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39
“환우(喚雨)!”
그 순간, 반경 1만 척에 수정처럼 반짝이는 핏빛 빗방울들이 나타났다.
청수는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앞을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환우, 빙인(氷印)!”
쩌적!
순식간에 1만 척을 가득 채운 빗방울들이 얼음 결정이 됐고 바깥으로 맹렬히 확장됐다. 눈 깜짝할 사이 서로 응집된 얼음 결정들은 중앙의 염뇌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염뇌자의 주위에서 회전하던 49개의 조각들이 회오리를 형성했고 조각들은 곧장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찾은 고서적의 기록에 따르면 선군이 이성을 잃은 그 순간, 나머지 세 개의 선계에서도 그와 같은 선군이 나타났다. 우의 선계가 있는 수련연맹에서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선군을 도와 풍(風)의 선계와 전(電)의 선계에서 이유를 찾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하지!”
염뇌자 주위의 조각들은 미친 듯이 회전하면서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했고 그 회오리는 바깥으로 확장되며 사방에서 맹렬하게 모여들고 있는 얼음 결정들에 대항했다.
“난 네가 두렵지 않아. 그저 너와 싸우기를 원치 않을 뿐이다. 내가 암암리에 돕지 않았다면 넌 봉인을 풀지도 못했을 거야! 청수, 이제 멈추게!”
염뇌자의 분노 어린 외침에 청수는 살기 어린 눈빛을 가까스로 억누른 뒤 차갑게 내뱉었다.
“네게 극의 경계를 넘겨야 할 이유를 대라!”
염뇌자는 호흡을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선군인 네가 수준을 회복하려면 엄청난 원기가 필요하지. 나천성역의 수련자들을 삼켜대는 것보다는 나와 함께 우(雨)의 선계 아래 있는 연맹 성역으로 가는 편이 나아. 그곳에는 수준 높은 수련자가 많으니 금세 당시의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게야!”
“그 이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청수가 덤덤하게 말했다.
“네가 봉인된 뒤로 엄청난 재난을 맞닥뜨린 모든 선계가 무너졌다. 그 이유를 알고 싶지 않다는 건가? 우의 선계의 수련연맹에는 살아남은 선인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나와 함께 간다면 모든 것을 알게 되겠지.”
잠시 고민에 잠겨 있던 청수가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부족하다!”
“난 젊었을 때 우의 선계의 수련연맹에서 장로를 맡았던 적이 있지. 수련연맹에는 선계가 붕괴한 뒤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문서가 하나 있었지. 원고 시대 선역의 기운이 흐르던 그 문서는 내가 수련연맹을 떠나올 때까지 누구도 열지 못했어. 한데 그 문서에는 선계의 붕괴에 대한 비밀이 담겨 있다는 소문이 있지. 그 모든 것은 분명 당시 네가 겪었던 일과 관계가 있을 거야. 네가 선인들을 죽인 뒤 1백 년도 지나지 않아선계가 무너져 내리다니, 너무나 공교롭지 않은가? 우연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어!”
그 무렵, 청수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청수, 우리는 적이 아니야! 만약 아직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나 역시 이제 전력을 다해 자네와 싸우겠네.”
염뇌자가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자 그의 주위를 맴돌던 조각들이 우뚝 멈추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청수는 냉랭한 눈으로 염뇌자를 바라보았다. 붉은 빛이 번득이는 그의 눈에서는 음산한 살기가 풍겼다.
염뇌자는 심장이 덜컥했다. 사실 그는 이미 지친 상태였다.
‘망할! 일이 이렇게 꼬이는 건가?’
수만 년간 선계의 서적들을 읽고 당시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그는 선계를 제련하고 극의 경계를 얻어 상대를 도우려고 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이 펼쳐지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네 말이 거짓이라면 곧바로 극의 경계를 사용해 네놈을 죽일 것이다!”
청수가 덤덤하게 입을 연 그 순간 그의 눈에서 한 줄기 번개가 튀어나갔고 곧장 염뇌자의 주위를 에워쌌던 얼음 결정들이 사라져 버렸다. 또한 그 번개는 염뇌자의 곁에 있는 조각들 중 하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뒤이어 한 가닥 한 가닥 극의 경계를 품은 붉은 번개들이 청수의 오른쪽 눈에서 튀어나와 49개의 조각으로 각각 스며들었다.
