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
★ ★ ★
그때, 대산파 본당에서는 장로 몇 명이 둘러 앉아 장 씨가 한제를 찾은 경위에 대해 듣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얼굴이 붉은 장로 한 명이 탁자를 치며 불만조로 말했다.
“아니, 도대체 속세의 인간이 우리와 뭔 상관이 있다는 게야? 어딜 봐도 우리처럼 모양 빠지는 문파가 없소. 시험 불합격했다고 가출한 애송이 하나 찾겠다고 사람을 보내다니, 망신도 아주 그냥 개망신이오!”
옆에 있던 얼굴이 창백한 중년 남성이 깊게 탄식했다.
“마 장로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 같은 문파는 어디도 없을 겁니다. 허나 저 아이가 죽었다면 앞으로 제자를 받는 데 분명히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비단 옷을 입은 노인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평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이게 다 우리 대산파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속세에서 제자를 들이려다가 벌어진 일 아닙니까? 몇 백 년 전만 됐어도 굳이 속세인들의 일에 관여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아이 말입니다. 그때도 두 번째 시험에서 매우 아깝게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자질은 평범하나 끈기는 누구보다도 뛰어났지요. 게다가 이토록 간절하니 받아주는 게 어떨까 하오.”
말을 마친 그는 곁눈질로 중년 남자를 바라본 후 두 눈을 감고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붉은 얼굴의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 장로 우리 대산파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였소? 저런 평범한 꼬맹이 때문에 전례를 깨뜨리자는 거요?”
이 장로는 눈을 감은 채로 차분히 답했다.
“마 장로 내가 책임지겠네. 이번 일은 내게 맡기게나.”
중년 남자가 분위기를 수습하려는 듯 말했다.
“좋아. 작은 일에 이리 소란 피울 거 없지. 그럼 이렇게 하세. 우선 저놈을 임시 제자로 들이고 지켜보자고. 몇 년이 지나도 선인이 되지 못하면 다시 돌려보내면 되겠지. 어떤가?”
비단옷을 입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러다 앞으로 시험 때마다 떨어진 아이들은 자살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거 아니오?”
중년 남자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야 앞으로는 화신술(化神術)로 자살하지 못하도록 생각을 심어두면 되는 거 아니겠나? 저 아이는 이미 이리 된 거니 그냥 제자로 들이자고. 어쨌든 임시 제자 한 명 거두는 데 큰 문제는 없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자 중년 남자는 미소를 띠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왔다. 네 넷째 작은아버지가 정교한 철재를 건네며 하도 간곡히 부탁해왔으니 이 정도는 해야겠지. 한데 평범한 사람이 그런 재료를 어떻게 손에 넣게 된 건지… 이상하단 말이야.’
식견이 넓고 박식한 한제의 넷째 작은아버지는 한 대장장이에게서 검을 사려다가 한눈에 범상치 않은 철재를 발견했다.
그게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대장장이는 싼 값에 그 철재를 넘겼고 이번에 그 수십 배의 값을 하고도 남았다.
★ ★ ★
이틀 뒤, 그는 부모님을 배웅했다. 자신이 제자로 받아들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으나, 기뻐하시는 부모님을 보자 덩달아 즐거워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착실히 수련을 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신 뒤 한제는 기명(記名)제자인 수련생들에게 일을 분담해주는 곳에서 황색 옷을 입은 험상궂은 남자를 만났다. 그 청년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한제를 아래위로 훑더니 코웃음을 쳤다.
“네가 자살을 시도해서 제자가 됐다는 이한제냐?”
한제가 대답 없이 쳐다보고만 있자 그 청년은 또 다시 비웃었다.
“꼬맹아, 내일부터 매일 해가 뜨자마자 여기로 와야 하느니라. 네가 할 일은 물을 긷는 거다. 항아리 10독을 채우지 못하면 밥 먹을 생각도 하지 마라. 7일 동안 양을 채우지 못하면 장로님께 보고해 널 대산파에서 쫓아낼 거다. 이게 네 옷이다. 수련생은 회색 옷만 입을 수 있다. 정식 제자인 내문(內門)제자가 되면 그때 다른 색 옷을 나눠주지.”
청년은 귀찮다는 듯 옷과 요패(腰牌)를 내던지고 더 이상 한제를 상대하지 않았다.
한제는 땅에 떨어진 옷을 주우며 물었다.
“전 어디서 묵나요?”
“북쪽으로 가봐. 가다보면 일렬로 지어진 단층집이 보일 게다. 거기 있는 사람에게 요패를 보여주면 안내해줄 것이다.”
청년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충 대답했다.
한제가 몸을 돌려 북쪽으로 떠나자 청년이 혼잣말을 했다.
“자살 시도로 들어오다니, 정말 쓸모없는 놈이군.”
가는 길에 마주친 사람들은 대부분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몇몇 사람들은 일할 때 쓰는 듯한 도구를 들고 있었는데 다들 조금 지친 기색이었다.
