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51
지하 마수 체내의 끝없이 어두운 허공.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온몸에서는 검은 기운이 발산되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그 검은 기운에는 선력이 배어 있었다.
두 눈을 번쩍 뜬 그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가볍게 나의 분신을 훼손시키다니, 저건 대체 무슨 법보란 말인가!”
청의의 사내가 죽은 순간, 제단의 대문이 닫혔다.
한제는 평온한 모습이었으나 속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이는 중이었다. 곁에서 미약한 바람을 일으키며 날갯짓을 하고 있는 오색찬란한 나비를 바라보던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결인을 그린 뒤 신중하게 그 결인을 나비에게 쏘았다.
나비는 순간 멈칫하더니 오색찬란한 빛이 되어 흩어졌고 잠시 후, 다시 사신차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시름 놓은 한제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방금 나비가 날갯짓 한 번으로 양의 절정 수준의 수련자를 처리한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신차와 자모도고를 함께 사용한다면 규열기 수련자도 상대할 수 있겠군.’
한제는 생각을 정리하며 주위를 훑어보았다. 선선족 사람들은 청의의 사내가 죽은 뒤 원상태를 회복했으나 침통한 모습이었다.
타산 또한 부상을 입은 채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 커다란 주전자가 하나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에게 달려들던 안개 마수를 봉인한 듯했다. 허나 부상이 너무 심했던 탓에 돌아오자마자 픽 쓰러져 그대로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 ★ ★
어느덧 열흘이 지나갔다. 그동안 한제는 선선족의 선조 노인이 마련해준 조용한 처소에 머물렀다.
한제는 노인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추측이 8할 이상은 맞았음을 확인했다. 다만 이 일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에 한제의 관심사는 온통 이곳을 떠나는 방법뿐이었다.
이곳의 하늘에는 끝이 있었고 한제는 이미 그 끝에 한 번 다녀오기도 했다. 허나 타산의 말대로 거기에는 끝없이 펼쳐진 벽이 있었고 그 벽은 진짜 하늘처럼 보일 뿐이었다.
한제는 이미 이 대륙의 사방을 다녀온 후였다. 그리고 그 어느 곳에도 출구가 없음을 확인했다. 결국 현음정 바닥의 전송진만이 이곳에서 나갈 유일한 길이었다.
‘현음정을 보호하고 있는 영혼은 차치하고 청의의 사내는 너무나 기이한 일이야. 그는 스스로를 선인이라고 칭했고 그가 사용한 힘은 분명 선인과 비슷했어. 하지만 원력의 기운을 품고 있었단 말이지. 이 점은 뇌의 선계에 있던 청수 선군과도 상당히 비슷해. 게다가 선선족 사람들의 표정으로 봐도 그 청의의 사내가 진짜 선인일 가능성이 높아!’
고민하던 한제는 방 밖으로 나가 한 걸음 내딛음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대륙의 동쪽 평원에서 한제의 모습이 나타났다.
저 멀리서 흡혈 마수가 기쁜 듯 포효하며 다가왔다.
멀리 떨어진 풀밭에는 작은 언덕처럼 거대한 뇌와가 엎드려 있었다. 녀석은 눈을 슬쩍 떠 한제를 본 뒤 그대로 눈을 다시 감아버렸다.
허이국은 보이지 않았다. 놀 거리를 찾으러 어딘가로 떠난 모양이었다.
흡혈 마수가 다가와 애교를 부리자 한제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흡혈 마수는 기쁜 듯 가르릉거리더니 다시 날아올라 하늘을 선회했다.
한제는 초원 위를 걷다가 어느 공터에 이르렀다. 이 공터에는 고랑만 이리저리 파여 있을 뿐 풀 한 포기 없었다. 그 고랑들은 서로 교차되면서 무척 복잡해 보이는 진을 이루고 있었다.
한제는 고랑을 본 척도 않고 걸어 들어가 진의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곳은 한제가 며칠 전 찾은 수련 장소로 풀들을 다 제거한 뒤 금제를 배치해 놓고 흡혈 마수와 뇌와도 이쪽으로 옮겨왔다. 이제 어느 정도 안전해진 것이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진을 눌렀다. 그러자 진은 한 번 진동했고 뒤이어 그 안의 모든 것이 사라지더니 초원이 나타났다.
먼 곳에서든 가까운 곳에서든 이곳이 허상이라는 느낌은 나지 않았다. 그 안으로 발을 들여도 이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진을 활성화한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뇌의 선계를 방문한 이래 많은 위험을 겪은 그는 그동안 얻은 수확도 상당했으나 여태 그것을 정리하고 제련할 시간이 없었다.
