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72
한제는 더욱 서늘한 눈빛으로 얼음층 안의 요빙운을 노려보며 체내의 한곳을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눌렀다.
쩌적! 쩌적!
한제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두드리자 얼음층은 점차 큰 조각으로 부서져 떨어져 내렸고 결국 요빙운으로부터 1촌 이내의 얼음층만 남게 됐다.
“이 여인은 요가 세 번째 세대 사람들 중에서도 뛰어난 자일 터. 요가에서 날 죽이려 한 이상 난 이 여인을 제련하여 선위로 만들겠다.”
상대가 제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라 해도 적이라면 합당한 복수를 하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게다가 요빙운이 아름답다고 해도 당시 류미의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했다.
“네가 나를 쫓지 않았다면 오늘과 같은 일도 없었을 터! 이 모든 것 역시 인과다.”
한제는 원신의 정기를 토해 요빙운을 감싼 얼음층을 에워쌌다. 얼음층은 끊임없이 녹아내렸다.
다시 쩌적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요빙운을 끝까지 감싸고 있던 얼음층에 마침내 균열이 일어났다.
사실 요빙운의 원력이 회복된 상태에서 폐신 선술을 발휘했다면 절대 이렇게 쉽게 파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력과 분리된 상태였기 때문에 한제에게 기회를 준 셈이 되어버렸다.
요빙운의 몸을 두르고 있던 얼음층에 대대적으로 균열이 일어난 그 순간, 그녀는 느릿하게 두 눈을 떠 한제를 바라보았다.
완벽한 봉인
요빙운의 두 눈이 번쩍 뜨인 순간, 한제는 차게 웃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을 쫙 펼쳐 체내의 원력을 그 끝에 응집시켰다.
원력은 그 다섯 손가락을 타고 다섯 갈래의 빛이 되어 곧장 그 요빙운을 감싼 얼음층에 떨어졌다. 동시에 한제는 곧장 뒤로 물러나며 참라결을 발휘하여 매섭게 내리쳤다.
허나 그 참라결이 노리는 것은 요빙운이 아니라 그녀의 몸을 감고 있는 촉수였다.
펑! 펑!
다섯 갈래의 원력은 얼음층에 떨어지자마자 다섯 마리의 용이 된 듯 그 안에 있는 요빙운의 육신까지 파고들었다.
“네 도는⋯⋯ 무엇⋯⋯ 이냐⋯⋯.”
요빙운은 피하기는커녕 다섯 마리 용이 체내로 뚫고 들어오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창백해진 얼굴에는 도심만을 추구하는 그녀의 굳건함이 드러났다.
위기의 순간,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심을 이용해 한제와 경지의 전쟁을 벌이려 했다.
하지만 한제는 이미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할지 알고 이에 대비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한제와 요빙운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죽더라도 끝까지 붙어보고자 하는, 쓰러지더라도 상대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고자 하는…
요빙운 앞에 하나의 허상이 떠올랐다. 열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의 허상이었다.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 소녀는 유약하고 무기력해 보였다.
입을 연 소녀는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으나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벙어리인 것 같았다.
소녀의 허상이 나타난 그때, 한 줄기 슬픔이 어린 도의 경지가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한제가 이전에 발휘했던 참라결이 요빙운의 몸을 칭칭 감고 있던 촉수에 닿았다.
한제는 참라결의 힘을 정확하게 조절하여 촉수를 베어내지는 않고 자극하기만 했다. 이에 촉수는 맹렬하게 수축하기 시작했다.
“크으으…”
온몸을 칭칭 감은 촉수가 수축하자 그 촉수에 감겨 있던 요빙운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고 입가로는 선혈이 주룩 흘러내렸다.
그녀의 뼈는 더 이상 그만한 압력을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다.
수축한 촉수는 더욱 맹렬하게 꿈틀거렸다.
참라결의 자극에 촉수는 폭주했고 그 안에 감겨 있는 요빙운의 두 눈은 점점 어두워졌다.
원력을 잃어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 그녀의 몸으로는 견딜 수가 없었다. 비참한 웃음을 흘리던 그녀의 눈에서 절망감이 드러났다.
