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84
한제는 망설임 없이 뒤로 물러났다. 소환된 봉선인이 그를 바짝 따랐다.
“어딜 가려는 게냐?”
혈신자는 차게 코웃음을 친 뒤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 한 걸음에 한제 뒤쪽의 우주에서는 균열이 일었고 이 균열은 이내 뛰어넘을 수 없을 만큼 깊고 넓은 고랑이 됐다. 서늘한 바람이 그 균열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한제는 우뚝 멈춰 혈신자를 응시하다가 불쑥 말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그렇다면 어쩔 테냐?”
혈신자는 한 걸음 내딛어 한제의 퇴로를 끊어놓은 뒤 한 줄기 원력을 천벌의 구름에 녹여냈다.
그 순간, 천벌의 구름은 매우 빠르게 용솟음치며 응집됐고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줄기줄기 붉은 번개가 내리쳤다.
이 번개들은 둘로 나뉘어 반은 혈신자에게로 나머지 반은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사방은 모두 천벌에 뒤덮여 있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천둥들이 그 안에서 폭주했다.
혈신자는 그 번개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다음 순간, 그는 한제 앞쪽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가벼워 보이는 손짓이었다. 심지어 어떤 신통력도 발휘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한제는 심신이 격렬하게 떨려왔다.
어떤 방법을 써도 상대에게서 피하거나 숨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혈신자의 손에는 내리치던 천벌의 번개가 쥐어져 있었다. 한제는 이 위기의 순간 불쑥 외쳤다.
“고요 배이라를 아십니까?”
그 순간, 혈신자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고 그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뒤이어 그의 미간에서는 한 덩어리의 검은 기운이 나타나 두 개의 뿔이 달린, 푸른 마물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 마물이 나타난 순간, 한제의 원신은 체내에서 날카롭게 외쳤다.
“배이라! 어디 있지?”
그 마물이 나타난 순간, 혈신자의 몸은 그대로 멎어버렸다.
한제는 그 기회를 틈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두 손으로 얼른 결인을 그렸다. 수십 개의 붉은 번개가 내리치던 순간, 한제가 소환해낸 고대 신의 손은 바르르 진동하더니 그를 데리고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으로 달아났다.
목표를 잃은 천벌의 번개는 흩어지지 않고 마치 지능을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곧장 방향을 바꿔 다시 달려들었다. 1천 척 정도는 이 번개들에게는 찰나에 다다를 수 있는 거리였다.
허나 한제에게 필요한 것은 이 찰나의 순간이었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였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천벌은 그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나갈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이 천벌을 좀 더 격렬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해!’
한제는 이를 악문 채 오른손을 들었다.
“호풍(呼風)!”
그의 손에서 검은 바람이 나타나 순식간에 짙어지면서 주위를 맴돌았고 천벌이 추격해오던 순간 한 마리 흑룡이 되어 입을 쩍 벌리더니 한 줄기 호풍을 토해냈다.
그 바람은 모든 생명의 불을 꺼버릴 듯 서늘하고 강렬하게 사방을 휩쓸었고 이에 달려들던 천벌의 번개 중 몇 갈래는 곧장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몇 줄기의 번개는 한제를 추격했다.
천벌의 번개가 내리치는 순간, 한제는 원신을 내보내 그것을 곧장 삼켰다. 연속해서 세 개의 번개를 삼킨 원신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그의 체내로 돌아왔다.
원신이 삼키지 못하고 남은 몇 갈래의 번개가 한꺼번에 내리쳤다. 그때, 한제 곁을 맴돌고 있던 나비와 혈연이 앞을 막아섰다.
쾅! 쾅!
연달아 폭발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세 갈래의 번개가 결국 한제에게 다다랐다.
한제는 재빨리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봉선인이 곧장 다가왔고 한제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쾅! 쾅! 쾅!
봉선인이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먹먹한 소리가 그 안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내 한제의 몸이 그 안에서 튕겨져 나왔다.
“우웩!”
피를 잔뜩 토해낸 그는 허공을 움켜쥐어 전광이 흐르고 있는 봉선인을 거두고는 다시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천벌의 구름을 향해 돌진했고 그러자 봉선인에서 금색 문양들이 미친 듯이 번득였다.
한제는 혈신자에게서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상대가 고대 신으로 인해 부상을 당했다 해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허나 천벌의 힘을 빌린다면 도망칠 기회가 아예 없지는 않을 터였다.
혈신자의 미간에서 나타난 마물은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응시하며 몸을 웅크려 다시 혈신자의 체내로 돌아갔다.
혈신자는 요사스러운 눈을 번득이며 앞으로 나섰고 추혼술(抽魂術)을 발휘하려는 듯 오른손을 들어 한제의 정수리를 움켜쥐려 했다.
한제는 재빨리 한손을 들어 올리면서 낮게 외쳤다.
“호풍!”
그가 익힌 것 중 가장 강력한 신통술인 호풍이 다시 발휘됐다. 사방의 검은 바람은 더욱 짙어졌고 전방에 두 마리 흑룡이 나타났다. 본래는 한 마리까지밖에 소환해내지 못했으나 규열기에 이른 지금은 전력을 다하면 두 마리까지 소환해낼 수 있었다.
흑룡들은 한제 주위를 맴돌며 입을 쩍 벌리더니 음산한 바람을 분출했다.
쩌적!
이 음산한 바람은 사방의 공간을 순간 진동하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봉선인에서는 금빛이 번득이더니 한 줄기 번개를 응집해 곧장 혈신자에게 달려들었다.
