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49
혼수는 포효하며 한제를 노려보더니 곧장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 코앞까지 다가온 혼수는 입을 쩍 벌렸다.
허나 한제는 여전히 덤덤하게 바라보고만 있다가 혼수가 다가온 그 순간 가볍게 외쳤다.
“붕괴!”
쾅!
짧지만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혼수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더니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졌다. 하지만 그 조각들은 곧장 응집됐고 혼수는 더욱 분노한 듯 재차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붕괴!”
한제는 덤덤한 목소리로 다시 외쳤다.
콰쾅!
이번에도 굉음과 함께 무너져 와해됐다.
‘일곱 개의 문양을 제련해 영혼과 연결시키면 자연히 혼수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허나 영혼과 연결시키지 않고 그 문양들의 힘을 각각의 붕괴 결인으로 만들면 일곱 번의 공격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것으로 저 혼수를 붕괴시켜 굴복시킬 것이다. 일곱 번의 기회를 다 쓰고도 혼수가 굴복하지 않는다면 그때 영혼과 연결시키면 된다.’
한제의 머릿속에 당시 선옥패에서 봤던 글이 떠올랐다.
“캬오오오!”
두 차례의 붕괴를 겪은 혼수는 더욱 거친 눈으로 미친 듯이 포효했다. 와해된 상태에서 다시 몸을 응집시킨 녀석은 이번에는 여러 개의 분신을 소환해 사방에서 한제를 삼키려 들었다.
한제는 피식 웃었다. 지난 1천 년간의 삶을 통해 그는 어느 정도 잔인한 면이 생겼고 이에 혼수가 좀처럼 복종하지 않으려 든다면 흠씬 혼을 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붕괴! 붕괴! 붕괴!”
세 번의 잇따른 외침에 사방에서 달려들던 혼수는 곧장 무너져 내렸고 뒤로 물러나 응집됐으나 곧장 다시 붕괴가 시작됐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붕괴가 이어졌다.
세 차례의 연속된 붕괴에 혼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느꼈다. 동시에 녀석의 마음속에는 짙은 두려움이 자리 잡게 됐다.
두려움이 생기자 혼수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때, 한제가 더욱 싸늘한 목소리로 덤덤하게 외쳤다.
“붕괴!”
쾅!
방금 막 응집된 혼수의 몸이 다시 무너져 내렸다. 혼수의 마음에 생겨났던 두려움은 이번 붕괴로 인해 미친 듯이 부풀더니 결국 녀석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또 다시 몸을 응집시킨 혼수의 눈에는 이제 짙은 두려움이 가득했다. 감히 반항하지 못하겠다는 듯 녀석은 고개를 숙였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혼수의 머리 위에 올라탄 뒤 손가락 끝을 깨물어 낸 피로 사신차의 문양을 그려 그 머리에 찍고는 하늘로 떠올랐다.
피의 문양이 찍힌 순간, 혼수는 몸을 바르르 떨며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한 덩어리의 안개가 됐고 그 안에는 반짝이는 빛으로 응결된, 고치와도 같은 주먹만 한 공이 하나 들어 있었다.
쩌적!
무언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그 고치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고 마침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고치 안에서는 오색찬란한 나비가 한 마리 나타나 팔랑팔랑 날갯짓을 했고 그 날갯짓에 따라 오색찬란한 가루가 퍼져나갔다.
이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에 한제는 감탄했다.
바로 그때, 제단 안에 있던 현음정의 전송진이 번득였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는 곧장 대문을 관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옷차림에 냉랭한 눈을 가진 사내였다.
“비천한 종놈들이 지금 뭘 하는 거지?”
사내의 눈은 냉랭했지만 밝게 빛났고 얇은 입술은 각박한 인상을 주었다. 새카만 머리카락은 뒤로 흩날리면서 어딘가 사악한 느낌을 풍겼다.
제단의 대문 밖으로 걸어 나온 그는 곧장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의 모습은 실체화된 것이 아니라 허상처럼 흐릿했다.
한제의 곁에는 나비가 된 사신차가 떠 있었다.
1천 척 밖에 있는 선선족 사람들은 경계심 어린 눈으로 중년 사내를 바라보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타산이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면서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외쳤다.
“넌 누구냐!”
청의(靑衣)의 사내는 타산을 힐긋 보더니 그의 뒤에 있는 선선족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결국 한제에 이르렀다.
“넌 이곳 사람이 아닌데 어찌 이곳에 온 거지?”
한제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상대의 수준은 양의의 절정에 이른 상태로 한제보다 조금 더 높았다. 그리고 한제 역시 이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무시당한 것에 분노한 듯, 타산이 다시 한 걸음 나서며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 새겨진 문양들이 번득이면서 주먹에 응집됐다.
“누구냐고 물었다!”
타산이 크게 외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꿇어라!”
청의의 사내는 경멸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타산을 바라보며 손을 뻗어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을 중심으로 형체 없는 파문이 일면서 퍼져나갔다.
“엇!”
중년 사내에게 달려들던 타산은 곧장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몸을 격렬하게 떨었다. 그는 자신의 체내에서 한 줄기 힘이 자신의 움직임을 저지하고 있음을 똑똑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힘은 일종의 본능이나 체내 깊숙이 찍힌 낙인처럼 너무나 강력했다.
