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70
그러나 고신의 피갑을 다시 사용한 순간, 작은 망월들이 곧장 온몸의 촉수를 하늘거리며 한제를 향해 몰려들었다.
한제는 머리가 저릿해졌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피갑을 벗자니 망월의 포효에 원신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고 그렇다고 피갑을 입고 있자니 작은 망월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한데 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한제의 표정이 급변했다.
한 줄기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가 싶더니 전방의 진흙층에서 돌연 한 갈래 균열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길이가 백 척에 이르는 망월 한 마리가 환호하듯 튀어나와 그에게 달려든 것이다.
쩍 벌어진 녀석의 커다란 입은 한제가 보기에 고신의 피갑만을 흡수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한제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작은 망월은 입을 쩍 벌리며 한제의 체내에서 발산되는 기운을 끊임없이 흡수했다. 그 기운은 어떤 수련자도 감지할 수 없는 것으로 상고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마수라고 해도 느낄 수 없었다. 고신의 기운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존재는 성흔(星痕) 담비와 망월을 비롯해 몇몇 종뿐이었다.
솥
눈앞의 망월이 고신의 피갑과 함께 자신까지 한입에 집어삼킬까 두려웠던 한제가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돌연 짙은 서늘한 기운이 사방을 뒤덮었다. 한제는 전보다 더욱 어두워진 얼굴로 곧장 방향을 바꿔 달아났다.
그 순간, 그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곳의 진흙층에 균열이 일더니 길이가 1천 척에 이르는 망월이 포효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잔뜩 흥분한 듯 온몸의 촉수를 꿈틀거리며 입을 쩍 벌리고는 한제를 집어삼키려 달려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방에서 쩌적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돌연 열 개가 넘는 균열이 나타났고 각 균열 사이로 크기가 서로 다른 망월들이 튀어나왔다.
“제길! 끝도 없이 나타나는군!”
한제는 뒤로 물러나면서 체내의 원력을 몸 밖으로 뿜어냈다. 외부로 배출된 원력은 회오리를 형성했고 이에 한제는 더욱 빨리 물러날 수 있었다.
수많은 망월들에게 쫓기던 한제가 순간 자리에 멈춰 섰다.
“허허…”
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앞의 진흙층에 순간 백 개가 넘는 균열이 생겨나더니 망월들이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한제는 망월들에 완전히 둘러싸였다.
한제를 삼키려는 망월들과 한제가 긴장감 속에 대치하고 있던 그때…
“캬오오오!”
돌연 격렬한 포효가 망월의 체내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를 포위했던 작은 망월들이 곧장 뒤로 물러나면서 그 틈으로 통로가 생겨났다.
“이건…?”
한제가 의아해하던 그때, 돌연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길이가 10만 척에 이르는 거대한 망월 한 마리가 그 통로를 따라 달려들었다. 온몸에 회색 빛을 띤 녀석의 속도는 매우 빨랐고 몸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은 혈조의 그것보다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 망월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들어 한제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를 그대로 집어삼키더니 곧장 진흙층을 뚫고 깊숙한 속으로 들어갔다.
녀석이 사라지자 주위에 모여 있던 다른 망월들은 일제히 녀석의 뒤를 따랐다.
길이가 10만 척에 이르는 거대한 망월은 매우 빨랐고 모체와도 같은 거대한 망월의 체내에서 마치 물속을 헤집고 유영하듯 자유롭게 움직였다.
일각쯤 지났을 때, 이 망월은 아주 기이한 곳에 이르러 있었다.
이곳에는 거대한 회오리 하나만이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또한 그 회오리가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짙은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와 사방으로 녹아들었다.
만약 한제가 이 회오리를 봤다면 이곳이 망월의 뇌 속이자 월화(月華)가 존재하는 곳임을 단번에 알아차렸을 터였다.
10만 척 길이의 망월은 돌연 입을 쩍 벌리더니 한제를 토해냈다. 한제는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이내 사라졌다.
회오리 바깥에 모여든 대량의 망월들은 하나같이 그 자리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회오리 속에서 한제는 서서히 눈을 떴다.
