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10
“허!”
향가 선조는 놀란 듯 혀를 차더니 이내 관의 뚜껑이 옆쪽으로 비스듬히 밀려나며 그 안에서 마치 장작처럼 비쩍 마른 시체가 드러났다.
냉랭하고 무정한, 짙은 사기를 풍기는 눈빛이 그 비쩍 마른 시체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와서는 한제에게 떨어졌다.
★ ★ ★
연맹성역 안의 어느 수련성. 한제의 본체는 어느 문파에서 수준 낮은 제자인 척 숨어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의 체내에서는 지금 대량의 생기가 흩어지고 있었다. 허나 본체는 그것을 저지하기는커녕 그저 하늘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언제나 냉랭하기만 했던 그의 눈빛은 지금 부드러운 빛을 띠고 있었다.
본체의 체내에서 특수한 방식으로 분신에게 흘러든 생기는 끊임없이 모완의 원영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모완의 원영은 점차 다시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사흘, 나흘⋯⋯.
닷새째 되는 날, 한제 본체의 눈은 탁했고 붉었던 머리는 어두워져 있었다. 대량의 생기를 소모하는 것은 고신의 몸을 가진 본체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일인 모양이었다.
나흘 동안 칠석술을 진행한 모완의 원영은 완벽하게 실체화된 상태였다. 그녀의 원영 안에는 한 줄기 생기가 차 있었으며 사기는 완벽하게 사라져 있었다.
다만 그 한 줄기 생기는 한제에게서 생기가 흘러들지 않는 한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닷새째 되는 날, 한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네 생기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원영을 부활시킬 수는 없어.”
향가의 선조가 덤덤하게 한제를 바라보며 다시 관 안에 누웠다.
죽음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일어나 모완과 한제를 통로 쪽으로 밀어냈다. 그러는 동안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금제로 모완의 원영을 감쌌다. 그 원영 안의 한 줄기 생기가 흩어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였다.
회오리에 떠밀려 고랑 안에서 밖으로 나온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한제에게 집중됐다.
청수는 지금의 한제를 보고 흠칫 놀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향운동은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한제를 힐끗 살피더니 안타깝다는 듯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한제는 조심스레 모완의 원영을 저물대에 넣은 뒤 청수를 향해 덤덤하게 말했다.
“사형, 가시지요.”
청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소매를 휘둘렀다. 한제는 그와 함께 하늘을 가르고 먼 곳으로 나아갔다.
향운동은 한제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드러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허목, 비록 내가 미리 계산한 일이기는 하지만 숨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똑똑한 네 녀석이라면 분명 이리 될 것을 알고 있었겠지. 그 원영을 살리기 위해 대량의 생기를 대가로 들였으니 이것으로 우리 사이에 진 빚은 없는 것이다!”
청수와 한제는 두 갈래의 유성이 되어 하늘을 가르며 나아갔다.
한참을 말없이 이동하던 중, 한제가 저물대에서 피천관(避天棺)을 꺼내더니 불쑥 물었다.
“사형, 혹시 이것을 알고 계십니까?”
청수는 우뚝 멈춰서 그 피천관을 살피더니 오른쪽 눈으로 붉은 빛을 번득이다가 한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본 적은 없는 물건이나 그 안에서 짙은 선기(仙氣)가 느껴지는 것을 보면 선계의 물건이구로나. 또한 그 안에는 아주 특수한 힘이 있어. 상처를 치료하는 데 쓰는 물건인 것 같군.”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피천관을 다시 거두어 넣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상처를 치료하는 데 쓰는 것이긴 하나 사용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청수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먼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허목, 넌 승선지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시험에 통과했다. 이번에 연맹성역으로 가면 큰 위험이 따를 테니 언제나 너를 보살펴줄 수는 없다. 그러니 연맹성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온전히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다!”
한제는 씁쓸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명이 부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호풍와 환우(喚雨), 그리고 살두성병(撒豆成兵) 중 넌 이미 호풍을 파악했다. 나머지 두 선술을 지금 알려주마!”
말을 마친 청수는 두 손가락을 펼쳐 한제의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엄청난 선원(仙元)의 힘이 한제의 체내로 밀려들었고 그와 동시에 한제의 머릿속에는 환우와 살두성병에 관한 모든 정보가 나타났다.
청수는 손가락을 대는 것만으로도 선술을 전승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전승은 전수와 달리 오직 직계 사제지간에만 진행됐다. 때문에 선술의 정보 중 하나도 누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
심지어 불필요한 우회 따위는 전혀 없이 전승자로 하여금 곧바로 해당 선술을 깊이 깨닫게 할 수도 있었다.
청수는 한제를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그저 스승에게 보답하는 마음에 한제를 돌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한제가 승선지에 들어가지 않은 일로 청수는 매우 실망한 상태였고 한제와 스승 백범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한제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고 선계가 무너진 원인과 당시 자신이 그렇게 광기에 휩싸였던 이유를 찾는 데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한제가 한 여인을 위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수명마저 쏟아붓는 모습을 본 순간, 그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청수는 한제를 보며 자신의 기억을 떠올렸다.