그 틈에 한제는 저물대에서 선검을 꺼내 모든 원력을 쏟아 참라결를 발휘했다. 한 번, 또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도대체 몇 번이나 발휘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맹렬하게 손을 휘둘렀다.
혈신자는 덤덤한 얼굴로 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봉선인에서 응집된 번개가 무너져 버렸다.
뒤이어 노인이 아래쪽을 가리키자 1백 번이 넘게 중첩된 참라결의 거대한 힘도 뒤로 밀려나며 붕괴했다.
초목개병(草木皆兵)
마지막으로 혈신자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두 마리의 흑룡이 토해낸 음산한 바람은 순간 소멸했고 흑룡들 역시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산산조각이 나 사라졌다.
“선제(仙帝) 백범의 호풍을 가지고 이 정도 위력밖에 내지 못하느냐!”
혈신자의 두 눈이 더욱 요사스럽게 번득였고 그의 오른손은 한제를 움켜쥐려는 듯 허공을 쥐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 선존(仙尊) 청수 앞에서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입에 올려봐라!”
온 우주를 갈라버릴 듯 강렬한 살기를 품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우주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천벌의 구름 역시 급속도로 움츠러들었다.
혈신자가 이전에 규칙에 녹여 넣었던 언출법수(言出法隨)도 이 목소리에 비하면 약하게 느껴졌고 그가 형성했던 규칙의 땅도 무너져 내렸다.
저 멀리 떨어진 요운은 피를 토하며 놀란 눈으로 재빨리 물러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살기가 반경 10만 척의 우주를 뒤덮으며 나천성역 남쪽 영역 안에 있던 모든 수련자들을 휩쓸었고 그중 상당수는 큰 내상을 입고는 피를 토했다.
그 폭풍과도 같은 살기의 중심에 선 혈신자는 훨씬 큰 충격을 받았고 그의 두 눈동자는 바짝 졸아들었다.
한편, 산산조각이 났던 흑룡들은 그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포효를 내지르며 원상태를 회복했다.
허공에서 하얀 옷을 입은 청년 하나가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
혈신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크게 변했다.
“청수 선군!”
혈신자는 얼른 손을 거두고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다가오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은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방금 그 말, 어디 내 앞에서도 다시 한 번 해 보거라.”
청수는 뒷짐을 진 채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의 오른쪽 눈이 붉은 빛을 발했는데 그 안에는 파멸적인 기운이 짙게 배어 있었다.
혈신자는 두 눈으로 요사스러운 빛을 번득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청수 선군, 너와 나 사이에 묵은 원한은 없다. 내가 방금 한 말 때문에 화가 났다면 그 말은 취소하도록 하지. 언젠가 그 말을 한 것에 대한 값을 치르겠다. 허나 저자는 우리 요가와 원한이 깊으니 괜히 끼어들어 명을 재촉하지는 말라.”
혈신자의 반쯤 협박에 가까운 말에도 청수 선군은 여유로운 얼굴로 천천히 다가오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내 사제의 기예가 충분치 않아 요가 사람을 좀 건드렸다 치지.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인가?”
“사제?”
혈신자는 흠칫 놀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청수는 오른쪽 눈을 번득이며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한제가 방금 분출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짙은 검은 바람이 나타나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짙은 그 바람 안에서 포효가 들려왔고 순식간에 여섯 마리의 흑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캬오오!”
이 여섯 마리의 흑룡은 모두 그 길이가 10만 척이 넘어 온 세상을 가득 채운 듯한 기세가 느껴졌다.
동시에 엄청난 위압감이 피어오르며 천벌의 구름을 밀어냈다. 허나 머지않아 천벌의 구름은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듯 더 많이 몰려들었다.
“호풍을 배운 자는 우리 스승님으로부터 전수받은 자라 할 수 있지. 그러니 네가 아니라 당시 요가의 선조라 해도 감히 건드릴 수 없다.”
청수는 차게 내뱉으며 오른손을 뻗어 혈신자를 가리켰다. 순간 하늘에 나타난 여섯 마리 흑룡이 일제히 포효를 내지르며 입을 쩍 벌려 서늘한 바람을 토해냈다.
“내 경고를 무시할 셈인가!”
혈신자는 굳은 얼굴로 외쳤다. 흑룡들이 토해낸 바람에 혈신자조차도 한기를 느꼈다. 이는 한제가 발휘한 것과 같은 신통력이었지만 그 위력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혈신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두 팔을 펼쳐 붉은 빛을 소환했다. 그러자 무려 99마리에 이르는 혈연(血燕)이 나타나더니 핏빛 폭풍을 이루어 음산한 바람과 충돌했다.
쾅!
혈신자와 청수 사이의 공간이 곧장 무너져 내리면서 큰 균열이 나타나 순식간에 퍼져나가 크고 넓은 고랑을 형성했다.
혈신자는 몸을 바르르 떨며 곧장 뒤로 물러나더니 다급히 외쳤다.
“청수, 오랫동안 잠들어 있어 사리분별을 못 하는 모양이군. 내가 너를 선군이라 칭한다 하여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이냐! 난 네가 두렵지 않다. 또한 저자가 호풍을 배웠다 하여 어찌 너의 사제겠는가! 게다가 저자는 우리 가문 사람 여럿을 죽였다. 대관절 네가 무엇을 믿고 이를 방해한단 말이냐!”
혈신자는 청수가 자신의 스승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죄책감은 청수의 마음속에 깊게 박혀 있었으나, 그에 대해 용서를 받을 길이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