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03
한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머리 큰 소년에게 서늘하게 외쳤다.
“도망가려는 것이냐!”
몸을 훌쩍 날린 그는 곧장 수백 척을 뛰어넘었다. 봉선인이 뒤를 따랐다.
소년은 한제와 같은 규열기 초기였으나, 앞선 관문들에서 월등한 실력을 보인 한제와는 가능한 한 붙고 싶지 않았다.
“허 도우, 물러나려는 나를 굳이 죽일 이유가 있겠습니까? 비록 도우가 나를 이긴다 해도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을 테니 이는 결국 허정을 돕는 꼴 아니겠소?”
소년의 얼굴에서는 어느덧 바보 같은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한제는 대답 없이 달려들면서 오른손을 들어 참라결을 발휘했다. 이에 소년은 순간 표정이 급변하며 뒤로 물러났고 천명 개미가 앞을 막아섰다. 허나 이 개미는 참라결에 적중당한 순간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봉선인의 문양 중 하나가 무너져 내린 개미에게 떨어지더니 번득였다가 이내 영성으로 충만해졌다.
머리 큰 소년은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빠르게 달아나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선술, 포라(包羅)!”
그 외침에 한 줄기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기이한 마수들이 연이어 나타나 짙은 살기와 분노를 품은 채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디 내가 얻은 천둥번개의 힘을 시험해봐야겠구나!”
한겨울 바람처럼 차가운 한제의 목소리가 귀에 떨어지자 소년은 지의 관문에서 상대가 뇌령의 원신을 삼켰던 것을 떠올리고는 몸을 바르르 떨며 뒤로 물러났다.
한제의 두 눈은 순간 변화를 일으키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천둥번개의 기운을 드러냈다. 그 기운은 그의 눈 안에서 무르익어갔다.
“나는 세상 모든 천둥번개를 통제할 수 있다!”
한제는 소년을 무시한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미간에서 태고의 뇌룡의 형태를 한 원신이 튀어나와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태고의 뇌룡이 천둥번개의 힘을 사용하는 사자로서 내지른 포효가 온 세상에 울려 퍼졌다. 그 포효는 이내 파동이 되어 이 살육의 전장에 있는 모든 수련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전장은 순간 지진이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고 달과 해가 뒤바뀌었다.
검은 안개에 녹아든 채 막 어느 수련자를 삼키려던 허정은 그 순간 이 살육의 전장이 격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허정을 감싼 검은 안개가 펑 하고 무너져 내렸다.
허정은 검은 안개로부터 튕겨져 나가면서 놀란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고 그에게 쫓기던 수련자는 창백한 얼굴로 대량의 선혈을 토해냈다.
하늘을 뒤흔들 정도로 강렬했던 뇌룡의 포효에 그 수련자는 쓰러져 버렸다.
숲속의 어느 큰 나무에 숨어서 누군가 근처를 지나기를 기다리던 여섯 개의 손가락을 가진 수련자는 순간 나무에서 튀어나왔다. 마치 어떤 힘에 영혼을 공격당한 듯 창백한 얼굴에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이건… 허목이 지의 관문에서 냈던 포효다!”
한편, 숲속을 돌아다니던 전공열 역시 그 포효에 몸을 바를 떨더니 기쁜 표정으로 그 포효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많은 수련자가 그 끔찍한 포효에 큰 타격을 입었고 전장의 모든 것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특히 하늘에서는 수십 척 길이의 천둥번개가 나타나 미친 듯이 먼 곳을 향해 응집됐다.
대지는 종말의 날을 맞은 것처럼 격렬하게 진동했다.
살육의 전장뿐만 아니라 그 외부, 뇌선전 안 광장 상공의 팔각형의 나무 조각도 계속해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줄기줄기 전광이 허공에 나타나 끊임없이 번득였고 하늘에서는 대량의 전광이 응집됐다.
염뇌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두운 얼굴로 팔각형의 나무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순간 셀 수 없이 많은 낙인을 소환해냈고 그 덕분에 팔각형의 나무 조각은 겨우 진동을 멈추었다.
한편, 포효가 울려퍼진 뒤, 한제의 미간에서 튀어나온 태고의 뇌룡은 다시 그의 육신으로 되돌아갔는데 그 무렵 한제 주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천둥번개가 응집되어 있었다.
반경 1천 리는 천둥번개가 가득해 마치 지옥의 풍경 같았다.
그때,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 있던 나무들은 무너져 내려 하나하나의 화염 공이 되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 순간, 한제의 두 눈에서 짙은 전광이 번득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천둥번개가 주위를 맴돌던 그때, 한제는 자신이 이 천둥번개의 왕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른손을 든 그는 혼비백산하여 미친 듯이 도망치는 소년을 가리켰다.
“천둥, 파멸!”
콰르릉!
천둥이 하늘을 뒤흔들 듯 울려 퍼지면서 한제의 손짓에 따라 사방의 모든 천둥번개들은 엄청난 속도로 그 머리 큰 소년을 향해 달려 나갔다.
소년의 눈에 절망감이 들어찼다. 마치 세상 모든 천둥번개를 마주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반경 1천 리에 가득했던 천둥번개가 소년의 체내로 들이닥쳤다.
쾅!
다시 한 번 땅을 뒤흔들고 하늘을 무너뜨릴 것만 같은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소년은 한 덩어리 화염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전장의 수련자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느릿하게 흩어지는 화염의 불빛을 목격한 그들의 마음에 짙은 두려움이 차올랐다.
