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11
화들짝 놀란 한제가 외친 순간, 모완의 체내에 있던 한 줄기 생기가 원영 안에서 흘러 다니면서 붕괴를 저지했고 잠시 후 관 안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나타났다.
한제의 마음은 격하게 흔들렸다. 그는 모완의 체내에 한 줄기 생기가 없었다면 그녀는 피천관에서 곧장 흩어져 사라졌을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생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효과를 낼 수 있는 모양이군. 설령 단 한 줄기의 생기라 해도…”
한제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관에서는 오색찬란한 빛이 번득였다.
뒤이어 붉은 실이 모완의 원영에서 줄기줄기 모습을 드러내더니 오색찬란한 빛이 응집되면서 그 붉은 실과 함께 여인의 골격을 이루었다.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모완의 육신이 응결됐다.
그녀는 마치 잠을 자는 듯 얌전히 관 안에 누워 있었다. 심지어 숨소리도 들려왔다.
그 모습을 본 한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완⋯⋯.”
이 광경을 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를 들여도 상관없었다.
사흘 뒤, 한제는 모완을 데리고 이 폐허가 된 수련성을 떠나 뇌선전으로 향했다.
“모완아, 집으로 돌아가자!”
근심과 슬픔으로 가득한 한제의 목소리가 짙게 울려 퍼졌다.
★ ★ ★
연맹성역은 보름 만에 피비린내 나는 폭풍에 휩싸인 상태였다.
연맹성역 서쪽 구역에서부터 밀고 들어온 나천성역 수련자 대군은 수련성을 하나하나 점령했다. 그 안에 살던 수련자들은 각자 후퇴했다.
세상에 종말이 닥친 듯한 광경이었으나 기이하게도 연맹성역에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조급함이나 초조함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않고 그저 관망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상황에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의아했다.
심지어 염뇌자를 비롯한 이들마저도 의혹을 느꼈다. 만약 같은 상황이 나천성역에서 발생했다면 뇌선전은 가장 먼저 세력을 꾸려 반격에 나섰을 터였다.
다른 성역 수련자들이 깊은 곳까지 밀고 들어가 본부를 점령하고 자양하는 것을 절대 허락했을 리가 없다.
수련자 연맹만이 아니라 7급 이상 수련성에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연맹성역 안에서 나천성역 수련자들이 점거한 수련성은 모두 6급으로 7급 이상의 수련성은 사라지기라도 한 듯 찾을 수가 없었다.
표면적으로 나천 성역 수련자들의 기세는 무궁무진했지만 상대의 이런 반응에 그들은 점차 불안해졌다.
허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난 보름동안의 전투에서 나천성역 수련자 대부분이 연맹성역 6성 수련국의 전투력에 깜짝 놀랐다는 점이었다.
날카로운 눈빛과 교활함, 그리고 다루기 어려운 법보… 나천성역의 손실은 적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수준 수련자끼리 맞붙을 경우 나천성역 수련자가 반드시 패했다는 통계 결과도 나왔다.
나천성역이 느끼기에는 마치 연맹성역의 모든 수련자가 동림성에서 온 것만 같았다.
이때 연맹성역 서쪽 구역의 어떤 황량한 수련성에서 하늘을 꿰뚫을 듯 엄청난 기운이 폭발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그 수련성 안에서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대지는 격렬하게 진동했고 강과 바다는 철썩거렸다. 수련성 전체가 금방이라도 소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격렬한 펑, 펑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가 나왔다! 젠장맞을 봉란성(鳳欒星) 여인들아, 기다려라! 너희의 핍박으로 이 망할 곳에 숨은 채 이렇게 오랫동안 폐관수련을 해올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인연은 아직 끝이 아니다! 크하하하!”
다 해어진 옷을 입은 그의 피부는 잔뜩 더러워져 몰골이 엉망이었지만 두 눈만은 사람의 혼을 두려워 떨게 만들 정도로 기이한 빛을 밝게 번득였다.
