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08
염뇌자는 길게 웃음을 터뜨리며 한 발 앞으로 나가 균열 안으로 발을 들였다. 연맹성역의 우주로 발을 내딛은 그 순간, 그의 눈에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원한이 드러났다.
“중현자 내가 돌아왔다!”
★ ★ ★
연맹성역의 한 수련성에 수련자 대군이 모여 있었다. 방금 막 6성 수련국 자격을 충족시킨 이들은 수련 연맹으로 가서 수련성을 지정받은 뒤 6성 수련국을 건립하려던 참이었다.
한데 이들은 하늘 너머를 올려다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커졌다.
“흩어져! 다들 현정성(玄霆星)으로 돌아가!”
무리를 이끌던 중년 사내가 다급히 외친 뒤 몸을 훌쩍 날려 빠른 속도로 물러났다.
곁에 있던 수련자들은 모두 잠시 당황했으나,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았다. 이것이 바로 연맹성역과 나천성역의 근본적인 차이였다.
연맹성역에서 살육은 일상이었다. 이곳에서 일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교활하고 꾀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중년 남자가 분부를 내리기 전부터 일찍이 움직임을 멈춘 뒤 흩어져 각자도생했다. 상대의 생사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몇몇 수련자들은 도망을 치면서도 상대를 유인하기도 했다. 쫓아온 이들을 죽이고 법보를 빼앗기 위해서였다. 그런 불순하고 음험한 생각들이 이 연맹성역의 수련자들에게는 본능이었다.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미처 다 모이기도 전에 연맹성역의 수련자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나천성역 수련자 하나가 신통력을 발휘하자 그에게 쫓기던 연맹성역 수련자가 선혈을 울컥 토해냈고 속도도 확연히 느려졌다. 눈빛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크하하! 게 섯거라!”
나천성역 수련자는 크게 웃으며 한달음에 그 연맹성역 수련자를 따라잡았다. 허나 그가 상대에게 다가간 순간, 연맹성역 수련자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반격을 가해왔다.
펑! 펑!
“크아악!”
짧은 폭발음과 비명소리가 울리고 결국 연맹성역의 수련자는 저물대 하나를 챙긴 뒤 빠르게 물러나 먼 우주로 나아가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그를 추격하던 나천성역의 수련자는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같은 상황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었다.
한제는 수련자들이 공간의 균열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을 보고만 있을 뿐 뇌선전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늘의 균열을 서늘한 눈빛로 노려보던 향가 노인이 몸을 훌쩍 날려 푸른 돌로 바닥이 깔린 광장에 이른 뒤 한제에게 말했다.
“허목, 나를 따라와라. 네 성격상 통로가 열리자마자 진입하지는 않을 것 같구나!”
말을 마친 그는 발아래에서 피어오른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나아갔다.
노인의 말이 사실이었다. 모완의 일이 아니었다 해도 한제는 가장 먼저 연맹성역으로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성역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대해서라면 특히나 신중하고 조심해야만 했다.
그때, 청수가 다가오더니 단번에 한제를 데리고 향가 노인의 뒤를 따랐다.
그 광경을 보고 잠시 망설이던 열운자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하늘의 균열로 시선을 돌렸다.
향가 노인은 그 높은 수준만큼이나 속도도 매우 빨랐다. 단 몇 걸음 만에 뇌선전을 빠져나가 나천성역 동쪽 영역으로 향했다. 청수는 한제를 검은 바람으로 감싸둔 상태로 여유롭게 그 뒤를 따랐다.
“허목, 넌 여태 힘겹게 수련을 해왔다. 그러니 이 일이 정말 그런 노력을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인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 선조 어르신께서 널 돕는 데 동의하실지도 난 알 수 없다.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해라.”
이동하는 동안 내내 말이 없던 향가 노인은 며칠이 지나 동림성 근처에 이른 후에야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선배님!”
한제의 덤덤한 대답에 향가 노인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림성은 나천성역 전체를 통틀어 가장 신비로운 곳이었다. 이 수련성은 나천성역 동쪽 구역을 느릿하게 표류했다. 향가 노인도 수시로 저물대에서 붉은 옥패를 꺼내 수련성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제도 드디어 저 멀리서 수련성을 포착할 수 있었다.
동림성은 거대한 곳으로 심지어 천운성(天運星)보다도 훨씬 컸다. 그 수련성에는 깊은 골짜기들이 있었고 어두운 노란 빛이 났다. 또한 멀리서 보기만 해도 강력한 압박감이 훅 끼쳐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동림성 밖에는 작은 수련성 수십 개가 있었는데 모두 동림성 주위를 느릿하게 선회하는 중이었다.
동림성은 때때로 밝게 빛을 번득였는데 이를 통해 강력한 금제가 걸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턱대고 들어서려 했다가는 곧장 죽음을 맞게 될 터였다.
향가 노인이 결인을 그린 손을 앞쪽으로 내밀자 거대한 동림성 밖을 맴돌던 작은 수련성 하나가 순간 궤도를 벗어나 다가왔다.
노인 근처에 이른 수련성은 밝은 빛을 번득이면서 이내 하나의 전송진이 되었다.
“청수 선군, 허목, 따라오게!”
말을 마친 향가 노인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전송진에 들어섰다. 청수 선군과 한제가 그 뒤를 따랐고 세 사람이 들어선 순간 전송진은 빛을 번득이면서 사라졌다.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동림성이었다. 살랑 불어오는 미풍에는 피비린내가 섞여 있었고 포악한 영기(靈氣)가 풍겼다.
