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65
몇 시진 뒤, 한제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진 상태였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결심한 듯 혈조의 원신을 꺼냈다. 그리고 그의 미간에 낙인을 찍었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내던진 것이 아니라 다시 존혼번의 검은 안개 속에 넣어두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신 한제는 이제 미련 없이 수련성 내부로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든 기운을 흡수하여 조금도 드러나지 않게 한 뒤 이원에게서 전수받은 은닉술까지 발휘했다.
이 은닉 금제는 매우 신기한 술법으로 당시 이원이 이 술법을 발휘했을 때에는 한제도 그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이 술법은 파멸심금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완전하게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그전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들킬 가능성이 여전히 있었다.
한제가 지금껏 이 은닉술을 발휘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수련성 내부에 가부좌를 튼 그는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요가 그리고 나를 잡으려 들었던 가문들이여, 내가 너희를 위해 큰 선물을 하나 준비해주마.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했다!”
냉소하던 한제는 두 눈을 감고 기운을 완전히 감춘 채 수련성과 하나로 융합됐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 사흘이 되던 날, 나천성역 서쪽 구역의 수련자들의 봉쇄선은 계속해서 범위를 좁혀 들어왔고 그중 첫 번째 무리가 한제가 자리 잡은 수련성 바깥쪽에 이르렀다.
그들을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요빙운으로 냉랭한 표정의 그녀는 결인을 그린 뒤 한제가 숨어든 수련성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허목은 이곳에 있다!”
그녀 뒤에는 두 명의 요가 사람이 따르고 있었다. 일남일녀였는데 그중 화려한 복장을 한 사내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더 이상 숨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곳에 무슨 진을 배치해놓았군요!”
말을 마친 청년은 앞장서서 수련성으로 향했고 요빙운도 눈썹을 살짝 구긴 채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뒤로는 도움을 주기 위해 온 다른 가문의 수련자들도 있었는데 그들 역시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청년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수련성 바깥에서 멈춰 섰고 누구도 먼저 발을 들이지 않았다.
“도우 여러분, 우리 요가를 도와 이 수련성을 제거해주십시오. 그러면 허목 그자가 무슨 꿍꿍이든 이 수련성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말겁니다!”
요가의 청년은 빙그레 웃으며 소리 높여 말했다.
주위의 수련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신통술을 발휘했다.
순간, 각종 원력의 신통술들이 폐허가 된 수련성에 내리꽂혔고. 연달아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수련성은 곧장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다.
요빙운은 싸늘한 표정으로 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며칠간 허목을 뒤쫓으며 그녀는 상대의 영민함과 민첩함에 대해 잘 알게 됐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허목이라면 절대 이렇게 큰 허점을 남겨두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폐허가 된 수련성은 점점 무너져 내렸고 수련성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커다란 파편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거대한 균열은 골짜기처럼 수련성에 끊임없이 퍼져 나갔다. 그러다가 요가 청년이 요가의 선술을 발휘하면서부터 수련성의 붕괴는 더욱 격렬해졌다.
짙은 파동이 퍼져 나가던 그때, 저 멀리서 수많은 검광이 날아들었다. 그 검광을 타고 온 수련자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아무런 의문도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수련성에 공격을 퍼부었다.
한편, 요빙운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 상태였다. 줄곧 뭔가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그 불길함의 정확한 원인은 알 수가 없었다.
쾅!
어느 순간,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짙은 파문이 미친 듯이 확산되면서 이 수련성은 마침내 완전히 붕괴해버렸다.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죽여 버릴 정도로 엄청난 파멸적인 힘을 품고 있었다. 이에 조각난 수련성의 파편들은 멀리까지 퍼져나갔고 주위의 자연적인 힘이 심하게 왜곡되면서 죽음의 기운을 가득 품은 파문이 퍼져 나갔다.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때, 멀리서 수많은 빛들이 다가왔다. 또 다른 한 무리의 수련자들이었다.
