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47
타산은 씁쓸한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제가 어렸을 때 선배님들은 항상 우리 선선족은 선인의 선택을 받은, 선인께서 귀애하시는 족속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목숨까지도 선인께 바쳐야 한다고 그게 우리 선선족의 영광이라고요. 그것이 제 마음속 유일한 신념이 됐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선선족 사람들 모두가 그랬을 겁니다.”
독백에 가까운 타산의 말은 이 기이한 공간에서 조용히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점점 자라나면서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사당에 있는 선인의 유언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선인과 관련한 것을 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더구나 선인들을 위해 저희가 지키고 있는 현음정이 분출한 안개 때문에 저희는 죽어나갔습니다. 저는 비통했고 분노했지요. 그리고 세상에 선인이 정말 존재하는지 의심하게 됐고 결국 선인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게 됐지요. 정말 그들이 존재한다면 어째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저희를 유기했단 말입니까?”
한제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선선족이라는 이름에 내심 놀라면서도 속으로는 이 상황의 자초지종을 어느 정도 분석하긴 했다.
‘선선족, 선유족⋯⋯ 선택, 유기⋯⋯.’
“제발 알려주십시오. 세상에 정말 선인이 있습니까? 상선께서는 정말 선인이십니까?”
타산은 절규하듯 물었고 한제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보았다.
“나는… 선인이 아니다.”
한제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타산은 몸을 부르르 떨었고 그의 얼굴에 걸린 씁쓸함은 한층 짙어졌다.
“선계는 아주 오래 전에 사라졌다. 하지만 선인은 어쩌면 아직 존재할지도 모른다.”
한제는 현음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타산은 비참하게 웃으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과연 그랬던 거로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선인은⋯⋯ 애초에 선인은 없었어. 우리 부족이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지켜왔던 것은 다 틀린 거야.”
“이 솥 안에는 뭐가 있지?”
한제는 현음정을 바라보며 물었다.
“모릅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고서에 의하면 당시 소요 선왕이 우리 부족원들을 데리고 여기 지하 마수의 체내로 들어와서는 자신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대대로 이 현음정을 지키고 있으라고 했다더군요.”
타산이 중얼거렸다.
“이곳에서 어떻게 나갈 수 있지?”
한제는 현음정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재차 물었다.
“나갈 수 없습니다. 이곳에 모두 봉인된 거지요. 일찍이 이곳에서 나가 선인을 찾을 방법을 강구해보았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곳의 하늘에는 끝이 있기는 하나 그 밖으로 나갈 수는 없고 벽의 균열 밖에는 끝없는 허공이 펼쳐져 있지요.”
타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쓰게 웃었다.
“당시 선인이 남겼다는 유언은 뭐지?”
한제가 굳은 눈빛으로 물었다.
“그게… 볼 수가 없습니다. 누구도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보지 못했어요. 그것을 받은 이래로 벌써 선조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는데도… 그 안의 내용을 살피는 데 성공한 분은 없었습니다.”
타산은 점차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했다.
한제는 미간을 살짝 구기고 잠시 고민하다가 현음정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솥에 한 손을 얹은 뒤 신식을 다시 펼쳐 그 안에 녹여 넣었다.
그 순간, 신식을 관통하는 듯 날카로운 소리가 다시 느껴졌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소리가 한제의 심신 안에서 왕왕 울렸다.
한제는 전신의 원력을 가동해 원신을 보호하며 그 날카로운 소리에 대항했다. 그 소리는 심신 안에서 갈수록 격렬해졌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 침투력이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 한제는 손을 거두고는 창백해진 얼굴로 물러났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땅이 진동하면서 깊은 발자국이 남게 됐다.
일곱 걸음을 물러나고 나서야 원래의 낯빛을 되찾은 한제는 이를 악물고는 날아올라 솥의 상공에서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솥의 안쪽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만이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볼까?”
