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71
그녀는 폐신(閉神) 선술 중 생각을 봉인하는 단계까지 수련한 상태였다.
사실 이 폐신 선술은 천부적인 자질보다는 도심과 관련이 깊었다. 만약 도심이 굳건하지 않다면 애초에 발휘할 수 없는 술법인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봉인한 요빙운의 체내에서는 쩌적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한 층의 얇은 얼음 결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얼음 결정은 이내 하나로 연결되더니 심지어 그녀를 감싸고 있는 촉수로까지 퍼져 나갔다.
잠시 후, 그녀의 체내에서 피어오르는 한기는 더욱 짙어졌고 얼음 결정이 늘어남에 따라 망월의 체내에는 두께가 3척에 달하는 얼음층이 형성됐다.
★ ★ ★
그 거대한 몸을 움직여 나천성역 북쪽 구역 안을 맴돌던 망월은 어느 날 불현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가 이른 곳은 북쪽 구역의 깊숙한 안쪽으로 사방에는 어떤 수련성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망월은 몸을 천천히 말아 꼬리와 머리를 맞닿게 해 둥근 형태가 되더니 다시 하나의 수련성으로 변해갔다.
몸에 돋은 셀 수 없이 많은 촉수는 줄어들면서 검은 안개를 분출해 망월을 에워쌌다. 점차 짧아지던 촉수들은 결국 1천 척도 안 되는 길이로 줄어들어 이 수련성의 땅에서 하늘거렸다. 사방은 안정을 되찾았다.
균열
한편, 망월 체내의 길고 좁은 기이한 공간 속에서 한제는 밝은 눈빛을 번득였다. 원신에 입은 부상을 회복시키기는 결코 쉽지 않아 꽤 오랫동안 치료를 했는데도 8할 정도만 회복됐을 뿐이었다.
한제는 번개와 같은 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솥의 벽을 바라보았다. 그 벽에서는 고대 신의 기운이 짙게 느껴졌다. 이 기운은 망월에 의해 계속해서 흡수되고 있었지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망월은 날 죽이지 않고 이곳에 내던졌다. 이곳은 망월이 생기를 흡수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고대 신의 기운을 흡수하는 곳이기도 한 것이군!”
이 거대한 망월은 고대 신의 기운을 가진 사람이나 물체도 모두 이곳에 던져 넣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분명 고대 신과 관련한 다른 물건도 있을 거야!”
한제는 두 손을 들어 솥의 벽을 꾹 눌렀다. 그러자 신식이 그의 두 손을 타고 솥 안으로 흘러들었다.
“탐랑이 이 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사용했다면 나 역시 할 수 있어!”
한제는 신식을 펼쳐 솥에 녹여낸 순간, 거대한 흡입력이 자신의 신식을 미친 듯이 빨아들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촉수들이 발산하는 힘일 터였다.
이런 상황을 이미 예측한 상태였기에 한제의 신식은 성난 파도 속 조각배처럼 그 힘에 대항하며 큰 솥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그리고 그 흡입력 아래 한제의 신식은 조금씩 솥을 뒤덮어갔다.
한제는 가까스로 그 솥에 자신의 신식으로 낙인을 찍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솥을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역시 쉽지 않은 일이로군.”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으나, 포기하지 않고 신식을 계속해서 펼치며 끊임없이 낙인을 남겼다. 동시에 촉수의 흡입력에 저항도 해야 했는데 이는 한제의 수준으로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낙인을 찍던 한제는 약간의 흔적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큰 솥의 한쪽 구석에는 누군가가 새겨놓은 복잡한 문양이 하나 있었다.
그 문양은 깊게 새겨져 있지는 않은 터라 바깥에서 보기만 해서는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도 없었다. 심지어 신식으로 훑는다 해도 지금의 한제처럼 하나하나 더듬어가며 찾지 않는 이상 발견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 문양에는 신식의 낙인 하나가 남아 있었는데 신식을 뻗어 그 낙인에 접촉시킨 순간 한제의 눈이 더욱 서늘하게 번득였다. 그 낙인에서 탐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탐랑! 살아 있는 모양이군!”
한제의 눈에서 번득이던 서늘한 빛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사라져갔다.
“탐랑은 죽지 않았고 그의 낙인이 아직 존재한다. 그러니 내가 이 솥을 통제할 수 없었던 거지. 하지만 탐랑의 신식과 낙인이 아직 존재하는데 어째서 난 이 솥에 낙인을 남겨놓을 수 있었던 거지?”
고민하던 한제의 시선이 탐랑이 남겨놓은 문양에 이르렀다.