한제에게서 당시의 자신을 보았고 가슴 한쪽이 아파왔다.
그는 광기에 휩싸였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피로 얼룩진 바닥에 아름다운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연인을 봤던 그 순간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이제 한제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마치 스승의 길을 그대로 따르려는 듯 부드러웠다.
“승선지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이 선술을 완벽하게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그러니 이 선술을 발휘할 때 도움이 될 선원의 힘을 네 몸에 녹여 넣어주겠다!”
청수가 한제 체내에 주입해준 선원은 그 안에서 맴돌면서 선기로 휩싸인 금색 콩이 되어 한제의 원신에 자리를 잡았다.
“이 선원(仙元)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네게 주는 호신용품이라고 생각해라! 환우의 결정과 함께 쓴다면 연맹성역에서 어지간히 수준 높은 수련자와 얽히지 않는 이상 무리 없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한제의 머릿속에서는 환우와 살두성병의 신통력이 끊임없이 흡수됐고 깨달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청수는 한참동안 말없이 한제를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말했다.
“네 생기가 너무 많이 흩어졌구나.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 내가 도움을 줄 수 없다. 내 신통술 중 병탄(倂呑)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투를 위한 것일 뿐, 자양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어. 좋아, 병탄도 네게 전승해주마!”
말을 마친 청수는 오른손으로 다시 한제의 미간을 두드려 병탄의 술법을 전수해주었다.
“이 술법의 폐단은 무척 크다. 당시 스승님께서도 내게 이것을 전수하실 때 많이 망설이셨지. 이 술법을 완벽하게 익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사용하지 말거라!”
길게 한숨을 내뱉은 청수는 늙어버린 한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손가락 끝을 깨물어 낸 피로 기이한 문양을 하나 그려냈다.
피비린내 짙은 문양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주를 변화시켰다. 세상 모든 먼지가 빠르게 밀려나는 것 같았다.
“이 문양은 약간이나마 널 보호해줄 것이다!”
청수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그 피비린내 나는 문양은 곧장 한제의 가슴팍에 찍혀 번쩍 하고 빛을 내뿜더니 이내 사라졌다.
한제의 몸이 격렬하게 떨리더니 그의 얼굴은 차차 젊음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머리가 백발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얼굴만큼은 청년과 같은 모습으로 회복됐다.
몸에서도 생기가 손상당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 흔적은 완벽하게 가려진 채 보호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문양은 회복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원영을 살리는 데 사용할 수도 없어.”
말을 마친 청수는 몸을 돌려 나아가며 차차 사라져갔다.
“사제, 앞으로 몸조심하도록⋯⋯. 극의 경계를 회복시키는 방법은 천벌과 관련이 있다. 다만 수준이 쇄열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절대 극의 경계에 신경 쓰지 마라. 절대로!”
그렇게 청수는 떠나갔다.
한제는 몸을 부르르 떨며 의식을 회복했다. 방금 청수가 한 말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한제는 청수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작게 중얼거린 한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안은 채 몸을 돌려 떠나갔다.
그는 뇌선전 상공의 균열을 통해 연맹성역으로 향하는 대신 세상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의 버려진 수련성을 찾아 안전을 확인한 후 동굴에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는 신식을 펼치고 타산을 소환해 동굴 입구를 지키게 한 후 저물대에서 모완을 봉인한 금제의 공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한제의 눈에 근심과 슬픔이 담겼다. 왼손으로 그 금제의 공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자 금제가 층층이 열리면서 그 안에서 한 줄기 생기를 갖게 된 모완의 원영이 드러났다.
“모완, 내 모든 생기를 소진하더라도 널 되살릴 수만 있다면 난 그렇게 할 거야.”
한제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 안에는 마음이 시큰해질 정도의 고통이 배어 있었다.
모완의 원영이 가볍게 떨렸다. 깨어날 힘까지는 갖지 못한 상태였지, 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본래 눈물을 가질 수 없는 원영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떨어져 내리는 대신 곧장 흩어져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한제는 멍하니 그런 모완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의 미간에서 번쩍이는 천역주가 느릿하게 응결됐고 모완의 원영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한제는 한 줄기 생기를 갖게 된 모완의 원영이 천역주 안에서도 흩어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 속도는 느릿했지만 여전히 흩어지고 있었다.
폐관수련을 마친 사도환
한제는 씁쓸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결단을 내린 듯한 얼굴로 저물대에서 피천관을 꺼냈다. 수정으로 만들어진 이 관은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천역주 안에서 모완의 원영을 다시 꺼낸 한제의 손은 끊임없이 떨렸다. 이미 결단을 내리긴 했지만 그는 다시금 갈등에 빠졌다.
놓느냐, 놓지 않느냐⋯⋯
모완의 원영이 빠르게 흩어져가고 있는 것을 느낀 한제는 이를 악물고 모완의 원영을 쥔 손을 피천관 안에 넣었다.
그 순간, 모완의 원영은 가부좌를 틀고 있다가 느릿하게 눕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천관 안에서 기이한 힘이 솟아올라 관을 완벽하게 뒤덮었고 모완의 원영이 진동하면서 무너져 내리려는 기색을 보였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