나천성역의 다른 수련성과는 전혀 다른 기운에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향가 노인은 둘을 데리고 동림성 서쪽 끝의 수천만 리 이어진 공동묘지로 향했다. 이곳은 흙은 암적색이었고 더욱 짙은 피비린내가 풍겼다.
곳곳에는 잘린 팔다리가 널려 있었고 하늘에는 독수리들이 뱅뱅 맴돌다가 이따금 내려와 그 썩은 시체의 토막을 잡아챘다.
독수리의 눈에서 사람을 두려워하는 기색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널려 있는 팔다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묘만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연혼종(煉魂宗)의 공법을 수련한 한제는 죽음의 기운에 매우 예민했다.
살짝만 훑어봐도 이곳에 혼백이 셀 수 없이 많아 가장 절정에 이른 상태의 존혼번이라 해도 이곳 혼백의 수에는 대적하지 못할 것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곳의 혼백들을 흡수한다면 존혼번을 삽시간에 가득 채울 수 있겠군!’
한제는 사방을 둘러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동림성의 서쪽 끝은 금지(禁地)라 외부인은 들어올 수가 없지. 이곳에서 우리 향가의 선조 어르신이 폐관수련을 하고 계신다.”
노인은 침착하게 이야기했는데 그 말투에 선조에 대한 숭배심을 엿볼 수 있었다.
청수는 말없이 사방을 둘러보기만 했다.
세 사람이 점점 서쪽 끝 깊은 곳에 이르면서 지면의 색은 암적색에서 거의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눈 닿는 곳마다 어둠뿐이었고 조금의 생기도 느낄 수 없었다. 이 죽음의 땅에서 생기는 완벽하게 압도당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한제는 이곳에서 자신이 점점 약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생기가 두 다리를 통해 대지로 흡수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래 머물다가는 모든 생기를 빼앗길지도 몰랐다.
검은 대지에 건물은 없었다. 그저 평탄한 땅만 이어질 뿐이었다. 그런데도 한제의 간담은 서늘해졌다. 이 대지 아래에 극에 달한 죽음의 기운이 숨겨져 있기라도 한 듯했다.
“향가의 향운동, 선조 어르신을 뵙습니다!”
향가 노인, 향운동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공손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리고 순간, 대지가 진동했다.
생기
한제는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한 줄기 파동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면의 진동은 그로 인한 것이었다.
너무나 강한 파동에 온 동림성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어쩐 일이냐?”
침착한 가운데 서늘한 기운이 훅 끼쳐오는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마치 허공과 시간을 관통하여 수만 년 전으로부터 들려온 듯한 목소리였다.
청수의 오른쪽 눈에서 붉은 빛이 번득였다. 허나 고개를 숙여 전방의 대지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나천성역과 연맹성역 사이의 전쟁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이자는 봉선에서 1위를 차지한 자로 우리 향가에 조건을 하나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제 힘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어 선조 어르신께 칠석술을 부탁드리려 합니다!”
향운동이 공손하게 말했다.
그 순간, 한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신식 한 줄기가 자신의 몸에 고정되는 것을 느꼈다.
놀란 가운데 그는 뒤로 물러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으며 애써 스스로를 안정시키려 했다.
그 신식은 강했지만 한제의 전신을 완벽하게 꿰뚫어보지는 못했다. 세 번째 눈에서 흘러나온, 본원으로부터 기이한 힘이 순간 온몸으로 퍼졌기 때문이다.
한제를 훑어본 신식은 이내 물러났고 연로한 목소리가 짧게 울려 퍼졌다.
“그자만 들여보내도록!”
그 말을 끝으로 땅이 더욱 격렬하게 진동했고 이내 콰르릉 소리와 함께 한 줄기 균열이 일면서 깊은 고랑 하나가 드러났다.
향운동은 한제에게 눈짓을 했다. 선조 어르신이 부탁을 들어줄지 그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선조 어르신의 성격은 무척 괴이해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봉선으로 발탁된 자의 조건을 들어줘야 하는 향가의 의무도 사실 그 선조의 관심 밖이었다.
한데 뜻밖에도 관심을 보이는 듯하자 향운동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허목, 내려가 봐라. 난 여기서 기다리마.”
한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청수를 바라보았다.
청수는 오른쪽 눈으로 붉은 빛을 번득이며 덤덤하게 말했다.
“누군가가 감히 널 다치게 한다면 난 이 동림성 모든 가문 사람들의 피로 강을 이룰 것이다.”
덤덤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배인 살기(煞氣)에 향운동은 미간을 찌푸리며 쓰게 웃었다.
한제는 진심으로 감격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그를 감격하게 한 이는 모완과 사도환, 주일, 둔천 그리고 눈앞의 청수뿐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청수와 향운동을 향해 포권을 한 뒤 고랑을 따라 아래쪽으로 향했다.
거대한 고랑 안으로 들어선 한제는 끊임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사방의 벽은 미끄러웠고 그 너머에서는 아무런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사기(死氣), 죽음의 기운뿐이었다.
끊임없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사기는 짙어졌고 결국 사방을 거의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마치 실체를 갖춘 존재처럼 한제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한제는 음산한 바람에 휩싸인 불씨처럼 언제든 꺼져버릴 듯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