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92
최후의 1인
남궁한으로부터 30척 정도 떨어진 곳에 나타난 한제는 그 진에서 형성된 은색 실이 달려드는 순간 오른손 손등의 도안에 집중했다.
그러자 마수의 뼈가 소환돼 어스름한 빛을 번득였고 그 빛 아래 은색 실들은 곧장 회색 돌로 변했다. 이 순간을 틈타 한제는 체내의 부상을 억누른 채 다시 한 번 모습을 감추었다.
그때, 남궁한이 뒤로 물러나며 크게 소리쳤다.
“그만! 내가 졌다. 공격을 할 수가 없구나! 축지성촌을 장악하고 있는 자를 내가 어찌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한데 상대의 기세는 변하지 않았고 이에 남궁한은 뒤로 물러나며 다급하게 외쳤다.
“내가 패배를 인정했는데도 공격을 계속할 셈이냐? 그만하자고!”
남궁한은 쓰게 웃었다.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 순간, 남궁한이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강력한 수련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2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타난 한제는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평생 남과 싸우면서 살아왔건만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그만하자 그만해. 내가 축지성촌을 깨달은 뒤에 다시 붙자. 지금 이 상태로 싸워봤자 내게는 승산이 없어.”
남궁한은 풀이 죽은 얼굴로 몸을 훌쩍 날려 곧장 물러나더니 붉은 돌로 향했다. 그 돌 위에 앉아 있던 수련자는 얼른 자리를 내주었다.
한제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또 도전할 자가 있나?”
적막이 흘렀다.
묵묵히 이 광경을 바라보던 신공호의 눈빛이 점점 밝아졌다. 한제를 향한 그의 눈빛에는 이전과 같은 열광은 없었지만 대신 더욱 짙은 숭배심이 깃들어 있었다.
결국 끝까지 한제에게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허목, 남쪽 영역의 후보 108명 중 1등! 7일 뒤, 나머지 107명의 후보가 다 발탁되면 나를 따라 뇌선전으로 가도록!”
보라색 옷을 입은 노인이 느릿하게 말했다.
이번 봉선 경쟁에 참여한 이들 중 규열기 수준의 수련자는 많지 않았다. 그 정도 수준의 수련자는 이미 한 가문의 선조가 되어 있어 쉽게 나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가문을 책임져야 하므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굴어야 했다. 게다가 그들이 이번 경쟁에 끼어든다면 후배들의 몫을 빼앗는다는 악명을 얻게 될 것이 분명했다.
또한 뇌선전이 108명의 선인을 발탁하려 하는 것은 수련자들의 전의를 불태우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정한 두 번째 단계에 이르지 못한 수련자들 중 최강자들이었다. 규열기 정도 된 수련자라면 이를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합쳐진 데다가 굳이 마도자로 명성을 떨친 허목과 척을 질 이유가 없었기에 규열기에 이른 각 가문의 선조들은 나서지 않았다.
7일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 7일 동안 한제는 지염성의 수련자 가문이 배치해놓은 거주지에서 가부좌를 틀고 체내의 원력을 조정하며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뇌선전에서 벌어질 최후의 일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7일 동안 그를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신공호였다. 그는 한제에게 속은 것인지도 모르나 이에 대해 따지는 대신 도에 대해 잠깐 의논한 뒤 약간의 수확을 가지고 돌아갔다.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떠나는 그의 눈에는 이전보다 약하긴 했으나 분명 공경심이 담겨 있었다. 지금의 한제를 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를 이어 여러 사람이 찾아와 그를 방문했고 나흘째가 되고 나서야 한제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허나 얼른 수련에 집중하고 싶었던 한제를 방해를 하는 이가 아직 한 명 남아 있었다. 바로 남궁한이었다.
남궁한이 한제를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축지성촌 때문이었다.
그가 찾아올 때마다 한제는 골치가 아팠고 이에 짜증이 난 그는 결국 허이국을 꺼내놓았다.