육신의 고통이 그녀의 도심을 불안정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촉수의 흡입력은 참라결에 의한 자극 이후 더욱 강해졌고 이제 그 촉수는 원력과 생기뿐만 아니라 요빙운의 도념(道念)까지 흡수하기 시작했다.
요빙운 앞에 떠올랐던 소녀의 허상은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흩어져 사라졌다.
“동생아⋯⋯.”
요빙운은 사라진 소녀의 허상을 바라보다가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생기와 도념, 그리고 원력 모두 촉수로 빨려들었다.
요빙운의 경지는 펼쳐졌다가 곧장 흩어져 사라졌지만 그 경지에 어려 있던 슬픈 감정에 한제의 심신은 바르르 진동했다.
그 순간, 한제는 두 손가락으로 요빙운의 몸을 빠르게 두드렸다.
펑! 펑!
얕은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요빙운의 몸을 감싼 얼음층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떨어졌고 그 안에 감춰져 있던 요빙운의 몸이 드러났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줄기줄기 금제의 봉인을 만들어 냈다. 그 봉인들은 끊임없이 요빙운의 몸에 떨어졌고 육신을 따라 원신에 하나하나 찍혔다.
계속해서 봉인을 이어가면서 한제는 왼손으로 인과의 채찍을 소환해 후려쳤다. 인과의 채찍은 곧장 요빙운의 체내로 스며들어 그 원신을 꽉 붙들어 맸다.
한제는 그러고서 안심할 수 없다는 듯 저물대에서 존혼번을 꺼내 요빙운을 물샐 틈 없이 꽉 감쌌다.
마지막으로 입을 쩍 벌린 한제는 봉선인을 토해낸 후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낮게 외쳤다.
“봉인!”
봉선인에 새겨진 수십만 개의 금색 문양이 번득이면서 맹렬하게 튀어나왔다. 마치 한 줄기의 금색 강이 흐르는 것만 같은 장관을 이루었다. 그 문양들은 요빙운의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 하나하나 떨어지는 그 문양들은 모두 봉인 작용을 했다.
수십만 개의 문양들로 봉인을 하고 나서야 한제는 마음을 놓은 듯 뒤로 물러나 솥 위에 섰다. 그리고는 결인을 그린 손으로 봉인된 요빙운을 가리키며 가볍게 외쳤다.
“이형(移形)!”
그 순간, 솥이 크게 진동하며 망월의 몸을 가를 듯 강렬하고 포악한 힘을 발휘했다. 그 힘이 퍼져 나가는 사이, 요빙운의 몸은 별안간 사라져 버렸다.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한제는 층층이 봉인된 요빙운을 오른손에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치 법보처럼 그녀를 저물대에 쑤셔 넣었다.
“이 망월의 체내는 선위를 제련하기에는 좋은 장소가 아니지.”
한제는 솥 안으로 들어가 마음속으로 조종해 천천히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솥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단절 작용을 하는 듯 사방의 촉수들은 함부로 달라붙지 못했다.
당시 탐랑도 이런 방식으로 수많은 망월들의 촉수를 피해 몇 번이고 도망쳤지만 결국 망월 본체의 신통력으로 인해 한 번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를 통해 이 하얀 연기가 망월의 체내에서 은닉의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제는 신중하게 이동하며 사방을 살폈다. 그리고 촉수에 얽혀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좁고 긴 길을 따라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촉수의 수는 점점 많아졌고 그 촉수에 얽힌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끔찍해졌다. 죽음 직전에 이른, 극심한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들이었다.
그렇게 나아가는 동안 고대 신의 기운을 품은 기물은 전혀 보지 못했으나 한제는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촉수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빽빽해지면서 길은 금방이라도 막힐 듯 좁아졌지만 큰 솥의 기이한 신통력 덕분에 한제는 순간이동을 하듯 빠르게 그 길을 지나올 수 있었다.
과연 얼마나 지났을까?
촉수에 감겨 있는 일반인과 수련자들의 모습에 변화가 나타났다. 이전과 달리 그들은 비쩍 마르지도 생기가 전혀 없지도 않았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너무나 유약하긴 해도 생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기는 한제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짙어져갔다.
