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0
한제는 오른손을 흔들어 봉인된 동굴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푸른 물결과 파란 하늘이 넓게 이어져 있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산맥을 따라 한 화산의 분화구로 날아갔다. 꿈속 공간에서 방금 빠져나온 그는 신식을 펼쳐 사방에 가득한 화산 중 나무 속성을 띤 영력의 파동을 느낀 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화구에 도착한 한제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분화구 안쪽으로 암적색의 빛이 번득이며 뜨거운 열기를 피어 오르고 있었다.
눈을 번득인 한제는 곧장 몸을 날려 그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인력술로 자신을 통제해가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분금산맥(焚金山脈)은 ‘분금과(焚金果)’라고 불리는 단약의 재료가 많이 나는 곳으로 화분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산 지대였다.
이 분금과는 융영단(融靈丹)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약초였다. 화분국 수련자들의 영력은 뜨거운 불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그런 영력을 흡수하다 보면 몸에 피해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때문에 불 속성을 희석시키는 융영단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화분국에서 소모량이 가장 많은 단약 중 하나로 융영단을 만드는 연단방만 해도 수십 가지로 나뉘었고 효과 역시 여러 등급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환영을 받는 것은 분금과를 주요 재료로 써서 만든 것이었다.이 분금과는 화산의 분화구 깊은 곳에서만 자라났다.
분금과가 농익을 때가 되면 화분국의 4대 종파에서는 그것을 채취할 제자들을 뽑았다. 분금과는 신비로운 식물로 성숙기는 단 사흘밖에 되지 않는데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 ★ ★
4대 문파에서 선발된 제자들이 화산 지대로 와 각자의 문파가 점령하고 있는 화산의 분화구에 이른 어느 날이었다. 수요가 엄청난 이 약초에 대해 화분국의 4대 종파에서는 서로가 채취한 것에 대해서는 빼앗지 않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시음종의 제자들은 총 세 명, 그중 여자는 한 명이었다. 그들은 뒤에 관 하나씩을 두고 분화구 밖에 서서 채취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 다른 세 개의 화산 분화구에서는 이미 농익은 꽃냄새를 풍기는 독이 피어올랐고 세 문파의 제자들은 분분히 각자가 맡은 화산의 분화구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시음종 세 제자의 얼굴에는 의심스러운 표정이 어렸다. 여 제자가 아름다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마 사형, 이게 무슨 일이죠?”
마 씨 성의 남자 역시 미간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저 독은 분금과가 농익었을 때 생겨나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이 채취하기 좋은 때라는 뜻이지. 그나저나 네 개의 화산에 있는 분금과는 이 시기면 동시에 익게 돼 있는데 어째서 여기만 독이 피어오르지 않는 거지? 주 사형, 그냥 내려가 볼까요?”
주 씨 성을 가진 청년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좀 더 기다리자. 독이 나오지 않는 건 분금과가 화산 안의 염독(炎毒)을 녹여내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무턱대고 내려가면 위험해져.”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다른 세 개의 화산 분화구에서 풍겨 나오는 독은 더욱 짙어져만 갔다. 시음종의 세 제자는 마음이 달았다.
주 사형이라는 자가 이윽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됐다, 내려가 보자.”
말을 마친 그가 막 분화구 안으로 몸을 던지려던 순간,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분화구로부터 솟아올랐다. 이어서 압도적인 한기를 풍기는 청년이 세 사람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음종의 세 제자는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산 안에서 나온 청년의 어깨에는 사람 허리 두께만 한 보라색 덩굴이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 덩굴에는 분금과가 가득 달려 있었다.
분화구 밖으로 나온 청년, 한제는 세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방향을 돌렸다. 방금 세 사람의 존재를 눈치 채고 분화구 안으로 내려간 그는 분금과를 어떻게 채취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과일을 따기만 해도 사방에서 훅 끼쳐오는 열기에 새까맣게 타버릴 것만 같았다.
이에 한제는 아예 분금과의 뿌리를 뽑아버렸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덩굴은 어째서인지 저물대에 들어가지 않아서 어깨에 얹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나무 속성을 띤 이 분금과가 필요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큰 수고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주 씨 성의 청년은 침을 꿀꺽 삼키며 한제가 어깨에 둘러 맨 덩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이번에 세 번째로 분금과를 채취할 제자로 발탁된 그는 매년 최대 열 개의 약초만을 채취할 수 있다는 제한을 잘 알고 있었다.
