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86
“상고 시대 수련자 여걸, 역시 선계에서 죽인 바 있지.”
청수의 목소리에 따라 하나하나의 빛들이 사라지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자는 죽음의 기운에 휩싸여 있었지만 그들에게서는 한제의 심신을 뒤흔들 만한 강력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5품 천선(天仙) 신풍이다. 이자는 선계의 전쟁에서 죽였지.”
“8품 천선 유접, 이 여인은 모반의 전쟁에서 죽었다.”
“3품 선왕(仙王) 성천후, 풍(風)의 선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죽였다.”
“7품 선왕 왕운몽, 이 여인은 정권 쟁탈전에서 내게 죽임을 당했다.”
청수의 얼굴에는 기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이 짙게 드리웠다. 한 마디마다 하나의 빛으로부터 한 명의 허상이 나타났다. 이 광경에 한제만이 아니라 혈신자도 심신이 뒤흔들었다.
선인들의 혼이 드러날 때에는 그들로부터 짙은 살기와 원기를 느낄 수 있었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겠다는, 윤회의 굴레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마음을 품은 듯했다.
그들이 나타난 순간, 이 우주는 연옥으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9품 선왕 요해청, 이자는 내게 선술 유산(流散)으로 죽임을 당했다.”
혈신자와 닮은 선인의 혼이었다. 누구보다 짙은 죽음의 기운을 풍기는 그 혼이 나타난 순간, 혈신자의 표정이 급변했다.
“1품 선군(仙君) 류운, 이자는 선군으로 봉해지는 것을 두고 경쟁하다 내게 죽임을 당했지.”
“우(雨)의 선계 3품 선군 조덕, 이자는 선계에 난입하여 죽였다.”
“5품 선군 진한, 반란으로 일어난 전쟁에서 죽였다.”
“풍의 선계 7품 선군 화한자 오래된 통로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지.”
“우의 선계 9품 선군 청상의 첫 번째 분신, 그녀의 분신은 뇌의 선계와 우의 선계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 처리했다.”
같은 상황이 계속됐다. 이렇게 나타난 이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살기(煞氣)와 원기를 풍겼고 순식간에 청수의 앞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선혼(仙魂)이 모이게 됐다.
한제는 특히나 청상의 허상이 나타난 뒤로 속에서 거센 파도가 이는 것을 느꼈다.
“일평생 나는 수많은 이들을 죽였다. 살두성병을 위해서는 내가 자행했던 모든 살인을 제련하여 죽은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혼을 윤회의 굴레로부터 뽑아내 다시는 그 굴레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면서 나의 일부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만 살두성병을 성공시킬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얻게 된다.”
청수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 안에는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
한제조차 청수가 일평생 행한 살육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선혼들은 곧장 하늘과 땅을 뒤집을 듯 짙고 강한 기운을 폭발시켰고 그 기운이 퍼져나가는 사이 하나하나 혈신자를 향해 튀어나갔다.
혈신자의 얼굴에는 핏기조차 없었다. 그는 가문의 고서에 기록된 선제 백범의 선술 중 살두성병이 이렇게 끔찍하고 놀라운 선술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것은 선제가 아니라 마존(魔尊)이다.’
혈신자는 몸을 떨며 뒤로 물러섰다. 눈앞의 광경에 머리가 저릿해질 지경이었다.
가문의 고서에는 조상 중 한 명인 요해청의 일생에 관한 기록도 남아있었다. 비록 그 내용이 상세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청수의 손에 죽었다는 이야기는 분명 없었다.
“초목의 공격!”
뒤로 물러나던 혈신자는 붉은 눈과 미간에서 요사스러운 빛을 번득이며 외쳤다. 그러자 사방으로 퍼져 수많은 법보로 화한 깃털들이 각 선혼들을 향해 돌진했다.
순간 반경 1천 리에서는 요란한 폭발음과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 전투로 우주는 무너져 내리면서 통제 불능의 경지로 접어들었다.
쾅! 콰쾅! 펑!