순간 선진(仙陣)은 서늘한 느낌을 풍겼고 이따금 극의 경계의 신통력을 품은 붉은 빛이 번득였다.
“걱정 말게. 결코 거짓이 아니니까.”
염뇌자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결인을 그렸다. 순간 49개의 조각들이 회전했고 허공에 거대한 회오리가 생겨났다. 그 안에는 검은 구멍이 있었다.
“일단 나를 따라 나천성역의 도우들을 만나러 가세. 그리고 연맹 성역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뚫는 거야!”
염뇌자는 말을 마친 뒤 앞서서 그 회오리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청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와 함께 앞으로 나섰다.
그때, 멀리 떨어져 있던 한제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선배님, 선진을 이미 완성시키셨으니 제 뇌수를 돌려주십시오!”
걸음을 우뚝 멈춘 염뇌자는 몸을 돌려 한제를 바라보더니 웃었다.
“며칠 더 써야 한다. 통로를 뚫고 난 뒤 연맹 성역에 도착하면 돌려주마. 넌 나와 연이 닿은 이야. 스스로의 힘으로 뇌의 선계에서 벗어나 1년 안에 내가 준 약속의 증표를 가지고 뇌선전으로 찾아온다면 선물을 주겠다. 그리고 너 역시 연맹 성역으로 데려가 주겠다!”
말을 마친 그는 저물대에서 3촌 정도 되는 자금색의 뿔을 하나 꺼내 한제에게 던지고는 이내 회오리 안으로 발을 들였다.
청수는 회오리로 들어서기 직전에 고개를 돌려 한제를 힐긋 바라보더니 신식을 통해 말을 남긴 뒤 그 회오리 안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회오리는 사라져버렸고 허공에는 이제 한제만이 남았다.
“네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호풍이라는 술법을 익혔다면 나의 스승께 배운 것이겠지. 잘 깨달아보아라. 그것은 스승님이 평생을 들여 깨우치신 여섯 개의 신통술 중 하나이니, 허비하거나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금색 뿔을 쥔 한제의 귓가에 청수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한참 뒤, 한제는 손에 쥔 자금색 뿔을 저물대에 집어넣고는 몸을 훌쩍 날렸다.
뇌의 선계에서는 49개의 조각이 사라졌고 회오리도 사라졌지만 붕괴는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었다.
귀신이 곡을 하는 듯한 소리가 뇌의 선계 안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심신이 뒤흔들렸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한기가 느껴졌다.
세상에 녹아드는 술법을 발휘할 수도 없었기에 한제는 조심스럽게 공간의 균열들을 피하면서 나아갔다.
‘선계의 대문이 닫힌 상황에서 어떻게 나간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극의 경계를 가진 적이 있다는 사실을 청수 선군이 알아챈 것은 아니겠지?’
그 순간, 몸을 훌쩍 날려 공간의 균열을 피하던 한제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신공호가 뇌의 선계에 대해 소개하며 했던 말이었다.
“지금 당장 신공호를 찾아야겠군.”
한제는 두 눈을 감고 원신 속 신공호의 도혼을 느꼈다. 그리고 그 미묘한 감응을 따라 방향을 틀었다.
신공호는 허공 속에서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뇌의 선계의 대문은 파괴된 상태였지만 그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뇌선전이 뇌의 선계 안에 만들어둔 유일한 전송진이었다. 그 진을 통한다면 뇌선전 사자들은 선계의 대문을 통하지 않고도 이 뇌의 선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허나 이 전송진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뇌선전의 사자가 아닌 자 또는 허가 없이 그 전송진을 이용하는 자는 곧 살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뇌의 선계에 뇌선전의 전송진이 배치된 뒤 줄곧 엄격하게 지켜져 온 규칙으로 그저 실수로 전송진에 발을 들인 자라 해도 예외는 없었다. 뇌선전의 위엄은 그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신공호와 뇌선전의 관계는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선계의 대문만을 노렸던 것이다.
하지만 선계의 대문이 사라지고 뇌의 선계가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신공호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뇌선전의 전송진뿐이었다.
“주인님은 어디 계실까?”
신공호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절대 패할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전공열 역시 허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뇌선전의 사자인 그도 당연히 전송진이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 그쪽으로 가는 중이었다.
