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25
“저것은 우리 종족 전래의 문양 중 하나일세. 이곳은 총 열아홉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최초의 선조 이후로는 열여섯 번째 층 너머로 들어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
어느덧 따라붙은 운작자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제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식으로 주위를 살피며 곧장 다음 층으로 향했다. 이어서 순식간에 열여섯 번째 층에 이르렀다.
열여섯 번째 층의 바닥에도 붉은 문양이 있었다. 다만 이 문양은 이전보다 훨씬 복잡했고 슬픈 기운이 느껴졌다. 또한 그곳에는 열세 개의 관이 있었는데 그 위에서도 각각 문양이 번득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한제의 눈빛이 굳어졌다.
정중앙에는 시커먼 연못이 있었는데 음산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연못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문양 위에서는 붉은빛을 띠었고 다시 연못으로 돌아갈 때는 검은색이 되었다.
“재미있군.”
한제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연못을 살폈다.
“이곳은 본래 십이엽에 이르러야만 출입할 수 있었다네. 저 관들은 모두 우리 선유족 선조 어르신들의 것이지. 듣기로는 열여덟 번째 층에는 우리 종족 본원의 힘이 있다더군. 그리고 마지막 층에는 아주 오래 전, 선유족 최초 선조의 잔혼이 남아 있다고 하지. 만약 자네가 열여덟 번째 층까지 들어갈 수 있다면 내가 선조의 본원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겠나?”
곁에 선 운작자가 설명 끝에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만약 당시의 자신이 상대가 화신기에 오르도록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한제가 이처럼 강력한 수련자가 될 수 있었을지 생각해봤다.
한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작자가 자신을 도운 의도가 무엇이었건, 그에게서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검은 연못 안에서는 서늘한 기운이 짙게 피어올랐고 봉인도 느껴졌다. 양의의 절정에 이르지 않는 한 제거할 수 없을 듯한 봉인이었다.
더욱이 그 봉인은 특성상 선유족 혈통이 아닌 자에게는 더욱 강력한 작용을 하는 듯했다.
‘열아홉 번째 층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군. 이 정도로 강한 봉인이라면 보통의 수련자는 절대 열지 못했을 거다.’
한제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검은 연못을 응시했다.
그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나천성역에서 요가의 한 사내가 꺼내든 노란색 부적 때문이었다.
그 부적에는 기이한 힘이 있어 한제의 힘을 단단히 봉인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도 그와 같은 부적이 한 장 있었다.
“이 연못에 전력을 다해 가장 강한 선술을 발휘해 보거라.”
한제가 불쑥 내뱉자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머리 큰 소년은 곧장 체내의 선원을 가동했다.
순간 짙은 선기 한 줄기가 체내에서 폭발하여 폭풍을 이루더니 사방에 위엄을 떨쳤다.
그 강력한 기운에 운작자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는 얼굴에 푸른 정맥이 솟아오를 정도로 온 힘을 다하고서도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그나마 그 선술의 대상이 운작자가 아니었기에 그 정도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소년이 두 손을 귀에 대자 그의 머리는 두 배로 커지면서 푸른 정맥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가 발휘한 거대한 힘이 연못으로 발산되었다.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파동이 일었고 연못은 느릿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연못 안의 봉인은 그 공격에 열리려는 조짐을 보였다. 허나 그 조짐은 또렷하지 않았고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했다.
그때 한제는 오른손 두 손가락을 펼치며 기합을 넣었다.
“하앗!”
그 순간, 천둥번개의 힘이 사방에서 미친 듯이 몰려들어 한제의 손가락 끝을 맴돌았다. 한제는 몸을 날리며 그 손가락으로 연못을 가리켰다.
콰르릉!
한제의 손가락을 따라 천둥번개가 마치 뇌룡처럼 발산됐다. 그리고 천둥번개가 연못에 꽂히는 순간…
펑!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열여섯 번째 층 전체의 지면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동시에 음산한 기운이 확산됐고 연못은 크게 요동치며 솟구쳐 올랐다. 그 안에서 검은색 문양 하나가 꿈틀대며 번득였다.
그 문양은 매우 복잡한 데다가 내무 빽빽해 자세히 살필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한제는 그 자세한 맥락까지는 파악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그는 봉인을 해제하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뚫고 들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펑! 펑!
거대한 소리와 함께 전광이 문양을 타고 흘렀다. 전광과 충돌할 때마다 문양은 진동했고 빠르게 흩어져갔다. 봉인이 층층이 붕괴하고 있었다.
덤덤한 눈길로 이 모습을 살피던 한제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자모도고가 발현되면서 마수의 뼈가 나타났고 어스름한 빛과 살기(煞氣)가 발산되었다.
그 순간, 끊임없이 붕괴하던 문양은 바르르 진동했고 회색 빛이 드리우면서 빠르게 석화(石化)되었다. 그리고 그때, 타산이 튀어나가며 주먹을 휘둘렀다.
쾅!
거대한 충돌음과 함께 열여섯 번째 층이 진동했고 문양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또한 문양을 타고 흐르던 전광도 터져나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문양이 사라진 연못 바닥에는 기이한 빛이 번득이는 전송진이 나타났다. 드디어 열일곱 번째 층으로 향하는 통로가 열린 것이다.
그 순간, 주작성 어느 종파에서는 뒷짐을 지고 웃음을 머금은 채 몇몇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황룡과 닮은 노인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는 어딘가를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됐다, 열일곱 번째 층이 아무도 볼 수 없는 곳도 아니고… 녀석도 그곳에서의 비밀스러운 일을 이해할 정도는 됐지. 더구나 열일곱 번째 층이 한계일 테니까.’
