었다.
한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선검 한 자루를 꺼내 휘둘렀다.
순간 참라결이 발휘됐다. 전광이 번득이며 날아들더니 막 융합하려던 두 핏방울은 그대로 끊어져 버렸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원신 안의 강력한 천둥번개의 위엄을 순식간에 체내에서 폭발시켜 천둥번개를 형성했다. 천둥번개는 바람처럼 날아든 그 핏방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릉!
강렬한 공격에 핏방울들은 격하게 진동했다. 그 안에 존재하는 혈조의 원신이 깨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아직 끝이 아니다!”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한제는 더 많은 천둥번개를 발산시켰다. 그는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그 핏방울에 쏟아붓는 중이었다.
한제는 다시 선검을 휘둘렀다.
쾅!
격렬한 소리와 함께 함께 핏방울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크윽!”
어디선가 가느다란 신음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나머지 핏방울들은 더욱 빠르게 응집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혈조의 원신은 금방이라도 깨어날 것만 같았다.
눈앞의 핏방울들이 응집되면 다시는 혈조를 처리할 기회가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한 한제의 눈에 살기가 들어찼다.
“정(定)!”
순간 정신술이 발휘되었다. 하지만 핏방울 안에 존재하는 혈조의 원신은 너무나 강력해 한제의 수준으로는 정신술을 발휘해도 그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제는 이를 악물고는 전신의 선력을 미친 듯이 가동했다. 이미 원신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회복시킬 틈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 그런 상태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공격은 부담이 컸는지, 한제는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크으… 정(定)!”
한제는 경맥에서 격렬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선력을 쏟아 부었고 그러자 서로를 향해 모여들던 핏방울들이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한제는 인과의 채찍을 휘둘렀다. 동시에 체내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능천후의 검기까지 뽑아내 핏방울을 향해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