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21
유청운은 분노와 의아함이 동시에 생겨났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도망치는 것만 생각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축지성촌을 깨달은 수련자에게 도망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축지성촌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자는 규열기 수련자 사이에서는 무적이라 할 수 있다. 저런 자와 얽혔다는 것만으로도 악몽이었다.
그때, 유청운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제가 오른손으로 허공을 매섭게 내리쳤다.
순간 하늘과 땅이 마구 뒤흔들리면서 엄청난 압력이 가해졌고 유청운은 창백한 얼굴로 다시 뒤로 물러나려 했다.
“헤헤헤.”
그의 귓가에 바보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그 기이한 외모의 소년이 나타나 퇴로를 막아섰다. 동시에 저 멀리서는 거구의 꼭두각시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유청운은 쓰게 웃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포권을 했다.
“도우, 자네와 나 사이에 이럴 정도의 원한이 없지 않은가? 나를 살려준다면 반드시 그 은혜에 보답하겠네!”
한제는 유청운을 힐긋 보더니 차게 물었다.
“어떻게 보답하겠다는 거지?”
유청운은 이를 악물며 답했다.
“규열기 수련자의 원신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 정도면 어떤가?”
그 원신의 주인은 유청운 자신의 원수였다.
수년 전, 시음종의 힘으로 그자의 육신을 파괴하고 원신을 취한 유청운은 그 원신으로 시체 인형을 만들 생각이었다. 허나 당장 목숨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흠, 꺼내 봐라.”
한제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도우, 그전에 이 원신을 내놓으면 나를 살려주겠다고 약속⋯⋯.”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한제는 싸늘하게 내뱉었다.
“셋을 세겠다. 하나!”
한제의 고압적인 태도에 유청운은 자신의 꼴이 우습게 됐다는 생각에 쓰게 웃더니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미간에서 파문이 일어나더니 그 안에서 오래된 거울 하나가 나타났다.
거울에서 눈부신 빛이 번득였다가 사그라들더니 중년 사내의 원신이 떠올랐다.
유청운은 망설임 없이 그 원신을 살짝 떠밀어 한제에게 넘겼다.
원신을 자세히 살핀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지능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지만 틀림없는 규열기 수련자의 원신이었다.
원신을 챙긴 한제는 다시 유청운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허나 목숨 값으로는 부족하군.”
유청운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허나 저 원신 하나로는 다른 부전주들이 저자에게 약속했을 대가에는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은 분명했기에 감히 따지지 못하고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문 채 말했다.
“줄 것이 하나 더 있네. 그거라면 자네도 분명 만족할 걸세!”
그의 두 눈에서는 순간적으로 악독한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어서 그가 좀 전의 그 오래된 거울을 가볍게 두드리자 그 안에서 흘러넘칠 듯 강렬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와 사방을 휩쓸었다.
쿵쾅! 쿵쾅!
빠르고 세찬 심장 박동 소리가 그 오래된 거울 안에서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뒤이어 시체 하나가 느릿하게 떠올랐다.
온몸이 붉은 빛인 그 시체는 하늘까지 태워버릴 듯 맹렬한 화염을 피워 올렸다. 머리 큰 소년마저 표정이 변했을 정도로 강렬한 화염이었다.
“우리 시음종의 시체 등급으로는 12등에 해당하는 염령(炎靈) 시체일세. 이 시체를 탈취하는 데 성공하면 세상 모든 화계(火系) 신통력에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게 되지.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불을 통제할 수도 있어! 이 정도라면 목숨 값으로 충분할 걸세.”
말을 마친 유청운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불에 휩싸인 시체가 눈 깜짝할 사이 한제의 곁에 이르렀다. 한데 그 순간, 시체가 광기 어린 두 눈을 번쩍 떴다.
“폭발!”
쾅!
악에 받친 유청은의 외침에 이어 격렬한 소리와 함께 시체가 폭발했다. 허나 그 위력은 멀리 퍼져나가는 대신 좁은 범위에만 한정됐고 그 대신 더욱 강력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한 줄기 화염이 미친 듯 사방을 휩쓸었고 구름이 모두 사라졌으며, 하늘에는 균열까지 일었다. 그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타산과 머리 큰 소년마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소년은 만약 저 시체가 자신을 겨냥해 폭발했다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청운의 이런 도박을 지켜보면서, 소년은 연맹성역에 대해 처음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크하하하! 내 목숨이 아닌 네 목숨 값이 됐구나!”
유청운은 광소하며 몸을 훌쩍 날려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는 사실 쉬이 타협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좀 전의 모든 것은 상대를 속이기 위한 연기일 뿐이었다. 좁은 범위에 그 위력을 집중시키는 폭발이라면 규열기 수련자라 해도 살아남을 수 없을 터였다.
인과를 정리하다 (1)
‘염령 시체는 아깝지만 일단 살고 봐야겠지.’
