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37
“산수도!”
이 장면을 지켜보던 청년은 허나 이내 냉소했다.
“하! 베껴낸 가짜에 불과하구나!”
그러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려 허공을 후려쳤다. 순간, 뭔가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세상의 산과 강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산수도에서 튕겨 나온 한제는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그 그림을 나는 1천 년 동안 연구했다. 진짜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제 겨우 상선(上仙) 등급에 불과한 너는 이 몸에 대적할 수 없어!”
청년은 냉소하며 다시 한제를 추격했다. 아니, 추격하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그는 우뚝 멈춰 서늘한 눈빛으로 발아래의 대지를 바라보았다.
이 조각의 대륙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한곳에서 시작된 진동이 아니라 온 대륙 전체에서 진행되는 것이었다. 이 격렬한 떨림에 대륙 위의 많은 산들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손이 대지를 휩쓸며 모든 굴곡을 평평하게 닦아놓으려 하는 듯한 기세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대륙은 순식간에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더니 엄청난 속도로 흑발 청년에 바짝 가까워졌고 청년은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한편, 법보를 거둔 한제는 재빨리 달아났다. 그는 대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끊임없이 후퇴하며 세상에 녹아드는 술법을 시도해보았다. 한데 그때…
“캬오오! 캬아!”
돌연 뇌수의 포효가 여러 차례 들려왔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였다. 또한 허공으로 떠오른 조각에 연결된 사슬도 흔들렸는데 각 사슬 위에는 뇌수가 한 마리씩 끊임없이 포효하면서 사슬을 쥐고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이 대륙은 그 뇌수들의 힘을 이용해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때 진동은 한제와 짙은 사기의 청년이 자리한 조각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 뇌의 선계에 존재하는 모든 조각 중 4할 정도에 해당하는 49개의 조각이 동시에 진동하면서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한제와 청년이 있는 중심에는 매화 형태의, 크고 아름다운 진이 있었다.
49개의 조각들은 모두 사슬로 연결되어 있었고 모든 조각은 뇌수들의 힘에 의해 진동했고 가운데 조각 주위의 48개 조각들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회전 속도가 느렸지만 점차 빨라져갔다. 그리고 이에 따라 거대한 회오리가 형성됐다.
각 조각의 산봉우리는 모두 무너져 내렸고 이 붕괴에 의해 격렬한 진동이 온 뇌의 선계에 연쇄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49개 조각의 회전으로 형성된 거대한 회오리로 인해 생겨난 깊은 구멍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흡입력이 발산됐다. 그 흡입력과 진동에 뇌의 선계 전체가 뒤흔들렸고 붕괴가 시작됐다.
이는 한 조각의 붕괴나 어느 허공의 소멸로 끝날 수준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 전의 첫 번째 붕괴 이후 뇌의 선계는 진정한 두 번째 붕괴를 맞이한 것이다.
하늘에는 끔찍한 균열이 하나둘 나타났고 그 안에서 한기 어린 바람이 쌩쌩 불어왔다. 이 균열들은 쩍쩍 벌어지며 점점 확대되었는데 마치 종말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아직 뇌의 선계에 남아 있던 수련자들은 물론이고 짙은 사기를 풍기던 청년도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자가 이 정도로 엄청난 일을 벌일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뇌의 선계의 붕괴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을 이용해 진을 만들다니⋯⋯ 절대 쉽게 만들어진 진은 아닐 터! 설마 그자가 정말로 뇌의 선계를 법보로 제련한 것은 아니겠지?’
청년은 찬 숨을 들이마시더니 거칠게 내뱉었다.
“미친 놈이로군!”
한편, 한제는 균열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조각들이 서로 맹렬하게 부딪히고 있는 것 같았다.
한제는 뒤로 물러나던 속도를 늦추었다. 사방에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 균열들과 그 안에서 풍기는 파멸적인 기운에 머리가 저릿해질 지경이었다.
“크하하하!”
