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35
말을 마친 한제의 육신은 앞으로 달려 나가며 오른손으로 전방을 후려쳤다.
순간 온 허공이 진동하더니 하얀 기운이 줄기줄기 나타나 미친 듯이 응집돼 눈 깜짝할 사이 주먹만 한 공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공은 곧장 흑발의 중년 사내를 향해 돌진했다.
“세상의 힘을 모으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니, 넌 대체 누구냐?”
흑발의 사내는 신중한 얼굴로 손에 쥔 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사방의 허공에 셀 수 없이 많은 붉은 빛이 나타나 한데 모여 순식간에 초승달과 같은 호를 이루더니 곧장 흰색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얀 빛의 공과 초승달은 서로 충돌하자 아무런 기척도 없이 곧장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충돌의 중심 부분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균열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으로 확산됐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수련자들은 그 균열에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한제 육신의 눈동자는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살짝 졸아들었다. 허나 그는 몸을 앞으로 날렸고 이 세상과 하나로 녹아든 그는 사라지지 않고 그 상태로 결인을 그린 후 손을 위로 뻗으며 외쳤다.
“분선화(焚仙火)!”
그 순간, 새빨간 화염이 나타나 하늘을 뒤덮었다. 엄청난 기운이 깃든 그 화염은 순식간에 세상의 절반을 차지했고 수련자들은 혹시라도 그 영향을 받을까 두려워 분분히 뒤로 물러났다.
너무도 짙은 화염에 세상마저 녹아버릴 것 같았고 이따금 튀는 작은 불똥에도 수련자들은 기겁을 했다.
엄청난 원력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와중에 한제의 모습은 불빛 속에서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했지만 감히 그런 한제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제의 육신은 들어 올렸던 오른손을 내리며 낮게 외쳤다.
“화염!”
순간, 그 주위가 무너져 내렸고 넓게 퍼져나간 화염은 더욱 짙어지면서 폭발했다.
콰르릉!
그 화염은 주위를 포위하며 중앙의 흑발 사내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러는 동안 화염은 셀 수 없이 많은 염룡(炎龍)이 되어 열기를 내뿜었다.
흑발 사내는 신중한 얼굴로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다가 오른손에 쥔 창을 놓았다.
창은 곧장 무너져 내려 가루가 되더니 사방을 맴돌았다. 그와 동시에 사내는 오른손 검지로 오른쪽 눈을 눌렀다. 그러자 눈에서 번득이던 붉은 빛이 순식간에 짙어졌다.
“오늘날의 연기사 중 이 정도 수준에 이른 이가 있을 줄이야! 극의 경계를 발휘할 만한 상대로다!”
사내의 오른쪽 눈은 붉은 빛을 번득이면서 한 줄기 붉은 번개를 발산했다. 그 번개는 서늘한 한기를 품은 채 미친 듯이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그 한기와 엄청난 속도에 붉은 화염은 거의 꺼질 듯했고 붉은 번개는 긴 잔영을 남기며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의 육신은 신중하게 다시 한 번 결인을 그린 후 손을 앞으로 뻗었다.
“불꽃!”
펑! 펑!
폭발음이 연이어 울려 퍼지면서 흑발 사내를 포위했던 화염이 곧장 솟구쳐 오르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 거대한 불의 공을 이루었다. 흑발 사내는 그 공 안에 갇힌 꼴이었다.
붉은 공은 모습을 갖추자마자 곧장 줄어들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심지어 허공까지 불살랐다. 세상 그 무엇도 그 화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허나 그렇지 않았다. 극의 경계가 불의 공 밖으로 튀어나와 한제를 향해 돌진한 것이다.
순간, 그 불의 공이 수축함과 동시에 붉은 번개 형태를 갖춘 극의 경계가 한제의 육신에 떨어졌다.
파멸적인 힘이 터져 나왔다. 한제는 노인의 원신이 그 극의 경계가 들이닥친 순간 무너져 내렸다가 순간적으로 다시 응집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응집된 원신은 또 한 번 무너졌다.
짧은 순간에 노인의 원신은 셀 수도 없이 많이 무너졌다가 응집되기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조금씩 약해졌다.
두세 번 호흡할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제에게는 그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한제는 원신 안의 원력을 가동했고 노인의 원신이 다시 한 번 응집한 그 때 행동에 나섰다.
노인의 원신을 돕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대로 방치해뒀다가 노인의 원신이 정말로 무너져 내리거나 혹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도망쳐 버려서는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한제가 맞닥뜨린 극의 경계는 봉인됐다가 막 모습을 드러낸 때로 매우 허약해진 상태였다. 말하자면 뿌리 없는 나무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육신을 내리친 극의 경계는 전혀 달랐다. 노인의 원신 없이 자신이 견뎌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한제는 극의 경계의 엄청난 공격력을 느낄 수 있었다. 원신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는 사이 빠르게 내보낸 한제의 원력은 얇은 종잇장 같았고 극의 경계는 예리한 검처럼 그 원력을 꿰뚫었다.
목적
노인의 원신은 한제의 도움 아래 안정을 되찾고 곧장 공격에 나섰다.
예리한 검과 같은 극의 경계가 한제의 원신을 꿰뚫으려는 찰나, 노인은 그것을 억제하여 그대로 삼켜버린 후 원력으로 끊임없이 봉인했다.
