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81
“동생아, 앞으로 내가 어떤 감정도 가지지 못하는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이 되더라도 널 잊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꼭 기다리고 있어야 해!”
눈물이 툭 떨어져 내렸지만 그녀는 닦을 생각도도 않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요가의 금술 중 하나인 폐신(閉神) 선술의 첫 번째 수련을 시작했다.
이 선술은 감정을 끊는 선술로 수련에 성공하면 극도로 냉정한 사람이 되어 무정의 도를 가질 수 있었다.
“동생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무정의 도를 수련하다니⋯⋯.”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제 요빙운의 도심을 완벽하게 간파할 수 있었다.
“요빙운의 도심은 그녀의 동생이었어. 그래서 무정의 도를 수련한 거야.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 동생을 위해⋯⋯.”
허상의 형태로 요빙운의 곁에 나타난 한제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이 여인의 도심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한제는 요빙운을 바라보다가 이내 사라졌다.
★ ★ ★
횡운산 꼭대기. 두 눈을 번쩍 뜬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넌 나를 죽이려 뒤쫓았지만 동시에 내가 수준을 돌파할 수 있게 해주었다. 너와 나 사이의 인과는 이것으로 끝이 난 셈이지.”
소매를 휘두른 한제는 요빙운의 체내에 있는 봉인을 흩어버렸다. 그러자 요빙운의 몸은 하늘로 솟아올랐다.
잠시 후, 그녀는 눈을 떴다.
두 눈에 빛이 돌아온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횡운산 꼭대기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복잡한 눈빛으로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윤회를 믿나? ⋯⋯당시 요가의 사당에 있었을 때 누군가가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혹시 그게… 너였나?”
원력의 변화
“지금의 내 힘으로는 네 동생을 구할 수 없다.”
한제는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요빙운은 어두운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내가 잘못 들었을지도⋯⋯.”
이내 몸을 돌린 그녀는 눈가가 약간 젖은 채 서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가더니 사라져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제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신 그는 두 눈을 감고 인과의 도에 잠겨 있었다. 점차 그의 몸 밖에서 흑백의 인과가 느릿하게 나타나더니 그의 뒤에 응집되어 천천히 회전했다.
한 번 회전할 때마다 한 줄기 흡입력이 나타나 세상의 힘을 끊임없이 빨아들였다.
흡수된 힘은 원력이 되어 한제의 체내에 녹아드는 동시에 어느 정도 분출되어 천역주로 흡수되기도 했다.
천역주의 표면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표면에 음양의 도안 하나가 나타난 천역주는 한제의 원신 안에서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한제가 가진 인과의 도가 거둔 작은 성공은 인과의 경지를 실체화하여 그의 몸 밖에 응집시켰다. 이 상황은 그가 경지상으로 진정한 두 번째 단계에 이르러 규열기 수련자가 됐음을 의미했다.
이제 그가 원한다면 곧바로 천벌이 떨어질 것이고 이를 이겨낸다면 규열기 수련자가 될 터였다.
‘두 번째 단계의 수준은 규열기, 정열기, 쇄열기⋯⋯ 모두 열(涅)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 이를 내가 본 세 번째 단계와 결합해보면 이 모든 것을 오직 열의를 완전하게 이해하여 깨닫고 그 규칙을 완전히 파악한 뒤에야 마침내 세 번째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는 뜻. 천도에는 끝이 없고 대도에는 한이 없다. 도의 여정은 정말 세 단계로만 나뉘어 있는 것인가?’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을 때 그의 왼쪽 눈에는 양(陽)이, 오른쪽 눈에는 음(陰)이 깃들어 있었다.
음양이 회전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고 횡운산을 중심으로 온 청령성의 모든 영력에는 격렬한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그 영력의 움직임에 따라 온 청령성에는 한 줄기 강력하고 맹렬하게 폭풍이 형성된 듯했다.
이 폭풍은 형태는 없었지만 이 순간 청령성의 모든 수련자들은 그것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강렬한 영력은 미친 듯이 횡운산에 응집됐다.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던 한제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음양의 도안은 회전을 멈추었다.
“원력이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청령성에서는 안 돼. 이곳에 머물렀다가는 청령성이 무너져 내리고 말 거야!”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한데 그 순간, 그는 표정이 약간 변해 먼 곳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어느 곳에서 사 씨 노인이 힘겹게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 일반인의 몸으로는 이 순간 한 걸음 내딛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성지를 순례하는 순례자처럼 횡운산을 행해 굳건히 걸음을 옮겼다.
한제는 시선을 거둔 뒤 다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 ★ ★
눈 깜짝할 사이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한제는 꼼짝도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고 사 씨 노인은 점점 빠르게 다가왔다.