“축지성촌은 이자도 가지고 있네. 잘 알아내보게”
한제는 남궁한이 그 말을 믿건 말건 곧장 자리를 떠나 지염성 안에서 조용히 수련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남궁한은 한제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허이국이 얼마나 교활한 존재인지를 간파하고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에 허이국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으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점차 상대에 견딜 수가 없었고 심지어는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허이국은 남궁한을 공격할 수도 그에게 반항할 수도 그렇다고 달아날 수도 없었기에 빨리 한제가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7일째 되던 날, 좌선을 하고 있던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고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신식으로 사방을 훑어 허이국이 있는 곳을 찾았는데 허이국을 본 순간 한제의 미간이 구겨져 버렸다.
마혼인 허이국의 몸은 약간 흩어져 거의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맞은편에서는 남궁한이 거듭 탄식하며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허이국은 슬픈 눈으로 한제를 올려다보며 튀어나갔다. 만약 그에게 눈물이 남아 있었다면 그의 얼굴은 진즉 눈물 범벅이 되고도 남았을 터였다.
“주인님, 마침내 돌아오셨군요. 앞으로는 다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주인님, 저를 다시 데려가 주세요. 저자는 너무나 끔찍합니다, 주인님! 절 버리지 마세요. 저는 주인님에게서 떠나기 싫습니다.”
허이국의 목소리는 너무도 처량했다. 이런 허이국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한제는 허이국을 저물대에 집어넣고는 남궁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남궁한은 약간 난감해하며 손을 비비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허 형, 그 검혼은 매우 훌륭하더군. 나와 죽이 아주 잘 맞았어. 앞으로도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데…”
한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곧장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궁한은 못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한제의 뒤를 바짝 따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주 훌륭한 검혼이야. 뺏어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천성역 남쪽 영역에서 108명의 후보들이 모두 선발되자 보라색 옷을 입은 뇌선전의 사자는 저물대에서 검은 돌 하나를 꺼내 으스러뜨렸다. 그러자 셀 수 없이 많은 빛들이 반짝이며 나타나더니 그 뒤를 이어 허공에 허상의 진 하나가 나타났다. 이 거대한 진은 반경 1천 척을 가득 채웠다.
보라색 옷을 입은 노인이 가장 먼저 그 안으로 들어섰고 다른 두 사자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1백 명이 넘는 후보들도 일제히 진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중에는 한제는 물론 신공호와 전공열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은 빛을 번득이며 108명의 후보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뇌선전은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대대로 이어진 전주(殿主)가 그 세력을 더욱 확장하면서 이제는 나천성역 안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강한 세력이었다.
뇌선전이 있는 곳은 매우 비밀스러워서 그 구체적인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뇌선전의 사자조차 그 안을 오갈 때 특수한 전송진을 이용하지 않고는 뇌선전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때 뇌선전을 중심으로 반경 10만 리 곳곳에는 금제가 배치되어 있었고 뇌선전의 사자와 종 같은 수련자들이 기립해 있었다.
봉선 의식은 지금껏 뇌선전에서 행했던 의식 중 가장 중요한 행사였기에 반경 10만 리 내에서는 사적인 전투를 엄금했고 이를 위반할 시 목숨으로 갚아야 했다.
뇌선전 사방에 배치된, 밝은 빛을 번득이는 네 개의 거대한 전송진 중 북쪽의 진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오더니 뒤를 이어 북쪽 영역에서 선발된 후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침착했고 눈빛에는 짙은 전의가 어려 있었다.
남쪽과 서쪽에 배치된 두 개의 전송진도 빛을 번득이면서 거의 동시에 수련자들이 나타났다.
한제 또한 덤덤한 얼굴로 사방을 훑어보았다.
뇌선전은 일반인 세계에서는 황제의 침궁과도 같은 곳이라 매우 장엄하고 두려운 금제들이 사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금제에 일가견이 있는 한제는 뇌선전에 배치된 이 금제들이 결코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규열기 수준인 그라고 해도 그 금제를 거스른다면 살아남지 못할 터였다.
