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2
등화원은 한제가 모습을 드러낸 그때, 그 기척을 알아채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 한제를 확인한 그는 그제야 전후 사정을 명확히 깨닫게 됐다. 하지만 그의 손과 발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기 전이라 움직임이 굼뜰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제의 등장도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다.
등화원이 한제를 발견했을 때 한제의 손은 이미 그의 저물대를 잡아챈 상태였다. 허나 등화원은 당황하기는커녕 잔혹한 빛이 어린 얼굴로 낮게 소리쳤다.
“폭발!”
그 순간, 파멸적인 힘이 저물대로부터 퍼져나갔다. 그 엄청난 힘은 한제의 손을 따라 몸까지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폭파시켜 나갔다. 한제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일어난 폭발은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한제는 이를 악물고 녹색 비검을 소환해냈다. 비검은 그의 오른손을 잘라냈고 몸으로 옮겨 붙은 폭발의 기운은 빠르게 사그라졌다. 그와 동시에 그는 인력술로 등화원의 저물대를 잡아챈 뒤, 빠르게 몸을 돌려 멀리 도망쳤다.
이때 등화원은 이미 손과 발을 완벽하게 회복한 상태였다. 몸을 훌쩍 날린 그는 푸른색 얼음으로 뒤덮인 범위를 건너뛰어 한제를 뒤쫓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를 따라잡은 등화원은 손을 꽉 쥐며 소리쳤다.
“이한제! 네가 그것을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네 영혼을 뽑아 영혼의 깃발로 만들고 네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한제의 오른손은 이미 완전히 깨지고 망가져 있었으나, 영력을 이용해 상처 부위를 얼음으로 막아 출혈을 방지해 둔 상태였다. 등화원의 저물대를 손으로 만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인력술로 대신 그것을 쥐고 있었다.
등화원은 엄청난 분노가 치솟았다. 이렇게 많은 수련자들 앞에서 축기 수준의 한제와 맞붙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큰 모욕이었다. 한데 단번에 그를 잡아 죽이지도 못했고 환상에 속아 체면을 구긴데다가 엄청난 얼음 파문에 몸이 잠시 얼어붙기까지 했다.
빠르게 회복하긴 했지만 한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이제는 저물대까지 빼앗겼으니 굴욕감은 이를 데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원영기 이상의 수준을 가진 수련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이동을 이제 고작 축기 수준인 한제가 펼쳤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그 과감함과 끈기도 놀라웠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손을 잘라 폭발이 몸까지 퍼져나가는 것을 막은 그 단호한 대응에 등화원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찬사를 내뱉기까지 했다.
허나 이는 복수심에 금방 뒤덮였다. 상대가 단호하고 과감한 모습을 보일수록 한제를 향한 등화원의 살의는 더욱 짙어졌다.
“이한제, 내 증손자를 죽인 건 네 놈 짓이니, 남을 탓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걱정 마라. 등력을 선동하여 널 쫓도록 만들었던 지묵 노인과 그의 문하생들 역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저승길의 동반자로 만들어주마.”
등화원은 냉소하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휘둘렀다. 순간 미친 듯한 바람이 사방에서 일었다. 이전까지 허공에서 배회하던 3만 개의 영혼들이 한꺼번에 모여들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슝!”
한제가 다시 순간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등화원은 자신의 가슴을 팍 내리쳤다. 그의 원영이 머리 위로 솟아올라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악!”
원영은 한참 줄어들더니 이어서 피 구슬 하나를 입에서 토해내었다. 그 피 구슬은 나타나자마자 끊임없이 늘어지더니 피의 장막을 이루어 사방을 뒤덮었다.
두 사람 사이를 잇고 있는 저주의 힘 덕분에 피의 장막은 한제를 뒤덮었고 이내 그를 꽁꽁 감싸 이동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제는 막 순간이동을 하려던 그때, 자신에게 몰려들고 있는 영혼 중 하나를 보게 됐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채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얼굴은 그의 아버지였다.
등화원은 한제의 표정을 보고 다급하게 뒤쫓는 대신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네 일가의 영혼을 한 장의 깃발에 봉인해 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한제, 너무 순진하구나.”
