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7
한제는 살인에 굶주린 자는 아니었으나, 세 사람이 이렇게 나오지 않았다면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몸을 빼앗았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었다.
자홍과 양웅, 임두는 노예가 된 뒤 줄곧 유지하던 긴장이 다소 풀렸다.
한제를 바라보던 자홍은 약간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가 빼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신전의 수많은 동문이 그녀에게 구애했지만 지금껏 거절해왔다. 일찍이 결단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혼인을 하지 않기로 스스로 맹세한 그녀였다. 한데 이제 자신은 노예가 돼버렸으니 상대가 침실 시중이라도 들라고 한다면.
자홍의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한제가 여느 사내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세 사람의 정혈을 흡수한 한제는 유혼을 바라보며 턱을 매만지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이 유혼은 내가 가져야겠어.”
잠시 침묵에 잠겨 있던 사람 중 하나가 한참이 지난 뒤에서야 답했다.
“잘 모르는 것 같은데. ‘혼’으로서는 이곳에서 나갈 수가 없어. 소멸의 공간과 생명의 공간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 법칙이 존재해. 그 경계를 감히 넘으려고 하는 존재는 사라져버리게 되지. 그리고 비록 등급은 우리와 비교할 수가 없지만 유혼 역시 혼의 일종이야.”
“영혼이 있는 생물은 뭐든 유혼의 먹이가 되고 유혼은 우리의 먹이가 되지.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직접 삼킬 수 없지만 그 유혼을 거치면 가능해.
높은 등급의 수련자라면 유혼을 두려워하지는 않겠지만 그 수가 많으면 어쩔 수 없겠지. 그러니 우리 입장에서 유혼은 무기이자 노예인 동시에 먹이인 셈이야.”
“유혼이 인간들이 가득한 공간에 간다면 엄청난 재난이 일어날 거야. 생명이 가득한 그 공간에서 유혼은 마혼(魔魂)이라고 불리지. 유혼의 수가 많다면 그 공간은 새로운 ‘소멸의 공간’이 되겠지.”
세 사람이 한마디씩 하는 동안 묵묵히 듣고 있던 한제가 불쑥 물었다.
“그럼 이 역외 전장은 대체 무슨 공간이지?”
“이곳은 생명계의 신통력자가 개척한 혼란의 땅이지. 생명의 공간과 소멸의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곳이야. 그러니까 넌 이곳을 떠날 수가 없어.
유혼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유혼이 마음에 든다면 줄 수는 있지만 어찌됐든 넌 우리와 함께 소멸의 공간으로 돌아가야 해. 그게 탄혼의 사명이니까.”
세 신식체(神識體)의 목소리가 천천히 사라져갔다. 한제는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한제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자 전신전의 세 사람 표정에 긴장감이 어렸다.
허나 셋의 머릿속에는 제각각 다른 생각이 떠올라 있었다. 임두는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저 자 입장이라고 쳐도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을 죽여서 비밀을 영원히 묻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홍은 침실 시중에 대한 생각으로 여태 마음이 복잡했고 양웅은 그저 떨고 있었다. 그는 상대가 마량의 몸을 버리고 자신의 육체를 빼앗을까 두려웠다.
한제는 그늘진 얼굴로 전송진을 향해 몸을 훌쩍 날렸다. 전신전의 세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다가 얼른 그를 뒤쫓았다. 한제의 곁에 붙어 있던 그 유혼은 조심스럽게 멀찍이서 그들을 따라갔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수련자들의 미라는 더욱 늘어갔다. 하지만 한제가 근처에 다가가면 그 미라들에 들어가 있는 유혼들이 얼른 길을 터주었다.
자연스레 그들은 겁에 질려 있는 다른 수련자들의 이목을 끌게 됐다. 시간이 지나자 한제를 포함한 네 사람 곁에 붙어 함께 이동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한제는 전혀 관심도 없는 듯 묵묵히 갈 길을 갔다.
유혼들은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맨 뒤에 있는 수련자 한 명을 삼킨 뒤 한제가 막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그다음 수련자에게 달려들었다.
“안 돼! 아악!”
순식간에 비참한 비명소리가 이어지며 수련자들 사이에서 한 차례 소동이 일었다.
★ ★ ★
다음 날, 전송진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미라가 더욱 많았고 유혼들도 곳곳에 가득했다. 그곳은 일종의 출입 금지 구역이 돼버린 듯했다.
수련자들은 애초에 그 근처로 다가오지도 못했고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든 몇몇 수련자는 단숨에 수많은 유혼들에 뒤덮여 버렸다.
반경 10리 안에는 미리 전송진 안에 들어가 있던 생존자와 한제 일행뿐이었다.
전송진을 힐끗 본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전신전 사람들에게 말했다.
“너희 셋은 진 안으로 들어가.”
세 사람은 토도 달지 않고 대열 앞에 섰다. 다행히 유혼들은 마치 무슨 명령이라도 받은 듯 길을 텄고 세 사람은 무사히 전송진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물러난 한제는 적당한 장소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전송진을 바라보며 눈빛을 번득였다.
