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5
“너.”
갈양이 손을 휘두르자 비검이 돌아왔다. 그가 냉담하게 말했다.
“난 놓아준다고 한 적 없는데.”
말을 마친 그는 몸을 훌쩍 날려, 마량이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날아갔다.
함부로 덤벼들다
소표는 얄밉게 웃으며 곧 죽음을 앞둔 마량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갈양을 뒤따랐다. 그는 갈양이 마량의 저물대를 건드리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저물대를 먼저 손에 넣은 사람을 그 저물대의 소유주로 간주하는 것이 둘 사이의 약속이었다. 만약 방금 마량이 저물대를 갈양에게 던졌다면 반대로 소표가 그를 죽였을 것이었다.
마량의 의식은 이미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그는 사매를 떠올리며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마량의 시체 옆에서 공간의 균열이 생겨나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신식이 튀어나왔다. 그 신식은 잠시 허공을 맴돌다가 마량의 체내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 뒤, 마량은 번쩍 두 눈을 떴다. 두 눈에 빛이 번득였고 가슴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이어 냉랭한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등화원, 나 한제가 돌아왔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난 마량, 아니 한제는 작게 읊조렸다.
“신식이여, 돌아오라!”
그 순간, 온 역외 전장 곳곳에 퍼져 있던 한제의 신식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저물대에 들어 있던 것도 누군가의 몸에 녹아들었던 신식도 모두 이 부름에 응해 한제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 ★ ★
수련연맹은 매우 거대한 조직으로 이 조직이 몇 개의 나라로 구성돼 있는지 아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수련연맹의 구성국이 되기 위해서는 6성 수련국이 되어 수련성을 가져야만 했다.
모든 수련국은 수련연맹의 관리를 받지만 그 많은 수련국을 연맹이 일일이 관리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6성 이하의 수련국은 모두 해당 수련성을 보유한 6성 수련국이 관리했다.
10만여 년에 걸쳐 6성 수련국이 된 주작나라는 가장 빠른 기간에 6성 수련국이 된 나라 중 하나였다.
주작나라는 6성 수련국이 된 후 수련성을 받게 됐다. 수련연맹은 이 수련성을 주작성(朱雀星)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주작성에서는 주작나라의 지시가 곧 신의 뜻이었다.
주작성에는 총 18개의 5성 수련국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5성 수련국의 단계에 이른 순간, 6성 수련국에서는 그들에게 10개의 역외 전장을 주었다.
말하자면 주작성에는 총 180개의 역외 전장이 있는 셈이었고 그중 하나가 붕괴될 때마다 이를 만회하고 싶다면 엄청난 물자를 들여 6성 수련국으로부터 새로이 구매해야만 했다.
역외 전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공간의 균열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는 5성 수련국은 없었다.
듣기로는 6성 수련국으로 승급할 때 연맹에서 역외 전장을 개척하는 법술을 알려준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5급 이하 수련국에게 발설했다가는 제명된다고 한다.
각각의 5성 수련국은 여러 4성 수련국을 관장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각각의 4성 수련국은 여러 개의 3성 수련국을 관장했다.
수련연맹에서는 1, 2성 수련국에 대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허락하지 않는다고 문서로 규정해두고 있었다.
조나라는 주작성의 3성 수련국이었다. 조나라를 관장하고 있는 4성 수련국은 청룡국으로 그 배후에는 5성 수련국 거마족(巨魔族)이 있었다.
매번 역외 전장에서 큰 전쟁이 열릴 때마다 조나라의 원영기 고수들이 소집되는데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즉 어떠한 저항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산파의 다섯 시조(始祖) 역시 어쩔 수 없이 차출된 이들이었다.
역외 전장에 간다면 대산파는 보존할 수 있었지만 그들 다섯 명의 삶은 끝이 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는 모든 3성 수련국이 겪는 일이기도 했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세계. 강자의 한마디에 약자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수련자들이 잔혹하고 간사해지는 이유 역시 이런 잔혹한 법칙 때문인지도 몰랐다.