그가 오른손을 뻗자 사방을 휘젓고 돌아다니던 3만 개의 영혼이 우뚝 멈추었다. 이어서 한제의 아버지의 영혼만이 서서히 한제에게로 날아갔다.
한제는 이를 악물었다. 시뻘건 선혈이 그의 눈가에서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영혼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본 한제는 몸 곳곳이 칼로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비참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갈수록 커져갔다. 이내 몇 움큼의 피를 토해낸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크게 웃었다.
“신선이 되기 위한 수련! 이것이 바로 신선이 되기 위한 수련이로구나! 좋아, 좋다.”
“흐흑!”
말을 마친 그는 자신의 이마를 치고 음한기를 토해냈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혼을 그 음한기로 조심스럽게 감싼 한제는 조금의 손상도 입히지 않고 그것을 꽁꽁 얼려버렸다.
한제의 죽음
한제를 바라보던 등화원은 마음속 깊은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한기를 느꼈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피식 비웃었다.
‘겨우 축기 수준의 수련자를 두려워하는 것인가?’
허나 그 알 수 없는 한기는 계속해서 차올랐다.
등화원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오른손을 다시 들었다. 그러자 3만 개의 영혼 중 다른 하나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한제의 어머니 영혼이었다.
한제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인력술로 쥐고 있던 등화원의 저물대를 놓았다. 이제 그에게 이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과 대산파에 들어가기 전의 기억들이 흐르는 물처럼 머릿속을 휘저었다.
“이한제, 내가 얼마나 인자한지 보아라. 너와 네 부모를 만나게 해주지 않았느냐.”
말을 마친 등화원은 손가락 끝을 살짝 튕겼다. 그러자 한제의 어머니의 영혼이 한제의 체내로 파고 들어갔다.
통증이 느껴졌다. 영혼에 상처를 입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제는 자신의 마음이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등화원을 노려보며 다시 음한기로 어머니의 영혼도 얼려 보존했다.
이에 등화원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다. 장난은 그만 두지. 네가 역외 전장의 통로를 통해 도망칠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미 알아챘으니, 그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게다.”
그가 오른손을 쥐자 한제의 저물대가 휙 날아가 등화원의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등화원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꽉 쥐었다.
“쾅!”
순식간에 저물대는 폭발하며 산산조각으로 흩어졌으며, 영패를 포함해 그 안에 들어있던 모든 것들도 사라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 가득한 3만 개의 영혼이 미친 듯이 한제를 향해 달려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체내로 파고들어가 그의 피와 살과 영력을 뜯어먹었다.
그의 피부에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빽빽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제가 얼음으로 감싸놓은 부모님의 영혼에게도 돌진했다. 하지만 한제는 얼음에 달려드는 영혼들에게 몸으로 저항했다.
곧 한제의 왼손이 조금씩 갉아 먹혔고 그 뒤에는 두 다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제는 악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등화원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눈빛에 등화원의 마음속에 피어올랐던 서늘한 느낌은 더욱 짙어졌다.
그때 한제를 바라보던 거인의 눈에 기이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는 사실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속으로 소리쳤다.
‘사악한 기운! 이건 사악한 기운이다.’
한제의 몸속을 갉아먹고 있는 3만 개의 영혼 때문에 한제의 몸은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등화원은 잔혹한 웃음을 띤 채 중얼거렸다.
“력아, 이 할아비가 네 복수를 했다. 보고 있느냐? 이게 끝이 아니다. 저 녀석의 몸이 다 먹히고 나면 난 저 녀석의 영혼을 뽑아내.”
한제가 비참하게 웃었다. 육체의 고통은 더 이상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지막 힘까지 끌어모아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버지 어머니의 영혼을 감싸놓은 얼음을 보호했다.
인력술을 이용해 그 얼음을 자신의 가슴팍에 품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죽더라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할 생각이었다.
