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87
청수는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한손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허목, 잘 봐라. 이것이 스승님의 6대 신통력 중 네 번째 술법인 산붕(山崩)이다.”
그때, 고요가 거대한 몸을 뒤로 물리며 한손으로 혈신자를 쥐더니 그 거대한 몸으로 혈신자의 체내로 뚫고 들어갔다.
순간 혈신자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얼굴에 푸른 정맥이 울툭불툭 돋아났고 고통으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의 머리는 광풍이라도 부는 것처럼 마구 휘날렸고 빠른 속도로 자라났다.
또한 정수리에서는 허상의 뿔 두 개가 나타났고 온몸에 푸른 빛이 드리워 마치 한 마리의 고요처럼 변해갔다.
혈신자는 초점 없이 요사스러운 빛이 가득한 두 눈으로 짙은 요기를 내뿜었고 포효를 내지르며 곧장 청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청수는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오른쪽 눈에서 붉은 빛을 번득이며 반격을 하려 했다.
그 순간, 그는 표정이 변하더니 고개를 들어 상공을 바라보았다.
한제 역시 고개를 들었다. 은연중에 본원의 기운이 상공에서 내려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기운은 강하지는 않았지만 한제에게는 원하기만 한다면 자신을 무너뜨려 본원의 힘으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이⋯⋯ 이건… 세 번째 단계!”
한제의 표정이 급변했다.
광기에 빠져 있던 혈신자조차 표정이 변해 고개를 들었다.
“됐다⋯⋯.”
침착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뒤이어 셀 수 없이 많은 별로 이루어진 인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 청수와 혈신자 사이에 섰다.
허상은 손을 들어 가볍게 혈신자를 한 번 내리쳤다. 그러자 혈신자는 한 움큼 피를 토해냈고 그의 체내에 있던 고요가 순식간에 튕겨 나왔다.
고요는 경악한 눈으로 허상의 인영을 응시했다.
“고요, 너는 요가의 힘을 빌려 몸을 회복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내가 신경 쓸 바 아니나 나천성역에 재난을 일으켜 연맹성역으로 쳐들어가는 일에 영향을 미친다면 나는 저 꺼지지 않는 요화(妖火)를 꺼뜨릴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 안에는 놀랄 만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순간 한제는 마치 1천 년 전, 자신이 일반이었던 그 당시로 돌아가 수련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버렸다.
저항할 의지조차 품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기운이 여실히 느껴졌다.
“청수 선군, 선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이곳은 나천성역이다.”
허상으로 나타난 인영은 몸을 돌려 이번에는 청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도가 깃든 듯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않았지만 청수의 사방에 콰르릉 하고 천둥소리가 울렸다.
모든 존재를 굴복하게 만들, 일말의 반항조차도 허락하지 않을 듯한 소리였다.
허나 청수는 여전히 냉랭한 눈으로 그 허상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차게 코웃음을 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흐릿하여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허상은 말을 마치더니 두 팔을 펼쳤고 이내 수많은 빛으로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무너져 내렸던 사방의 우주는 빠르게 맞물리며 원상태로 복구됐다.
뿐만 아니라 인영으로부터 흩어진 빛은 멀리까지 퍼져나가면서 온 나천성역 남쪽 영역을 뒤덮고 이번 전투로 망가지고 손상된 부분을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심지어 강력한 요기를 흡수했던 마수들의 체내로 들어간 요기도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한 번 서로를 공격한다면 모두 죽여 버릴 것이다.”
그 목소리를 끝으로 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그 마지막 말에는 모든 생명을 두렵게 만들 법한 기운이 어려 있었고 심지어 짙은 살기도 배어 있었다. 그 살기는 약간만 드러났을 뿐인데도 하늘의 생기 변해버렸다. 만약 그 살기 전체가 드러난다면 온 우주는 소멸해버리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혈신자는 주위의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겨 등잔을 쥐더니 세상에 녹아들어 모습을 감췄다. 이제 남은 것은 청수와 한제뿐이었다.
한제는 여전히 심신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의 충격을 그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허상으로 나타난 인영이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라는 것을 한제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생각만으로도 나천성역 남쪽 영역 전체를 와해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대는 어떤 해도 가하지 않았지만 영혼으로부터 기인한 충격은 너무도 컸다.
한제는 억지로 충격을 잠재운 뒤 청수에게 포권을 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께서 제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청수는 슬픈 기억을 더듬는 듯한 눈빛으로 저 먼 곳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잠시 후, 눈에 담긴 슬픔이 어느 정도 흩어진 후에야 그는 한제를 힐긋 바라보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고마워할 것 없다. 네가 어떻게 호풍을 배웠건 그것을 익힌 이상 너는 스승님의 제자다. 이 청수는 나천성역과 아무런 관련도 없으나 이곳에서 널 만난 것은 어쩌면 스승님께서 미리 계획하신 일인지도 모르지. 너는 체내에 아직 선원을 형성하지 못했구나. 승선지(升仙池)가 아니라면 선원을 응결해낼 수 없지. 뇌선전에서 임명할 108명의 선인 중 36명의 천강(天罡)만이 승선지에 들어갈 기회를 얻는다. 그 36명 안에 들어라!”
“성공한다면 네게 환우와 살두성병 술법을 전수해주마. 성공하지 못한다면 너와 그 두 술법은 인연이 없는 것이겠지. 내가 너를 구해준 것은 네가 호풍으로 스승님과 어느 정도의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보거라.”
청수는 한제를 힐긋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순간 수정처럼 반짝이는 얼어붙은 빗방울 하나가 응결되어 한제의 앞에 둥둥 떠왔다.
