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17
구름층과 천벌은 순식간에 완전히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의 원신은 혈조의 육신을 감싼 채 땅에 내려섰다. 이때 허공에 떠있던 조각은 그 폭이 1천 척 정도로 줄어 있었다.
원신을 육신으로 되돌린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혈조의 육신을 거둔 그는 땅을 바라보다가 돌연 손으로 지면을 후려쳤다.
쾅!
그러자 남아 있던 땅이 진동하면서 한제의 원신으로 녹아들더니 결국 한 줌 흙으로 변해버렸다. 한제는 그 흙을 한입에 꿀꺽 삼키고는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현재 그의 수준은 양의에 이른 상태였다. 절정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고 체내에는 원력이 가득했다.
다만 대부분은 아직 흡수되지 않은 상태로 그 원력을 전부 흡수한다면 곧장 양의의 절정에 이르게 될 터였다.
그러면 진정한 두 번째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셈이고 뇌의 선계에서 한제에게 대항할 수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정신술과 같은 신통력, 저물대 공간에서 얻은 마수의 뼈 등의 법보까지 더한다면 규열기 초기 수련자와도 맞붙어볼 만했다.
이제 연맹성역에서 나천성역으로 도망쳐왔을 때부터 줄곧 느끼고 있던 압박감은 사라졌다.
“화는 근원까지 뽑아버려야 뒤탈이 없는 법!”
한제는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신식을 펼쳐 도망친 혈조의 원신을 추격했다.
양의의 수준으로 체내의 원력을 가동하자 문정기 절정이었던 때보다 몇 배는 빨라 마치 허공을 가르는 유성과도 같았다.
지금 충만한 그의 자신감은 수준의 상승과는 별개로 하늘을 거역한 수련자로서 가지게 된 자신감이었다.
“혈조, 천운자 능천후⋯⋯ 그들도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란 말이군!”
한제는 굳은 눈빛을 드러내며 냉소했다.
천운자도 자신이 반쯤 폐허가 된 수련성에서 데려온 자가 이 정도의 성과를 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 개입한 사람이 있다. 내가 혈조를 발견했을 때 그가 그렇게 약한 상태였던 것을 보면 틀림없어.”
한제는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혈조를 뒤쫓았다.
★ ★ ★
그 무렵, 뇌의 선계 깊은 허공 속 어느 조각에서 이원은 창백한 얼굴로 다급하게 도망치고 있었다.
그의 오른팔은 어딘가로 사라졌고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몸 곳곳에 검에 베인 상처가 가득했는데 특히 배를 가른 상처는 끔찍할 정도였다. 원신도 부상을 입어 거의 무너져 내릴 지경이었다.
만약 파멸금으로 도망쳐 나오지 않았다면 벌써 죽고도 남았을 터였다. 죽음의 기운이 그의 몸에서 피어올랐다.
그의 표정은 착잡했다. 다시 돌아가 싸우고 싶었지만 상대에게는 금제를 파괴하는 오래된 거울인 파금고경(破禁古鏡)이 있었다.
한제를 위해 심금을 발휘한 후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라, 만약 충분한 거리를 벌리지 못한다면 몸을 숨기기도 불가능할 것이다.
“파금고경을 가지고 있다니… 나천성역에서 오직 선계의 후손 가문만 가질 수 있는 것을… 우리 가문이 강성했던 시기였다면 저놈은 잡배에 불과했을 텐데 지금은⋯⋯. 허 형, 심금을 드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군요. 미안합니다. 꼭 약속을 지키고 싶었는데…”
그때, 뒤쪽에서는 두 사내와 한 여인이 이원을 뒤쫓고 있었다.
“사촌 오라버니, 저자가 가지고 있는 보물이 적지 않아요. 이 선검도 강력하군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이렇게 말한 여인은 용모가 수려했고 눈에는 교태가 넘쳤다. 지금 그녀의 손에는 이원이 선인의 저물대 공간에서 얻은 선검이 들려 있었다.
두 사내 중 젊은 사내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마음에 든다면 갖거라. 저자에게는 아직 여덟 자루나 더 남아 있으니 모두 빼앗은 후 어디에서 얻었는지 추궁해야겠다. 전부 다 네게 주마.”
그의 수준은 문정기 절정이었고 뒤에 선 노인의 수준은 음의의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 ★ ★
한제는 양의의 수준에 익숙해질수록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체내의 원력이 충만하여 어색할 정도였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원력이 저절로 체내에 흘렀다. 한제는 아직 적응이 약간 덜 된 듯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세상과 하나로 융합된 듯한 느낌,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또한 이 느낌은 갈수록 강렬해졌고 그런 마음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는 정말로 이 세상과 일체가 된 것만 같았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느낌이었다. 허나 육신과 원신을 통한 이 느낌은 너무도 생생해, 한제는 잠시 이성을 무시해보기로 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육신과 원신의 감각에만 모든 것을 맡긴 채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그 한 걸음에 온 허공이 진동했다. 잔잔한 연못과 같은 허공에 그가 발을 들임으로써 무형의 파문이 사방으로 줄기줄기 퍼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한제 체내의 원력이 가동되면서 사방의 허공에 녹아들며 기이한 연계를 이룬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바로 이때, 한제의 모습이 사라졌다.