장호
사람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이윽고 낮은 가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유독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이 많았다. 그들 역시 바삐 일하느라 서로 대화도 나누지 못하는 듯했다.
한제는 그곳을 관리하는 황색 옷을 입은 사람에게 요패를 보여줬다. 그 사람은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손가락으로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이곳 사람들의 차가운 표정에 이미 익숙해진 한제는 자신이 머무를 집에 도착해 방을 살폈다.
그리 크지 않은 방에는 침상 두 개, 책상 하나가 있었다. 방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한제가 살던 집과 어딘지 모르게 비슷했다.
그는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 침상으로 가서 짐을 내려놓았다.
순간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마침내 대산파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가 생각했던 선인술을 배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황색 옷을 입은 청년에게서 다른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저 물을 긷는 것밖에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한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가슴팍에 밧줄로 묶어 놓은 석주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이를 어딘가에 숨기고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날이 어두워졌고 허약해 보이는 소년 하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 소년 역시 회색 옷을 입고 있었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한제를 발견하고 어리둥절해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신경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곯아떨어졌다.
한제 역시 더 이상 개의치 않고 부모님이 주고 간 보따리에서 고구마를 하나 꺼냈다.
허기가 졌던 참에 달콤한 고구마를 베어 물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한데 잠든 줄 알았던 맞은편 침상의 소년이 몸을 돌리더니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고구마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침을 삼켰다.
한제는 고구마 몇 개를 꺼내 맞은편 침상으로 던져주었다.
“많이 있으니까 더 먹고 싶으면 말해.”
한제는 웃으며 말했다.
소년은 재빨리 고구마를 주워 허겁지겁 삼키더니 책상 옆으로 뛰어가 물을 마셨다.
“젠장, 이틀간 아무 것도 못 먹었어. 고마워. 아, 이름이 뭐야?”
한제의 이름을 들은 소년은 깜짝 놀란 듯 답했다.
“아! 자살 시도로 들어왔다는 그 쓰레기!”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던 소년은 흠칫 놀라며 손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그러더니 배시시 웃으며 멋쩍은 듯 말했다.
“난 장호라고 해. 지금 대산파에서 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야. 방금 한 말 너무 신경 쓰지 마. 사실 난 네 이야기를 듣고 감탄했거든.”
한제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저 피식 웃고는 장호에게 고구마 몇 개를 더 건넸다. 장호는 재빨리 고구마를 받아 한 입 베어 물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한제야, 조심해. 잡무처의 그 족제비 놈 심보가 얼마나 고약한지 넌 모를 거야. 우리 같은 수련생은 사람 취급도 안 한다니까! 하긴 너도 곧 알게 되겠지.”
“족제비?”
듣고 보니 자신을 비웃던 황색 옷의 청년에게 딱 맞는 별명인 듯했다.
“그 황색 옷 입은 그놈. 그놈은 선인술을 전수 받을 자격을 얻어서 황색 옷을 입었지. 생긴 것도 그렇고 하는 짓도 그래서 다들 뒤에서는 족제비라고 불러.”
장호는 물을 벌컥 들이키더니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응, 누군지 알겠어. 나한테 내일부터 매일 물을 10독씩 길어 나르라고 하더라. 못 채우면 밥 먹을 생각하지 말라던데?”
장호는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뭐? 10독? 혹시 그놈한테 원한 산 적 있어?”
한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 처음 봤는데? 그런데 왜?”
장호는 불쌍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넌 분명 그 족제비 놈한테 원한을 산 게 틀림없어. 물 10독? 하아! 그놈이 말한 물독은 집에 있는 조그만 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있는 집만 한 크기야. 그런데 10독이라니… 이 고구마 남겨 놨다가 먹어. 며칠 동안 한 끼 먹기도 힘들 것 같으니깐. 산에 열매가 있는 곳이 있긴 한데 넌 온 지 얼마 안 된 데다가 나이도 어리니 먹기 힘들 테고…”
장호는 남은 고구마를 책상에 올려두고 고개를 젓더니 다시 잠을 청했다.
한제는 족제비라는 자의 만행에 화가 나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미워한다니, 다 때려치우고 싶었으나 기대에 찬 부모님의 눈빛이 떠올라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게 분노를 다 삭이지도 못한 채 어느새 잠이 들었다.
★ ★ ★
한제는 해가 뜨기도 전에 침상에서 일어났다. 장호는 아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한제는 회색 옷으로 갈아입고 재빨리 잡무실로 갔다.
해가 뜰 무렵 노란색 옷을 입은 청년이 문을 열고 나와 한제를 흘겨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은 정확하군. 들어와서 통 들고 가. 동쪽 문으로 나가면 산속에 샘이 있을 거다. 거기서 물을 길어오면 돼.”
그렇게 말을 끝낸 청년은 더 이상 한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도가 호흡법을 시작했다.
그의 콧속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연기는 마치 하늘로 솟아 올라가는 두 마리의 백룡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