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01
허나 이들 중 그 힘이 자신들이 그렇게나 찾아 헤매는, 세 번째 단계에 접어드는 관건임을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염뇌자의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허나 그의 시선은 족자가 아니라 허정을 향해 있었다.
‘천부적인 자질이 훌륭한 녀석이로군!’
10초 후 허정은 정신을 차렸다.
그 순간, 한제는 허정의 체내에 족자에서 발산된 아주 미약한 본원의 힘이 자리 잡은 것을 눈치채고는 심신이 급격하게 떨려왔다. 그는 본원의 힘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허정은 아직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두 번째 단계의 절정에 이른다면 그 본원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작용을 하게 될 것이었다.
‘저 허정은 내게 알 수 없는 적의를 품고 있다. 저자를 내버려둬서는 안 돼!’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허정이 자신에게 살의를 드러낸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제는 그런 자가 한 줄기의 본원의 힘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허정, 합격!”
이어서 열운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전 족자는 총 세 개가 있다. 연맹성역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뚫은 뒤에 나를 찾아오도록 해라. 네게 두 번째 족자를 주겠다!”
그 말에 다른 수련자들은 강한 질투를 느꼈지만 허정은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그 고고하고 오만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열운자 선배님.”
전공열 역시 짙은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가문 사람들 중에서도 십 여 명만이 두 번째 족자를 볼 자격을 가졌으며, 세 번째 족자는 선조와 두 선배를 제외한 누구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허정은 고개를 숙인 뒤 공손하게 물러나 한쪽에 서더니 음침한 눈빛으로 한제를 응시했다.
한제 역시 냉랭하게 그를 마주보다가 발을 옮겨 광장 위로 나아갔다. 그러자 자신의 차례였던 수련자는 난감한 듯 입맛을 다셨다. 그는 조일도라는 자로 첫 번째 관문에서도 나소의 판정에 불복한 한제에 의해 떠밀렸던 바로 그 수련자였다.
조일도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재수 없게 됐군.’
한제의 등장에 모든 수련자의 시선이 몰렸다. 이번 봉선 의식에서 그는 가장 주목받고 있는 수련자로 각 가문의 선조들 역시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저 허목이라는 자가 깊게 새겨진 상태였다.
백옥 좌석에 앉은, 나천성역에서 수준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는 수련자들도 모두 웃음기를 머금은 채 한제를 바라보았다.
오직 혈신자만이 속으로 냉소할 뿐이었다.
염뇌자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한제는 그에게 골치 아픈 존재였다. 분명 자신과 인연이 있는 자이면서 청수와도 관계가 있었기에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는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열운자를 향해 포권을 한 뒤 고개를 들어 전 족자를 바라보았다.
언뜻 보기에 그 족자 속 전(戰) 자는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늘을 뒤덮을 듯 상상을 초월하는 살기의 압박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한제는 눈앞의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환각을 보았다. 광장에 깔린 푸른 돌, 사방의 수련자 심지어는 뇌선전까지… 세상 모든 것이 일순간 사라지고 남은 것은 전이라는 글자 하나뿐이었다.
온몸을 바르르 떨던 한제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 글자로부터 엄청난 힘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달려드는 것 같았다. 그 힘에 그의 원신과 육신이 완벽하게 분리되는 듯했다.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렬한 살기가 퍼져나갔다.
한겨울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 있는 일반인처럼 뼛속 깊이 한기가 사무쳤다.
생명의 불씨마저 꺼질 것만 같았다. 마치 천역주를 가득 채웠을 때 그 안에서 나타난 문을 보았던 당시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문을 연 순간, 한 줄기 본원의 힘이 거칠게 달려들었다.
그때, 한제의 미간에서 세 번째 눈이 순간 느릿하게 떠졌다.
하지만 그 안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지는 않았다. 지금 한제는 미동도 없었지만 그의 심신은 격렬하게 진동하는 중이었다.
다시금 천역주 안에서 대문을 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때보다는 그 느낌이 훨씬 약했다.
당시 한제는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거의 무너져 내릴 뻔했지만 이번에는 비록 충격을 받긴 했어도 굳건히 버티고 섰다.
족자 속 글자가 품은 본원의 힘은 천역주의 그것에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약한 모양이었다.
한제 입장에서 천역주가 아주 현묘한 존재라면 족자 속 글자는 그럭저럭 파악할 수 있는 존재였다.
설명은 장황했지만 이 모든것은 고작 1초 만에 일어난 것이었다.
본래 열운자는 한제를 딱히 좋게 보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허목은 나소와 맞설 만큼 신통력은 놀라운 수준이었지만 만약 청수가 나서지 않았다면 결국 패했을 것이 분명했다.
두 번째 관문에서 허목이 뇌령을 삼킨 것은 운이 좋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허목은 운이 지나치게 좋았던 것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힘만으로 지금의 수준에 이른 열운자로서는 그렇게 운에만 기대는 자를 혐오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앞으로 세 걸음이나 걸어 나와 한제를 바라보며 속으로 외쳤다.
‘1초! 단 1초 만에 족자와 융합된 것인가!’
자제력이 강한 그조차도 심장이 쿵쾅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전가가 여러 대에 걸쳐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1초 만에 족자와 융합하는 데 성공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열운자의 마음속에서 좀 전에 허정이 남긴 기억은 씻은 듯 사라졌고 대신 한제만이 들어찼다.
그뿐만 아니라 백옥 좌석의 수련자들 역시 무척 놀라고 있었다. 그중 몇몇은 열운자와 마찬가지로 허목이 그 전의 두 관문에서는 그저 운이 따랐을 뿐이라 여겼으나, 이제 그를 다시 보게 됐다.
