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52
한제는 그런 흡혈 마수를 달래며 생각에 잠겼다.
선필을 사용했을 때 체내의 원력을 1할 정도만 사용했음에도 새로 알게 된 문양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모든 원력을 쏟아부어 그려낸 문양이라면 그 위력은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을 터였다.
“이 법보의 진정한 신통력은 바로 이 문양이었군. 그 자물쇠 안에서는 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직접 그려낸 위력은 전혀 다르지.”
한제는 선필을 거두어 집어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세 번째 눈처럼 본원을 꿰뚫어볼 수 있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금색 액체를 얻어냈다 해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흠… 그러고 보니 법보에서 다른 신통력을 얻게 된 것은 처음이로군. 봉인 작용을 하는 문양이니 봉문(封紋)이라 부르겠다!”
한제는 허공에 그 문양을 몇 번 더 그려 마음 깊이 새겼다.
한데 그때, 퍼뜩 다른 생각이 들었다.
“봉문을 법보에서 꺼냈다면 다른 법보에 다시 집어넣지 말란 법은 없지.”
한제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내 법보는 대부분 외부로부터 얻은 거야. 내가 직접 제련해낸 것은 많지 않아.”
한제는 입을 벌려 모래알 하나를 토해냈다. 이 모래알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끝도 없이 부풀어 오르더니 순간적으로 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인장이 됐다.
“이것은 본디 선계의 조각으로 천벌을 통해 제련된 것. 청수 선군의 일격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을 정도로 단단하다. 다만 법보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해. 공격을 가한 사람을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두는 정도일 뿐이라 그 위력은 크지 않지. 자모도고나 세 번째 사신차와 같은 살상력은 없어.”
한제는 다시 선필을 들어 허공에 하나의 봉문을 그려냈다.
“너에게 새로운 신통력을 주마. 봉인의 신통력을!”
몸을 일으킨 한제는 선필로 봉문을 쿡 찔렀다. 문양은 곧장 거대한 조각이 있는 곳으로 향하더니 그 안에 녹아 들어갔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몸을 훌쩍 날리며 선필로 끊임없이 봉문을 그려냈다. 하나둘 그려진 봉문들은 곧장 거대한 조각을 향해 날아들었다.
점차 한제의 움직임은 잔영을 남길 정도로 빨라졌다. 한제는 끊임없이 그 조각을 맴돌면서 봉문을 그려냈고 나중에는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봉문을 그려내는 일에 익숙해짐에 따라 처음에는 한 번에 하나의 봉문만을 그려냈던 한제는 이제 한 번에 열 개가 넘는 봉문을 그려냈고 그 많은 봉문들은 모두 거대한 조각에 녹아들었다.
이 작업을 이어가는 동안 한제는 조금도 쉬지 않았다. 그의 두 눈에 비친 것이라고는 오로지 이 거대한 조각뿐이었다.
몇 개의 봉문이 녹아들었는지 셀 수조차 없게 됐을 무렵, 거대한 조각은 점차 옅은 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제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번개처럼 빠르게 조각의 상하좌우에 수많은 봉문들을 찍어댔다.
사흘 뒤, 땅에 내려선 한제는 가부좌를 틀었다. 얼굴이 약간 창백해져 있었다. 지난 사흘 동안 그는 그의 수준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원력을 가동했다.
거대한 조각은 축소되어 길이가 약 8백 척 정도로 줄었고 처음보다 짙은 금색을 띠고 있었다.
몇 시진 후,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고는 다시 봉문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점차 시간이 흘렀다. 한제가 중간에 취한 휴식만 해도 일곱 차례였다. 그에 따라 조각은 5백 척, 4백 척, 3백 척으로 줄어들다가 결국에는 1백 척 정도로 작아졌다. 또한 발산되는 금빛은 갈수록 짙어지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작은 태양이 강렬한 금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허나 한제는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잔뜩 흥분한 상태로 다시 얼마간의 휴식을 취한 뒤 재차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 번에 닷새 동안 제련을 진행했다.
닷새 뒤, 땅에 내려선 한제는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약간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앞으로 이 법보를 봉선인(封仙印)이라 칭한다!”