한제는 천둥번개의 위엄을 불러일으켜 손바닥에 번개 공을 응집하더니 솥의 입구 안쪽으로 집어 던졌다.
콰르릉!
번개 공이 솥의 입구에 떨어지며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데 그때, 솥에서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가 곧장 응집되더니 번개 공을 그대로 삼키려 했다.
“폭발!”
펑!
한제의 낮은 외침에 번개 공은 그대로 터져나갔고 몰려들었던 검은 연기는 순간 밀려났다. 그 찰나의 순간, 한제는 정신을 집중해 밀려난 검은 연기 사이로 드러난 솥의 바닥을 바라보았다.
‘전송진?’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다시 솟아올라 솥 바닥의 진을 덮어 가리더니 빠른 속도로 모여들어 눈 깜짝할 사이 한 여인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여인은 온몸이 안개로 이루어진 터라 그 상세한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튀어 올랐다. 검은 연기도 함께였다.
동시에 예의 그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번에는 원신만이 아니라 육신에도 위해를 입힐 수 있었다. 너무나 강력한 그 소리는 음파의 폭발을 일으켰고 그것은 실체를 갖춘 존재처럼 곧장 한제를 공격해왔다.
한편, 타산 역시 그 음파의 폭발에 영향을 받아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 무의식적으로 물러났다. 천둥번개의 원신을 가지지 못한 그는 원신까지도 다친 상태였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뒤로 물러났지만 완전히 피해낼 수는 없었고 피를 토하더니 타산을 데리고 출구로 향했다.
솥에서 나타난 여인의 허상이 놀라운 속도로 쫓아왔다. 그러자 날카로운 소리가 다시 울려왔고 한제는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몸을 맹렬히 돌려 원신의 정기 한 움큼을 토해냈다. 그 원신의 정기는 짙은 피 안개가 되어 여인의 허상을 향해 덮쳤다.
“봉인!”
한제가 낮게 외쳤다. 그러자 피 안개가 빛을 번득이며 수많은 금제가 되어 여인의 허상에 달라붙으면서 거대한 봉인을 이루었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손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인과의 채찍이 매섭게 허공을 후려쳤다.
“꺄아아!”
고통에 찬 신음이 여인의 허상에서 터져 나왔다. 허나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던 여인은 곧 다시 달려들었다. 그녀를 이루고 있던 검은 연기는 아홉 갈래로 흩어져 쏘아진 화살처럼 한제에게 돌진했다.
“칫!”
한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곧장 출구로 향했고 타산을 떠민 후 미간을 두드려 세 번째 눈을 떴다. 그러자 붉은 빛이 번득이면서 곧장 출구를 뒤덮었다.
한제를 추격해오던 아홉 갈래의 검은 연기는 붉은 빛에 닿자 빠르게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들었고 하나로 합쳐져 세 번째 눈의 신통력을 무시한 채 출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출구 밖에 있던 노인은 그 검은 연기를 보고 표정이 급변해 한제의 명이 떨어지기도 전에 결인을 그렸다. 그의 미간에서 식물이 번득이면서 문양을 형성해 대문에 찍혔다.
콰르릉!
대문은 굉음을 내며 닫히기 시작했고 한제를 추격해오던 검은 연기 안에서는 여인의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노인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피를 토하며 그대로 고꾸라져버렸다.
대문이 닫히기 직전, 여인이 그 틈으로 빠져나오려는 모습에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저물대에서 붓을 꺼내 단번에 여섯 개의 획으로 이루어진 문양을 그려냈다. 그러자 금빛으로 번득이던 문양은 예리한 검처럼 곧장 대문 안쪽으로 날아들더니 여인의 허상에 찍혔다.
펑!
거대한 소리와 함께 여인의 허상이 부르르 떨렸고 그때 대문이 완전히 닫혔다. 여인의 허상이 낸 날카로운 소리도 대문에 막혀 먹먹해졌다.
일곱 개의 문양
타산은 좀 전의 일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닫힌 대문을 바라보았다.
