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40
흠칫 놀란 여인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목숨의 대가는 선옥 1만 개다. 거기에 1만 개를 더 내놓는다면 한 시진 동안 이 위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겠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거대한 조각은 빠르게 나아갔다.
여인의 눈에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경멸의 빛이 스쳐갔다. 전공열이 선배라 칭한 상대가 이런 사람일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
만약 백발 괴인과 상대하던 모습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시정잡배처럼 선옥을 요구하는 자가 수준 높은 수련자일 거라고는 믿지 않았을 터였다.
여인은 저물대를 꺼내 한제에게 건넸다.
“선옥 5만 개가 들어 있습니다. 잘 세어 보십시오!”
한제는 저물대를 받아들고 신식으로 훑었다. 여인의 말대로 그 안에 5만 개의 선옥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저물대를 품에 넣은 뒤 눈을 감고 좌선했다.
한제가 정말로 그 수를 세어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여인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 한제로부터 좀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어디 계세요.”
한숨을 내쉬던 여인은 좀 전까지만 해도 경황이 없어 눈치채지 못했던 이 조각의 빠른 속도에 놀라며 찬 숨을 들이마셨다. 게다가 이 조각에 부딪힌 거의 모든 균열이 사라졌다.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얼마나 강하든 이 조각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이건 대체 무슨 법보지? 굉장하군.’
한데 그때, 그녀의 눈빛이 돌연 굳어졌다. 멀리 떨어진 우측 전방에 나타난 세 개의 빛줄기 때문이었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는 세 개의 빛줄기에는 두 사내와 한 여인이 있었는데 세 사람 모두 표정이 어두웠다.
“서자봉!”
조각 위에서 여인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세 사람은 그녀를 발견하고 화색이 돌며 조금의 망설임도 균열을 피해 다가왔다.
허나 한제는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았고 세 사람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전운, 기다려!”
세 사람 중 서자봉이라 불린 여인이 초조한 얼굴로 외쳤다.
조각 위의 여인, 전운은 한제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잠시만 멈춰주십시오. 제 도우들이 오고 있습니다.”
허나 한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에 전운은 발을 구르며 저물대에서 붉은 실 한 가닥을 꺼냈다. 그 실은 부르르 떨며 순식간에 길게 늘어져 세 사람에게로 향했다.
붉은 실을 움켜진 세 사람은 결국 조각 위로 올라왔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분은 누구지?”
서자봉의 곁에 있던 한 사내가 한제를 발견하고는 전운에게 물었다.
한데 전운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서자봉의 표정이 급변했고 그녀는 얼른 앞으로 몇 발짝 나서 포권을 하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후배 서자봉, 선배님을 뵈옵니다! 두 차례나 목숨을 구해주신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기까지 말을 잇던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한제는 여인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전운보다도 훨씬 아름다웠다. 한제는 선계의 대문 밖에서 염뇌자에 의해 육체를 조종당했을 때 그가 허공으로 걷어찬 사람 중 그녀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한제는 일이 성가시게 됐음을 느꼈다. 일찍이 이럴 줄 알았다면 전운이라는 여인도 구하지 않았을 터였다.
“선옥이 있다면 내놓아라.”
서자봉이 흠칫 놀라자 곁에 있던 전운이 얼른 입을 열었다.
“목숨을 구해주신 대가로 선옥 1만 개를 드려야 해. 거기에 1만 개를 더 드리면 이곳에서 한 시진을 머물 수 있지.”
그러자 서자봉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드려야지요!”
그녀와 곁에 있던 두 사내는 곧장 선옥을 꺼내 하나의 저물대에 담더니 한제에게 공손히 건넸다.
한제는 그것을 받아 챙겨 넣은 뒤 눈을 감고는 더 이상 그들에 대해서는 아예 신경을 꺼버렸다.
전운과 세 사람은 한쪽에 모여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조각은 엄청난 속도로 점차 뇌의 선계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는데 찡그려진 한제의 미간은 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동하는 동안 몇몇 수련자들을 마주쳤는데 홀로 다니는 이도 있었고 몇 명이 모여 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 거대한 조각을 보고 목숨을 구할 지푸라기를 본 것처럼 그 위로 오르고자 했다. 개중에는 앞서 오른 네 사람과 아는 사이인 자들도 있었다.
조각 위의 수련자는 갈수록 많아져 어느덧 스무 명에 달했지만 한제가 그에 대해 걱정하거나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올라올 때마다 전운이 먼저 나서서 상납해야 할 선옥에 대해 설명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한제의 품에는 이미 여러 개의 저물대가 있었고 그 안에는 엄청난 양의 선옥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익숙한 이들끼리 따로 떨어져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중 이미 한제를 본 적이 있던 자들은 단박에 그의 정체를 알아봤기에 이제 마음을 푹 놓았다. 한제 곁에 있는 한 절대 위험하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조각 위의 수련자는 50명을 넘게 됐다.
한제는 자신의 뒤로 모여 앉은 수련자들을 힐끗 보고는 미간을 구겼다. 그의 시선은 그 수련자들을 지나쳐 뒤쪽의 허공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는 수십 갈래의 빛들이 끈질기게 따라오고 있었다.