그는 10만 척 길이의 망월에 삼켜진 순간 그 안에서 기이한 기운을 느꼈다. 그 기운은 순간 체내로 뚫고 들어와 그의 체내에서 가동된 원력을 정지시켰다. 마치 육신과 원신이 분리된 것처럼 한제를 완전한 일반인으로 바꿔놓은 상태였다.
한제의 심신이 급격히 떨렸다. 하지만 곧 고신의 피갑에서 흡입력이 발산되더니 체내로 들어온 기이한 기운을 곧장 흡수했고 한제 체내의 원력은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회오리 속으로 들어온 한제는 찬 숨을 들이마시며 침착함을 되찾았다.
이곳은 굉장히 좁고 긴 공간이었다. 수많은 촉수가 거대한 솥을 붙들고 그 안의 기운을 쪽쪽 빨아먹는 듯 이따금 불룩 부풀어 올랐다.
‘탐랑의 솥!’
한제는 그토록 원하던 탐랑의 솥을 발견한 후 눈을 번득였지만 이내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솥 주변의 촉수들에 많은 사람들이 뒤얽혀 있었던 것이다.
남녀노소가 뒤섞인 그들은 모두 발가벗은 채 빼빼 마른 상태로 각자가 하나의 촉수에 칭칭 감겨 있었다.
그들의 두 눈은 꼭 감겨 있었고 이미 죽은 것처럼 어떤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을 감고 있는 촉수는 끊임없이 그들의 생기를 빨아먹고 있는 듯했다.
한제가 아는 이는 한 명도 없었고 그중에는 일반인도 섞여 있었다.
예닐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를 본 한제는 한 줄기 서늘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 그 아이는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았고 온몸에는 가죽과 뼈만 남아 있었으며, 얼굴은 극도의 고통과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안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곳에 더 많은 촉수가 있을 것이며, 그 촉수들에도 사람들이 한 명씩 얽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망월⋯⋯.”
한제가 중얼거렸다.
그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 망월에 의해 흡수돼 그 후로 줄곧 녀석의 생명의 근원과 같은 역할을 해왔으리라고 추측했다.
“당시 이 망월로 이루어졌던 운하성(雲霞星)의 도시들은 폐허가 되어 있었지. 분명 이전에는 그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거야. 혹시⋯⋯?”
한제의 시선은 다시 그 남자 아이에게 닿았다.
그때, 돌연 허공에서 수많은 촉수가 나타나 번개처럼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만약 고신의 피갑이 없었다면 그도 일반인처럼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저 촉수들에 휘감긴 채 생기를 빨아 먹혔을 것이 분명했다.
한제는 살기를 번득이며 몸을 훌쩍 날려 엄청난 속도로 내달렸다. 촉수들이 휘적거리며 한제를 잡으려 했지만 그는 연기처럼 유려하게 그 촉수들을 피하며 탐랑의 솥으로 다가갔다.
솥에서는 고래(古來)의 기운이 풍겼고 이 기운은 솥 안쪽에서 더욱 짙게 느껴졌다.
솥을 휘감고 있는 촉수들도 그 안으로는 들어가기 싫다는 듯 바깥쪽에서만 꿈틀거리고 있었다.
뒤에서 촉수들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한제에게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곧장 솥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저 멀리 입구의 거대한 회오리가 돌연 강력한 힘을 분출했다. 뒤이어 한 여인의 허상이 그 회오리 속에서 나타났다. 창백한 여인의 두 눈은 감긴 상태로 모든 지각을 잃은 듯 보였다.
그녀가 나타나자 한제에게 달려들던 촉수 중 반 이상은 곧장 방향을 틀어 그 여인의 허상에 달라붙었다.
솥 안으로 들어가던 찰나, 한제는 그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여인은 바로 요빙운이었다.
