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90
이후로도 몇몇 가문의 사람들이 연이어 한제… 아니, 허목을 추천했다. 그리고 이어서 검은 옷을 입은 차가운 얼굴의 청년이 일어섰다.
“저는 묘가의 직계 자손으로 허목 선배님을 추천합니다. 우리 묘가는 주성(主星) 가문 중 하나죠. 저희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이들 모두 뇌의 선계에서 한제에게 구조됐던 이들로 요가의 추격이 있었을 때에도 가문 내에서 막지 않았더라면 발벗고 나서서 도우려 했을 이들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가 노인의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반면 진가의 선조는 쓰게 웃으며 아예 두 눈을 감아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한제를 지지하겠다고 외친 다른 가문의 선조들 역시 별다른 말없이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들의 가문에 대고 허목을 추천할 자격이 있느냐 묻는다면 이들은 그 질문을 한 이에게 설명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그 뒤로도 한제 덕에 뇌의 선계에서 목숨을 구한 수련자들이 계속해서 허목을 추천했고 그의 곁에 선 채 당가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당가 노인은 번득이는 눈으로 이들을 하나하나 노려보았으나, 섣불리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수련자들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들의 가문 선조나 선배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가 노인 역시 한제와 마찬가지로 규열기 초기 수준이었다. 다만 이제 초기의 절정에 다다라 있었다.
나천성역 안의 일반적인 수련자 가문 중 음양이의의 수준에 이른 이들은 한 가문의 선조라고 볼 수 있었다. 우연과 별다른 인연이 겹치지 않는 이상 규열기에 이른 수련자를 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오직 주성의 수련자 가문에서만 규열기 수준의 수련자가 있으나 그 역시 많지 않아 각 가문에 한두 명뿐이었다.
선계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요가에 버금가는 당가에서도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는 넷뿐인데 이 노인은 그중 가장 약한 사람이었다.
“저 역시 전가를 대표하여 허목 선배님께 자격을 드릴 것을 추천합니다. 이 전공열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전공열까지 나서자 당가 노인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신공호 또한 허목 선배님께 자격을 드릴 것을 추천합니다.”
신공호는 짧게 말을 끝내고는 굳건한 의지가 깃든 눈으로 당가 노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가 노인은 차게 웃으며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한데 그때, 내내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던 보라색 옷차림의 뇌선전 노인이 천천히 말을 했다.
“허목에게는 자격이 있다.”
그 말에 당가 노인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저 보라색 옷을 입은 노인에게는 감히 반박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 마음대로들 해보시오!”
차게 코웃음을 친 그는 당언풍을 데리고 자리를 떴고 당가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떠나기 직전 당가의 노인은 한제를 매섭게 노려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짙은 살기가 어려 있었다.
한제는 덤덤하게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폭발!”
그 한마디 말에 당가 노인은 흠칫 놀랐고 그 순간
펑!
당언풍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터져 나가며 피 안개로 변해버렸다. 심지어 원신까지 소멸해버려 노인은 그를 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제는 일찍이 당언풍의 체내 깊숙이에 한 줄기 힘을 숨겨놓았다.
최소한 규열기 중기 수준의 수련자가 아닌 이상 쉽게 그가 숨겨놓은 그 힘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리고 당가에서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내자 망설임 없이 그 힘을 발휘한 것이다.
“당가는 또 다른 요가가 되고 싶은 게냐!”
한제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 안에는 살기가 어려 있었다.
“허목… 네놈이!”
크게 노한 당가의 노인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한데 그때, 보라색 옷을 입은 노인이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눈빛이 얼음장처럼 서늘하게 변했다.
“이 자리에서 사적인 결투는 허락지 않는다. 당산! 네 가문 사람들을 이끌고 썩 꺼져라!”
당산은 우뚝 멈춰 악에 받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다가 가문 사람들을 이끌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
“남쪽 영역에서 1등이 되고 싶다고?”
보라색 옷을 입은 뇌선전의 사자가 번득이는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물었다.
그 노인을 바라본 한제는 상대의 체내에 강력한 원력의 파동이 한 줄기 존재한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비록 그 수준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혈조에 비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정열기 수준은 아니더라도 규열기 후기 절정 수준은 거뜬히 될 터였다.
“그렇습니다.”
한제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의 말투에는 단호함과 그보다 더 짙은 전의가 배어 있었다.
“좋다. 이곳에서 네게 도전을 할 이가 없다면 널 남역의 후보들 중 1등으로 정하마!”
노인은 이어서 다른 수련자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허목에게 도전할 자가 있나?”
그러던 중 마침내 노인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닿았다.
검은 옷을 입은 그 수련자는 마흔 정도 되어 보였고 귀밑머리가 약간 샌 상태였다.
그의 앞에는 아홉 자루의 칼이 꽂혀 있었다. 이전에 한제의 전의가 압도적으로 밀려들었을 때에도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제가 규열기 초기의 수준을 드러낸 뒤에야 고개를 들고 보일 듯 말 듯한 전의를 번득였을 뿐이다.
그때, 그 사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전공열, 허목 선배에게 도전합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전공열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복잡하면서도 혼란한 눈빛 안에 전의를 불태우며 한제를 향해 포권을 했다.