주위를 살필수록 한제의 표정은 점점 싸늘하게 변했다. 사방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심지어는 하늘의 구름도 모두 극강의 금제를 품고 있었다.
그때, 돌연 동쪽 전송진에서 밝은 빛이 번득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곧 세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들은 동쪽 영역으로 파견된 뇌선전의 사자였는데 왠지 그들의 안색은 상당히 어두웠다.
이 세 사자 중 한 사람은 고개를 돌려 전송진을 바라보았는데 그런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
한제 역시 무언가를 느끼고는 눈빛이 살짝 굳어졌는데 바로 그때, 짙은 피비린내가 동쪽 전송진 안에서 훅 끼쳐왔다. 그리고 이내 단 한 사람만이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기다릴 것 없습니다. 나머지 107명은 내가 다 죽여 버렸으니까.”
그 목소리에는 뼈를 파고드는 듯한 한기와 짙은 피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그 음산한 목소리에 사방의 모든 사람들은 동시에 살기(煞氣)를 느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향했다.
길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서른 전후로 보이는 그는 백의를 입고 있었지만 우아하다기보다는 음산하고 날카로운 느낌이 났다.
특히 두 눈에서는 서늘한 광기와 짙은 살기가 어른거렸다.
전송진의 빛이 번득이는 가운데 그는 한 걸음씩 걸어 나왔고 점점 짙은 피비린내가 주위를 메우기 시작했다.
“쓰레기들!”
그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 목소리는 마치 천둥처럼 강한 힘을 품은 채 뇌선전 밖에 콰르릉 울려 퍼졌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나천성역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답게 그 사내의 거친 말에 분노했다.
한제는 침착한 얼굴로 시선을 거두었다. 사내의 수준은 그와 같은 규열기 초기였고 분명 본 적은 없는 이였으나 한제는 그 사내에게서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그 사내가 눈을 번득이더니 수많은 수련자들 사이에서 한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혀를 내어 입술을 핥으며 음산하게 웃어 보였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잠자코 그를 마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신식이 배어 있는 수련자들의 시선이 충돌하는 것은 곧 신식을 이용한 전투라 볼 수도 있었다.
마치 두 자루의 예리한 검이 허공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듯했지만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을 거두었다.
백의의 청년은 밝은 눈으로 한제를 자세히 살폈다. 방금 신식의 충돌로 그는 한제를 제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다 들여다보게 할 뻔했다는 것을 알았다.
한편, 한제는 신식을 통해서도 상대로부터 기이한 힘을 느꼈다.
그 자리의 수많은 수련자들 중 이 짧은 순간 충돌한 두 사람의 시선을 알아차린 것은 단 네 명뿐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북쪽 영역에서 온 이로 중년에 접어든 그의 얼굴은 하얗고 수염이 없었다. 그의 오른손 엄지에는 또 하나의 손가락이 나 있어, 오른손 손가락이 총 여섯 개였다.
또 다른 한 사람 역시 북쪽 영역에서 온 수련자로 외모는 소년 같았으며, 머리가 기이할 정도로 컸다. 그의 사방으로 반경 30척 정도는 텅 비어 있어, 누구도 그와 가까이 있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 소년의 얼굴에는 백치 같은 웃음이 걸려 있었는데 한제에 이어 백의의 사내를 자세히 살피던 그의 얼굴에는 바보 같은 웃음이 한층 더 짙어졌다.
세 번째 사람은 서쪽 영역에서 온 이로 남색 옷을 입은 훤칠한 사내였다. 그는 밝은 빛이 번쩍이는 눈으로 한제를 보며 고민에 잠긴 듯했다.
마지막 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한제의 곁에 있던 남궁한이었다.
그때, 멀리 떨어진 하늘 끄트머리에서 붉은 노을이 피어오르더니 구름이 솟구쳐 오르며 빠르게 응집됐다.
뭇 사람들의 상공으로 모여든 구름은 이내 한 노인의 모습이 됐는데 백발이 성성한 그 노인에게서는 선인의 기운이 짙게 풍겼다.
동림성(東臨星)의 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