심지어 혈신자의 눈빛 역시 바짝 졸아들었다. 허나 그와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전보다 더욱 짙은 살의가 치솟았다.
‘저런 자라면 더더욱 가만히 둘 수 없어!’
이렇게 생각하던 그때, 어디선가 살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냉랭한 청수의 눈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흥! 청수, 네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혈신자는 차게 코웃음을 치며 솟아오른 살기를 억눌렀다.
한편, 향가 노인은 더더욱 흡족해했다.
‘남의 밑에서 만족할 만큼 포부가 작은 자도 아닌 모양이군!’
전공열은 찬 숨을 들이마시며 깜짝 놀랐다.
허정은 복잡한 심정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좋은 운명을 타고 태어난 기린아인 허정에게 지금 허목은 자신에게 쏟아져야 할 관심을 모두 앗아가는 자였다.
그 무렵, 한제의 심신은 둘로 나뉘어 그중 하나가 족자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한 줄기 본원의 힘이 족자에서 흘러나와 그의 체내로 스며들더니 한 바퀴 회전했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던 그 본원의 힘은 우뚝 멈추더니 곧바로 한제의 미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본원의 힘이 한제의 미간에 있는 세 번째 눈으로 들어가자 세 번째 눈에서는 반짝이는 붉은 빛이 드러났다. 뒤를 이어 본원의 힘이 줄기줄기 솟아오르면서 세 번째 눈에서는 눈부신 붉은 빛이 번득였다.
10초가 지난 순간 정신을 차린 한제의 세 번째 눈에서는 붉은 빛이 부채꼴 모양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 부채꼴 모양의 붉은 빛은 전 족자를 완벽하게 감쌌다.
순간, 한제는 그 족자를 통해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요원한 우주 공간. 그 위에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한 명 있었다. 노인은 오른손 검지를 들어 허공을 가르며 순식간에 전(戰) 자를 그려냈다. 그 글자는 여섯 조각으로 나뉘더니 여섯 개의 족자로 변했다.
이어서 짙은 본원의 힘 한 자락이 노인의 몸에서 발산됐다. 그는 슬픔과 아쉬움, 불만족이 담긴 눈으로 글자를 힐긋 보더니 고개를 돌려 우주를 바라보았다. 두 눈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드러났다.
그 순간, 한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세 번째 눈에서 발산된 붉은 빛이 사라졌고 한제가 깨어났다.
방금 목격한 광경은 족자와 융합한 뒤 세 번째 눈의 신통력을 통해 아주 짧은 순간 마치 환각처럼 본 것에 불과했지만 너무나도 사실적이었다.
붉은 빛이 사라짐에 따라 한제의 세 번째 눈은 느릿하게 맞물렸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한 줄기의 붉은 선이 되어 한제의 미간에 남았다.
“보았느냐?”
열운자가 한 걸음 다가서서 한제 앞에 이르더니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격앙된 감정이 배어 있었다.
한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모든 것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미간의 붉은 선 안에는 스스로도 두려울 정도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열운자는 한참이나 한제를 응시하더니 결국 길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하! 좋다, 허목. 봉선 의식이 끝난 뒤 날 찾아오너라. 남은 두 폭의 전도(戰圖)를 네게 주겠다!”
한제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마음은 떨려왔다. 환상 속에서 본 바로는 족자가 총 여섯 개임을 알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열운자 선배님.”
열운자는 흐뭇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음 사람을 지목하여 시험을 계속 진행했다.
일선천(一線天)
몸을 돌려 광장 밖으로 나간 한제는 빈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자신을 향한 다른 수련자들의 시선은 무시한 채 그는 묵묵히 좌선했다.
호흡을 하는 와중에도 한제는 미간에서 먹먹한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느낌은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었다.
한제는 그 세 번째 눈이 본원의 힘을 흡수하면서 놀랄 만한 변화를 겪었음을 은연중에 짐작할 수 있었으나, 그 변화가 좋은 변화일지 나쁜 변화일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미간의 통증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그 힘이 몸 밖으로 터져 나온다면 그것을 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힘에 자신이 당하리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체내에 파멸 심금을 이용한 봉인들을 응집시키며 끊임없이 낙인을 찍었다.
곧 그 심금들은 세 개의 문양이 되어 미간을 봉인했다.
다만 세 번째 눈 안의 힘이 너무도 강력해 봉인은 임시적인 역할밖에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정 시간마다 새로 봉인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러나 한제는 그것이 짜증나고 귀찮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찌됐든 세 번째 눈에 담긴 신통술은 내 목숨을 보호해줄 필살기가 될 거야!’
그 후로도 다른 수련자들의 시험이 계속됐고 약 반 시진 후에야 세 번째 관문이 끝났다.
열운자가 손을 휘두르자 족자가 곧장 그의 손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한 줄기 광풍이 그의 체내에서 솟아올라 사방을 휩쓸더니 불합격한 수련자들을 모두 전송진으로 되돌려 보냈다.
총 147명 중 이제는 단 112명만 남았다.
열운자가 자리로 돌아가자 염뇌자가 나오더니 남은 후보들을 훑어보았다.
“세 개의 관문이 끝났다.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나천성역에서 내로라하는 수련자라는 뜻이다. 원래대로라면 이제 여섯 개의 현묘한 길을 통해 각자의 도를 시험해야겠지만 이미 후보의 수가 108명에 가까우니 곧바로 일선천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그의 말에 후보자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선천은 이번 봉선의 마지막 시험으로 가장 많은 살육을 저지른 이가 108선인 중 첫 번째 선인이 될 것이며 상위 36명은 천강으로 봉해질 것이다! 이 일선천에 너희들은 허상의 몸으로 임하게 된다. 그러니 죽더라도 경미한 부상만 입을 뿐이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