한제에게는 억겁과도 같은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찰나에 가까운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주위 수련자들 중 누구도 지금 한제의 체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위험했다! 과연 청수 선군이로군. 오랜 시간 봉인되어 있는 동안 이런 실력을 기르고 있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 하지만 극의 경계까지 염두에 두었던 보람이 있다. 다만 직접 나서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구나.”
한제의 심신 안에서 노인의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때, 수축하고 있던 화염 공은 작게 줄어들었다가 이내 무너져 내렸다. 이에 그 안에 품고 있던 힘이 퍼져 나가며 세상의 모든 것을 뒤덮였다.
그 빛은 멀리 퍼져나갔고 한제는 그 빛 안에서 충만한 위엄을 드러냈다.
신공호는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이것이 주인님의 진정한 실력인가? 내 추측이 맞았어!’
한편, 전공열 또한 화염 속의 한제를 바라보며 당시 신공호와 같은 결단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선배님의 수준은 감히 추측할 수도 없겠구나. 겉으로 보이는 수준은 양의에 불과했지만 지금 저 위력은…”
반면 당언풍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제 그는 허목이라는 자의 힘에 깊은 두려움과 공포마저 느꼈다.
“저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당언풍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신공호는 당언풍을 힐긋 바라보더니 냉소했다.
“당 도우, 벌써 잊었나? 당시 뇌의 선계에 들어서기 전 자네가 나를 비웃지 않았나? 자네가 보고 있는 저분이 바로 이 신공호가 모시고자 했던 그 주인님이네!”
당언풍은 멍한 얼굴로 화염 속 한제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사방에 웅웅 울렸다.
“극의 경계로도 죽지 않다니, 강한 녀석이로구나!”
동시에 불빛 속에서 조각상 하나가 나타났다. 이내 쩌적 갈라진 그 조각상 안에서는 한 청년이 걸어 나왔다. 상당히 준수한 용모의 청년에게서는 짙은 사기(邪氣)가 느껴졌다.
백발의 괴인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조각상으로 변했다가 그 안에서 다시 나타났는데 처음 백발이던 머리가 흑발로 변했고 그때마다 점점 더 젊어졌다.
처음에는 노인이었다가 중년으로 변하더니 이제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이 기이한 광경에 수련자들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한제 안에 깃든 노인의 원신도 한층 신중해졌다.
조각상에서 빠져나온 청년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부서진 조각상의 파편들은 순식간에 다시 긴 창이 됐다.
창을 쥔 청년은 음침한 미소를 짓더니 몸을 훌쩍 날려 세상에 녹아든 듯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청년은 멀리 떨어져 있던 한 음의의 수련자 뒤에 나타났다.
“헛!”
그 음의의 수련자를 비롯해 주위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순간이동으로 다급하게 도망쳤다.
이를 본 청년은 더욱 음산하게 웃으며 창을 내던졌다.
쐐액!
창이 허공을 가르며 파문이 생겨나, 순간이동으로 도망쳤던 수련자를 가격했다. 그 순간, 그 수련자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펑!
기묘한 소리와 함께 그 수련자는 피 안개가 됐고 흑발 청년은 숨을 들이마셔 그 가죽과 피, 뼈까지 남김없이 흡입해버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청년은 다시 몸을 훌쩍 날리더니 수많은 수련자들을 관통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날 때마다 주위의 수련자들은 순식간에 숨이 끊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한제에 깃든 노인은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하늘을 향해 뻗었다.
“응결!”
순간, 보라색 빛이 허공에 줄기줄기 나타나 한제의 오른손에 응집됐다. 순식간에 짙은 보라색으로 번득이면서 흘러넘칠 듯 짙은 안개를 내뿜는 빛의 공이 생겨났다.
“해산!”
거친 목소리가 한제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보라색 빛의 공은 경련하더니 고리 모양의 파문이 되어 성난 파도처럼 청년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파문에 담긴 엄청난 힘에 주위의 수련자들은 미친 듯이 뒤로 밀려났다. 신공호와 전공열 등의 양의의 수준 수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삽시간에 반경 10리가 텅 비었고 그 안에는 한제와 청년뿐이었다.
흑발 청년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핥았다. 스무 명 정도의 수련자들을 흡수했으나 아직 부족했는지, 그는 한제에게 덤벼드는 대신 10리 밖에 있는 수련자들에게 돌진했다.
“빌어먹을!”
한제는 체내의 노인이 욕설을 지껄이는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뒤이어 몸을 훌쩍 날린 노인이 외쳤다.
“그렇게 고고하던 청수 선군이 자기 수준을 회복하겠다고 후배 수련자들을 흡수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그 말에 청년은 잠시 멈칫했으나, 몸을 돌려 살기를 번득이며 말했다.
“난 청수가 아니다!”
“헛소리! 넌 청수다!”
한제의 육신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눈에 번득이던 살기가 한층 더 짙어지더니 청년은 다시 수련자들에게로 달려들었다.
“청수국의 황태자가 자신의 이름마저 잊다니, 슬픈 일이로구나!”
한제의 몸을 통제하고 있는 노인이 길게 탄식했다. 하지만 청년은 그 말에 아랑곳 않고 허공에서 사라졌다가 먼 곳에서 나타나 수련자들을 계속해서 흡수해댔다.
한제의 육신 역시 세상에 녹아들어 사라졌다가 어느 문정기 수련자 곁에 나타났다. 한제는 자신의 육신 안에서 노인의 원신이 잔뜩 화가 난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삼키려거든 나를 삼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