그가 밖으로 걸어 나오자 콰르릉 하는 음폭이 울려 퍼졌고 이 수련성은 그 거대한 힘에 더 이상 못 버티겠다는 듯 무너져 내리려는 기색을 보였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얼마나 오랫동안 폐관수련을 한 것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야. 나의 왕비들이 가엾고도 불쌍하구나.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벌써 죽었겠지. 봉란성, 너희들이 날 분노하게 하는구나! 단번에 규열기 초기까지 수련을 마친 난 너희 봉란성에 가서 왕으로 군림할 것이다!”
그는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분노를 모두 쏟아내듯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 ★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전방을 살피며 천천히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 걸음은 빠르지 않았지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아래에서는 파문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거리를 뛰어넘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우주를 바라보는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다. 이곳을 떠난 지도 오래였다. 당시 이제 막 문정기 수준이었던 그는 어느새 규열기 수준이 되어 있었다.
“천운자 능천후⋯⋯ 이 이한제가 돌아왔다!”
한제는 밝은 눈을 번득였다.
그의 저물대에는 요령의 땅 지하 동굴로 들어가는 열쇠가 들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줄곧 조심스럽게 보호해왔다.
당시 한제의 수준은 연맹성역 안에서도 그다지 높지 않았고 그가 알고 있는 가장 높은 수련국이라고 해봐야 7성 수련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규열기 수련자로 나천성역의 수준 높은 수련자들에게도 중요한 인물로 대접받는 상황이었다. 이제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연맹성역에서 커다란 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허나 한제는 연맹성역은 나천성역과 비교도 안 될 정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맹성역은 굉장히 깊었다.
“이번 전쟁에서는 반드시 신중하게 굴어야 해. 가벼이 다른 사람들의 분쟁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지.”
한제는 일단 상황을 관망하기로 결심했다.
현재 한제는 연맹성역을 떠나기 전보다도 훨씬 신중해진 상태였다. 그는 연맹성역 수련자들, 특히 문정기 이상 수련자들은 모두 교활하고 꾀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의 지금 수준으로 본체와 합체하면 한층 안전해지겠지.”
그는 이미 본체와의 연계를 통해 서로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상태였다.
그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된 수련성을 하나 찾아내서는 곧장 들어섰다. 그 수련성에 흐르는 영력(靈力)은 많지 않았지만 대지의 생기는 충만해 풀과 나무가 자라나 있어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있는 상태였다.
한제는 생기가 거의 소진된 상태였지만 따로 계획이 있었다.
청수의 도움 덕에 지금은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겉으로는 전혀 노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청수가 준 그 문양을 제거한다면 그는 1천 년을 산 노인처럼 노쇠하고 허약한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하늘에서 부르는 소리는 더욱 짙어져 가고 있었다. 허나 한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몸을 훌쩍 날린 그는 생기가 충만한 이 수련성의 대지에 착지했고 두 다리가 땅에 닿은 순간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가부좌를 틀었다. 타산이 수십 척 떨어진 곳에서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부릅뜨고 경계를 섰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결인을 그렸다. 순간 한 줄기 검은 빛이 검지에서 응결됐다. 처음에는 약간 흐릿했지만 잠시 후 한 사람의 심신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빛이 됐다.
“적멸지(寂滅指)⋯⋯.”
적멸지(寂滅指). 당시 세 번째 단계를 목격한 뒤 분석을 통해 이 술법을 오랫동안 발휘하는 것은 본원으로 돌아가는 데 불이익을 준다는 것을 파악한 후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완을 구하는 데에는 대량의 생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 적멸지가 떠올랐다.
이 신통술은 매우 거친 방법으로 만물의 생기를 흡수하여 온몸에 녹여내 그 힘을 날카로운 일격으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그 손가락에 닿은 모든 것은 생기를 잃게 된다.