그러는 동안 요빙운의 불길함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그때, 불길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텅 빈 듯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간 수련성의 조각들이 반경 10만 척까지 퍼져 나가 거의 모든 수련자를 포위한 상태임을 간파한 것이다.
“안 돼!”
요빙운이 외친 그 순간, 멀리 퍼져 나간 조각의 파편에서 한 줄기 보라색 전광이 발산됐다.
그 전광은 가까이 있던 다른 파편에 이어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모든 조각에서 전광이 번득이며 튀어나와 눈 깜짝할 사이 10만 척 안의 모든 조각이 전광으로 서로 연결됐다. 그리고…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느새 반경 10만 척 안은 한 줄기 전광으로 봉쇄된 상태였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로 그 범위 안에 있던 수련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깨닫지도 못한 채 그 안에 갇혀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중 하나의 파편에서 음의의 수준인 파동이 한 줄기 일어났고 그 파동이 나타난 순간 그 파편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쾅!
음의의 수련자가 자폭했을 때 나타날 법한 거대한 힘이 그 파편 주변의 수련자들에게까지 미쳤다. 이에 음의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수련자들은 중상을 입었다.
허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파편의 자폭이 신호라도 된 듯 뒤를 이어 다른 파편들도 하나하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 10만 척 안의 모든 조각들이 자폭하며 형성된 힘이 미친 듯이 휩쓸었다.
“크악!”
“사… 살려…”
곳곳에서 비명이 울렸고 그 안에 포위된 수련자들은 각자 신통력을 발휘해 그 폭풍과도 같은 힘에 대항하면서 빠르게 물러났다.
그러나 그 자폭의 힘은 서로 융합되면서 더욱 강력해졌고 그 힘에 휘말린 수련자들은 원신조차 도망치지 못한 채 폭풍에 흡수됐다가 곧장 폭발하면서 그 힘의 일부가 됐다.
하지만 한제를 쫓던 수련자들은 대부분 음의나 양의 수준의 수련자였던 만큼, 초반에 잠시 당황했던 그들은 금세 서로 연합하여 그 강력한 힘에 대항해 나갔다.
요빙운이 중심이 되어 반격을 해왔고 이에 파편의 자폭으로 형성된 힘은 서서히 무너져갔다. 그 힘의 폭풍은 반 정도 수축했다가 수련자들의 저항에 이내 바깥쪽으로 끝없이 확장되어갔다.
한데 반경 10만 척 안에서 콰르릉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던 와중에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검은 안개가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서히 혈조의 원신이 응집됐다.
그때, 극도로 차가운 목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폭발!”
그 목소리는 10만 척 밖, 유일하게 붕괴하지 않고 남아 있던 한 파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가 들려옴에 따라 검은 안개 속 혈조의 원신은 돌연 짙은 핏빛을 발산하며 무너져 내렸다.
펑!
그리 크지도 않은, 심지어 짧은 폭발음이었다. 허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폭발음과 한 줄기 파문이 미친 듯이 바깥쪽을 향해 퍼져 나갔고 그 파문에 닿은 수련자들 중 수준이 매우 높지 않은 자는 모두 먼지처럼 변해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가까이 있던 자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원신까지 흩어졌다.
…
눈 깜짝할 사이에 10만 척 안에 있던 수련자 대부분이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강렬한 파문이 사라진 후, 한제가 그 파문의 범위 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덤덤한 얼굴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검은 안개는 그의 손에 응집되어 존혼번이 되었다.
존혼번을 저물대에 챙긴 한제가 막 세상에 녹아들려던 순간, 무언가가 나타났따.
팟!
한달음에 한제 앞에 이른 요빙운이 두 손가락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그 동작은 매서웠다.
사실 그녀는 진작부터 한제가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며 허목의 목숨을 단숨에 제거할 선술, 바로 이 손신인(損神印)을 준비 중이었다. 이는 원신만을 노려 해치는 선술이었다.
‘양의의 수준으로는 이 손신인에서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한편, 한제는 움찔 굳어졌다가 1천 척 밖에서 나타나 한 움큼 선혈을 토해냈다. 순간 안색은 거의 잿빛이 됐지만 그는 억지로 몸을 움직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세상에 녹아들더니 사라졌다.