한제는 우뚝 멈춰 서서 끝없을 것만 같은 앞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이 망월은 외부에서부터 생명을 흡수하는군. 내부로 들어갈수록 사람들이 가진 생기는 짙게 느껴지고 있어. 어쩌면 정신을 잃지 않은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몰라!”
생기를 가진 사람이 점점 많아졌지만 한제는 멈추지 않고 더 깊은 곳으로 계속해 들어갔다.
한데 그때, 한제의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영혼을 통해 속삭이는 듯한 부름에 한제의 심신은 바르르 떨렸다.
“이리 와⋯⋯. 이리 와⋯⋯.”
마음속에서 한 차례 폭풍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큰 솥을 봤을 당시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그 목소리에는 관통력도 포함되어 있어 한제의 육신과 원신을 가르고 그의 영혼 안에서 메아리쳤다.
이 부름에 영향을 받은 것은 한제뿐만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진 연맹성역 안 어느 수련성 안에 있는 본체 역시 그 부름에 영향을 받았다.
본체는 수련성 안에서 그 순간 두 눈을 번쩍 떴다. 두 눈은 태양처럼 강렬하게 번득였다.
“이리 와⋯⋯. 이리 와⋯⋯.”
무궁무진한 힘이 깃든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한제는 그리로 가야만 한다는 강력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한제는 두 눈을 감았지만 이내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결심한 듯 앞으로 내달려 그 목소리의 근원을 향해 나아갔다.
바로 이때, 거대한 망월은 다시 잠에 들기 시작했다. 사방의 우주는 고요했고 마치 그대로 멈춰 있는 듯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날, 돌연 멀리 떨어진 우주로부터 한 줄기 빛이 엄청난 기운을 품은 채 날아들었다. 그 빛의 주인공은 중년 남자로 당시 망월에 대항했던 그 흑의의 사내였다.
이번에는 허상이 아닌 본체였고 그의 뒤로는 몸집이 1천 척에 달하는 허상의 검은 매가 따라오고 있었다. 이 검은 매의 두 눈은 번개처럼 번득였으며 보기만 해도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이 짙게 느껴졌다.
그가 나타난 순간, 먼 하늘에서 한 줄기 천둥번개가 콰르릉 하고 쏘아지듯 달려들었다. 그 천둥번개를 타고 한달음에 망월 근처에 접근한 이는 염뇌자였다.
염뇌자가 나타나자 먼 하늘 가장자리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더니 10만 척 정도 되는 거대한 팔각형의 진이 나타났다.
그 진 안에서는 흘러넘칠 듯한 기운이 발산되고 있었으며, 점차 그 기운은 더욱 또렷하게 느껴졌다.
팔각형의 진이 빛을 번득이자 온 세상을 뒤흔들 법한 기운이 미친 듯이 퍼져 나갔다.
뒤이어 그 진의 눈 부분이 번득이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네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 네 사람은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소년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냉정해 보였고 심지어 꼭두각시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 소년들은 모습을 드러낸 뒤 곧장 사방으로 퍼져 수련성이 된 망월의 동서남북에 섰다.
각자의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들의 머리 위로 네 개의 붉은 혈단(血丹)이 떠올랐다. 뒤이어 혈단에서 한 줄기 붉은 빛이 튀어나오더니 다른 혈단에 연결되면서 망월을 포위한 듯한 형태를 이루었다.
잠시 후, 10만 척 크기의 거대한 진 안에서 붉은 옷을 입은 향가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는 담담한 표정이었으나 온몸에서는 짙은 살기(殺氣)를 뿜어내고 있었다.
“향 도우가 가문의 네 봉신(封神) 동자를 데리고 왔으니 달 마수를 성공적으로 손에 넣을 가능성이 좀 더 높아졌군! 공손 도우도 혹시 다른 도우를 초대했는가?”
염뇌자는 네 명의 동자를 바라보며 웃었다.
“신공 가문의 선조와 전가의 열운자가 오기로 했지!”
흑의의 중년 사내, 즉 공손가의 사내가 덤덤하고 느릿하게 답했다.
“난 많은 이들을 부르지 않고 혈신자와 오채도인(五彩道人)만 불렀네. 그 두 사람도 곧 올 걸세.”
향가 노인은 몸을 훌쩍 날려 염뇌자의 곁에 서더니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