그보다 더 많이 채취하면 분금과 뿌리에 손상이 가게 된다고 했다. 분금과의 뿌리가 열매를 맺는 것은 스스로 그 열매를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야만 뿌리도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은 분금과를 따면 뿌리까지 죽어버리게 되고 그러면 다시는 화산 분화구 안에서는 분금과를 채취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은 그 뿌리를 뽑아버린 상태였다.
‘설마 저 자는 뿌리를 뽑으면 분금과가 두 시진 안에 죽어버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인가.’
분노한 주 씨 청년, 주강은 한제가 자신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 분금과를 뿌리째 가져가려 하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멈춰! 이 겁도 없는 자식! 네가 어느 문파 소속이든, 분금과의 뿌리를 상하게 한 일에 대해서는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말을 마친 그가 뒤에 있는 관을 두드리자 관이 붕 날아오르더니 쾅 소리와 함께 꼿꼿하게 섰다. 이어 관 뚜껑이 삐거덕 소리를 내며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이더니 그 사이에서 시커멓게 오그라든 손 하나가 뻗어 나왔다.
검은 기운이 그 다섯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며 썩은 내를 풍겼다. 그의 곁에 있던 동료 두 명도 분분히 관을 열고 주강 옆에 서서 분노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몸을 돌려 세 사람을 바라본 한제는 분금과 덩굴을 쓰다듬으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 대가라는 거, 얼마나 치러야 하지?”
이에 주강이 냉소했다.
“곧장 네 두 손과 두 발을 자르고 두 눈을 파내라. 그리고 우리와 함께 돌아가서 종주(宗主)님의 처분을 받는 거다.”
말을 마친 그는 한제의 답도 기다리지 않고 오른손으로 관을 눌렀다.
펑-
그러자 관의 뚜껑은 다시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곧이어 완전히 열렸다. 그리고 온몸이 시커먼 미라가 그 안에서 붕 날아올랐다. 미라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두 손을 한제에게 뻗었다.
동시에 곁에 서 있던 두 사람도 각자의 관을 두드렸다. 곧이어 그 관들에서도 두 구의 미라가 튀어나왔고 세 미라는 삼각 대열을 이루어 한제에게 향했다.
한제의 눈빛은 냉랭했다.
우당탕탕.
신식의 바다 안 금빛 대양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붉은 번개가 순간 솟아올라 한제의 두 눈에 번쩍였다. 세 명의 시음종 제자들은 순간 몸을 부르르 떨더니, 신식이 파괴돼 단숨에 죽음에 이르렀다.
분금산맥(焚金山脈)
한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세 구의 미라를 바라보았다. 그 셋 중 두 개는 곧장 빠르게 썩어 들어가면서 허공에서 뚝 떨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백골이 되어버렸다.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은 주강의 미라는 우뚝 멈추었다. 멍한 눈에 빛이 깃든 그 녀석은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다가 두 말 않고 전력을 다해 도망갔다.
한제가 냉랭하게 말했다.
“한 발짝만 더 움직였다가는 죽일 것이다.”
그 미라는 한제의 말은 못 들은 척 검은색 기운과 함께 저 먼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뒤이어 비참한 비명과 함께 어스름한 빛이 미라의 이마에서 솟아올랐다.
그 어스름한 빛은 수려한 용모의 작은 사람으로 변하더니 한제를 향해 깊숙이 절을 하며 애걸하듯 말했다.
“도우, 자비를 베풀어주시게. 난 4성 수련국 천강종(天?宗)의 제자 허이국이네. 방금 저질렀던 죄는 꼭 갚을 테니 부디 용서해주시게.”
그는 잔뜩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도망치려 했던 그는 엄청난 한제의 힘에 위기감을 느끼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미라에서 빠져나와 간곡히 부탁했다.
사실 생전의 그는 원영기 수준이었지만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고 원영만 빠져나와 도망쳤다. 하지만 곧 흩어질 것 같은 느낌에 그는 시음종의 도움을 받아 육신을 구매하게 된 것이었다.