“허목 선배님께서 저를 진심으로 납득하게 한다면 저는 도념을 바치고 선배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함께 연맹성역으로 진격하겠습니다.”
그의 말은 이 1만 리 반경의 공간 안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1천 리 반경의 빛의 장막 안으로 뛰어든 전공열은 형형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포권을 했다.
“허목 선배님, 한 수 가르쳐 주시지요!”
한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전공열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의 그는 뇌의 선계에 있던 당시와는 전혀 달라 보였다. 당시에는 수준이 거의 비슷했던 때라 어찌 보면 상대를 속인 것이었으나, 지금의 그는 진정한 두 번째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지금, 전공열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넌 내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일전의 인연을 감안해 하는 말이니 물러나라!”
한제의 덤덤한 목소리에 전공열은 복잡한 심경이 어린 눈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저는 7백 년 전 천뢰성(天雷星)의 번개 속에서 불굴의 의지를 깨달은 후 선조의 유물을 가지고 1백 년간 명상한 끝에 스스로의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제 경지는 바로 굴하지 않는 전의(戰意)의 경지입니다. 전(戰)은 제 성임과 동시에 제 경지인 셈이지요. 이를 통해 제 수준은 4백 년 전 양의에 이를 때까지 평탄하게 성장했습니다. 허나⋯⋯ 그로부터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지요. 선배님, 제 도는 맞는 겁니까, 틀린겁니까?”
그 말에 사방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심지어 몇몇 수련자 가문의 선조들조차 고민에 잠겼다. 그들 역시 비슷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우리 가문의 선조를 찾아가 묻고 답을 얻기도 했으나 그 답으로 저는 더욱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선배님, 부탁컨대 제게 깨달음을 주십시오!”
한제는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으로 전공열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네 전의는 너무나 약하다.”
전공열의 눈이 반짝였지만 이내 다시 어두워졌고 그는 침묵했다.
“네 선조가 네게 주었다는 답은 도전하라는 것이었겠지. 이 우주에서 너와 수준이 비슷한 자들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승리함으로써 전의는 공고해질 것이고 규열기에 접어들 수 있을 것이라 말했겠지?”
전공열이 몸을 가늘게 떨며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의 말은 당시 열운자가 했던 말과 조금 달랐지만 그 핵심만큼은 놀랄 만큼 똑같았다.
“제발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를 위해서라면 제 도념은 얼마든지 바치겠습니다.”
전공열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 한제를 향해 공손하게 절을 했다.
“도념까지 넘기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소위 불굴의 의지가 무슨 소용이겠느냐? 끊임없는 전투로 응집시킨 전의는 틀림없이 강하지만 한계가 있다. 진정한 전의는 자신의 신념, 싸워야만 한다는 도념,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의지, 그리고 반드시 도전해야 한다는 결심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야! 네가 내게 대적한다 해도 네 전가의 선조와 대적한다 해도 이 세상과 대적한다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네게 돌아가는 것은 오직 죽음뿐일 것이다.”
한제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전공열의 귀에는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고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전공열은 심신이 격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뒤로 몇 걸음 비틀비틀 물러났다. 그의 눈에 드리웠던 전의는 무너져 내렸고 그를 대신하여 한 줄기 깨달음이 깃들기 시작했다.
“물러나거라!”
한제가 소매를 휘두르자 전공열은 1천 리 반경의 빛의 장막에서 밀려났고 이내 한제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이더니 붉은 돌 위에 앉았다.
사방은 고요했고 앞쪽에 아홉 자루의 칼을 꽂아놓은 흑의의 사내만이 놀랄 만큼 밝은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거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마디 말로 신묘한 도를 정확히 짚어 내다니, 도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군. 나도 감탄했네. 내 도전을 받을 자격이 있어!”
사내는 상대의 답은 기다리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의 도전을 받는 것이 무한한 영광이라도 된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휘둘렀다. 순간 그의 앞에 꽂혀 있던 아홉 자루 검이 바르르 떨리면서 극강의 기운을 뿜어냈고 사내의 손짓에 따라 곧장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이 기운은 모종의 규칙을 따라 사방의 우주를 왜곡시켰다. 심지어 1천 리 반경을 보호하기 위해 드리워놓은 빛의 장막도 바르르 떨렸고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구곡천도(九曲天刀)
“구곡천도(九曲天刀)!”
하얀 돌 위에 앉아 있던 어느 수련자 가문의 선조가 눈을 번득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를 들은 다른 수련자들도 화들짝 놀라며 흑의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구곡천도라니, 저자는 남궁가의 사람이었군!”
“당시 나천성역 남쪽 영역의 4대 가문이었던 남궁, 당, 전, 신공가 중 남궁가가 최고였지. 한데 1천 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졌어. 그들의 수련성에서도 반 이상의 남궁가 사람들이 사라졌으나 뇌선전에서도 결국 그 실종의 원인은 알아내지 못했어!”
곳곳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사이, 아홉 자루의 검에서 발산된 기운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허나 한제는 침착했다. 상대의 수준은 자신과 같은 규열기 초기였고 아홉 갈래의 기운에는 규칙을 파괴하는 난폭한 힘이 깃들어 있었으며, 자신의 모든 퇴로를 봉쇄했다.
유일한 선택지는 앞으로 나서 상대의 도전에 응하는 것뿐이었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오른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