“저게 뭐지?”
“현음정의 영혼입니다!”
얼굴이 창백해진 선선족의 선조가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답했다. 그의 표정은 무척 심란해 보였다.
“두 사람은 물러나도록.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
말을 마친 한제는 진중한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노인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뒤 타산과 함께 물러났다.
한제는 대문을 주시했다. 그는 노인이 미간의 식물로 문양을 그려내 이 문을 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문양은 분명 그의 영혼과 연결된 문양일 터였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당시 주작성을 떠날 때 선유족으로부터 얻은 수많은 두개골 중 몇 개를 꺼냈다. 모든 두개골에는 복잡한 문양이 있었다.
한제는 두 개골을 자세히 살피다가 오른손을 휘둘러 그것들을 거둔 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 너머로 어렴풋하게 하얀 구름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그곳에는 그 벽이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이 정말 완벽하게 봉인된 곳이라면 내가 어떻게 이곳으로 전송됐단 말인가? 최대한 빨리 여기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데 위험한 만큼 몸을 숨기기에는 좋은 곳이기도 하지.’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저물대에서 뭔가를 하나 더 꺼냈다.
길이가 약 5백 척, 폭은 4백 척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자 강력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것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가시가 달려 있어 강력하고 거칠어 보였고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려올 지경이었다.
바로 세 번째 사신차(射神車)였다.
이것은 한제의 저물대에 있는 최후이자 최강의 사신차였다.
당시 이 사신차의 제작자는 선신(仙神)을 죽이기 위해 이것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제는 이 사신차를 처음 마주했을 때 거의 무너져 내릴 뻔한 경험이 있어 감히 사용하지 못하고 전승법(傳承法)으로 봉인해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사신차의 곁에 서 있으면서도 멀쩡했다. 그가 당시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수련자가 된 것이다.
한제는 잠시 후 눈을 번쩍 떴다. 두 눈에서는 밝은 빛이 번쩍였다.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복잡한 주문을 외웠다. 이어서 결인을 그린 왼손을 오른쪽 손목에 얹자 한 줄기 검은 빛이 번득이며 응집됐다. 그 순간, 한제는 그 검은 빛이 응집된 오른손으로 사신차를 눌렀다.
그 빛은 번득이며 사신차에 녹아 들어갔다. 마치 사신차가 그것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사신차는 전보다 더욱 강한 위압감을 발휘했다. 수많은 가시들 역시 검은 빛을 내뿜으며 서로 연결됐고 하나로 합쳐지면서 더 짙은 빛이 번득이며 온 세상을 다 뒤덮을 듯했다.
그 검은 빛은 융합되어 일곱 개의 검은 문양을 이루었고 각 문양이 검은 빛 안에서 보일 듯 말 듯 어른거렸다.
한제는 당시 사신차의 제작자가 옥패에 남겨놓았던 말을 떠올렸다.
“세 번째 사신차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렬했다. 만약 이것이 전력을 발휘한다면 선신을 죽이는 것쯤은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울 것이다. 다만 이것은 아직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세 개의 재료가 더 필요하다. 이는 현현시(玄玄翅), 명문목(冥文木), 그리고 선접혼(仙蝶魂)이다. 안타깝게도 여태 그 재료들을 찾지 못했으니, 후대의 계승자가 나의 한을 풀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기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세 번째 사신차가 주인을 알아보게 하려면 일곱 갈래의 봉인 문양과 융합시켜 영혼과 연결된 법보로 제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사신차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지 않는다면 문양과 융합시킨다 해도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게 할 수는 없다! 후대의 계승자여, 부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선택하길 바란다.”
한제가 아는 바로는 그 정도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생각한 뒤 제련을 택해야 할 정도라면 영혼과 연결된 법보밖에는 없다.
보통의 법보는 망가지더라도 그 법보의 소유자가 기껏해야 부상을 입는 정도에 불과하다. 원신 속에서 끊임없이 자양되어 온 법보라 해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