그 빛줄기 속의 수련자들은 조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조각 위에 오른 수련자 중 누구와도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결국 그저 자신의 힘으로만 조각을 최대한 따라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조각을 뒤따르는 한 그나마 안전한 편이었다. 조각이 지나간 자리의 균열은 모두 힘을 잃고 맞물렸기 때문이다.
조각의 뒤로는 이제 긴 줄이 생겨났다. 그들이 보기에는 조각에 오르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이었다.
그중에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조각에 오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수련자들도 있었으나, 그들도 조각에 오른 뒤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선옥을 지불했다. 이는 한제가 선계의 대문 앞에서 보인 모습과 그로 인한 명망 때문으로 양의의 수련자들조차 그에게는 공손했고 선배라 칭했다.
선옥으로 가득 찬 저물대들을 품에 안은 한제는 여전히 신공호를 찾는 데만 집중했다. 이제 퍽 가까워졌다는게 다행이었다.
한데 그때, 돌연 저 앞에 거대한 조각 하나가 나타났다. 길이가 약 1만 척에 달하는 조각의 가장자리는 허공 속을 날아가는 와중에 균열과 충돌할 때마다 부서져 내렸다.
그 조각의 가장자리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는데 모두 양의의 수련자였다. 그들의 뒤로도 1백 명에 가까운 수련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들이 눈은 탐욕으로 번득였다.
“선계의 조각을 내놔라!”
가장자리의 세 사람 중 금색 옷을 입은 사내가 음산한 목소리로 외쳤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그 세 사람과 그들이 타고 있는 거대한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한제와 같은 생각으로 허공 속을 돌진하고 있는 듯했으나 그들이 타고 있는 조각은 천벌에 의해 제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 충분히 견고하지는 못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이나 부서졌을지, 또 몇 번이나 교체됐을지 알 수가 없었다.
금의(金衣)의 사내는 앞으로 한 발 나서서 균열을 피해가며 1천 척 앞까지 다가왔다. 그 뒤로는 일행 중 한 명이었던 백의(白衣)의 노인이 따라붙었다. 조각 위에서는 남의(藍衣)의 문인이 냉랭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한제는 덤덤하게 오른손을 들어 올려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손등에 새겨진 문양이 일렁이더니 한 줄기 검은 빛이 되어 마수의 뼈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머리에 난 네 개의 날카로운 가시가 서늘하게 빛났고 눈구멍에서는 어스름한 빛이 번득였으며, 온몸에서는 짙은 살기(煞氣)가 흘러넘쳤다.
그 순간, 가장 앞에 서 있던 금의의 사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어떤 술법을 부려보기도 전에 두 다리가 회색 빛으로 뒤덮였고 그 빛이 이내 그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헛!”
사내는 화들짝 놀라며 찬 숨을 들이마시고는 망설임 없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정수리를 두드려 원신을 빼냈다.
“어딜 가려는 겐가?”
한제는 냉소하며 저물대에서 존혼번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존혼번은 검은 안개가되어 상대의 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때, 백의의 노인이 다가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외쳤다.
“선술, 뇌참(雷斬)!”
그러자 그의 앞으로 전광이 미친 듯이 모여들더니 하나의 칼이 됐다. 그 칼은 온 세상을 베어버리려는 듯한 기세로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쐐액!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 칼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기운에 한제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칼날은 눈 깜짝할 사이 코앞으로 닥쳐왔고 바로 그 순간 한제의 미간이 번득이더니 원신이 튀어나와 전광으로 이루어진 칼을 꿀꺽 삼켜버리고는 다시 육신으로 돌아왔다.
한제는 약간 얼굴이 붉어진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멍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노인을 힐끔 쳐다본 후 달려들었다.
백의의 노인은 표정이 급변하더니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때, 저 멀리 조각 위에 서 있던 남의의 문인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앞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한제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그는 가능한 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으나, 먼저 자신을 공격한 사람에게는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한제는 정신술을 발휘했고 그러자 노인은 움직임이 느려지다가 마치 결박된 듯 꼼짝하지 못했다. 몸뿐만 아니라 체내의 원신과 원력까지 그 순간 그대로 멈춰버린 상태였다.
‘헉!’
노인이 기겁하는 사이 한제가 곁을 스쳐가면서 손가락으로 노인의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노인의 육신은 펑 소리와 함께 피 안개가 되어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잔뜩 겁을 먹고 도망치려던 원신도 한제에게 붙잡혔다.
“도우, 멈추게!”
남의의 수련자가 외치며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그가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정수리에서 허상의 검 한 자루가 나타나 번득이더니 마치 순간이동을 한 듯 한제 앞에 나타나 매섭게 찔러 들어왔다.
허나 한제는 여전히 노인의 원신을 움켜쥔 채 고개를 돌려 미간의 세 번째 눈을 번쩍 떴다. 세 번째 눈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터져 나온 붉은 빛은 허상의 검을 뒤덮었다. 그러자 허상의 검은 이내 연기를 피워 올리며 흩어졌다.
돌격 (2)
남의의 문인은 1백 척 앞에 멈춰 서서는 굳은 얼굴로 한제를 응시했다.
“자네의 신통력은 참으로 놀랍군. 이 일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지!”
문인은 눈에 어린 살기를 애써 억누르며 뒤로 물러났다.
한제 또한 냉랭한 눈으로 그를 힐끔 쳐다보고는 존혼번을 거두고 몸을 훌쩍 날려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 조각 위에 있던 수련자들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