“이것은 환우를 세 번 발휘할 수 있는 힘이 깃든 것이다. 만약을 위해 몸에 지니고 있거라.”
몸을 돌린 청수는 허공으로 걸어 나갔다.
“아까 그자는 스승님보다 강하다. 한데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단 말이지. 분명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자야.”
한제는 멀어지는 청수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한 뒤 얼어붙은 빗방울을 챙겨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 나천성역에 세 번째 수준에 이른 수련자가 존재하다니⋯⋯.”
한제는 세상에 녹아들어 모습을 감춘 채 이가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쇄열기 수련자도 그 앞에서는 일말의 반항조차 못 했어. 연맹생역에도 그런 자가 있을까? 어쨌든 난 천역주를 통해 세 번째 단계의 방향을 보았다. 그러니 언젠가는⋯⋯.”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세상에 녹아든 채 빠르게 이동했다.
★ ★ ★
나천성역 남쪽 영역의 어느 구석진 곳에는 파멸성(破滅星)이라는 이름의 수련성이 하나 있다. 아주 오래 전 이 수련성의 이름은 나천성역 전체에 유명세를 떨친 바 있었다.
이 파멸성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상고 시대의 금제를 전수받으며 이어져 내려온 이가였다.
이 가문의 세력은 막강하여 나천성역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명성을 잃었고 파멸금(破滅禁)마저 유출된 상태였다. 오늘날 이가는 뭇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먼지에 뒤덮여 빛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이에 파멸성은 인적도 드물고 황량한 곳으로 변했고 찾아오는 수련자도 거의 없었다. 만약 이가가 아주 오래전 금제로 이루어진 진을 설치해놓지 않았다면 이 파멸성은 아직까지 남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파멸성의 이가 저택. 이원은 풀죽은 얼굴로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허목에게 너무도 큰 은혜를 입었다. 심지어 허목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살리기 위해 먼저 내보내주기까지 했다.
“허 형⋯⋯ 요가가 허 형을 쫓고 있는 가운데 이 이원이 나서지 않는 것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도울 능력이 없는 까닭입니다.”
이원은 씁쓸한 표정을 드러냈다.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허목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지금 그의 수준으로는 오히려 방해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방에서 나오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뇌의 선계에서 있었던 일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허 형이 오시기만 한다면… 이 이원은 파멸 심금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전수해드릴 겁니다.”
한데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때, 하늘에서 돌연 파문이 일더니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온 하늘이 연못의 물결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그 파문 속에서 한제가 걸어 나왔다.
그는 저 멀리 이원을 한눈에 알아보고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허… 허 형! 무사하셨군요!”
★ ★ ★
한제와 이원은 이가 저택 사당의 검은 연못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뼈를 찌르는 듯 시린 연못의 물에 천천히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허나 그 소용돌이는 너무나 약해 두 사람의 주위를 맴돌면서도 약간 일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원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미간에서 한 덩어리의 검은 빛을 쏘아 보냈다. 그 빛은 가닥가닥의 검은 선이 되어 그의 몸을 따라 연못으로 녹아들었다.
이 검은 선들은 연못에 닿자마자 교룡처럼 물속으로 들어갔고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연못에 더 큰 물결을 일으켰다.
한제는 이원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연못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한 지 사흘째였다. 지금 그는 이원의 안내에 따라 여기서 파멸 심금을 전수받는 중이었다.
파멸금은 심금을 갖춰야만 완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금제로 심금의 전수는 오직 이가의 사당 안에서만 가능했다.
이원의 미간에서 발산된 검은 선은 연못에 녹아들어 하나로 섞여들었고 동시에 검은 연못물은 한제의 몸을 타고 퍼져나가 마침내 미간에 응고됐다.
목표는 108선인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이원의 얼굴에는 점차 피곤한 기색이 드리웠다.
심금은 보통 가문에서 오직 죽음을 목전에 둔 선배가 지정된 후배에게 전수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은혜를 갚기 위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체내의 심금을 둘로 나눠 그 반을 넘겨주려 하고 있었다.
닷새째 되던 날, 이원의 모습은 전보다 훨씬 노쇠해져 있었다. 마치 이 닷새가 그에게는 50년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의 미간에서 나타났던 검은 빛은 이제 많이 어둡고 약해진 상태였고 그 절반은 이미 연못에 녹아들어 있었다.
연못은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면서 폭풍처럼 계속해서 회전했다.
피곤한 모습으로 연못에서 걸어 나온 이원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한제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허 형, 이로서 허 형에게 입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았군요.”
이어서 그는 좌선한 채 호흡했다. 은혜를 갚기 위해 그가 들인 대가는 무척 컸다. 심금을 전수하느라 그의 수준 역시 적지 않게 후퇴한 상태였다.
엿새째 되는 날, 소용돌이로 형성된 폭풍에 연못의 물은 위로 솟구쳐 한제의 온몸을 뒤덮었다. 한기가 퍼져나갔고 사방에는 서리가 꼈으며, 심지어 얼음이 생기는 곳도 있었다.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검은 물속에서 줄기줄기 검은 선이 한제의 미간으로 스며들어 복잡한 문양의 낙인을 이루었다.
이때 한제는 아주 기이한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파멸금에 관한 모든 것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그가 이전까지 알고 있던 금제를 하나하나 검증하고 비교하고 융합시켰다.
신묘한 금제의 진법은 검은 선들이 낙인을 이루어 미간에 찍힘에 따라 그의 심신에 더욱 또렷하고 명확하게 새겨졌다.
아흐레째 되던 날, 한제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주위를 맴돌던 검은 물의 소용돌이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려 사방으로 튀었고 동시에 엄청난 한기가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