뇌의 선계를 떠나자마자 청령성으로 가서 새롭게 구한 법보를 제련할 생각이었으나 뜻밖에도 전송진은 그를 이곳으로 안내했다.
“최대한 빨리 뇌의 선계에서 얻은 것들을 제련하고 힘을 키우자. 그래야 이곳에서 편하게 떠날 수 있을 것이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저물대에서 가죽 갑옷을 하나 꺼냈다. 무척 조악한 이 갑옷에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한제는 왼손으로 그 갑옷을 살짝 쓸어보았다.
“고신의 피갑(皮甲)⋯⋯.”
한제는 잠시 갑옷을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하늘로 뻗었다. 순간, 피갑이 날아올랐고 한제는 입을 벌려 원신의 정기를 뿜어냈다.
한 줄기 하얀 화염이 나타나 고신의 피갑을 맴돌았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더 많은 원신의 정기를 뿜어냈다.
이 피갑의 이전 주인은 소자요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이미 죽었으나 당시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고 아직까지도 이 피갑에는 파괴됐지만 독립적인 신식이 남아 있었다.
“만약 수만 년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파손된 원신은 스스로 깨어나 또 다른 의식을 생성했겠지. 그리고 기령(器靈)이 됐을 거야.”
한제는 오랜 시간 수련해온 덕분에 이런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모든 기령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생성되곤 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 고신의 피갑에 걸려 있는 전 주인의 신식은 지금의 한제보다도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파괴된 신식이라 해도 얕잡아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오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잔존하는 신식이 이미 기령으로 발전되고 있었다.
“기령은 진귀하긴 하지만 몰아내지 못할 경우 고신의 피갑은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어. 우의 선검과 마찬가지지. 진정한 주인은 오직 그 안에 깃든 기령이 되는 거야.”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다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직 지능이 생기지 않은 기령이 지워지기를 기다렸다.
며칠이 빠르게 지난 어느 날, 한제의 원신의 정기로 제련된 고신의 피갑에서는 짙은 푸른색 안개가 떠올랐다. 이 안개는 수축하는 사이 고통을 느끼는 듯 했지만 한제는 원신의 정기로 그것을 갑옷에서 몰아냈다.
줄기줄기 얇은 실과 같은 안개가 고신의 피갑과 연결된 채 길게 늘어나던 찰나, 한제는 맹렬히 두 눈을 떴다. 이내 오른손을 들었다가 아래쪽으로 매섭게 내리쳤다.
순간, 참라결이 발휘되어 규칙을 베어버렸다. 베어나간 것은 기령과 고신의 피갑 사이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한 줄기 연계였다.
쩍!
연계가 끊어지자 안개는 곧장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존혼번을 꺼내 단번에 그 안개를 삼켜버렸다. 고신의 피갑은 얌전히 떠 있었다.
안개를 거둔 후 한제는 곧장 신식을 펼쳐 고신의 피갑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의 낙인을 남겼다.
낙인은 매우 깊게 고신의 피갑에 녹아들었고 피갑은 순간 아주 오래된 기운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짙은 기운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 회오리의 중심에 한제가 있었다.
한제는 그곳에서 꿈쩍도 않고 있었지만 자신의 신식이 고신의 피갑에 낙인을 남긴 순간 익숙한 기운이 자신을 뒤덮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익숙한 기운은 피갑에서 기인한 것으로 매우 친근한 느낌이었다. 아주 오래 전 집을 나갔던 탕자가 돌연 가족에게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신의 피갑 역시 한제에 대해 그렇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느낌 덕인지 고신의 피갑은 한제가 소환하지 않았는데도 그에게로 다가와 한제에게 녹아들었다. 한제는 거부감 없이 자신의 몸으로 녹아드는 피갑을 받아들였다.
고신의 피갑은 한제의 체내에 완전히 녹아들어 사라졌고 이내 한제 체내의 원신을 감쌌다.
한제는 두 눈에서 밝은 빛을 번득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미간을 두드리자 그의 정수리가 번쩍이면서 원신이 튀어나왔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원신이 고신의 피갑에 싸여 있음을 한제는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원신은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상처조차 입지 않을 터였다.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군. 하지만 절대 약하지 않을 거야!”