선계의 대문 앞에서 일어난 전투에 전공열은 심장이 떨렸다. 현재 뇌의 선계는 불안정한 상태였지만 그의 마음은 굳건했다. 신공호와 마찬가지로 전공열은 한제가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신공호가 어디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뇌선전의 전송진으로 향하고 있겠지.”
사실 전공열은 선계의 대문 근처에 이르자마자 그곳에 자신을 제외하고는 뇌선전의 사자가 없음을 파악했다. 아마도 모든 뇌선전 사자들은 이미 전송진으로 향했으리라.
한편, 한제는 신공호의 도혼을 느끼며 그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다만 붕괴가 갈수록 격렬해지면서 허공에는 점점 많은 균열이 나타나는 중이어서 속도를 더 높일 수는 없었다. 웅-웅- 거리는 곡소리와 펑 하고 무언가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한제는 벌써 두 개의 조각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했다.
커다란 파편으로 부서진 조각들은 폭풍에 휩쓸리듯 일부는 공간의 균열에 삼켜졌고 또한 일부는 강력한 충격에 사방으로 퍼져나갔으며, 그중 몇 개의 파편은 곧장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기세는 문정기 수련자가 전력을 다한 공격에 못지않았다.
보통은 그것을 피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공간의 균열로 빠져들 수도 있겠지만 한제에게는 그런 걱정은 없었다.
정신술(定身術)을 비롯한 여러 신통력을 통해 가뿐하게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제는 차분하게 이따금 방향을 틀어 공간의 균열을 피하면서 끊임없이 나아갔다. 허공에 나타나는 공간의 균열은 갈수록 많아져, 결국에는 거의 빽빽하게 사방을 채웠다.
돌격 (1)
한제는 신공호와의 거리가 멀어 자신의 속도로 금방 따라잡을 수는 없음을 알았다. 이에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심한 듯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미간에 얹은 뒤 입을 쩍 벌려 모래알 하나를 토해냈다. 모습을 드러낸 모래알은 눈 깜짝할 사이 1천 척 크기로 불어났다.
“천벌 속에서 끊임없이 제련된 이것은 청수 선군의 일격에도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 그러니 저 균열들에도 파괴되지 않겠지.”
한제가 손을 앞으로 뻗자 거대해진 모래알이 곧장 앞으로 날아갔다. 모래알은 순식간에 수많은 균열들과 충돌했다.
그 순간, 균열 안에서 파멸적인 힘이 발산되어 조각을 뒤덮었다.
하지만 조각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채 그대로 밀고 나갔다. 동시에 균열들은 짓눌리고 곧이어 맞물렸다.
한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날려 곧장 모래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결인을 그려 체내의 원력을 가동시킨 뒤 조각에 불어넣었다. 조각은 눈부신 빛을 번득이면서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한제는 길이가 1천 척에 이르는 거대한 균열에만 주의를 기울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한제는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한데 그렇게 반 시진을 내달리던 한제의 안색이 순간 급변했다. 저 멀리서 날아가고 있는 한 줄기 어두운 빛을 발견한 것이다. 그 안에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용모는 아름다웠지만 얼굴은 창백했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으로 계속해서 나타나는 공간의 균열을 피했는데 몇 번이나 위험한 순간이 닥쳤다.
그때, 한제가 타고 있는 모래알을 발견한 여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다가오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기다란 균열이 갑자기 그녀의 앞에 나타나 사악한 아가리를 쩍 벌렸다.
그 안쪽에서 불어 닥치는 서늘하고 음산한 바람에 여인의 얼굴은 잿빛으로 물들었다.
한제는 그 모습을 목격했으나, 덤덤한 얼굴로 시선을 거두었다. 모르는 이를 구할 이유가 없었다.
“선배님, 살려주십시오. 저는 전공열과 같은 전가 사람입니다!”
절망감에 빠진 여인은 균열에서 빠져나오려는 듯 몸부림치며 다급하게 외쳤다.
순간, 한제의 미간이 구겨졌다. 당시 전공열의 일행 틈에서 그녀를 본 기억이 있었다.
당시 막 음의에 이르렀던 여인의 현재 수준은 대폭 떨어져 있었고 원력도 거의 끊어질 듯했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거대한 모래알의 방향을 틀어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여인을 삼키려던 균열을 짓누르고는 그녀를 모래알 위에 앉혔다.
여인은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채 감격한 듯 말했다.
“선배님,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여인을 힐긋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선옥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