그때, 고고하고 오만한 웃음소리가 왕왕 울리는가 싶더니 하늘에서 정체불명의 노인의 허상이 나타났다. 어째서인지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난 지금껏 뇌의 선계에 수백 차례 들어왔고 수만 년에 걸쳐 계획했다. 감히 그 누가 이 염뇌자와 같은 패기와 끈기로 뇌의 선계를 제련하려 했겠느냐? 청수 선군이라고 해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지! 뇌의 선계의 절반을 법보로 만든 내게 누가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는가!”
노인의 허상은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공간의 벽을 열었으니 이제 우리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나천석 없이도 자유롭게 연맹 성역으로 넘어갈 수 있을 터. 중현자 당시 내가 쫓겨날 때 분명히 말했지. 언젠가 나천성역의 수련자들과 함께 연맹 성역을 제패하고 말겠다고!”
그러는 와중에도 붕괴는 계속됐고 점점 격렬해졌다. 균열은 점점 늘어났고 예리한 검으로 갈린 듯 끝도 없이 빠르게 뻗어 나갔다. 가까이 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균열에 삼켜질 터였다.
허공에 떠 있던 염뇌자는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며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순간 그의 아래에 있던 조각도 회전하기 시작했다.
“오늘, 나의 뇌선진(雷仙陣)은 완성될 것이다! 크하하하!”
염뇌자는 크게 웃으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잔뜩 끌어올린 원력을 발아래 대지에 흘려 넣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원력이 흘러들었다.
한제는 심신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고는 진중한 얼굴로 염뇌자를 응시했다.
그때, 짙은 사기를 풍기는 청년이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선계를 제련해 법보로 만들다니, 재미있군. 허나 법령(法靈) 없이는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그 말에 염뇌자는 껄껄 웃었다.
“누가 법령이 없다 하더냐! 잘 보거라!”
말을 마친 염뇌자가 입을 쩍 벌리자 한 줄기 회색 빛이 나타났다. 그 빛에는 손바닥만 한 오래된 거울이 들어 있었다. 그 거울은 곧장 부풀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사람 허리께에 오는 타원형 거울이 됐다. 그리고 약간 왜곡된 그 거울 면으로부터 원신 하나가 튀어나왔고 짙은 원력을 뿜어냈다.
‘음의 수준 수련자의 원신이다!’
한제의 눈빛이 굳어졌다.
“4품 상선(上仙)이군.”
짙은 사기를 풍기는 청년은 그 원신을 힐긋 보며 말했다. 허나 그는 공격에 나서기는커녕 염뇌자라는 노인이 어떻게 뇌의 선계를 제련했는지 지켜보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의 수준으로는 한 번 본 것만으로 하늘에 떠 있는 염뇌자가 본체가 아닌 허상 형태의 분신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한편, 음의 수련자의 원신이 멍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염뇌자가 낮게 외쳤다.
“가라, 마흔아홉 번째 영혼!”
그 말이 떨어지자 그 원신은 폭발적으로 밝은 눈빛을 번득이더니 염뇌자를 향해 포권을 하고는 순식간에 대지 안으로 녹아들었다. 이어서 눈 깜짝할 사이 원력이 되어 사라졌다.
그 원신은 순식간에 49번째 조각의 가장자리에 이른 뒤 그 조각 안으로 원신을 전부 녹여낸 상태였다.
그러자 49번째 조각은 마치 살아난 듯 영혼으로 가득 차게 됐다.
허나 여기서 끝은 아니었다. 오래된 거울 안에서 다시 파문이 일고 원신들이 튀어나오더니 염뇌자의 명에 따라 각각의 조각으로 날아가 사라졌다.
잠시 후,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는 49개의 조각 중 28곳이 법령, 즉 법보의 영혼을 갖게 됐다.
“어서 나오너라!”
염뇌자의 목소리에 오래된 거울 면의 왜곡이 더욱 격렬해지더니 또 하나의 원신이 튀어나왔다. 이번 원신은 나타나자마자 원력을 발산하는 것으로 보아 이전의 원신들보다 훨씬 강력해 보였다. 양의 수준 수련자의 원신이었다.
“9품 상선이라… 나쁘지 않군.”
흑발 청년은 여전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후, 좀 전의 원신과 비슷한 수준의 원신 13개가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고 곧장 대지 안으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49개의 조각으로 구성된 진 중 42개의 조각은 좀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 조각들은 영혼으로 가득 찼고 진의 위력은 끊임없이 상승했다.