한제는 원신을 체내로 되돌린 후, 이번에는 입을 벌려 한 줄기 금빛을 토해냈다. 그 금빛 안에는 금색 자물쇠가 들어 있었다. 뇌선전의 전송진 앞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어느 사자로부터 빼앗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뇌선전 사자의 원신은 지금 존혼번 안에 들어 있는 상황이다.
금색 자물쇠를 바라보던 한제는 곧장 그 위에 자신의 신식을 드리웠다. 그리고 며칠 동안 원신을 통해 제련하면서 이전 주인의 신식을 지워버리고 손쉽게 그 자물쇠를 장악했다. 자물쇠의 빛은 곧장 어두워지면서 한제의 손으로 떨어졌다.
한제는 손에 들린 금빛 자물쇠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훌륭한 물건이군. 자모도고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이 안에 봉인된 다른 사람의 신통력이 훨씬 흥미로워!”
한제는 체내의 원력을 오른손에 집중시킨 뒤 자물쇠를 꽉 쥐어 부숴버렸다.
봉선인(封仙印)
금색 자물쇠가 무너져 내리면서 강렬한 금빛이 발산됐다. 자물쇠는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이 되어 지면에 떨어졌고 한제의 손바닥에는 금색 액체 한 방울만 남게 됐다.
이 자물쇠의 이전 주인이었던 뇌선전의 사자 역시 이 안에 뭔가가 더 있다는 것도 그것이 해금 신통력을 발휘하게 하는 존재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금색 자물쇠를 파괴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사실 막무가내로 법보를 파괴했다가 그 안에서 얻어낸 것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거나 본래의 법보보다 가치가 떨어질 수 있기에 이는 어지간한 수련자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허나 1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련을 해온 한제는 저도 모르는 사이 지금과 같은 정도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그 안에 봉인되어 있는 신통력을 살피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고 법보를 부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 한제는 수준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 안목 역시 성장한 상태였다. 그의 눈에 들어올 만한 물건은 많지 않았고 저물대에 든 저급한 법보조차 1천 년 동안의 수련을 통해 그와 함께 성장해온 것들이었다.
뇌선전 사자의 눈에 들어 귀중한 것으로 여겨지던 법보라면 아무리 저급하다 해도 선보(仙寶)일 터였다. 그런 법보를 부쉈음에도 한제는 평온했다.
두 손가락 사이에 남은 금색 액체를 바라보던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이내 그의 미간에 한 줄기 균열이 이는가 싶더니 세 번째 눈이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한 줄기 붉은 빛이 부채꼴 모양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붉은 빛은 두 손가락 사이의 금색 액체를 뒤덮었다.
이에 따라 그 금색 액체는 천천히 퍼져나가며 그 본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제의 세 번째 눈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약간 어두워졌다. 그러나 금색 액체는 고작 반 정도만 흩어졌을 뿐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버텨내다니, 이상하군.’
한제는 체내의 원력이 격렬하게 소모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세 번째 눈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붉은 빛은 더욱 짙어졌고 금색 액체가 흩어지는 속도 역시 배가됐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금색 액체는 완전히 흩어져 셀 수 없이 많은 금색의 얇은 실이 되더니 휘휘 맴돌며 서로 교차해 복잡한 문양을 이루었다.
허나 이 문양은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너져 내리더니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한제의 두 손가락 사이에는 더 이상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문양⋯⋯.”
한제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저물대에서 선필(仙筆)을 꺼내 허공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금색 실이 교차해 이루어진 것과 똑같은 하나의 문양이 떠올랐다. 한제는 이를 자세히 살폈지만 그 문양에서는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문양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두 눈을 감고 신식을 펼쳤다.
그러나 이내 그는 충격을 받은 듯 두 눈을 번쩍 떴다.
“신식으로도 살펴볼 수 없다니!”
한제는 다급히 왼손을 들어 허공의 문양을 두드렸다. 순간 그 문양은 휙 날아가 하늘을 맴돌고 있던 흡혈 마수에게 달려들었다.
비행을 즐기고 있던 흡혈 마수는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피하려 했다. 한제가 신식을 통해 어르고 달랜 후에야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멈춰 서서 다가오고 있는 그 문양을 바라봤다.
문양은 번득이며 곧장 흡혈 마수의 몸에 찍혔고 그 순간 갈라져 금색 액체가 됐다. 찰나의 순간, 그 금색 액체는 흡혈 마수의 온몸을 뒤덮더니 완전히 감쌌다.
“캬아아!”
흡혈 마수는 그 안에서 몸부림치다가 겨우 빠져나와 저 멀리 날아가더니 원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낮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