유청운은 최대한 빨리 시음종으로 돌아와 육신을 탈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노린 다른 부전주들에게도 어떻게든 복수할 계획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어딜 그리 급히 가느냐고 묻지 않았던가?”
냉랭하고 무정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순간 유청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에는 한제의 허상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한 모습이었는데 그의 곁에서 허상의 솥 하나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마… 말도… 안…”
이 모습을 본 모든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다.
머리 큰 소년 역시 매우 놀란 상태였는데 그는 한제가 강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방금과 같은 충격에서도 멀쩡하다는 것은 상상 밖이었다. 이에 지금껏 한제에게 가졌던 반감이 사라졌고 대신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한제는 냉랭한 얼굴로 유청운을 힐끗 보더니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유청운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도 도우. 오해일세, 오해! 이번에는 정말로 값진 법보를⋯⋯.”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제가 그의 뒤에서 나타나더니 오른손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유청운의 등을 두드렸다.
펑!
그 작은 손짓에 유청운은 튕겨 나갔고 더 이상 응결되지 못하고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한제는 유청운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한제가 유청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없었다. 이에 상대가 화염에 휩싸인 시체를 꺼냈을 때부터 낌새를 눈치 채고는 몰래 고신의 거대한 솥을 꺼내 시체가 폭발하기 직전에 순간이동을 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한제가 판 함정이었다. 시음종의 부전주라면 분명 숨겨둔 한 수가 있을 터이니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기란 어려울 터였다. 그래서 미끼를 던져 상대가 비장의 수법을 먼저 사용하게 한 것이다.
유청운은 영리한 자였다. 그는 한제의 계략을 눈치채고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으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천둥번개가 곧장 그를 향해 내리 떨어졌고 한제의 오른손은 계속해서 유청운의 몸을 두드렸다. 그의 손이 몸에 닿을 때마다 유청운은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유청운은 매서운 눈빛을 번득이며 외쳤다.
“혼자 죽을 것 같은가!”
유청운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폭하려 했다. 사실 그는 만약의 상황을 위해 이미 약간의 원신을 다른 곳에 남겨둔 상태였다.
파멸적인 기운이 그의 원신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규열기 수련자의 원신이 자폭할 경우 그 위력은 좀 전의 염령 시체의 자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 경우 주작성은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이 분명했다.
허나 한제는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정신(定身)!”
그 순간, 정신술이 발동됐다. 청수가 남겨준 선원(仙元) 덕분에 배로 증폭된 정신술의 위력에 유청운의 원신은 자폭 직전에 그대로 멈췄다.
한제는 그 원신을 쥐고 몸을 날렸다. 발아래에 파문이 이는가 싶더니 이내 모습이 사라졌다.
주작성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연맹성역 우주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유청운의 원신을 내리치며 원력을 가동했다. 그러자 수많은 금제가 유청운의 원신을 감싸 봉인했고 자폭으로 인한 파멸적인 힘이 흩어져 버렸다.
봉인된 원신을 저물대에 집어넣은 한제는 다시 발아래에서 일어난 파문과 함께 사라졌다.
한편, 주작성에 남아 있던 머리 큰 소년은 한제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었다면 규열기 수련자 원신의 자폭을 저토록 쉽게 처리하기는커녕 자칫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터였다.
허나 한제는 마치 이 모든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그 원신을 가지고 사라졌다.
“저런 분의 종이 되는 것은 결코 치욕이 아니다.”
소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허공에서 파문이 일더니 한제가 나타났다.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뇌길, 나와라!”
그러자 대지가 진동하면서 거대한 뇌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허약한 상태인 그는 경외심이 가득한 눈으로 한제를 우러러봤다. 좀 전의 상황을 모두 목격한 그는 머리 큰 소년보다도 훨씬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너는 이 이한제의 탈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반항하려 한다면 네 원신은 소멸될 것이다!”
한제의 서늘한 눈빛에 뇌길은 몸을 떨었다. 그 눈빛은 마치 예리한 검처럼 마음속까지 찔러드는 것만 같았다.
“뇌길은 이제 주인님의 것입니다.”
뇌길은 얼른 공손하게 답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 뇌길에게 던져 주었다.
“네 심장의 피를 그 병에 가득 담아라.”
말을 마친 한제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타산과 소년이 뒤를 따랐다.
홀로 남은 뇌길은 병을 보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의 몸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수천 척에 달했던 거구가 순식간에 30척으로 줄어들었다. 그는 안타깝다는 얼굴로 가슴을 가볍게 두드려 상처를 낸 후 흘러나오는 피로 작은 병을 채웠다.
한제가 뇌길을 구한 것은 그의 피에 배어 있는 고신의 기운 때문이었다. 연맹성역으로 돌아온 한제의 수준은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 상태였지만 그가 느끼는 위기감 역시 훨씬 강력해져 있었다.
그는 주작성에서 신통력, 그중에서도 고신의 신통력을 제련할 생각이었다. 뇌길의 피가 있으면 고신의 신통술 몇 개를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