그가 손을 꽉 쥐자 가까이 있던 유혼 하나가 부들부들 떨며 그에게 끌려왔다. 한제는 잡아챈 그 유혼을 전송진 쪽으로 보냈다. 그 유혼은 발버둥을 치다가 한제의 명령에 따라 전송진 안으로 향했다.
한제는 정신을 집중해 전송진과 유혼을 살폈다. 진 안에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은 유혼이 다가오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며 각자의 법보를 꺼내들고는 긴장한 눈빛으로 유혼을 살폈다. 그리고 머지않아 유혼이 진을 감싸고 있는 빛의 장막에 닿았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으나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유혼은 빛의 장막에 닿는 순간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와!”
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보고는 너 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진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었다.
“소용없어. 그 진은 생명의 공간으로 가는 입구야. 혼이 닿으면 경계 법칙에 따라 즉시 소멸되고 말아.”
신식을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한제는 믿기 싫었다. 그는 전송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참 후, 그는 눈을 번득이며 두 손으로 허공을 연속적으로 찍었다. 순간 십여 마리의 유혼이 발버둥 치며 둥둥 떠올랐다. 한제가 전송진을 가리키자 유혼들은 곧장 전송진으로 향했다. 그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진에 부딪혀 그대로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가만히 그 광경을 응시하던 한제는 실마리를 발견했다. 빛의 장막에 닿는 순간, 검은색 실 한 가닥이 갑자기 나타나 유혼들을 찔러댔다. 그게 유혼이 죽는 원인이었다.
검은색 실은 너무 빨라 그림자 같은 흔적만 보일 뿐, 정확히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한제는 의심 가득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더니, 곧 신식을 펼쳐 주변 가득한 유혼들을 감싼 뒤 그것들을 모두 전송진으로 보냈다. 한제의 힘에 유혼들은 맥없이 전송진으로 밀려났다.
그 엄청난 기세에 진 안의 수련자들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처음 한 마리가 다가왔을 때는 다소 긴장했고 십여 마리가 다가왔을 때는 꽤나 놀란 정도였지만 1천 마리가 넘는 유혼이 밀어닥치자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끔찍한 심정이었다.
몇몇은 절망감에 두 눈을 꼭 감았고 다른 사람들은 빛의 장막이 제발 저것들을 막아주기를 하늘에 기도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저것들에게 삼켜지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겠노라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
“윽… 아악!”
1천 마리가 넘는 유혼은 빛의 장막에 닿는 순간 마치 바람에 흩날리듯 비명을 내지르며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검은색의 실은 사방으로 불규칙하게 나타나, 어느 위치에 있는 유혼이든 모두 공격했다. 그 검은색 실은 신식체의 말대로 엄격한 경계 법칙과 관련이 있는 듯했다.
한제는 냉정한 눈으로 다시 신식을 펼쳤다. 이번에 그의 신식에 붙들린 유혼의 수는 2천을 넘었고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전송진을 향해 밀려났다. 그리고 이 유혼들이 빛의 장막과 맞닿는 순간, 한제가 오른손을 휘저었다. 줄곧 그의 곁에 머물고 있었던 그 이상한 유혼은 애걸하는 듯한 표정으로 한제를 올려다보며 앞으로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제는 그 유혼을 응시했다. 모든 유혼은 지능을 가졌지만 그에게 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것은 이 유혼이 처음이었다. 허나 유혼을 바라보는 한제의 표정은 냉정했다.
“흑흑.”
그 유혼은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한제의 압박을 못 이긴 듯 앞으로 튀어나갔다. 다른 유혼들은 그 유혼을 보고 모두 길을 양보했다. 한제만큼은 아니겠지만 그 유혼 역시 그들에게는 두려운 존재인 모양이었다.
이때 2천 여 개의 유혼들은 이미 빛의 장막에 닿자 검은색 실에 꿰뚫려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이 순간, 그 변이된 유혼이 그 사이로 뛰어들었다.
한제의 눈빛이 기쁨으로 물들었다. 변이된 유혼의 몸 반 정도가 이미 빛의 장막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그때, 검은색 실이 나와 그 유혼을 꿰뚫었다.
변이된 유혼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도 앞으로 나아가려 애썼다. 유혼은 빛의 장막을 믿고 방심하고 있던 한 수련자의 몸에 달라붙었고 수련자는 비명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미라로 변해갔다.
그런데 그때 그 미라의 사방에서 십여 개의 검은색 실이 나타나 번개처럼 그 유혼을 파고들었다. 변이된 유혼은 곧장 밖으로 튕겨져 나왔고 고통에 찬 표정으로 몸부림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로 변해서 사라졌다.
진 안의 수련자들은 미라로 변한 수련자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양웅이 천천히 다가가 그 미라를 진 밖으로 내보냈다.
한제는 미간을 구기며 신식을 펼쳐 앞쪽으로 조심스레 내밀었다. 전송진의 장막에 닿는 순간, 검은색 실이 나타나 번개처럼 빠르게 신식을 꿰뚫었다.
