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64
거대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면서 한제의 번개 공은 모두 무너져 내렸고 퍼져 나가던 얼음도 멈칫했다.
그 순간, 한제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타산이 튀어나와 부상을 입지 않은 왼쪽 주먹으로 얼음을 가격했다. 동시에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호풍을 일으켰다. 호풍은 곧장 한 줄기 검은 바람이 되어 요빙운을 향해 불어닥쳤다. 그러자 얼음은 그대로 무너져 내려 흩어졌고 때맞춰 날아든 타산의 주먹은 요빙운에게까지 뻗어 나갔다.
허나 요빙운의 냉랭한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녀는 타산이 달려든 순간 가볍게 외쳤다.
“피의 붕괴!”
그녀의 짧은 외침에 타산은 온몸을 바르르 떨더니 대량의 선혈을 뿜어냈다. 그 피는 피 안개가 되어 흩어졌고 타산은 제대로 주먹도 내지르지 못한 채 뒤로 밀려나 한제의 그림자로 되돌아갔다.
순간, 한제는 기이한 힘이 사방에서 모여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힘은 모종의 파동을 가진 듯 온몸의 피를 빠르게 돌게 만들었다. 피는 금방이라도 끓어올라 몸 밖으로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한제의 눈에 살기가 맺혔다. 그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면서 사방으로 휘몰아치던 검은 바람을 응집시켜 한 마리 흑룡을 소환했다.
흑룡은 곧장 입을 쩍 벌려 음산한 바람을 일으키며 요빙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흑룡이 달려드는 것을 본 순간, 요빙운의 얼굴에 처음으로 약간의 변화가 생기더니 그녀는 얼른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바로 그때, 한제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세상에 녹아들었다. 상대 역시 세상에 녹아들 수 있다면 이전의 전투 방식이 그녀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을 터였기에 차라리 빠르게 이 자리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한제의 모습이 사라진 순간 요빙운은 곧장 그를 뒤쫓으려 했지만 흑룡이 내뿜은 음산한 바람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품고 있어 세상에 녹아들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행사를 방해받자 요빙운의 표정은 더욱 싸늘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남색 원단(元丹)을 하나 소환해냈다. 무척 짙은 빛깔의 원단은 화려한 빛을 발했고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음산한 바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음산한 바람은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으나 남색 원단 역시 다소 힘을 잃은 듯 전보다 그 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마도자
요빙운은 한제가 사라진 쪽을 힐끗 보더니 세상에 녹여든 신식을 퍼뜨려 상대의 파동을 찾아 다시 추격을 시작했다. 허나 이렇게 열심히 뒤쫓고 있는데도 잡지 못하다니, 수련의 길에 오른 이래 이 정도로 까다로운 상대는 처음이었다.
한편, 한제는 꽤나 원대한 계획을 하나 세웠고 이에 따라 나천성역 북쪽 구역을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나천성역 서쪽과 북쪽 구역 사이에는 은하가 하나 있는데 그곳을 넘어가면 북쪽 구역에 진입한 셈이었다.
현재 그 은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수련자가 빽빽하게 모여 서쪽 구역을 향해 좁혀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천성역 서역 안에도 많은 수련자가 모여 있는 상태였다. 개중에 요가 사람은 적었고 요가와 연계된 다른 가문 사람들이 제법 있었으며, 나머지는 나천성역 서쪽 구역의 원주민들이었다.
이들은 허목이 요가의 손에 반드시 죽게 될 것임을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그의 복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오로지 요가로부터 받을 보상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들은 빽빽하게 모여 퇴로를 봉쇄한 채 끊임없이 사방의 힘을 교란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세상에 숨어든 채로는 이곳을 지날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한제는 서쪽 구역과 북쪽 구역의 경계인 은하로부터 1만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러 있었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허나 이는 곧 점점 짙은 살기로 바뀌어갔다.
‘요가! 어떻게든 나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건가? 허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제는 이를 악문 채 몸을 돌려 뒤로 물러나더니 이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바로 그때, 돌연 먼 곳에서 몇 갈래의 신식이 미친 듯이 모여들었다. 그중 한 갈래는 사방의 공간을 교란시켰고 뒤를 이어 먼 곳에서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수련자들이 그곳으로 달려들었다.
사방의 공간을 채운 힘이 어지러워지자 몸을 휘청인 한제는 1만 척 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표정이 잔뜩 어두워진 그는 빠르게 뒤쪽으로 달아났다.
“허목이 저기에 있다!”
“허목이다, 죽여라!”