또한 어쩌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련연맹의 눈에 이 세상은 거대한 용광로처럼 비춰지는지도 몰랐다. 일반인이든 수련자든 가릴 것 없이 필요할 때면 무정하게 그 용광로에 집어 넣어버리는 것이다.
상고시대, 수련자들은 천도(天道)와 도심(道心)을 연구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직 도(道)였다. 그 당시 수련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탈속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 비쳤다.
하지만 상고시대가 갑작스럽게 소멸한 후, 불쑥 일어난 수련연맹에게 도(道)의 개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사실 욕망이 없는 수련자에게 죽음은 정해진 결과였다. 약육강식의 개념과 적자생존의 수련 법칙이 있어야만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었다. 비록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수련연맹의 지도 아래 수련자들의 실력과 세력은 상고시대보다 월등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 5성 수련국 거마족의 어느 역외 전장에서 기이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지난 3년간 신식을 얻었던 수련자들은 모두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역외 전장에는 유성우가 쏟아지듯 수많은 신식이 어느 한쪽으로 향했다. 이어서 이미 붕괴 직전에 이르렀던 역외 전장은 이 신식의 파동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쾅!
드넓은 역외 전장에 순식간에 거대한 구멍이 하나 뚫리더니,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씹어 삼키듯 역외 전장이 사라져갔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신식 하나가 그 구멍의 중심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또한 때를 같이 해 엄청난 수의 신비로운 생물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는 한제가 삼켜댔던 그 연기 형태의 생물이었다.
쾅, 콰쾅!
그리고 같은 장면이 역외 전장의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총 세 개의 거대한 신식이 붕괴와 함께 형성된 거대한 공간의 균열 안에서 튀어나왔고 셀 수 없이 많은 신비의 생물이 뒤이어 쏟아져 나와 모든 사람과 사물을 뒤덮었다. 논에 몰려드는 메뚜기 떼보다도 더 끔찍한 모습이었다.
역외 전장에 있던 수련자들은 모든 힘을 다해 도망쳐 전송진(傳送陳)으로 향했다. 한 발이라도 느렸다가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삼켜져 소멸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들의 비검이 날을 번득이며 여기저기를 날아다녔다.
세 개의 거대한 신식이 나타난 순간, 한제가 눈을 번득였다. 그들은 그가 공간의 균열 안에 있을 때 알게 된 이웃들로 그에게는 익숙한 신식들이었다.
곧 지난 3년간 한제가 분산시켰던 신식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었다. 하나의 신식이 돌아올 때마다, 그의 신식은 거대해지더니 원래의 크기를 거의 되찾았다.
그러나 한제는 급하게 굴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낯선 몸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때, 몇몇 신비로운 생물이 마치 유령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망설이는 듯 뱅뱅 맴돌다가 결국 포기할 수 없다는 듯 휙 날아들었다.
그 생물과의 거리가 십여 장 정도로 줄어들었을 때,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고 차갑게 말했다.
“함부로 덤벼드는구나!”
그러자 곧 거대한 신식이 그의 체내에서 발산됐다.
“아악…!”
신비의 생물들은 마치 천적을 마주한 것처럼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미처 달아나기도 전에 한제의 신식이 그것들을 따라잡더니 한 입에 집어 삼켰다. 신비의 생물들을 막 집어삼키던 그때, 거대한 신식이 허공에서 날아왔다. 이는 마치 한제의 신식을 가로막으려는 듯했다.
“흥!”
한제는 콧방귀를 뀌더니 물러나기는커녕 추격 속도를 높였다. 자신의 심기를 거스른 모든 신비의 생물들을 다 집어 삼키자 그를 막으러 온 듯했던 그 신식은 한숨만 내쉬었다.
지금 한제의 신식은 거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다. 몇몇의 아주 적은 신식은 어째서인지 소환되지 않았지만 신식의 강도에서 볼 때는 공간의 균열 안에 있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희들, 선을 넘었어!”
한제는 신식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 신식의 파동은 곧장 퍼져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온 역외 전장으로 퍼져나갔다. 공간의 균열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신식들은 각자 역외 전장을 삼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가 그 파동에 우뚝 동작을 멈추었다.
이어서 그들이 다가오더니 연달아 말했다.