선군(仙君) 청수
“나타나라!”
염뇌자의 명이 떨어지자 오래된 거울이 진동했지만 이번에는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하나의 원신이 나타났다. 이 원신은 매우 오래돼 보였고 무척 수척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힘은 이전에 보았던 42개의 원신을 월등히 능가한 듯, 엄청난 원력을 미친 듯이 사방으로 퍼뜨렸다.
“저건⋯⋯?”
한제의 두 눈동자가 맹렬히 수축했다. 훅 끼쳐오는 엄청난 원력에 두려울 정도였다. 환가의 선조와 비교해도 우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의 원력이었다.
‘규열기 수준 수련자의 원신인 모양이군!’
“3품 천선(天仙)이라!”
그때까지도 흑발의 청년은 눈을 번득이며 입술을 핥았다.
방금 나타난 원신은 하늘을 바라보며 점차 눈빛이 아련하게 변해갔다. 하지만 염뇌자의 호통에 부르르 경련하더니 두려운 눈빛으로 대지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순간, 뇌선진 중 일곱 번째 조각에서 돌연 흘러넘칠 듯한 위압감이 발산됐고 진 전체의 위력이 또 한 번 증폭됐다.
허나 아직도 끝이 아니었다. 오래된 거울에서 파문이 일면서 한 쌍의 커다란 손이 거울을 깨뜨릴 듯 그 안에서 쑥 빠져나왔고 이어서 또 하나의 원신이 걸어 나왔다.
짙은 살기(煞氣)가 어린 한 중년 사내의 그 원신은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그러자 그 원신에서는 순간 짙은 살기(煞氣)가 퍼져나가 실체화되더니 붉은 폭풍이 되었다.
한제는 움찔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는 그 원신의 수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직감적으로 그 원신이 혈조보다는 강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9품 천선이로군.”
청년의 눈빛은 탐욕으로 번득였지만 그 원신을 차지하려 나설 마음은 없는 듯했다.
그 중년 사내의 원신을 바라보던 염뇌자의 눈에 아쉬운 빛이 어렸다.
“나와 네 번째로 연이 닿은 자였는데 안타깝군. 여섯 번째 영혼, 자리로!”
짙은 살기(煞氣)를 풍기던 중년의 원신은 맹렬히 고개를 돌려 염뇌자를 바라보다가 잠시 침묵하더니 몸을 날려 대지에 녹아들었다. 그 순간, 여섯 번째 조각에서는 짙은 살기가 폭발할 듯 터져 나오며 뇌선진의 위력은 또 다시 증폭했다.
살기의 여파가 흩어지기도 전에 오래된 거울에서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줄기 균열이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거울에서 파문이 일더니 한 노인의 원신이 빠져나왔다.
그 노인의 원신이 나타나자 무너져 내리고 있던 뇌의 선계가 순간 멈춰버렸다. 노인의 원신에서는 원력이 발산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에 한제는 또 다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2품 선왕(仙王)!”
흑발 청년의 눈이 번쩍 빛났다.
지금까지의 원신들과 달리 노인의 원신은 또렷한 눈빛으로 세상을 한 번 둘러보다가 염뇌자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약속을 잊지 말게!”
그 한 마디를 남긴 노인의 원신이 대지 안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동시에 다섯 번째 조각에서는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번에도 쩌적 소리가 울리더니 거울의 균열이 더욱 깊고 길어졌다. 그러더니 핏빛을 번득이는 원신이 나타나 깊은 한을 분출했다.
“혈조!”
한제는 경악하며 그 붉은 원신을 응시했다. 허나 혈조의 것이 분명한 그 원신의 두 눈에는 아무런 빛도 어려 있지 않았다.
혈조의 원신은 말없이 대지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흩어지려던 찰나 고개를 번쩍 들더니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네 번째 혼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6품 선왕!”
흑발 청년은 눈빛을 번득이며 음산하게 웃었다.
“재미있군. 선군(仙君)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있지!”
염뇌자가 오만한 목소리로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