요빙운의 옷은 촉수에 휘감겨 부식된 흔적이 있었고 그녀의 저물대 역시 촉수의 힘에 무너져 내려버렸다. 곳곳이 찢기고 해진 옷 사이로 요빙운의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그때, 속눈썹이 살짝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그녀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한제는 솥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곧장 온몸의 원력을 가동했다. 바깥의 촉수들은 한제를 노리는 듯 꿈틀거리며 서로 얽혀댔지만 솥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제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이곳은 그나마 임시적으로는 안전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한제는 곧장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호흡했다. 그의 그림자에서 타산이 걸어 나와 마찬가지로 가부좌를 틀었다.
한제는 심신 깊숙이 밴 피로감을 느꼈다.
그는 본래 선선족 사람들을 청령성으로 데려간 뒤 이원을 찾아 파멸 심금을 배우고 잠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온갖 고초 끝에 나천성역으로 돌아오자마자 요가와 수련자들의 추격에 기를 쓰고 도망쳐야만 했다. 특히 요빙운의 추격에 잠시도 마음 놓고 쉴 수 없었기에 피로감은 축적되어갔다.
뇌의 선계에서부터 지금까지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한 그는 이제야 잠시나마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나를 추격하던 자들은 망월의 공격에 대부분 죽었을 테니 당분간은 나를 쫓아오지 못할 거야. 그렇지 않더라도 나 하나 잡겠다고 여기까지 들어오지는 않겠지. 그러니 이곳은 위험한 동시에 안전한 곳이기도 하다.”
한제는 눈을 감은 채 체내의 원력으로 천천히 원신을 회복시켰다. 원신에서는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지난 며칠 동안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넘겼는데 만약 고신의 피갑이 없었다면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그런 상황도 한제의 도심은 흔들지 못했다. 연맹성역에서도 이미 이런 상황은 여러 번 겪어본 상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경험은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이어져 오고 있었다.
“요빙운… 그녀의 신통력이 원신에 엄청난 상해를 입혔지. 만약 고신의 피갑이 아니었다면 나는⋯⋯.”
사실 그의 육신은 그리 큰 손상을 입지는 않았다. 원신만 곳곳이 망가져 있었다. 허나 다행히도 그 부상들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한편, 요빙운은 회오리로부터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수많은 촉수에 붙들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침착한 눈빛으로 상황을 살폈다.
그녀는 망월과 한제의 협공에 부상을 입고 이곳을 빠져나가려 하던 순간, 망월에게 삼켜졌다.
그 순간 기이한 힘이 체내에 스며들어 원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그녀를 일반인으로 만들어 버렸고 뒤이어 지각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곳에 와 있었고 몸은 촉수로 칭칭 감겨 있었다.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이 그 촉수로부터 전해져와 그녀의 체내에서 분리되어 있던 원력은 서서히 끊임없이 흡수되었다.
그럼에도 요빙운은 냉철했다. 체내의 원력이 사라지고 있음을 눈치 챘으나, 당황해봐야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냉철하게 사태를 파악해야만 벗어날 방법도 찾아낼 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방을 천천히 둘러본 그녀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사방의 수많은 촉수들마다 사람이 하나씩 칭칭 감겨 있는 광경에 그녀의 냉철함도 하마터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뻔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억지로 마음을 안정시켰다. 냉철함을 되찾은 그녀는 촉수가 자신의 원력뿐만 아니라 생기까지도 흡수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됐다.
‘눈 감아!’
요빙운은 잠시 침묵하다가 침착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귀 닫아!’
그녀의 몸이 살짝 진동했다. 이내 두 귀가 순식간에 막히면서 외부의 소리가 단절됐다.
‘숨 참아!’
완전히 안정을 되찾은 요빙운은 이내 들이마시고 내쉬던 숨을 멈춰버렸다.
‘원신 봉인!’
그녀 체내의 원신이 순간 가동을 멈추었다. 원력과 분리되어 있긴 했지만 원신은 가부좌를 튼 채 스스로를 봉인하여 현묘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생각 봉인!’
여기서 생각이란 삶에 대한 생각으로 생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요빙운은 과감하게 그런 삶에 대한 생각을 놓아버렸고 이에 순간 그녀의 육신에서는 생기가 사라졌다. 지금 그녀는 마치 시체처럼 조금의 생기도 풍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