그는 결명곡에서 나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숨기로 결심했다면 잠시 동안은 도망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놓을 수는 없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등화원을 마주하면 부모님의 영혼을 되찾을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도망쳐 버린다면 그럴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의 몸은 피의 장막에 갇혀 있었다. 순간이동을 시도해보기도 했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순간, 한제의 마음에 들어찬 것은 한(恨) 뿐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나지는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저에게는 그럴 자격도 없으니까요. 만약 제가 없었다면 부모님께서도 이런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한제는 피눈물을 흘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쾅!”
바로 그때, 어느 노인의 탄식이 한제의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더니 한제의 몸이 폭발했다. 3만 개의 영혼은 모두 앞을 다투어 한제의 체내에서 탈출했고 그 뒤를 이어 시커먼 빛이 한제 부모님의 영혼을 끌어안았다. 이 시커먼 빛은 피의 장막 밖으로 튀어나가 역외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들어갔다.
거인과 임학의 표정은 시커먼 빛이 나타난 순간 크게 변했다. 임학이 중얼거렸다.
“그래.”
그리고 곧장 입을 다문 그는 두 말 않고 몸을 훌쩍 날려 역외 공간으로 통하는 통로로 향했다. 하지만 두 마리의 뱀으로 이루어진 원에 닿은 그 순간, 그는 그대로 튕겨 나오고 말았다.
★ ★ ★
거인은 탐욕의 빛이 어린 두 눈으로 미친 듯이 웃었다.
“좋아, 좋아. 이 엄청난 공로는 이 몸의 것이다. 이번 수확은 아주 훌륭하군. 사악한 기운도 보고 그 구슬도 보았으니. 임학, 감히 나와 겨룰 생각인가?”
말을 마친 거인은 단번에 구름을 뚫고 나왔다. 수백 장에 이르는 거구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풍겼다.
그의 몸은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급속도로 줄어들더니 결국에는 보통 사람과 비슷한 크기에 이르렀다. 그의 미간에는 망치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임학이 소리쳤다.
줄어든 거인은 매섭게 임학을 바라보다가 단숨에 역외 전장으로 향하는 통로의 입구에 들어가더니 오른손을 흔들었다. 통로는 순간 다시 두 마리의 뱀으로 나뉘며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하늘은 즉각 다시 밝아졌고 시커먼 구름도 흩어져 사라졌다.
임학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등화원을 서늘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피식 웃더니, 몸을 훌쩍 날려 하늘 끄트머리로 자취를 감추었다.
조나라에서 진행된 이번 역외 전장 참여 자격 경쟁은 이렇게 취소되어 버렸다. 영패가 있든 없든 역외 전장에 참여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통로를 여는 역할을 맡은 사자마저 자리를 떠버렸으니 더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조나라 수련자들은 그런 아쉬움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축기 수준으로 원영기 고수와 맞붙은 그 청년에게서 받은 깊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편 임학은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버젓이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 그 앞에서 수련 연맹이 찾아내라 명령했던 그 물건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것은 다른 사람의 손에 들린 채 사라져 버렸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더구나 그 구슬이 줄곧 조나라에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분노는 더욱 깊어졌다. 조나라의 사신인 자신이 두 눈 버젓이 뜨고도 이 기회를 놓치다니,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었다.
한편 등화원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한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성은 분명 죽었을 거라 말했지만 어째서인지 심장은 자꾸만 불안하게 뛰었다.
결명곡 밖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천천히 흩어졌다. 한제에 관한 이야기도 그들을 따라 천천히 퍼져 나갔다. 곧 조나라의 모든 수련자들은 이한제라는 이름을 알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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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천은 제자들을 데리고 현도종으로 돌아왔다. 그의 뒤에는 류미가 서 있었다. 그녀는 방금 일어났던 그 모든 상황을 목격하고 점점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대산파에서 본 순간부터 한제에게 호감이 생겼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 호감은 옅어지기는커녕 더욱 깊어져 불쑥불쑥 떠올랐다.
이산과 이현 역시 그날 결명곡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알게 됐다. 그러자 한제를 온 가족을 죽게 만든 원흉이라고 여겼던 원망도 점차 흩어져 사라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이 한제에게도 미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복수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등화원을 죽이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