고함이 사방에서 왕왕 울렸고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수련자들이 분분히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우습게도 그중 요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요가 사람들은 후방에서 냉정한 눈으로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이 정도로 많은 수련자가 몰려 있는 상황이니 허목의 죽음은 거의 정해진 일이나 다름없다 여길 만도 했다. 그러니 다른 가문 사람들 입장에서는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끊임없이 뒤로 물러나는 한제의 발아래에서 파문이 일었고 이 파문은 큼직한 파동을 이루어갔다.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자신을 뒤쫓는 수련자들을 훑어보면서 그들의 외모를 하나하나 마음 깊이 새겼다.
그들이 각종 신통력과 법보를 이용해 공격하려던 찰나, 한제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 세상에 녹아들었다. 뒤로 물러나면서 힘이 왜곡된 범위를 벗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요가 너희가 이렇게 나서는데 내가 응하지 않는다면 어찌 나 스스로를 하늘에 거역하는 수련자라 할 수 있겠느냐!’
한제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추격하던 사람들을 향해 싸늘한 웃음을 지어보인 후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 미소를 본 순간, 그를 추격하던 자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 미소에는 짙은 살기가 어려 있었는데 이는 저 허목이라는 자가 곧 대대적인 살육을 벌일 것이라는 뜻과도 같았다.
“그렇게 날 포위하고 싶다면 덤벼라!”
한제가 세상에 녹아들어 뒤쪽으로 물러나는 동안 요빙운의 기운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나천성역 서쪽 구역의 어느 우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전방에는 수련성 하나가 있었다. 이 수련성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제는 한달음에 그곳을 신식으로 훑었다. 그 수련성에 문정기 절정 이상 수준의 수련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한제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 수련성에 어린 영기로 미루어 때 음의 이상 수준의 수련자가 한 명도 없을 수는 없다. 그렇다는 것은 이 수련성 출신인 음의 이상 수준 수련자들은 나를 뒤쫓는 데 가담했다는 뜻.’
한제의 눈에 어린 살기가 순식간에 극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한제는 그 수련성에 존재하는 영변기 이상 수준의 수련자들을 보자마자 튀어나갔다.
‘나와 요가 사이의 일에 가담한다면 나의 복수를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위협은 바로 수련성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지!’
다른 무엇보다 한제를 초조하게 하는 것은 요가와 다른 수련자 가문에 속한 고수들이었다. 언젠가는 정열기 수준에 이른 수련자가 자신을 붙잡으러 올 지도 모르는데 그럴 경우 그로서는 결코 대적할 수 없을 터였다.
동림성은 자신들 소속의 수련자를 건드리는 자가 나타나는 순간 상대의 수련성을 파괴해버린다. 이처럼 피비린내를 풍긴 덕분에 동림성은 나천성역에서 그렇게 유명세를 떨치면서 모든 수련자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다.
한제는 가능한 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단 일각도 안 되는 시각이었다. 한제는 마치 한 줄기의 회오리처럼 이 수련성을 휩쓴 후 다시 세상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수련성은 피가 강을 이루어 흘러내렸고 영변기 이상 수준의 수련자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허나 한제는 일반인과 화신기 이하의 수련자들에 대해서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한제는 세상에 녹아들기 전, 손을 뻗어 수련성 대지에 거대한 두 글자를 새겨 넣었다.
허목
한제가 떠난 뒤 그 수련성 허공에 파문이 생기더니 요빙운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살기 어린 눈으로 수련성을 살피고는 다시 세상에 녹아들었다.
한편, 한제는 나천성역 서쪽 구역의 수련성 근처를 전전했다. 그리고 해당 수련성에 음의 이상 수준의 수련자가 있으면 곧장 자리를 떴지만 음의의 수련자가 한 명도 없는 곳이라면 학살을 자행했다.
‘다 너희들의 탓이다! 아무런 원한도 없는 나를 요가에서 약속한 보상에 눈이 멀어 핍박하지 않았느냐? 그것이 바로 원인이오, 그런 너희들의 수련성을 파괴하는 나의 행위는 그 결과다! 그러니 너희가 자초한 일이야!’
단 30일 만에 짙은 피비린내 나는 폭풍이 나천성역 서쪽 구역을 휩쓸었고 이에 한제를 포위하러 몰려들었던 수련자들은 분노하면서도 겁을 먹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수십 개가 넘는 수련성에서 자행된 학살로 피는 강을 이루어 흘렀고 그 수련성의 대지에는 허목이라는 이름이 깊게 새겨졌다.
이는 자신을 죽이려 달려든 모든 수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복수였다. 이는 마도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고 이에 언제부턴가 한제에게는 마도자라는 칭호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나와 요가 사이의 일에 관여하는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 적나라한 복수 여기저기서 분노의 폭풍이 일어났고 학살이 일어난 수련성의 수련자 가문 중에서는 이런 위협에 물러나는 대신 허목을 찾아 복수하겠다고 맹세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련자 가문은 망설이기 시작했다. 특히 나천성역 서쪽 구역의 원주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의 수련성으로 되돌아갔다.