사실 일반인의 몸으로는 버티기 힘든 여정이었지만 노인이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체내에서 한 줄기 뜨거운 기운이 퍼지면서 기운을 차릴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보름 만에 겨우 횡운산 아래에 이를 수 있었다.
높이 솟은 봉우리를 올려다보던 노인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결심을 굳힌 듯한 표정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릎이 깨지고 피가 흘러도 그는 멈추지 않고 산을 올랐다. 그의 마음속에는 강력한 신념이 있었다.
“난 평생 세상의 인륜을 공부했고 학술적으로도 그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나이가 지천명에 이른 지금에야 비로소 나는 그저 강 속의 물고기 한 마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어.”
노인의 표정은 씁쓸했지만 두 눈은 밝았다.
마침내 정상에 오른 그는 두 눈에 태양과 달을 담은 한 사람이 그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노인은 매우 피곤했고 두 무릎은 굳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꼭대기에 앉아 있는 사람의 눈빛을 본 순간 귓가에서 청천벽력이 울리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에 그는 영혼이 칠공을 통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흑백으로 이루어진 음양의 도안을 본 것 같은 착각까지 하여, 얼른 꿇어 앉았다.
“제게 도를 가르쳐주십시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말없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 노인은 청령성에서 가장 덕성과 명망이 높은 일반인으로 이런 사람들은 보통의 일반인들과 달랐다. 이런 자에게는 나름의 도심이 있었다. 묘연하고 모호한 도심이었지만 분명 존재했다.
허나 이런 사람들이 수련에 걸맞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들보다는 심신이 깨끗하고 정결한 소년이 훨씬 더 수련에 적합했다.
이런 사람들은 일단 도를 얻는 데 성공한다 해도 오를 수 있는 수준이 높지 않았으며, 도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은 깊을 수 있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수련의 길이 그다지 길지 못했다.
더구나 눈앞의 노인은 이미 너무 연로하여 그 몸이 영력의 충격을 감당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수련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나이가 적지 않구나. 수련은 절대 하루아침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확실히 심사숙고 해본 것이냐?”
한제가 덤덤하게 물었다.
사 씨 노인은 결연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는 세 살 때 글을 떼고 여섯 살 때 시를 지었으며 열네 살 때 황성(皇城)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언제나 혼란했지요. 하여 저는 스스로에게 묻고 인륜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이 세상에 속박되어 있는 느낌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었지요. 살아온 날이 쌓이고 이제는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처지가 됐습니다. 세상에 속박된 느낌과 혼란에 잠식된 채 생이 다할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일만 남았지요.”
노인의 목소리에는 결연한 빛이 있었다.
“한데 그날,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 그날, 저는 저를 혼란하게 했던 그 근원을 찾아냈습니다. 무엇이 도인가⋯⋯? 강변에서의 깨달음은 제 마음을 휘저었지요. 죽더라도 이곳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도를 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노인을 바라보는 한제의 시선은 상대의 심신을 꿰뚫어볼 듯 밝게 빛났다. 이내 그는 노인 뒤쪽에 나타난 윤회의 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한참 뒤에야 시선을 거둔 한제가 덤덤하게 물었다.
“사청이라 합니다.”
노인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얼른 대답했다.
“난 평생 제자를 거둔 일이 없다. 허나 네 도는 나와 인연이 있으니 너를 기명제자로 받아주마! 이 횡운산을 네 수련 장소로 선사한다. 난 어떤 신통력도 네게 전수해주지 않을 것이나 깨달음만은 얻을 수 있게 해주겠다.”
한제는 한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음양의 도안이 한 번 회전하면서 그의 손가락으로 스며들었고 허공을 따라 노인의 미간에 이르렀다.
사청은 멍한 눈으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한제는 그런 사청을 힐끗 보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발밑에서 안개가 솟아올랐고 한제는 이내 그 안개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날 정신을 차린 사청은 여전히 멍한 눈으로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다가 산꼭대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고 묵묵히 좌선했다.
한편, 한제는 곧장 청령성을 떠나지 않고 선선족이 있는 곳을 찾아 저물대에 남아 있던 종이 부적을 꺼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선족 사람들 중 그것을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그 종이 부적에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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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우주로 나와 한 줄기 빛이 되어 질주했다. 신식을 펼친 그는 이상적인 수련 장소를 찾았다.
며칠 뒤, 한제는 어떤 황토색 수련성으로 향했다. 그곳은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영기도 거의 말라붙었다.
한제는 바람마저 희박한 이 수련성의 땅에 내려섰다.
사방에서는 장기(瘴氣)가 가득 느껴졌다. 일반인이 이 공기를 들이마신다면 단번에 죽음에 이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