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77
“천운자는 3천 6백 개의 분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한 그 분신들은 각각 한 가지의 선술을 가지고 있지. 이는 3천 6백 개의 도를 삼켜 얻어낸 것이야. 그는 수만 년에 걸쳐 그렇게 많은 타인의 도를 삼켰지만 그럼에도 아직 세 번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한제의 얼굴은 어두웠고 고민을 멈출 수 없었다. 그의 오른손은 요빙운의 미간 앞에 멈춰 선 채 가늘게 떨렸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 부지불식간에 횡운산(橫雲山) 동굴 밖에서는 낮이 밤으로 다시 밤이 낮으로 변해가며 순식간에 사흘이 지났다. 그러나 이 사흘은 한제에게는 3백 년과 같은 시간이었고 그의 모습 역시 한순간에 폭삭 늙어갔다.
“도⋯⋯ 무엇이 도인가⋯⋯?”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흘 동안 수차례 그의 입에 올랐던 말이었다. 그는 흐릿한 눈빛으로 스스로에게 묻는 듯, 혹은 뭔가를 찾는 듯 계속해서 그 말만 읊조렸다.
“대체⋯⋯ 무엇이 도란 말인가?”
고뇌에 빠진 그는 체내의 원력이 처음에는 느릿하게 가동되다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사흘째 되던 날에는 체내에 폭풍을 일으키듯 엄청난 기세를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 원력은 한제의 몸을 벗어나 그를 둘러싼 흑백의 회오리를 이루었다.
원력 회오리는 회전하면서 음양처럼 서로 융합되어 있지만 동시에 구분된 상태를 유지했다. 또한 갈수록 격렬해졌고 회전 역시 점점 빨라졌다.
그러나 한제는 이런 변화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지금 도를 탐구하는 데 푹 빠진 상태였다.
그 끊임없는 탐구와 질문에 그의 원신은 태고의 뇌룡과 같았던 모습에서 이전처럼 육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 원신은 육신과 마찬가지로 가부좌를 튼 채 요빙운의 미간에 닿을 듯 말 듯 손을 뻗었다.
마치 한제의 삶을 도를 추구하는 그 일생을 가리키는 듯한 손짓이었다.
이른 아침 햇살이 드리웠을 때, 청령성의 일반인들은 하나둘 잠에서 깨 단조롭고 평범한 삶을 이어갔다.
수련자들은 아침 해의 영기(靈氣)를 들이마셨다. 한데 그날따라 영기가 평소보다 몇 배는 짙게 느껴졌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으나 그들은 기뻐하며 그 짙고 활발한 영기를 흡수했다.
또한 수련자들은 동북쪽으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동북쪽에서는 훨씬 더 짙고 풍부한 영기가 풍겨났기 때문이다. 이에 그들은 높이 솟구쳐 올라 동북쪽으로 달려들었다.
청령성의 동북쪽은 바로 횡운산이 있는 곳이었다. 이 산의 반경 1만 리 이내에는 이미 적지 않은 수련자가 모여든 채 영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심지어 잠깐 들이마신 한 줌의 영기가 그동안 며칠에 걸쳐 흡수한 양에 상당할 정도였다.
이때, 횡운산 꼭대기에는 하늘과 땅의 허상이 나타나 있었다. 이전에 산꼭대기에 모습을 드러낸 흑백의 회오리는 서로 섞여들며 음양의 균형을 이루었는데 멀리서 보면 그 흑백의 구분이 명확했다. 마치 누군가가 그려놓은 것 같은 이 광경에 모여든 수련자들은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영혼으로부터 기인한 그 충격은 원영과 원신에 녹아들어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이들이 푹 빠져 헤어날 수 없게 했다.
한데 그 순간, 청령성의 모든 수련자들은 영혼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이⋯⋯ 도인가?”
그 목소리는 인생의 갖은 일들을 다 겪어본 듯한 노련함이 깃들어 있었으며, 집요한 의지와 도를 추구하는 위엄 역시 배어있었다. 이에 그 목소리를 들은 자들은 벼락을 맞은 듯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들의 심신은 그 질문에 따라 자문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도인가?”