시음종의 육신은 4, 5성 수련국에서는 꽤나 유명했다. 영력의 바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고난 자질도 나쁘지 않았으며, 손님의 취향에 맞춰 용모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괴상한 성격의 어느 수련자는 이성의 신체를 제공 받기도 했다. 또한 차지한 육신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게다가 만약 별도의 대가를 좀 더 지불하면 회복 시간 동안 보호를 받을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육신을 교체하는 작업에 대한 시음종의 연구는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어, 시음종이 직접 손님들에게 육신을 교체하는 방법을 지도해주기도 했다.
원영기였던 그가 결단기의 육신을 차지한다면 수준이 쇠락해져 다시 원래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까지 상당한 힘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만약 가진 것이 없어 축기에 이른 사람의 육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이전에 원영기 고수였던 사람이라도 오랜 시간 수련을 통해 천천히 자신의 수준을 회복해나가야만 했다.
허이국은 바로 그렇게 가진 게 없던 원영기 고수 중 한 명이었다.
연거푸 읍하는 허이국을 바라보던 한제는 입을 다물고 주강을 비롯한 세 사람의 저물대를 신식으로 훑었다. 동시에 한손을 흔들어 여러 개의 불덩어리를 쏘았다.
그 불덩어리들은 시음종의 제자들과 미라를 태웠다. 이어 손을 움켜쥐자 허이국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긴 무지개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한제의 앞으로 끌려왔다.
★ ★ ★
한제는 동굴로 돌아가 분금과의 덩굴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허이국의 원영을 앞으로 내던졌다. 허이국은 얼른 다시 허리를 숙였다.
“도우, 말로 하시게, 말로. 날 풀어준다면 뭐든 다 해주겠네. 방금은 내가 잘못 했어. 부디 화 푸시게.”
허이국은 속으로 큰 굴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원영기의 고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원영기 수준의 육체를 구입할 자금이 없었다.
축기 수준 제자의 육체를 빼앗은 그가 자신의 수준을 회복하는 데에는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는 수련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그는 축기 후기 수준이었다. 원영기의 수준을 가지고 있었던 원영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질적인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극의 신식을 갖고 있는 한제 앞에서 허이국은 종이호랑이만도 못한 존재였다. 허나 만약 허이국이 결단기까지 회복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터였다.
한제는 허이국의 애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한손으로 옆의 벽을 쳤다. 그러자 그의 뒤쪽에 있는 동굴의 입구가 순식간에 봉쇄됐다. 허이국은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얼른 날아 올리더니, 벽을 뚫고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제는 그를 막지도 않고 극의 신식으로 한 번 훑었다. 그러자 붉은 번개가 곧장 날아가 허이국 앞에서 번쩍였다. 허이국은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제가 오른손을 쥐자 경련하고 있는 허이국의 원영이 곧장 그의 손으로 들어왔다. 한제는 그 원영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허이국의 원영을 본 순간 굉장히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체 그 느낌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손에 허이국의 원영을 쥐고 난 지금에서야 그는 그 느낌의 근원을 파악해냈다. 이 원영은 소멸의 공간에 있었던 유혼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아래턱을 매만지던 한제에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만약 소멸의 공간에서처럼 유혼을 삼킬 수 있다면 그의 신식은 분명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생명의 공간에 어느 정도의 유혼을 두기만 한다면 등화원에게도 훨씬 쉽게 복수할 수 있을 것이었다. 만약 유혼의 수가 많다면 원영기에 이른 상대에게도 감히 덤벼볼 수 있으리라.
한제는 자신의 법술이 너무 단순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초급 수준의 법술 몇 개뿐이었다. 다룰 수 있는 법보 역시 비검 하나가 전부였다.
조나라에서 갖은 일들을 겪은 후 한제의 마음에는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은 더욱 강해져 자신의 운명이 다른 누군가에게 좌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허이국의 원영을 본 한제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소멸의 공간에 있던 유혼들을 가지고 나올 수 없다면 이곳에서 유혼을 만들 수 있는지 시험해보면 되잖아?’
한제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철조각이 둥실 떠올랐다. 그가 오른손으로 동굴 벽을 가리키자 철조각이 빠르게 날아가더니 잠시 후 석실을 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