타산이 가장 앞서 전송진으로 들어섰고 이내 사라졌다. 한제는 잠시 기다렸다가 아무런 위험도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전송진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 큰 소년과 뇌길, 운작자가 그 뒤를 따랐다.
열일곱 번째 층은 온통 어둠뿐이었고 짙은 죽음의 기운이 맴돌았다.
너비가 1천 척쯤 되는 이곳에는 사방에 쇠사슬이 교차되어 있었는데 서로 교차하는 곳마다 시체가 한 구씩 걸려 있었다.
한데 그 시체들에서는 다름 아닌 선기(仙氣)가 흘렀다. 이 시체들은 모두 선인이었다는 의미일 터였다. 다만 저 시체들이 수천 수만 년은 그렇게 매달려 있었던 것처럼, 이 선기는 죽은 듯 가라앉아 있었다.
그 어둠을 뚫고 열일곱 번째 층 중심부에서 전송진이 짙은 빛을 발하더니 이내 그 안에서 네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타산으로 그는 곧장 사방을 둘러보았다. 한데 감정이 없는 것과도 같은 상태였음에도 그는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곧장 사방을 신식으로 훑고는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머리 큰 소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승선지(升仙池)에서 경지를 선원(仙元)으로 응결시킨 그는 선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기에 이곳의 광경을 보았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그의 선원은 처음으로 크게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기이한 힘에 억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웩!”
소년은 피를 토해내며 비틀거렸다.
이를 본 한제는 재빨리 소년의 등 복판을 두드리며 원력을 불어넣었고 덕분에 소년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한편 운작자는 이곳에서 선유족의 기운을 느꼈고 온몸의 검은색 문양이 꿈틀거리면서 빠르게 수축했다.
또한 그의 몸에 새겨진 문양들이 물처럼 흘러 가슴 쪽으로 빠르게 응집되었다.
동시에 운작자는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던, 머리 큰 소년에 대한 경외심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완벽히 억눌리는 것을 느꼈다.
한제 또한 열일곱 번째 층에 들어온 순간 청수에게서 받은 선원이 물속에 가라앉듯 그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제는 사슬의 교차점마다 매달린, 목내이가 된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그 시체들 대부분은 골반 쪽이 사슬로 관통되어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마르지 않은 시체도 몇몇 있었는데 그런 시체들은 두 견갑골이 사슬에 관통된 상태였다.
시체는 그 수만 해도 1백 구가 넘을 것 같았다.
각 시체에는 생전에 채찍질을 당한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그를 통해 이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을 당했던 듯했다. 또한 그들의 몸에서는 문양들이 번득였고 그때마다 체내에서 발휘되는 선기는 더욱 짙어졌다.
그들의 몸에서 선기가 흐르는 이유는 그들의 원신이 엄청난 신통술에 의해 체내에 단단히 갇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육신은 이미 죽은 상태였고 끊임없는 사기(死氣)에 원신이 침식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지능을 가진 원신은 육신을 떠나지 못했다. 죽음의 기운이 짙게 퍼져나감에 따라 원신은 결국 완벽하게 사라지게 될 터였다.
이는 더없이 잔인한 형벌이었다.
“이건⋯⋯?”
멍하니 이 광경을 살피던 운작자가 입도 다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선인들입니다. 생전에는 모두 저보다 높은 수준이었을 겁니다.”
소년은 큰 충격을 받은 듯 중얼거렸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데 그때…
쩔그렁! 쩡!
돌연 쇠사슬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말라붙은 시체 중 하나가 움찔거렸다. 또한 육신의 문양이 빠르게 번득이기 시작하더니 목내이처럼 말라붙은 시체를 관통하여 체내로 녹아들었다.
그 순간, 비쩍 마른 시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텅 빈 두 눈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한과 살기가 돌발적으로 폭발되었다.
“선인⋯⋯. 죽어라!”
낮은 외침과 함께 그 시체를 옭아맨 쇠사슬이 투명해지기 시작하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쇠사슬의 속박에서 벗어난 시체는 곧장 튀어나가 기이한 선력을 발휘하며 머리 큰 소년에게로 달려들었다.
“헛!”
소년은 화들짝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났으나, 이내 이를 악물고 낮게 기합을 넣으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선원을 가동하여 선술을 발휘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때, 머리 큰 소년의 선원은 체내에서 발휘되기가 무섭게 흩어져 사라졌다.
선술을 미처 발휘하기도 전에 온몸의 선력을 잃게 된 소년은 기겁을 했다.
시체가 달려든 순간, 한제는 침착한 얼굴로 한 걸음 나서며 체내의 원력을 직접 담은 오른손을 허공에 휘둘렀다.
쾅!
폭발음과 함께 허공에는 파문이 일었고 달려들던 시체는 바르르 떨더니 뒤로 수십 척 밀려났다.
타산도 번개처럼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에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시체는 그 문양을 본 순간 공손한 모습으로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마치 감히 타산에게는 공격을 가할 수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데 그때까지 말없이 이 광경을 지켜보던 운작자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던, 아주 오래 전 들었던 소문을 하나 떠올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 설마… 여기가 우리 선유족의 고문실이란 말인가! 선유족 최초의 선조께서 주작성에 오셨을 때 만드셨다는…? 선유족 외의 존재는 호위병의 공격을 당하게 된다는, 그 고문실! 이곳이 정말 존재할 줄이야…”
운작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사방의 쇠사슬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층의 모든 시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크르르!”
그 시체들은 흉흉한 눈빛 너머로 야수처럼 그르렁거렸고 쇠사슬이 사라지는 순간 한제와 머리 큰 소년, 그리고 뇌길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제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어서 그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는 나지막이 외쳤다.
“호풍(呼風)!”
그 순간, 그의 손에서부터 검은 바람이 피어올라 널리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