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19
노인이 이원으로부터 시선을 거두며 덤덤하게 말하자 청년이 빙그레 웃었다.
“곧 죽겠군. 허나 꽤 훌륭했다. 13일이나 버티다니. 지금껏 가장 오랜 버틴 녀석도 8일에 불과했는데 말이야. 다음번에는 음의의 수준에 이른 수련자를 잡아와. 그럼 며칠 더 놀 수 있겠지. 내 팔면서혼충(八面噬魂蟲)도 빠르게 성충이 될 테고…”
노인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 짧은 한 마디에서 그의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청년 곁에 있는 작은 새와 같은 여인은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오라버니, 저자에게서 검을 뺏으면 정말 저에게 주시는 건가요?”
청년은 음흉하게 웃으며 여인의 낭창한 허리를 감싸 안았다.
“물론이지. 아홉 자루 모두 네 것이야! 이 뇌의 선계에서는 무엇이든 내가 원하면 갖게 돼 있지. 저자의 원신을 통해 이 검들을 어디에서 얻었는지 확인해 함께 가보도록 하자.”
여인은 입을 가리며 웃더니 교태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촌 오라버니는 요가의 사람이니 당연히 가능하시겠지요.”
청년의 표정은 한껏 오만해졌다. 요 씨 성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감히 뇌선전 사람이라 해도 공손하게 대했고 그의 말대로 요가 사람인 그가 원한다면 이 뇌의 선계에서 갖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 무렵, 한제는 이원의 행방을 찾느라 신식을 펼쳐 사방을 훑고 있었다. 그리고… 한제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한편, 이원은 두 눈에 더 이상 초점이 없었다.
“끝인가⋯⋯? 그래, 죽음 역시⋯⋯ 일종의 해방이겠지. 다만 심금을 전수하겠다는 허 형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
이원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의 시야는 이미 흐려져 보이는 것이라고는 동공 안에서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하얀 벌레 몇 마리뿐이었다. 허나 이상하게도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죽더라도 이가의 사람답게 죽겠다!”
이원은 두 눈의 초점을 억지로 맞추며 전의를 불태우더니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몸을 돌려 느긋하게 자신을 뒤쫓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원의 눈에는 짙은 한이 가득 담겼다.
“난 너희와 어떤 원한도 진 적이 없거늘… 내 법보가 탐난다면 그냥 가져갈 것이지 이렇게 나를 희롱하느냐! 이 이원은 죽더라도 귀신이 되어 네놈들을 저주할 것이다!”
이원은 저물대에서 남은 세 자루의 단검을 꺼냈다. 그의 사방을 맴돌며 날카로운 검기를 번득이던 검은 이원의 손짓에 따라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 분수도 모르고 까부는구나!”
청년은 차게 웃으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그의 앞쪽에 핏빛의 거대한 손 하나가 나타나더니 날아들던 세 자루의 검을 잡아챘다.
이원은 청년이 검을 움켜쥔 순간 왼손으로 결인을 그려 미간에 찍었다. 그러자 그의 미간에서 팔뚝 굵기의 검은색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은 셀 수 없이 많은 갈래로 잘게 갈라져 결인에 따라 기이한 금제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금제들은 나타나자마자 열여덟 갈래로 갈라졌고 이원의 주위는 셀 수 없이 많은 금제로 가득 채워졌다.
이어서 이원은 선혈을 한 움큼 분출해 금제 위에 뿌렸다. 그 피에도 적지 않은 하얀 벌레들이 섞여 있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피를 흡수한 금제들은 빠른 속도로 청년을 향해 날아들었다. 엄청난 속도로 눈 깜짝할 사이 가까워진 금제에 청년은 방금 신통술로 거둬들인 세 자루 단검을 억지로 손에 틀어쥐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 수많은 금제의 돌진에도 청년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차게 코웃음을 쳤다.
그 순간, 곁에 있던 노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한손을 들었다. 그러자 흘러넘칠 듯한 원력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파괴!”
노인이 짧게 외치자 날아들던 금제가 원력에 부딪히면서 펑 하고 터져버렸다.
그러나 금제가 터져나간 후에도 그 금제를 이루고 있던 검은 선들은 사라지지 않고 한데로 모여 검은 금제 하나를 형성했다.
그 금제는 파멸적인 기운을 품은 채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흥! 이따위 수작을!”
노인은 저물대에서 거울 하나를 꺼내 검은 선을 가리켰다. 그러자 하늘이 한층 어두워졌다. 마치 모든 빛이 그 오래된 거울에 응집된 것 같았다. 그리고 순간, 검은 선은 무너져 내렸다.
이원은 몸을 부르르 떨며 선혈을 한 움큼 토해냈다. 그의 얼굴에 드리운 죽음의 기운은 이미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비참하게 웃던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우리 이가의 금제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허 형을 돕느라 심금을 많이 소모했던 것뿐이야. 완전한 심금을 발휘했다면 저 파금고경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았을 텐데… 허나 후회는 없다. 허 형이 우리 이가에 베푼 은혜를 생각한다면 나는 백 번이고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
그때, 노인이 앞으로 나서며 발길질을 했다. 그러자 이원은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미처 쓰러지기도 전에 그의 눈앞은 어두워졌다. 노인의 발길질에 체내의 선력이 모두 무너지면서 더 이상 저항할 힘이 남지 않았다.
“소주님, 이자는 더 이상 어떤 위험도 되지 않습니다. 공격하셔도 됩니다.”
말을 마친 노인은 뒤로 물러났다. 음의의 수련자로서 문정기 수련자를 공격했다는 부끄러움 따위는 전혀 없어 보였다.