“마도자의 신통력은 정말 굉장하군!”
“저자를 맞닥뜨렸다가는 곧장 죽음이야!”
한편, 허정은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먹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뇌선전 안, 푸른 돌로 바닥이 깔린 광장에 있던 머리 큰 소년은 두 눈을 번쩍 뜨며 선혈을 한 움큼 크게 토해냈다.
몸도 힘없이 약간 움츠러든 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멍한 그의 눈에는 충격이 어려 있었다.
“없어⋯⋯.”
“앉아라!”
염뇌자가 낮게 외쳤다.
소년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얼른 자리에 앉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몰아쳤다.
당장이라도 한제의 본체를 찾아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방금 사방을 둘러본 그는 이곳에 앉아있는 이들이 단 108명이라는 것을 확인한 상태였다.
총원 중 네 명이 모자랐다.
‘설마 저 안에 분신이 아니라 본체로 들어간 자가 네 명 있다는 뜻인가?’
소년은 머리가 저릿해졌다.
자신은 본체로 들어간 사람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식은땀이 쭉 났다.
‘저물대를 열 수 없어서 원신에 녹여 넣은 법보만 쓸 수 있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
소년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마음속의 두려움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일선천 안의 하늘에서 금빛이 한 번 번득이면서 문양 하나가 튀어나왔다가 봉선인 안으로 돌아갔다. 이 문양은 소년의 분신을 흡수한 덕에 영성으로 충만해진 상태였다.
한제는 봉선인을 회수한 뒤 멀지 않은 곳에서 넋이 나가 있는 신공호에게 다가가 단약을 꺼내 건넸다.
“은밀한 곳을 찾아 좌선하고 있거라!”
단약을 받아 든 신공호는 잠시 멈칫하더니 돌연 기이한 눈빛으로 한제의 저물대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주인님께서는⋯⋯ 저물대를 여실 수 있는 겁니까?”
한제는 흠칫 놀랐고 순식간에 앞뒤의 정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넌 열 수 없는 것이냐?”
한제는 음침한 눈빛으로 신공호를 바라보았다.
신공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식을 저물대에 스며들게 해보았다. 허나 저물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제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몸을 돌려 허공으로 향했다.
신공호 역시 내심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망설이다가 한제의 분부를 따라 몸을 숨길 은밀한 곳을 찾았다.
한제는 일선천 안을 거닐며 차게 웃었다.
“좋은 전장이군. 헛된 것 속에 진실된 것이, 진실된 것 속에 헛된 것이 있는 게야! 염뇌자 과연 똑똑하고 생각이 깊구나! 대단해! 이곳에 들어온 이는 112명, 선인으로 발탁된 108명을 제하고도 4명이 남지. 이전에 내가 저물대를 열 수 있었던 두 명의 수련자를 죽였으니 이제는 나 말고 한 명밖에 남지 않았구나! 그 재수 없는 마지막 사람이 누구일지 모르겠지만!”
한제는 곧장 신식을 펼쳤고 수련자의 존재가 느껴지기만 하면 곧장 그쪽으로 돌진했다. 허나 이제 그는 공격하기 전에 상대가 저물대를 열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공격을 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허정이 사방을 휩쓸며 미친 듯이 다른 수련자들을 흡수해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살아남은 수련자 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가 생겨났다.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의 성적을 올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점차 흘러갔고 살육의 전장에 자리한 수련자들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한제는 자결하는 수련자들은 공격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가 금색 문양으로 상대의 분신만을 흡수했다.
하지만 허정은 상대가 자결하기도 전에 목숨을 완벽하게 앗아갔다.
밤이 찾아오자 몇 안 되는 수련자만이 남게 됐다. 그제야 한제는 신식을 펼쳐 허정이 있는 곳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허정이야말로 죽여야 할 자였다. 특히 체내에 본원의 힘이 한 가닥 있는 상대라면 절대로 가만둘 수 없었다.
허정 역시 신식을 펼쳐 한제의 소재를 파악한 뒤 검은 안개의 형태로 곧장 몸을 날렸다. 그의 구역 안에 있던 모든 수련자들은 죽고 이제는 한제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으며 그에게서 풍기는 짙은 살기는 거의 하늘을 뒤덮을 정도였다.
“허목!”
허정의 입에서 하늘을 뒤흔들 듯 커다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덤덤한 눈빛의 한제는 하늘로 날아올라 저 멀리서 빠른 속도로 달려들고 있는 허정을 바라보았다. 허정의 주위를 맴돌던 검은 안개는 뒤쪽에 응집됐다가 거대한 마영(魔影)을 형성했다. 마영은 소리 없이 포효하면서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저물대를 열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 저자였으면 좋겠군!”
한제의 눈에서 살기가 번득였다.
허정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고 콰르릉 하는 음폭이 곧장 한제에게 충격을 가했다.
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허정과 한제가 막 지척으로 다가선 그때, 마영이 커다란 입을 벌려 한제를 삼키려 했다.
그러자 봉선인이 1천 척 크기로 불어났고 그 위에 새겨진 문양이 금빛으로 번득이면서 어둠이 짙게 깔린 하늘을 밝게 비췄다.
끊임없는 굉음이 울려 퍼졌고 그 순간 두 사람은 허공에서 맞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