“정말 강하구나. 진짜로 저기에서 나올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이 공간은 곧 붕괴할 거야. 탄혼(呑魂)인 우리의 사명은 이곳을 삼켜서 붕괴가 넓은 범위로 퍼지는 것을 막는 거야. 너도 탄혼이면서 왜 간섭하는 거지?”
“붕괴되는 공간을 삼키는 것은 우리가 태어난 순간부터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명이야. 우리가 삼키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탄혼들이 와서 이곳을 삼킬 거라고.”
세 개의 거대한 신식은 각자 한마디씩 한 뒤 잠자코 한제의 답을 기다렸다. 그들은 이미 한제를 자신들과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듯했다.
탄혼(呑魂)이라는 존재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한제는 한참이나 마량 생전의 기억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전송진이 곧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역외 전장이 완전히 붕괴되어도 그 전송진이 열릴지는 알 수 없었다.
“너희들이 하는 일을 막으려는 건 아니야. 이 역외 전장이 붕괴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거지.”
“좋아.”
“원하는 대로.”
“나도 동의해. 하지만 귀찮게 구는 유혼(游魂)들을 막을 수는 없어.”
의견 일치를 본 후 한제는 몸을 날려 마량의 기억에 남아 있던 진의 방향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만난 유혼들은 한제를 보기만 해도 겁이 나는 듯 덜덜 떨며 그를 막지 않았다.
한제는 새로 얻은 몸에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량의 타고난 자질은 나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제의 몸에 비하면 몇 배나 뛰어났다. 하지만 완벽하게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마량의 체내에는 조금의 영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오직 신식으로만 움직이고 있는 셈이었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대한 빨리 외부와 단절한 채 수련할 장소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몸을 완벽하게 적응시키고 신식을 더 강력하게 만든 뒤 조나라로 돌아가야 했다.
날아서 이동하던 도중, 한제는 갑자기 우뚝 멈추어 서북쪽을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갈래의 무지개가 급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열 개가 넘는 유혼들이 그 뒤를 뒤쫓고 있었다. 그 둘 사이의 거리가 빠른 속도로 좁혀졌다.
★ ★ ★
3성 수련국인 화분국 전신전(戰神殿)의 여 제자로 지금껏 안정적으로 살아온 주자홍은 지금 땀에 흠뻑 젖은 채 입을 앙 다물고 달리고 있었다.
이미 영기가 바닥난 그녀의 얼굴에는 조급함이 묻어났다. 함께 도망 중인 두 사형도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이제 살아 있는 전신전 동료는 우리 셋뿐인 모양이군.”
주자홍은 비참함에 피식 웃었다. 사흘 전만 해도 열 명 남짓 살아 있었던 전신전이었는데 갑작스레 역외 전장이 붕괴하면서 나타난 이상한 생물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했다. 그 생물에게 공격당한 수련자들은 혼이 곧장 빠져나갔고 육신 역시 즉시 오그라지다가 결국 미라로 변하고 말았다.
그 이상한 생물들은 마치 미라의 몸 안에 숨어드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이에 그들은 이제 시체만 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신전의 제자들 중 나흘 전 홀로 떠난 마량을 제외하면 주자홍을 비롯한 세 명만 살아남았다.
자홍은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며 이따금 고개를 돌렸다. 이상한 생물과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자 그녀는 절망에 빠져 눈을 감았다.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마량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량은 쥐새끼처럼 담이 작고 죽음을 두려워했지. 얼굴도 어찌나 두꺼운지 욕을 하든 때리든 개의치 않았고 동희 사매도 마량이 귀찮게 구는 것은 견딜 수 없어 했지.
덕분에 여기 올 수 있었지만 내가 불쌍히 여겨 도와주지 않았다면 진작 죽었을 거야.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내게 일전에 단약을 한 알 가져다주었지. 먹으면 늙지 않을 수 있는 약이라고 했는데 그게 진짜인지는.’
마량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자홍은 양웅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게 됐다.
“마량! 얼른 도망쳐!”
자홍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려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한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용모가 수려했지만 어딘가 눈빛이 서늘했고 가슴팍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