“이 솥은 고대 신 서사가 내던진 것이다. 허나 서사의 기억에는 이 솥의 형태만 남아 있을 뿐 그 구체적인 사용 방법은 없어. 내가 얻어낸 기억의 유산도 완전하지는 않으니까.”
한제는 신식을 펼쳐 그 문양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뒤, 그의 눈이 점점 밝아져 갔다.
“탐랑, 재능만큼은 정말 뛰어난 자로군! 그는 이 솥을 얻고 나서도 사용 방법을 알지 못해 조종할 수 없음을 알고는 다른 방법을 만들어낸 거야! 어떻게 이런 문양을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양을 솥에 새겨 넣음으로써 솥에 다른 신통력을 연결시킨 것이지. 그가 실제적으로 조종한 것은 이 문양이었어. 그 문양을 이용해 이 솥으로 몇가지의 신통력을 발휘하게 한 거야!”
탐랑과는 적대적인 관계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한제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솥 전체에 걸쳐 펼쳐놓은 신식을 그 문양에 집중시켰다.
“저 신식 낙인을 지우면 이 솥은 원주인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한제의 눈에 흥분한 기색이 어렸다.
한데 바로 그때, 한제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신식까지 모조리 거두어들였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가슴팍을 눌렀다. 연속적으로 몇 번이나 몸을 두드리자 온몸이 순식간에 완벽히 가려졌다. 그는 그 상태로 신식을 한 줄기 남겨 외부를 관찰했다.
한 줄기 서늘한 기운이 미친 듯이 이 좁고 긴 공간에 들어찼다. 그 서늘한 기운은 멀지 않은 곳의 어느 촉수에 얽혀 있는 비쩍 마른 한 노인으로부터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노인의 몸에는 이전까지만 해도 일말의 생기도 없었지만 서늘하고 음산한 기운이 체내에서 발산됨에 따라 생기가 맹렬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생기는 너무도 짙어 노인의 비쩍 마른 몸은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노인의 두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고 깨어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신식으로 이 광경을 살피던 한제는 심신을 바르르 떨었다. 그의 수준과 생사윤회의 경지를 통해 한제는 그 노인의 몸은 엄청난 생기로 가득 차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한 줄기의 사기(死氣)도 숨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그 사기는 거대한 생기에 완전히 억제되어 있을 뿐이었다.
노인의 몸이 갈수록 커지면서 이내 펑 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오더니 온몸의 뼈가 그 팽창을 버티지 못한 듯 산산이 쪼개지고 말았다.
노인의 몸은 뼈와 분리된 채 곧장 더욱 매섭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이 미친 듯이 그의 체내로부터 발산되어 사방을 뒤덮었다. 촉수들도 그 한기에 느릿하게 오그라들며 수축했다.
노인의 몸이 어느 정도 부풀어 살덩이로 이루어진 공과 같은 형태를 이루자 피부에는 가늘고 긴 혹이 나타났다. 이 혹은 노인의 살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이내 날카롭고 음울한 소리들이 노인의 체내에서 울려 퍼졌다. 무척 익숙한 소리로 그 소리를 듣자마자 한제의 표정이 구겨졌다.
바로 그때,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노인의 몸이 돌연 부르르 떨리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줄기 균열이 일어났다.
그 균열을 통해 짙은 한기를 품은 기운이 노인의 육신으로부터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고 그 뒤를 이어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사방의 촉수들이 하늘거렸다. 마치 새로운 동료를 환영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찰나의 순간, 20척 정도 되는 가늘고 긴 생물이 노인의 육신에 난 균열을 비집고 나왔다.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그것이 나타나자 노인의 육신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붕괴된 노인의 몸에서 분출된 것은 폭풍과도 같은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뿐이었다.
그 기운과 함께 20척 길이의 길고 가느다란 생물이 나타나는 것을 본 한제의 심신이 바르르 떨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작은 망월이었다.
갓 태어난 듯 작고 몸도 아직 투명한 이 망월은 방금 무너져 내린 노인의 육신을 흡입했다. 순간 노인의 온몸은 녹아내린 것처럼 모조리 망월에게 흡수됐다.
이어 그 망월은 몸을 꿈틀거리면서 끊임없이 사방의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을 삼켜댔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 그 몸이 20척에서 1백 척으로 늘어났다. 몸에 돋아난 촉수들도 점차 암적색을 띠었고 그 모습은 갈수록 험악해져 갔다.
녀석은 몸을 꿈틀거리더니 번개처럼 전방의 회오리를 향해 달려들었고 관통하듯 그 안으로 들어가 이내 사라졌다.