한편, 한제가 있던 동굴은 한 줌 바람에 재가 되어 내려앉았고 그 재는 멀리서 불어온 바람에 회색 안개처럼 저 멀리까지 날려갔다.
산꼭대기에 있던 동굴이 무너져 내리자 그곳에는 한제와 쓰러져 있는 요빙운만이 남아 있었다. 한제의 손가락은 여전히 그녀의 미간에 닿을 듯 말 듯 뻗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머리 위 저 높은 곳에서는 음양이 어우러진 흑백의 원이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청령성의 영기는 그 원이 회전할 때마다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 순간, 온 청령성의 하늘은 흑백으로 뒤덮여 있었다.
만약 혈조와 같은 수준의 수련자가 이를 봤다면 깜짝 놀랐을 터였다. 이런 현상을 일으킨 것은 두 번째 수준의 수련자들이 ‘꿈의 도’라고 부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팽조라고 불리는 한 일반인이 꿈속에서 도를 얻고 원고 시대의 선인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그는 1만 개의 도심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해와 달을 관통하여 내다볼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제는 지금 꿈속에 푹 빠져든 채 스스로의 도를 검증하고 찾는 중이었다. 그는 육신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았으나 그것은 원신이 아니었다. 그의 원신은 여전히 그의 육신 안에 존재했다.
“무엇이⋯⋯ 도인가?”
기이한 상태에 접어든 그는 자신의 몸이 느릿하게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흩어진 몸은 청령성에 녹아들었다. 마치 그 자신이 이 수련성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때 빽빽한 숲속에는 작은 마수 하나를 온몸으로 칭칭 감고 있는, 길이가 30척에 달하는 거대한 구렁이가 한 마리 있었다.
녀석은 그 거대한 몸에 힘을 주어 감고 있던 작은 마수의 뼈를 모조리 부순 뒤 한입에 집어삼키려 했다. 한데 그 순간, 녀석은 돌연 몸을 바르르 떨었다.
고개를 든 구렁이는 멀리 떨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녀석의 눈빛이 멍하게 변해갔다.
“이건… 도가 아니야.”
한숨을 내쉰 구렁이는 곧 다시 눈빛이 냉랭하게 변하더니 칭칭 감고 있던 작은 마수를 한입에 집어삼키고는 먼 곳으로 사라져갔다.
숲 밖에는 푸른 산을 끼고 도는 길이 하나 나 있었다. 그 길 위로 한 무리의 마차가 질주했는데 재질도 훌륭하고 좋은 향기까지 풍기는 것을 보면 어느 부귀한 사람의 것인 듯 보였다.
마차를 끄는 말들의 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때, 선두의 마차가 돌연 우뚝 멈추더니 그 안에서 일고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내렸다. 비단옷을 입은 그 아이의 뺨은 발그레했고 피부는 백옥처럼 깨끗했다.
아이는 품에 뭔가를 안은 채 힘겹게 마차에서 내리더니 재빨리 옆의 수풀로 몇 걸음 나아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품에 안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는데 그것은 다리 하나를 하얀 붕대로 감싼 작은 마수였다.
“검둥아, 집에 돌아가.”
소녀는 못내 헤어지기 아쉽다는 듯 작은 마수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작은 마수는 고개를 들고 반짝이는 눈으로 소녀를 마주 보았다.
그때 한 마차의 창에 드리운 발이 홱 젖혀지더니 중년 사내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눈길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맑은 바람이 불어와 발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마차 안의 두 사람은 눈빛이 멍하게 변했다. 다른 마차의 사람들도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그 작은 마수만이 돌연 적대감 가득한 소리를 내더니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의 다친 다리에 대해서는 잊은 듯 풀쩍 뛰어올라 소녀의 뒤에 이르더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끊임없이 낮게 그르렁거렸다.
마수의 눈에는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지만 물러나지 않고 계속해서 낮게 포효했다.