한제가 얼른 신식을 거두자 그 검은색 실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신식을 쫓아왔다. 한제는 이를 악물더니, 신식을 바로 거두지 않고 그 검은색 실에 맞서게 했다. 변이된 유혼이 검은색 실의 위협을 버티고 어떻게든 진 안으로 반쯤 들어갔던 걸 보면 어쩌면 생각만큼 위험하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검은색 실을 신식이 뚫고 들어간 순간이었다.
퍼엉.
그 검은색 실은 안쪽에서 폭발하더니 신식이 뻗어 나온 방향을 타고 한제에게 접근했다. 한제는 더욱 많은 신식을 그쪽으로 몰았다. 그 검은색 실을 포위한 한제는 그 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
한참 뒤, 속으로 한숨을 내쉰 한제가 신식을 움직이자 검은 실을 움직이는 힘이 산산조각 났다. 그 힘의 구조를 꿰뚫어볼 수는 없었지만 그 검은색 실이 영혼에 얼마나 큰 위해를 가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치 영혼을 소멸시키기 위해 전문적으로 만들어진 존재 같았다.
만약 이런 검은색 실이 일정한 수를 넘는다면 자신도 버티지 못할 것임을 깨달은 한제는 두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참 후 눈을 번쩍 뜬 그는 손을 흔들어 세 개의 저물대를 꺼냈다. 신식으로 그 저물대들을 훑어본 한제는 마량이 가지고 있던 전송용 옥패와 몇 개의 중급 영석을 꺼냈다.
소표와 갈양도 운이 썩 좋지는 못했다. 그들은 마량을 죽이고 얼마 뒤 다수의 유혼들을 마주하게 됐다. 당시에는 어떻게든 도망치는 데 성공했지만 어째서인지 발 닿는 곳마다 유혼들이 득실댔다.
이상하게도 다른 수련자를 뒤쫓던 유혼들도 이들에게 몰려들었고 심지어 어느 수련자를 반 정도 삼키고 있던 유혼마저 삼키던 수련자를 뱉어내고는 이 둘에게 다가왔다.
극의 신식
결국 소표와 갈양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유혼들에게 삼켜졌다. 그들은 마량에게서 빼앗은 저물대를 살필 틈도 없었기에 마량의 저물대는 비교적 말끔한 상태였다.
세 개의 저물대를 다 살펴본 한제는 그 안에 다양한 영석, 법보, 재료 등이 가득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소표와 갈양이 지난 50년간 모은 것들이니 적을 리가 없었다. 중급 영석만 해도 2천 개가 넘었다.
한제는 영석을 손에 쥐었다. 공간의 균열 안에서 많은 노력을 들여 진법서를 통달한 그는 ‘귀갑현멸진(龜甲玄滅陣)’을 구축하는 방법을 기억해냈다. 이 진법은 어떤 공격성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방어력만큼은 훌륭했다. 또한 순간이동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기초 진법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방어 작용을 하는 진법을 구축하려면 대량의 영석이 필요했는데 마침 소표와 갈양의 저물대에는 영석이 넘칠 정도로 있었다.
한제는 진이 열리는 시간을 계산해 천천히 영석을 빻아 가루로 만든 뒤 손가락 끝에 묻혀 하나의 부호를 허공에 그렸다. 획 하나, 그림 하나를 그릴 때마다 공을 들이고 부호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신식 한 줄기를 불어넣었다.
부호는 미미하게 깜빡이더니 허공에 둥실 떠올라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영석 하나를 또 부수어 그림을 더 그렸다. 한 조각의 중급 영석으로는 하나의 부호를 그려낼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가 사용한 중급 영석은 70개를 넘었다. 개중에는 실패하여 폐기된 것도 몇 개 섞여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진법에 통달했다지만 실제로 진을 구축한 경험이 부족해 부호를 그리다가 실패한 결과였다.
허공에 떠오른 49개의 부호를 바라보며 한제는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또 하나의 영석을 꺼내 진의 눈을 만들었다. 오른손을 휘두르자 영석이 떠올랐고 49개의 부호들이 하나하나 그 영석에 찍혔다. 부호가 하나씩 찍힐 때마다 영석은 한 줄기의 빛을 발했다.
부호들이 전부 찍혔을 때 영석은 투명하고 반짝거리는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한제가 손을 뻗자 진의 눈이 곧장 그의 손에 떨어졌다. 그것을 미간에 댄 순간이었다.
위잉-
보이지 않는 파문이 한제로부터 퍼져 나왔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흔적조차 알아차릴 수 없는 파문이었다.
한제는 계속해서 진법을 만들었다. 이제 제법 익숙해져서인지 두 번째 진법은 단 60개의 영석만으로 완성됐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 어느덧 진법이 열릴 시간이 다가왔다. 전송진 안의 수련자들은 모두 바짝 긴장한 채였다. 하루가 1년처럼 길었다.
그들은 진이 빨리 열려 이 끔찍한 곳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붕괴는 더욱 격렬해졌고 공간의 균열의 수도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점점 커졌다.
전송진이 열리는 순간, 한제는 마지막 진의 눈을 이마에 댄 채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