타산은 사내로부터 2백 척 이내로는 진입할 수가 없었다. 그는 허공에 뜬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덜덜 떨었고 콩알만 한 땀방울을 비처럼 쏟아냈다.
그는 그 힘이 자신의 몸에 새겨진 문양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문양에서 발산된 힘은 그의 저항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천적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자신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저 사내에게는 공격을 시도할 수조차 없었다. 심지어는 상대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것임을 직감했다.
저항할 수가 없었다. 몸은 바르르 떨렸다. 중년 사내의 시선이 닿았을 때는 심지어 무릎을 꿇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하지만 굽힐 수 없는 자존심에 그는 이를 악물고 온몸의 문양에서 기인하는 굴복의 욕구를 애써 참아냈다.
“크으으!”
포효에 가까운 신음이 타산의 목구멍을 타고 흘렀다. 그의 두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서 있었고 흘러나온 땀에도 핏기가 어려 있었다.
몸부림을 치며 타산은 힘겹게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한 걸음에 그의 몸은 마치 온 세상에 저항하는 것처럼 다시 덜덜 떨려왔다.
허나 발을 딛기도 전에 타산은 두 눈이 어두워졌고 대량의 피를 토해냈다. 그리고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그는 그대로 꿇어앉았다.
두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내렸고 슬픔과 불굴의 의지가 교차된 눈빛이 드러났다. 하지만 결국 다시 일어서지는 못했다.
“비천한 것, 감히 노예의 표식에 저항하려 들다니.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너는 형체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꺼져라!”
중년 사내가 냉소한 순간, 보이지 않는 주먹에 가격당한 듯 타산의 몸에서는 연달아 펑 하는 소리가 났고 그는 그대로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타산은 발버둥을 치며 몸을 일으키더니 불굴의 의지와 살기가 어린 눈으로 찢어져라 외쳤다.
“넌 누구냐!”
타산뿐만 아니라 모든 선선족의 시선이 청의의 사내에게로 향했다. 방금 벌어진 괴이한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선조 노인은 창백한 얼굴로 그 중년 사내를 바라보다가 뭔가를 떠올린 듯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때, 청의의 사내가 고고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선인이다. 아직도 꿇지 않을 테냐!”
선선족의 선조 노인은 비참하게 웃었다. 그는 상대의 말에 어떤 의심도 품지 못했다. 그는 이전의 선조들이 선인을 보았을 당시 느꼈던 감격을 고서에 여러 차례 서술해 놓았던 것을 떠올렸다.
이전까지 그는 선조들이 자발적으로 충성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 선인을 마주한 그는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충성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노인은 비참하게 웃으며 바닥에 꿇어앉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인, 상선을 뵈옵니다.”
그러자 사방의 선선족 구성원들도 덜덜 떨리는 마음을 안고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체내에 존재하는 한 줄기 힘이 중년 사내 앞에 굴복하게 만들었다. 죽더라도 혼백이 흩어져 사라지더라도 상대에게 굴종해야만 했다.
이제 청의의 사내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은 한제와 타산뿐이었다.
나비의 날개
타산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이미 한 번 꿇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는 꿇을 수가 없었다. 온몸의 혈기가 끓어올랐고 체내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끊임없이 충격을 가해오고 있었지만 그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펑! 펑!
무언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대량의 피 안개가 타산의 체내로부터 분출됐다. 그는 일전에 한제와 싸우면서 이미 내상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버티기가 더욱 힘들었고 두 눈도 전보다 훨씬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여전히 불굴의 의지가 드러났다.
한편, 한제는 이 광경으로부터 제법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선선족이든, 선유족이든 선인의 노예 종족인 것은 분명해. 노예 낙인을 찍은 것처럼 대대손손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어버린 거야! 그 낙인은 대대로 전승된 혈통에 찍혀 있는 거지. 이원의 가문처럼…’
만약 이원이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알지 못했다면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겠으나, 지금은 모든 것을 또렷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원 가문에게 찍혀 있던 노예 낙인은 특정 선인에 대해서만 복종하게 만든 반면 선선족은 모든 선인에 대해 굴복해야 해. 이건 통제가 아니라 철저한 노예화다. 한 종족을 선인들의 소유물로 만들어버린 거지! 게다가 주작성에 있던 선유족을 감안하면 이곳의 사람들은 절대 소수가 아닐 거야!’
한제는 신중한 눈빛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결합시켰다. 그리고 무언가를 추론하기 시작했다.
‘선계가 붕괴하기 전, 한 종족이 있었겠지. 막강한 힘을 가진 이들은 심지어 선계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였을 거야. 하지만 결국 선계의 공격에 패했겠지. 어쩌면 4대 선계가 연합했을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노예 각인을 만들어 그 종족을 대대손손 자신들의 노예로 만든 거지!’
한제는 바닥에 꿇어앉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청의의 사내는 타산을 보며 미간을 구기더니 손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타산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의 모공에서 대량의 피 안개를 분출했다. 찰나의 순간, 타산은 피로 범벅이 된 혈인(血人)이 되어 버렸다.
“꿇어라!”
청의의 사내가 냉랭하게 말했다.
타산의 두 눈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지만 그 눈에는 불굴의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노예 각인의 힘에 그는 대항할 수가 없었다. 큰 산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던 그는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결국 바닥에 꿇어앉게 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