다리를 감싼 붕대에 피가 배어 나왔지만 녀석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천도에는 끝이 없고 대도(大道)에는 한이 없다. 선행을 베푼 것은 오늘의 원인이 됐고 나중에는 저절로 순환을 이루어 결과를 맞게 되리니⋯⋯.”
노련한 목소리가 하늘 가득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는 알 듯 말 듯한 깨달음이 깃들어 있었다.
작은 마수는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포효는 멈추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녀석은 사방이 질식할 듯한 공기로 차오르고 있음을 알았으나 뒤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노련한 목소리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고 이는 느릿하게 흩어져 사라졌다.
작은 마수는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그 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허나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눈앞에 나타난 환상을 볼 수 있었다.
인생의 말엽에 접어든 늙은 부인이 호화로운 방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지만 그 인자한 표정은 가려지지 않았고 죽어가고 있었지만 두 눈은 여전히 반짝거렸다.
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가 두 눈을 감은 순간, 돌연 거대한 마수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 마수는 노부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하얀 연기를 토해내 부인의 온몸을 감싼 뒤 떠났다.
“검둥아⋯⋯.”
늙은 부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환상은 사라졌지만 작은 마수의 눈은 더욱 큰 혼란에 휩싸였다. 미풍이 불어오자 마차의 모든 사람들은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잊기라도 한 듯 퍼뜩 정신을 차렸다.
소녀 역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웃으며 몸을 돌리더니 작은 마수에게 다시 한 번 조용히 말했다.
“검둥아⋯⋯ 집으로 돌아가.”
깨달음
일반인 세계의 어느 마을 한 중년 부인이 실수로 그릇을 깨뜨린 아이를 꾸짖고 있었다. 아이는 잔뜩 움츠러든 채 찍 소리도 못 하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 곁에는 중년 사내가 하나 있었다. 그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담뱃대를 몇 번 빨아들인 뒤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그저 한숨만 내뱉었다.
그때, 맑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아이를 혼내고 있던 부인의 눈이 흐리멍덩해졌다. 곁에 있던 중년 사내도 그대로 멈춰버렸다.
오직 아이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저 그릇에는 원래 금이 가 있었어요.”
아이가 목소리를 쥐어짜내 변명을 한 순간, 어디선가 노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는 이 그릇처럼 완전하지 않고 균열이 가 있으며 언제든 깨질 수도 있지⋯⋯.”
그 목소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불어온 맑은 바람과 함께 금방 사라졌다.
그 순간, 중년 부인의 눈빛이 다시 또렷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좀 전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다시 아이를 꾸짖었고 곁에 있던 중년 사내는 또 한 번 담뱃대의 연기를 빨았다.
오직 아이만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 남자가 허공을 날아가는 것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머니의 질책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두 눈을 비비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그 사내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 ★ ★
어느 산골, 푸른 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당황한 얼굴로 내달리고 있었다. 굉장히 두려운 일을 맞닥뜨리기라도 한 듯 두려움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의 뒤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악을 품은 채 그를 쫓고 있었다. 거리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그녀는 손에 든 긴 검을 매섭게 휘둘렀고 그때마다 사내의 몸에 혈흔이 남았다.
“내 가족을 죽이다니, 나 또한 널 죽이고야 말겠다.”
한데 그 순간, 맑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도망치던 사내의 표정이 흐리멍덩해졌고 그를 뒤쫓던 검은 옷의 여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검을 휘두르려는 듯 팔을 높게 쳐든 상태였지만 내려치지는 않았다.
“또 하나의 원인과 결과로다⋯⋯”.
노련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이내 긴 한숨 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그 순간, 정신을 차린 여인이 팔을 휘둘러 중년 사내의 머리를 깨부쉈다. 뒤이어 그녀는 칼을 내던지고 눈물을 흘리며 북쪽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드디어 복수를 했습니다.”
★ ★ ★
어느 일반인의 도시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우산을 든 행인들이 바삐 움직였고 발아래 웅덩이는 그들의 움직임에 물결을 일으켰다.
하나, 그리고 또 하나⋯⋯ 물결들은 한 쌍의 원인과 결과처럼 오랫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지다가 세상에 녹아들어 그 일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