원영기 수준의 순간이동을 초월하고 문정기 수준의 나이법을 능가하는 신통술이었다. 심지어 셀 수 없이 많은 나이법을 동시에 발휘하는 대나이법을 실행했을 때보다도 빨랐다.
이는 축지성촌(縮地成寸)으로 상고 시대 수련자들이 체내의 기를 원신으로 만든 후 사용할 수 있었던 술법이자 당금의 수련계에서는 진정한 두 번째 단계인 규열기에 이른 수련자만이 느끼고 발휘할 수 있는 원력의 신통술이었다.
허나 두 번째 단계에 이른 모든 수련자가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술법은 천부적인 자질이 아닌 원력의 감응 능력과 관련이 있었다.
한제가 사라진 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는 혈조가 빠르게 달아나고 있었다. 그의 수준은 음의로 떨어져 발휘할 수 있는 신통력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원신에 부상을 입은 탓에 지금 그는 무척 허약해져 있었다.
“이한제, 내 회복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널 찾아내 죽이고 말 것이다!”
혈조의 속도는 상당히 빨라 잔영이 늘어질 정도였다.
한데 그 순간, 혈조는 표정이 급변하더니 곧장 속도를 더 올렸다. 거의 동시에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서 파문이 이는가 싶더니 한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뜬 순간, 혈조는 혼비백산하여 온몸을 덜덜 떨었다.
“축지성촌! 아직 규열기에 이르지도 않은 저놈이 어떻게…?”
혈조는 속으로 쓴물을 삼키며 빠르게 도망쳤다.
“음양이의의 경계를 순식간에 통과한 사람은 그 후의 성장 속도도 매우 빨라 단번에 두 번째 단계의 절정에 이른다는 말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수준이 떨어지기 전에도 축지술법을 채 장악하지 못했던 그는 몸을 떨었다. 그가 알기로는 심지어 능천후조차 축지성촌을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 그들과 같은 수준 높은 수련자도 축지성촌은 세 번째 단계에 가까운 신통술이라고 보았다.
혈조는 처음으로 한제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직접 한제의 변화를 첫 번째 단계인 문정기 절정 수준에서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된 것을 목격했다.
“운도 좋은 녀석이로군!”
혈조는 씁쓸하게 내뱉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한편, 두 눈을 번쩍 뜬 한제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마치 한 걸음 내딛자마자 이곳에 이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마치 세월의 강에 들어선 듯 모든 것이 눈앞을 스쳐갔고 그가 발을 내딛었을 때 바로 앞에는 혈조가 있었다.
허나 한제는 도망치는 혈조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저 좀 전의 상황을 묵묵히 느껴보려 했다. 혈조를 쫓아가는 것보다는 좀 전에 느낀 그 감각을 완전히 찾는 것이 그에게는 훨씬 중요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기도 했고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기도 했으나 실상은 1각 정도 지나 있었다. 그때, 한제는 뭔가를 깨달은 듯한 눈빛으로 조용히 오른발을 내딛었다.
허공에 다시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몸이 허공과 하나로 녹아드는 듯한 느낌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달아나는 혈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그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혈조는 그의 목표 중 하나일 뿐이었다. 지금 그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방금 느꼈던, 허공 속에 녹아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떠올리기만 해도 한제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그런 신통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형태 없는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제는 흥분에 가득 찬 눈빛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한참 뒤, 그의 걸음은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에는 한 줄기 빛처럼 번쩍 하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점차 이 세상에 녹아드는 것 같은 느낌이 다시금 들기 시작했다. 한제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침착하게 그 감각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 느낌은 너무나 묘연하여 좀처럼 완전하게 장악하기가 힘들었다.
그 느낌이 흩어질 기미를 보이자 한제는 한숨을 내쉬었고 마음속에 혈조를 떠올리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딛더니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한편, 혈조는 너무도 두렵고 불안했다. 요가의 시조인 혈신자를 마주했을 때에도 이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다.
바로 그때, 돌연 그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곧장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한 줄기의 채찍이 허공에 나타났다.
“칫!”
혈조가 혀를 차며 두 손으로 그린 결인은 한 줄기 불빛을 내뿜어 채찍을 막았다. 혈조는 그 틈을 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채찍이 물러남과 동시에 허공에서 파문이 일었고 한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요가 (1)
한제가 축지성촌을 발휘한 것을 우연으로 치부하려던 혈조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두 번… 이는 절대 우연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한제는 나타나자마자 한 걸음 내딛으면서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한 줄기 황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한의 기운으로 가득한 황천에서는 날카로운 괴성이 울려 퍼졌다.
이전의 황천과는 달리 지금 눈앞에 나타난 황천은 짙은 원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한제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가 발휘하는 신통력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원력, 황천!”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혈조를 바라보며 가볍게 외쳤다.
찰나의 순간, 황천이 진동하더니 하늘 가장자리에 있다가 끝없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마치 이 세상을 대신하여 온 천하를 뒤덮으려는 것 같았다.
넘쳐흐르는 원력이 주위를 가득 채웠고 셀 수 없이 많은 원한의 기운들이 원혼(怨魂)을 이루어 사방에서 혈조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