청년은 그제야 세 자루 비검을 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이원의 선력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와 세 자루 비검 사이에 존재하던 연계도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청년은 얌전해진 세 자루 비검 역시 곁에 있던 여인에게 건넸다. 그러더니 냉랭하게 웃으며 이원 앞까지 걸어오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 보자. 어디에서 이런 선검을 얻었는지!”
말을 마친 그는 오른손을 이원의 정수리를 향해 뻗었다.
“오라버니, 빨리요.”
여인은 교태가 가득한 눈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며 손으로는 선검을 만지작거렸다.
한데 그때, 돌연 한 줄기 파문이 이원의 곁에 나타났다. 한없이 냉랭했던 노인은 표정이 급변해 몸을 날리며 크게 외쳤다.
“소주님, 물러나십시오!”
청년은 흠칫 놀랐다.
찰나의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살기가 그 파문 안에서 흘러나왔다. 너무나 짙은 살기에 주위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다 못해 눈꽃이 응결되어 떨어질 지경이었다.
청년은 창백해진 얼굴로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때 한 줄기 인영이 그 파문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그 인영이 나타난 순간 세상을 채운 살기는 미친 듯이 폭발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콰르릉!
천둥이 울려 퍼진 순간, 파문에서 나타난 인영은 뒤로 물러서려는 청년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빠각!
그 작은 손짓에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청년은 선혈을 한 움큼 토해내며 뒤로 떠밀려갔다. 전신의 뼈는 이미 마디마디 부러진 상태였다.
파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영은 다시 한 걸음 나아가 이번에는 청년의 미간에 손가락을 얹었다. 짙은 원력이 청년의 체내로 흘러들면서 성난 파도처럼 청년의 선력을 무너뜨렸다.
“끄아아!”
펑! 펑!
작은 폭발음과 함께 청년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상대의 손가락은 이제 그의 목숨을 좌우하는 천명을 대체한 존재인 듯했다.
허공을 가르며 저 멀리 날아간 그는 허공에 떠 있는 상태인데도 체내에서 울리는 펑펑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때마다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청년의 체내로 쳐들어간 원력은 미친 듯이 폭주하면서 그 안의 선력을 파괴했고 이어서 도의 근간을 망가뜨렸다. 그리고 전신의 혈액을 모조리 모공을 통해 밖으로 뿜어냈다.
이에 청년은 피로 이루어진 붉은 안개를 발산했고 체내로 들어간 원력이 멈추지 않고 거칠게 움직이면서 모든 근육을 마디마디 찢었으며, 오장육부를 산산조각 냈다.
허나 끝이 아니었다. 강력한 원력은 곧장 청년의 머리로 돌진해 단단한 두개골과 뇌까지 부수면서 요가의 청년은 육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훌훌 날아 떨어진 그의 육신은 미처 반도 날아가기 전에 완전히 무너지고 와해되고 흩어졌다.
그 안에 담긴 원신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에 떨었다.
한데 그 순간, 그의 육신을 파괴한 원력은 마지막으로 폭발하면서 그 원신까지도 철저히 망가뜨렸다.
여기서도 끝이 아니었다. 그 원력은 망가진 청년의 원신이 흩어지기 전에 주먹만 한 빛의 공으로 응집시켜 한제의 손으로 돌아갔다. 한제는 그 공을 지면에 쓰러져 있는 이원의 미간에 집어넣었고 흩어진 원신에 자양분도 불어넣었다.
“내 친구를 다치게 책임은 작지 않을 것이다.”
한제의 목소리는 한없이 냉랭했다.
이 모든 일은 찰나에 마무리된 것으로 노인이 손을 뻗을 틈도 없었다.
노인의 이마는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뒤덮였다. 표정도 초조했고 평정심도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두 눈은 큰 충격과 은근한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동안 상대의 인영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허나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상대가 나타난 파문 안에서 발산되는 기운이었다. 그의 눈에 파문 안에서 나타난 한제는 온 세상과 하나가 된 듯 보였다.
‘두렵다. 뇌의 선계에 들어온 양의의 수련자는 내가 다 알고 있건만 이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상대의 짙은 살기에 자신의 심신이 덜덜 떨고 있음을 느꼈고 무의식적으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여인의 두 눈도 머릿속도 텅 빈 상태였다.
“허⋯⋯ 허 형!”
가까스로 눈을 뜬 이원은 감격한 듯 한제를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허 형… 저… 들을… 죽여주십시오!”
이원의 목소리에는 짙은 한이 어려 있었다. 지난 13일 동안 축적되어 온 한이었다.
한제는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노인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멍하니 서 있는 여인의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손에는 이원의 선검이 쥐어져 있었다.
한제는 무심하게 한 걸음을 내딛었고 단번에 여인의 코앞에 이르렀다.
여인은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상대의 손짓 한 번에 요가 청년이 그대로 무너져 내린 것도 그의 몸 곳곳에서 들려온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도 생생했다.
심지어 청년의 원신을 빼내 신식을 지우고 한 덩어리의 원력으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런 상대가 갑작스레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자 여인은 공포에 휩싸였다.
“꺄아악!”
그녀의 눈에 한제는 사람이 아니라 악마였다. 그것도 영혼을 빨아먹는 끔찍한 악마!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도망쳐야 한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공포는 그녀의 의식을 망가뜨렸고 그녀의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남겨놓았다. 설혹 이곳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그녀의 수준은 그 흔적으로 인해 뚝 떨어질 것이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터였다.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