“살아남다니!”
흠칫 놀란 요빙운은 재빨리 한제를 뒤쫓기 시작했다.
한제와 요빙운이 사라진 그곳의 반경 10만 척은 침묵에 잠겼다. 한제를 쫓던 수련자들은 요가 사람이건 다른 수련성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대부분 목숨을 잃은 상태로 파문이 흩어져 사라진 그곳은 피 안개로 가득했다. 허나 이들은 허목을 쫓기 위해 서쪽 구역에 몰려든 이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머지않아 이곳으로 수많은 빛줄기들이 날아들었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려낸 수련자들은 이 참극에 충격을 받았으며, 동시에 더욱 살의를 불태웠다.
“허목을 살려둬서는 안 돼. 지금 잡지 못한다면 반드시 복수를 하러 올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허목과 요가 사이의 일이 아닙니다. 마도자 허목을 죽여야만 우리 모두 안심할 수 있습니다!”
“쫓아라!”
그들은 하나둘 한제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특히 요가 사람들은 두 눈이 시뻘게진 채 살기를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 학살의 결과 허목이라는 이름은 더욱 악명(惡名)을 떨치게 됐다. 허나 반대급부로 허목은 나천성역의 신성(新星)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허목은 혼자서 수많은 수련자들과 요가의 추격에서도 살아남았고 기이한 진법으로 그들 대부분을 처리했다. 이에 누구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몇몇 가문은 허목의 추격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도 했다.
뇌선전 안의 운각(云閣)에서 좌선을 하고 있던 청수는 두 눈을 번쩍 뜨고 먼 곳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녀석, 당시의 나를 보는 것 같군. 좋아!”
추격은 점점 격렬해졌다. 한제의 뒤로 수많은 수련자가 줄기줄기 빛이 되어 마치 유성처럼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었다.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약간 비틀거리다가 창백해진 얼굴로 또 한 움큼 선혈을 토해냈다. 그의 안색은 어두웠으나, 그만큼 눈에는 더욱 큰 살기가 담겼다.
‘고신의 피갑(皮甲)이 아니었다면 난 죽었을 거야!’
한제는 수십 척을 더 나아간 뒤 다시 세상에 녹아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서쪽 구역과 북쪽 구역을 나누던 봉쇄선은 사라졌고 이에 자연의 힘 역시 안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한제는 안심할 수 없었다. 요가 여인을 완전히 따돌리지 못하는 한은…
게다가 완전히 도망칠 수 있다 해도 이제 한제 자신이 더 이상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먼저 자신을 건드린 이상, 저들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더구나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뒤쫓는 모습에 한제는 더욱 큰 분노와 살기를 느꼈다. 그러니 어찌 저들을 순순히 놓아줄 수 있겠는가.
‘날 죽이고 싶다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은 당장의 위기를 넘겨야 했기에 한제는 더욱 서늘해진 눈빛으로 세상으로 녹아들었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나천성역 북쪽 구역이었다. 이곳은 그가 연맹성역에서 나천성역에 도착했을 때 처음 이른 곳이기도 했다.
한제는 신식을 넓게 펼쳐 뭔가를 끊임없이 찾았다.
잠시 후, 그는 표정이 약간 변했고 그 순간 뒤에서 파문이 생기더니 요빙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나 그 순간, 한제는 세상으로 녹아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는지 보자!”
요빙운은 살기(煞氣)가 가득한 얼굴로 차게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추격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뒤로 긴 빛줄기들이 나타났다. 한제를 뒤쫓는 수련자들과 요가 사람들이었다.
한제는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는 저들 중 한 명도 남김없이 일망타진할 생각이었다. 특히 끊임없이 세상에 녹아들어 자신을 추격해오는 그 냉정한 얼굴의 여인까지도…
그렇게 결심을 내린 한제의 모습은 나천성역 북쪽 구역에서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큰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