망월이 떠난 뒤 사방의 촉수들은 점차 원상태를 회복했다. 사방을 가득 채웠던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 역시 그 촉수들에 흡수되면서 점점 사라져갔다.
사방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저 한 사람이 사라졌을 뿐이다.
이전까지 노인을 감싸고 있던 촉수는 느릿하게 수축하면서 허공으로 사라졌다.
한제는 찬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망월의 수가 그토록 많았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군. 서사의 기억대로라면 망월은 고대 신의 몸을 떠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죽는다. 한데 지금 이 망월은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련자와 일반인들을 이용해 새롭게 태어나면서 하나의 순환을 이루고 있어. 이 망월은 분명 아주 오랫동안 놀라운 변화를 겪었을 것이야.”
한제는 망월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금 벌어진 일을 통해 단박에 7, 8할 정도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바깥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낙인이 찍힌 곳에 신식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이내 그의 신식과 탐랑의 신식이 매섭게 충돌했다.
탐랑의 최고 수준은 지금의 한제와 거의 비슷했다. 게다가 탐랑은 중상을 입은 까닭에 지금 이 솥에 남아 있는 그의 낙인은 상당히 흐릿했고 한제의 신식과 충돌하자 금세 무너져 흩어졌다.
탐랑의 신식을 제거한 한제는 그 문양에 자신의 낙인을 찍었다.
이 솥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 탐랑은 구사일생의 위기를 넘긴 때였다. 허나 이 솥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이에 그는 온갖 힘과 1천 년이 넘는 시간을 들인 끝에 문양을 새겨 넣음으로써 간단하게나마 솥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허나 이제 와서는 원수 격인 한제만 도운 꼴이 됐다.
신식으로 그 문양에 낙인을 새긴 순간, 한제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아주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심지어 고신의 피갑과도 연관됐다. 다만 이 느낌은 아주 흐릿하고 모호해 마치 한 층의 막으로 가려진 듯했다.
한제는 이렇게 모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 솥을 완벽하지 않은 방법으로 통제했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이에 그는 솥을 간단하게는 조작할 수 있어도 그 진정한 위력까지는 발휘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제는 급하지 않았다.
“연맹성역으로 돌아가 본체에게 이 솥을 통제하게 하면 분명 그에 상응하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한제는 마음속에 떠오른 모호한 느낌을 따라 신식을 움직였다. 그러자 솥은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하더니 한 줄기 파문을 일으켰다.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사이, 솥 안에서는 한 줄기 하얀 기운이 솟아올랐다. 매우 짙은 이 기운은 곧 한제의 온몸을 감쌌는데 그 순간 그는 솥에 녹아든 듯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자신이 곧 이 솥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어떤 생각이 떠오른 그가 낮게 외쳤다.
“이형(移形)!”
그러자 솥이 진동하더니 이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솥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자신을 칭칭 감싸고 있던 촉수들로부터 벗어난 곳이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 촉수들은 꼼짝도 않고 이전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여전히 솥을 끌어안고 있다고 착각하는 듯이…
솥 위로 솟아오른 한제는 하얀 연기로 휩싸여 있어 마치 구름 속의 선인 같아 보였다.
한제의 시선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요빙운에게로 향했다.
좀 전까지는 솥에 새겨진 신식 낙인에 정신이 쏠려 있어 그녀를 자세히 관찰하지 못했으나, 이제 솥을 손에 넣고 시간적 여유도 생겨 그녀를 제대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얼음층에 뒤덮인 반라의 요빙운은 묘한 아름다움을 풍겼다. 본래 그 외모는 원체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눈을 감고 있어 특유의 냉랭한 눈빛이 가려진 탓에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유약함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한제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의 눈빛은 잔잔한 수면처럼 침착하고 고요했다.
“정말이지 기묘한 공법이로군. 원력이 분리된 상태에서도 저런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다니… 체내의 모든 것을 봉함으로써 망월이 흡수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 다만 그 역시 망월을 과소평가한 행동이다! 머지않아 저 봉쇄는 무너질 거야.”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들어 요빙운을 감싼 얼음층을 두드렸다.
“넌 날 줄곧 쫓았고 두 번이나 내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런 너에게 복수하지 않는 것은 이한제가 아니지!”
한제는 냉소하며 오른손 검지로 얼음층을 꾹 눌렀다. 그러자 체내의 풍족한 원력이 그 손가락을 따라 얼음층으로 흘러들더니 쩌적 소리와 함께 수많은 균열이 나타났다.
허나 이 균열들은 요빙운의 몸으로부터 1촌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른 뒤부터는 더 확장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