한제의 외침은 사방팔방에 왕왕 울렸다.
그의 앞에서는 길이가 3촌 정도 되는 작은 인장이 눈부신 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일반인이 그것을 본다면 그 강렬한 금빛에 두 눈이 머는 것은 물론이고 뇌까지 상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수련자라 해도 수준이 부족하다면 이 인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뒤흔들리고 육신이 셀 수 없이 많은 예리한 검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받게 될 터였다.
작은 인장에서 번득이는 금빛에는 짙은 선력의 파동이 어려 있었다. 그 선력은 미친 듯이 퍼져나가면서 강력한 봉인의 기운을 풍겼다.
그동안 한제가 그려낸 봉문의 수는 대충 헤아려도 60만 개 이상이었다. 그 많은 봉문이 거대한 조각에 녹아들면서 그것을 작은 인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작은 인장에 깃든 신통력에 한제는 큰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한제는 봉선인을 바라보며 결인을 그려 하나하나의 금제를 쏘아냈다. 그 금제들이 떨어지자 봉선인에서 피어오르던 선기와 봉인의 힘 역시 반 이상 가려졌다. 그리고 한참 후에는 보통의 인장 같은 모습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던 법보에 아주 딱 맞는 모습이야!”
한제가 입을 쩍 벌리자 봉선인은 한 줄기의 미약한 금빛이 되어 그의 입으로 들어갔고 원신 안에서 천둥번개의 위엄에 의해 응결됐다.
“원신 안에 오랫동안 묻혀 있으면 천둥번개의 힘도 갖게 되겠지!”
봉선인을 삼킨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저물대에서 세 개의 작은 보라색 깃발을 꺼냈다. 이 작은 깃발들은 무언가를 감싸듯 뭉쳐 있었고 그 위에서는 금제의 빛이 번득였다.
당시 그 뇌선전의 사자는 그 원신이 이 세 개의 작은 깃발과 함께 한제에게 봉인된 상태였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세 개의 작은 깃발에 걸려 있던 금제가 흩어졌고 그 안에 봉인되어 있던 뇌선전 사자의 원신이 휙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곧장 순간이동으로 도망치려 했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존혼번이 튀어나오더니 검은 안개가 되어 그 뇌선전 사자의 원신을 흡수해버렸다.
“크윽! 도우, 날 죽이지는 말게. 값진 보물로 사례하겠네! 끄아악!”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른 사자의 원신은 검은 안개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애원했다.
“무슨 보물?”
한제는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나천석… 나천석이 어디 있는지 내 알고 있네. 날 풀어준다면 그곳으로 안내하겠네!”
뇌선전 사자의 원신이 얼른 대답했다.
한제는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그 원신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들자 검은 안개는 순간 그 원신을 존혼번 안으로 흡수해버렸다.
“나천석이라⋯⋯.”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생각을 접고 허공에 떠 있는 세 개의 작은 깃발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허공을 움켜쥐자 그 깃발들은 그의 손에 들어갔다.
한제는 깃발에 원신의 기운을 한 움큼 불어넣어 그 안에 깃든 신식의 낙인을 지워버리고는 자신의 신식으로 낙인을 찍은 뒤 자세히 살펴보았다.
“보기 드문 방어용 법보로군.”
일각 후, 한제는 그 세 개의 작은 깃발을 허공으로 던졌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명령을 내리자 세 개의 작은 깃발은 곧장 그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았고 이내, 한 줄기 보라색 안개가 회오리를 이루며 방어의 힘을 발휘했다.
한제는 체내의 원력을 일으켜 그 보라색 회오리 안에 녹여 넣었다. 그러자 급격한 변화가 일면서 그 보라색 회오리는 몇 배로 빨라졌고 안개는 더욱 짙어져 한제의 전신을 완전히 감싸버렸다.
잠시 후, 안개가 흩어져 사라지자 한제는 깃발들을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꽤 훌륭하군.”
이번에는 두 개의 노란색 부적을 꺼냈다. 이 부적들에 어떤 효력이 있는지 한제는 아직 알지 못했으나, 이번에도 잠시 살펴보다가 이내 거두어버렸다.
한제는 밝은 눈빛을 번득이며 신중한 표정으로 신식을 펼쳤다.