한제는 밝은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 손가락 끝을 느릿하게 아래로 내려 땅을 두드렸다. 그 순간, 한제를 중심으로 검은 빛이 고리 형태를 이룬 채 바깥쪽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내 검은 빛에 반경 1천 리의 대지가 뒤덮였고 그 범위 안의 나무들은 점차 말라갔으며, 나뭇잎이 떨어져 내렸다.
말라서 갈라지던 나무들은 이내 펑 하고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나뭇잎들 역시 떨어져 내리는 와중에 흩어져 버렸다.
오직 한 덩이의 하얀 기운만이 나무들이 붕괴하는 순간 그 안에서 피어올라 한제를 향해 모여들었다.
나무뿐만 아니라 풀들도 검은 빛에 닿으면서 마르고 시들어갔다. 그 풀에 깃든 생기 역시 하얀 기운으로 뽑혀 나와 한제에게로 향했다.
거의 삽시간에 반경 1천 리의 모든 생기가 뽑혀 나왔다.
한제는 자신에게 모여든 짙은 하얀 기운에 뒤덮였다. 이 기운 안에는 흘러넘칠 듯한 생기가 짙게 어려 있었다. 그것이 주위를 맴도는 동안 두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주위를 맴돌던 하얀 기운은 곧장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해 한제의 칠공을 통해 스며들어 그의 체내로 들어가 소진된 생기를 빠르게 보충했다.
생기를 흡수하는 동안 한제의 가슴팍에는 붉은 문양이 번득이다가 몸으로부터 느릿하게 3촌 정도 떨어져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번쩍이면서 은닉과 보호 작용을 했다.
반 시진 정도 지나 한제가 마지막 하얀 기운까지 흡수했을 때, 반경 1천 리의 모든 것은 노랗게 말라버렸고 심지어 땅도 말라서 갈라져 있었다. 생기라고는 한 줌도 남지 않았다.
허나 기이하게도 1천 리 밖은 전혀 다른 세상처럼 생기가 넘쳤다.
“향가의 선조가 발휘한 신통력은 적멸지와 비슷했다. 흡수한 생기를 자신의 몸에 녹여 넣었지. 허나 내가 그 술법을 꿰뚫어보았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겠지.”
한제는 냉소했다.
“내 생기의 반을 그리 쉽게 줄 수는 없지. 언젠가 그 생기에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을 것이다. 생기를 흡수하는 것쯤은 나도 할 수 있으니까.”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다가 이내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반경 1천 리로 퍼져 나갔던 검은 빛이 다시 끓어오르듯 미친 듯이 바깥쪽을 향해 확산됐다.
삽시간에 반경 5천 리까지 검은 빛에 뒤덮였고 그 범위 안의 풀과 나무는 시들어 무너져 내렸다. 그 범위 안에 있던 마수들 역시 도망치지 못했다.
거대한 구렁이도 순식간에 검은 빛에 뒤덮여 몸을 부르르 떨었고 그대로 무너져 내리면서 대량의 하얀 기운이 됐다. 그 기운 역시 한제가 있는 곳으로 응집됐다.
검은 빛은 확산을 멈추지 않았다.
그 빛이 닿은 모든 생명은 무너져 내렸고 끝없는 생기의 폭풍을 이루어 한제에게 흡수되었다.
한제의 가슴팍에 붉은 문양이 떠올랐다. 한제는 두 눈을 부릅뜨며 왼손으로 그 문양을 움켜쥐어 밖으로 끌어냈다.
이에 그 문양은 한제의 가슴팍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왔고 그 순간 그는 밝은 빛과 함께 노쇠한 노인의 모습이 됐다. 짙은 죽음의 기운도 느껴졌다.
하지만 곧장 사방의 짙은 생기가 칠공으로 흡수되면서 한제는 빛에 뒤덮인 채 시간이 거꾸로 흐르듯 젊음을 되찾아갔다.
한제의 조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