이내 나천성역 남쪽 영역은 그 폭발음과 굉음으로 가득 찼다.
이런 상황이 오래 이어진다면 분명 큰 재난이 벌어질 터였다.
한편, 요운은 진즉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는 혈신자 뒤쪽에서 끊임없이 저항했지만 그의 수준으로 완벽한 저항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더구나 연달아 큰 부상을 입은 그는 잔뜩 움츠러든 상태였고 체내의 마물마저도 무너져 내릴 지경이었다.
그 무렵, 혈신자의 신통력은 하나하나 무너져 내렸다. 또한 그가 소환한 깃털로 형성된 법보들 역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붕괴했다.
혈신자가 뒤로 물러나던 그때, 한 선인의 혼이 나타나 자폭했다.
펑!
그 자폭의 엄청난 위력에 혈신자는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혈신자의 사방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선혼들이 모여 심신을 뒤흔들 정도의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혈신자의 눈에 처음으로 두려움의 빛이 드러났다. 이렇게 강력한 죽음의 위기를 느낀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이전에는 선군이었을 것이 분명한 혼들에 혈신자는 겁이 났다. 그 선군들의 혼은 모두 극강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만약 하나뿐이었다면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둘까지라고 해도 승산이 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지금 이미 내상을 입은 상태인 데다가 이렇게 많은 선혼들에 둘러싸인 상태에서는 두려움이 치미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청수! 정말 나를 죽일 셈이냐!”
혈신자는 잔뜩 굳은 얼굴로 몸을 물리며 소매를 휘둘렀다. 우주를 무너뜨리고 규칙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원력이 그의 소맷자락으로부터 발산됐다.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할 이유가 있던가?”
청수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가볍게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와 한 덩어리의 검은 연기로 변했다.
혈신자는 결단을 내린 듯 뒤로 물러나던 중 요운 곁에 이르렀을 때, 오른손으로 그의 미간을 눌렀다. 순간 요운의 두 눈이 튀어나오고 몸이 빠르게 오그라들었다. 온몸의 피와 살, 심지어 원신마저 빠져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크으으…”
비참한 비명이 요운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두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섰다. 동시에 그의 눈에 어려 있던 탁하고 혼란한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정수리 위에 고요의 허상이 나타났다. 이전보다 훨씬 더 실체화된 고요는 빠르게 요운의 체내로부터 자양제를 흡수해 나갔다.
그러는 동안 요운의 몸은 빠르게 쇠약해져갔고 이제는 가죽으로 덮인 뼈와 같은 몰골이었다. 살과 피, 원력과 원신 모두 고요에게 흡수된 상태였다.
요운은 또렷해진 눈빛으로 비참하게 웃었다. 수천 년 전부터 줄곧 찾지 못했던 그 기억을 떠올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요가는 존재하지 않는구나.”
그 말을 끝으로 요운은 저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그의 몸에서 빠져나온 마물은 짙은 요기를 품은 채 혈신자의 체내로 녹아들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혈신자는 마물의 혼을 모두 흡수하고 흘러넘칠 듯한 요기와 함께 어스름한 눈빛을 번득이며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찍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긴 균열이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등잔 하나가 느릿하게 둥실 떠올랐다.
“청수, 네가 날 죽이려 든다면 나 역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혈신자가 이를 갈며 외친 그때, 그의 위로 키가 수백 척에 달하는 거대한 고요의 허상이 나타났다.
빠르게 실체화된 그 고요는 붉은 눈으로 청수를 곧게 바라보다가 소리 없는 포효를 내질렀다.
허나 청수의 표정은 여전히 냉랭했다. 그는 혈신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물의 허상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 순간, 청수의 오른쪽 눈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면서 짙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 상태로 그는 내달렸고 동시에 그의 손에서 나타난 검은 연기 덩어리가 곧장 부풀어 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 30척 높이로 거대해져 혈신자에게로 돌진했다.