반경 10리 안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금빛이 번쩍이며 선기가 퍼져 나오더니 손바닥만 한 누각이 한제의 손바닥에 나타났다. 그것을 바라보는 한제의 심장은 쿵쾅댔다.
“뇌의 선계에서 얻은 수확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장품각(藏品閣)이지!”
한제는 입술을 핥았다. 손에 넣은 뒤 여태까지 감히 꺼내볼 생각도 못할 만큼 귀하고 진귀한 것이었다.
“이 안에는 얼마나 많은 선술이 있을까?”
한제는 애써 흥분을 억눌렀다.
“내 수준으로는 4층까지밖에 가지 못해.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의 시체를 이용해 9층으로 올라가긴 했지만 금제를 풀지 못해 그 안의 선술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지. 아무리 귀한 것이라 해도 제한이 있으니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 곳에서는 연구할 수 없어.”
한제는 마음속의 갈망을 억제하며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장품각을 다시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그것을 다시 꺼내더니 당시 배웠던 결인을 따라 그려냈다. 이에 장품각은 끊임없이 줄어들면서 결국에는 손톱만 해졌다. 한제는 빈 저물대 하나를 꺼내 장품각을 그 안에 넣더니 윗옷을 풀어헤쳤고 가슴팍을 갈라 그 저물대를 쑤셔 넣은 뒤 원력으로 상처를 복구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장품각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을 거야!”
한제는 가슴팍을 문지르며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는 몇 개의 저물대가 더 남아 있었는데 그 대부분은 선옥으로 가득했다. 그 양이 너무도 많아 뇌의 선계에서 얻은 양에 비할 만했다.
타산, 선위(仙衛)
거의 두 달 가까이 뇌의 선계에서 얻은 수확을 한 차례 정리한 한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몸을 훌쩍 날렸다.
“이제 떠날 시간이군.”
저 멀리서 흡혈 마수가 다가와 그를 태우고 날기 시작했다.
땅에 엎드려 있던 뇌와 역시 눈을 한 번 뜨더니 몸을 날렸다. 그러더니 녀석은 단번에 먼 거리를 뛰어넘어 흡혈 마수를 뒤쫓았다.
한데 선선족의 거주지에 이른 한제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광장에 모든 선선족 사람이 모여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아이와 여인들까지 모두 나와 있었다.
광장 중앙에는 30척 높이의 나무로 된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위에는 타산이 뉘여 있었다. 그의 얼굴은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였고 두 눈은 어두웠다.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한제는 두 달 전에 이미 타산이 죽음에 이르렀음을 파악했다. 타산은 선선족에게 새겨진 노예 각인에 처음으로 저항한 사람이었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온몸을 뒤덮은 노예 각인의 반작용으로 인해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었다. 두 달이나 버텨온 것이 용했지만 오늘이 그의 마지막 날이었다. 더 이상은 노예 각인의 힘에 저항할 수 없었다.
선선족 선조 노인이 비통한 얼굴로 타산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우리 손자⋯⋯.”
노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주 오랜만에 입에 올려보는 호칭이었다.
짙은 슬픔이 깔린 사방은 고요했다. 모든 선선족 사람들의 표정은 침통했다.
“타산⋯⋯.”
“타산⋯⋯.”
사람들은 작게 타산의 이름을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점차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로 합쳐졌다.
“타산!”
그들의 마음속에서 타산은 선선족의 영웅이었다. 유일하게 불굴의 의지를 내보이며 모든 선선족 사람들에게 노예 각인은 저항하지 못할 존재가 아님을 직접 보여준 것이 바로 그였다. 허나 그 대가로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타산은 어떤 깨달음을 얻은 상태였다. 혼탁한 두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이 끊임없이 해주던 말을 다시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선인은 우리 선선족의 주인이다. 우리 선선족 사람들의 일생은 선인께 바쳐야 한다. 이는 우리의 사명이자 우리의 명예야. 우리는 선인의 사자다! 이는 우리에게 영광과도 같은 일이야!”
타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상의 불공평함과 모든 선인에 대한 원한이 담긴 눈물이었다.
한제는 말없이 광장 가장자리에 선 채 이들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