요가로부터 받을 보상 때문에 가문의 젊은이들을 재난에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한제의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여기서 더 몰아붙인다면 상대는 결국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은연중에 퍼져 나갔다.
나천성역 서쪽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세 구역 출신 수련자들도 망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중 자리를 떠난 이는 많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의 가문은 서쪽 구역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허목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그들은 허목이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서쪽 구역을 벗어나지 못할 테고 그럼 자신들의 가문과 수련성은 안전할 것이라 믿었다.
그럼에도 한제는 서쪽 구역 안을 가득 채우다시피 했던 압박이 적지 않게 줄어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지난 며칠 동안 끈질기게 추격해오는 여인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고 심지어 몇 번은 거의 잡힐 뻔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걱정이었다.
상대가 너무 바짝 따라오고 있는 데다가 나천성역 서쪽 구역 안에서 행동할 수 있는 범위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한제는 최대한 방향을 바꿔가며 움직여야 했다.
그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30여 일 동안 계속해서 응집된 살기는 이제는 실체화된 것처럼 짙어져 있었다.
‘날 쫓아오고 있는 여인의 수준은 적어도 규열기 중기일 터. 내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 골치 아프게 됐군!’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허공에서 요빙운이 나타났다. 그녀는 봉황과도 같은 눈으로 먼 곳을 내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넌 도망치지 못한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세상에 녹아들면서 다시 한제를 뒤쫓았다.
한제 입장에서는 반드시 그녀를 따돌려야 했다. 그래야만 서쪽 구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한제는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장기간 세상에 녹아든 상태를 유지했고 그러면서도 무려 사흘이나 걸린 끝에야 간신히 다시 한 번 요빙운의 신식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허나 그 사흘 동안 나천성역 서쪽 구역에 모여든 수련자들의 봉쇄선은 마치 끊임없이 수축하는 원처럼 더욱 빠르게 범위를 좁혀왔다.
잠시 요빙운의 신식에서 벗어난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폐허가 된 수련성 근처에서 나타났다. 그 수련성을 자세히 살피던 한제는 밝은 눈빛을 번득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거다!”
한제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추격하는 여인은 기이한 방법으로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파악해왔기 때문에 머지않아 다시 쫓아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다.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한제는 줄기줄기 원력의 파동을 확산시켜 셀 수 없이 많은 낙인으로 만든 후 폐허가 된 수련성을 향해 쏘아 보냈다.
수련성에 떨어진 낙인은 번쩍 하고 사라졌지만 한제는 멈추지 않고 그 수련성을 맴돌면서 낙인들을 찍어나갔다.
한 시진 뒤, 한제는 약간 핼쑥한 얼굴로 그 수련성에 들어섰다. 군데군데 폐허가 된 흔적과 대지 곳곳의 균열이 있었고 강과 바다는 모두 말라버린 상태였다. 죽음의 기운만이 가득 느껴졌다.
한제는 존혼번을 휘둘러 검은 안개로 변하게 한 후 넓게 퍼뜨렸다. 그 안개 속에는 두 눈을 감은 혈조의 혼이 봉인에 갇힌 채 떠 있었다. 존혼번 안의 수많은 혼백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한제는 존혼번에서 음의 수준의 원신 하나를 끄집어내 꽉 움켜쥐어 부순 후 낙인을 찍었다. 순간 그 원신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서늘한 두 눈을 떴다. 한제가 집어던지자 그 원신은 수련성의 대지에 녹아들며 사라져 버렸다.
한제는 숨을 골랐다. 당시 이원으로부터 파멸금을 전수받긴 했지만 아직 파멸의 심금(心禁)은 전수받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중 몇몇 금제는 심금이 없어도 발휘할 수 있었는데 구절손신진(九絶損神陣)도 그중 하나였다. 이는 이원이 3대 금술금제(禁術禁制)라고 부르는 것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 진은 파멸심금이 없어도 사용할 수 있지만 대신 대량의 원신이 필요했다. 이원은 이 진법 금제에 요구되는 조건이 너무나 엄격한 까닭에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한제는 얼굴에서 약간 핏기가 가셨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존혼번에서 원신을 꺼냈다. 음의 수준의 원신은 본래도 많지 않았거니와 그나마도 대부분은 한제가 삼켜버렸기 때문에 현재 계속해서 낙인을 찍은 후 대지에 녹여 넣고 있는 원신들은 대부분 문정기 수준이었다.
추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