혈신자는 이를 악물고는 전방의 등잔을 가리켰다. 그의 몸에서 뻗어 나온 고요 역시 거대한 발을 들어 똑같이 그 등잔을 가리켰다. 등잔에서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한제는 그 등잔이 나타난 순간 그 불꽃의 심지에서 한 소녀의 허상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듯한 소녀의 소리 없는 슬픔은 불빛에 타올라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혈신자의 손짓 아래 등잔의 불은 더욱 격렬하게 타올랐고 순식간에 거대해지더니 화염 속에서 고요의 허상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 고요의 모습은 혈신자의 몸에서 나온 마물과 거의 똑같았으나 내뿜은 기운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짙고 강렬했다.
혈신자의 몸에서 뻗어 나온 마물의 기운이 반딧불 정도라면 지금 나타난 마물의 기운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의 빛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것이 본체구나!”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였다. 등잔에서 나타난 마물이 본체고 혈신자와 요운의 체내에 있던 마물은 그 분신인 셈이었다.
세 번째 단계
“요염서신(妖焰噬神)!”
혈신자가 크게 외쳤다.
그의 외침에 따라 등잔의 화염이 펑 하고 흩어지더니 그 안에서 진정한 고요의 본체가 낮게 포효하며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엄청난 요기(妖氣)가 퍼져나가 나천성역 남쪽 영역 전체를 뒤덮었다.
마치 이 우주 아래, 태곳적부터 존재했던 기운이 깨어난 듯했다.
그 순간, 나천성역 남쪽 영역의 수많은 수련자는 체내의 원력이 불안정해졌고 몇몇 수련성의 마수들은 잔뜩 흥분하여 미친 듯이 그 요기를 흡수했다.
고요는 전신이 불빛으로 뒤덮인 채 거대한 손을 뻗어 청수를 움켜쥐려 했다.
그 손에는 규칙보다 더욱 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어 모든 규칙은 그 앞에서 전부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특히 녀석의 몸에서 타오르고 있는, 수만 년간 단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던 요화(妖火)는 온 세상을 다 태울 듯 맹렬하게 이글거렸다.
청수는 신중하게 거리를 좁혔다. 이때 그의 오른손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 덩어리가 뻗어 나감과 동시에 그의 오른쪽 눈에서 붉은 불빛이 번쩍거리면서 극의 경계가 발휘됐다.
한 줄기 극의 경계가 붉은 번개처럼 그의 오른쪽 눈에서 튀어나갔다.
극의 경계가 발휘되자 모든 생명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사방을 덮은 짙은 요기는 순간 무너져 내렸고 극도로 서늘한 기운에 섞여들면서 빠르게 흩어졌다. 마치 극의 경계 앞에서 그 모든 것들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듯이…
그 붉은 번개에 깃든 힘은 평생에 걸친 청수의 살육을 머금은 채 폭풍을 형성하더니 놀랍도록 빠르게 고요의 본체에게로 달려들었다.
“쿠오오!”
고요의 본체는 손을 들어 그 붉은 극의 경계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크아아아!”
콰르릉 하고 붕괴하는 소리와 함께 고요의 오른손은 곧장 무너져 내렸다. 이어서 극의 경계가 녀석의 체내로 들어가면서 몸 전체가 빠르게 와해됐다. 순식간에 이 고요의 거대한 몸은 펑 하고 완전히 흩어져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 등잔의 불은 더욱 미친 듯이 타오르더니 그 안에서 또 하나의 고요 허상이 응집됐다. 약간 흐릿하고 어두웠지만 그 고요의 미간에는 한 줄기 붉은 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 붉은 빛 안에는 극의 경계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세상 모든 원시적인 신통력은 우리 고요족(古妖族)의 가르침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천도의 힘이 배어 있는 신통력만은 우리 고요족이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나 이 힘 역시 이제는 나의 것이다.”
새로 나타난 고요의 눈빛이 요사스럽게 빛나더니 미간에서 번득이던 붉은 빛이 튀어나와 번개가 되어 곧장 청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붉은 번개는 청수의 눈빛 아래 곧장 무너져 내리더니 사방으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