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3
한제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주자미라고요? 혹시 주자홍 사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손유재는 이마를 탁 치며 웃었다.
“아아, 내 기억력 좀 봐. 그래, 주자홍이라고 했던 것 같아. 어때? 정말 그리 고운 겐가?”
한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주자홍 사저는 미인이시죠. 하지만 성격이 워낙 차가운지라 저도 몇 번 본 적 없습니다.”
손유재는 낄낄거리며 음흉하게 웃더니 손을 뻗어 한제의 어깨를 툭 치곤 말했다.
“그래, 이젠 그 계집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지. 곧 계곡으로 들어가는 전송진에 이르게 될 거야.”
한제는 어깨를 움직여 그의 손을 피한 뒤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그럼 얼른 가시죠.”
말을 마친 그는 곧장 앞을 향해 날아올랐다.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 손을 한 번 힐끗 본 손유재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량, 혼자 나와서 돌아다니고 있는 중인가?”
그는 한제를 뒤따르며 물었다. 한제는 속으로 차게 웃었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혼자서 다니고 있지요.”
그러자 손유재는 호탕하게 웃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몰래 계곡으로 가서 물건들을 교환할 생각이었나 보군. 3개월 후에 전신전의 5전에서 법보 뺏기 대회가 열린다고 하던데 거기에서 잘하면 자네도 하루아침에 유명해질 거야.”
한제는 속으로 비웃음을 삼키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손유재 또한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자식, 네 말이 진짜든 거짓이든 오늘 나를 만난 게 네 인생에서 최고로 재수 없는 일이 될 게다. 우선 네 육신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나면 이기경이 쫓아와도 걱정 없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손유재는 만약을 위해 저물대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한제에게 내밀었다.
“마량, 친구를 하나 불러도 될까? 이 근처에 있을 거야. 셋이 함께 전송용 진에 간다면 영석 하나를 아낄 수 있겠지.”
마량의 기억에 남은 전송진에 대한 정보를 살핀 결과 손유재의 말에 문제는 없었다. 한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손유재는 옥패를 쥔 채 미간에 댔다가 내던졌다. 그러자 옥패는 몇 번 반짝이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손유재를 따라 이동할수록 주변은 점점 황량해졌다. 크고 작은 화산이 점점 많아졌고 개중에는 분화구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곳도 있었다.
손유재는 한제가 의심할까 싶어 걱정스러웠는지 한껏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곧 전송진이 나타나겠네. 한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 여러 화산들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더군. 작년에 4대 종파의 원영기 시조들이 봉인해둔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야.”
“음, 분명 구석지긴 하지만 좋은 곳이네요. 특히 이곳에는 화산이 많아 사람을 죽인 뒤에 시체를 처리하기도 좋겠습니다.”
손유재는 살짝 굳은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그런데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콰앙
멀리서 연이은 바람과 벼락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검은색 검광 한 줄기가 엄청난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빛이 사라진 뒤에는 음산한 안색의 중년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남자는 매우 말랐고 눈빛은 무정했다. 검은색 옷을 입은 그 남자의 발밑에는 역시 검은색의 비검이 서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양손이 검은색 안개로 휘감겨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는 모습을 드러낸 뒤 한제는 보지도 않고 손유재를 향해 차게 웃었다.
“저 자인가?”
한제는 남자를 한 번 훑었다. 그는 손유재보다도 훨씬 수준이 높아 곧 결단기에 이를 법했다. 이기경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손유재는 해맑게 웃으며 아첨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사형, 이 자입니다. 이모완 그 계집의 오라버니인 이기경이 이 녀석에게 꽤 호감을 가진 모양이더군요. 이 자를 꼭두각시로 만들면 그 놈이 이 자에게 접근할 때 단박에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검은 옷의 중년 남자는 한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달아나지 않는 것이 의아했지만 어차피 축기 중기의 수준에 불과하니 걱정할 건 없었다. 그가 냉랭하게 말했다.
“죽어라!”
그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의 발아래 있던 비검이 번개처럼 한제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동시에 사내는 몸을 훌쩍 날려 연이어 손뼉을 쳤다. 순간 그의 손을 휘감고 있던 검은색 연기가 확산돼 거대한 해골 형상이 됐다. 그 해골은 한제를 삼키려 달려들었다.
화분국의 격변 (1)
한제는 비검과 검은 연기의 해골은 신경 쓰지도 않고. 오른손으로 중년 남자를 가리켰다.
“소멸!”
극의 경계에서부터 힘이 발동되면 천지가 급변하고 극의 신식이 피어오르면 영혼이 흩어진다. 한제는 축기 수준이었으므로 같은 수준의 사람 사이에서는 무적의 존재였다.
중년 남자의 눈이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순간 그는 자신의 신식이 파멸적인 힘에 공격당하면서도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산산이 흩어져 사라져버리고 있음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두려움에 경악하는 순간, 곧장 소멸된 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는 이 모든 것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순간에 발생한 일이었다. 허공에 뜬 비검이 반도 오지 못한 상황에서 중년의 남자는 죽어버렸고 주인을 잃은 비검은 검은 빛을 잃고 뚝 떨어졌다. 뒤따르던 해골 역시 중년 남자가 죽자 처음처럼 검은색 연기로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소매를 한 번 휘두른 한제의 손에 그 비검이 곧장 날아 들어왔다.
붕한제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철조각이 날아올랐다.
“저 검은 연기를 삼켜!”
한제는 비검을 향해 한 마디 던지고는 넋이 나가 있는 손유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철조각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마혼이 튀어나와 검은 연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검은 연기가 삼킬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소화를 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는 신경 쓰지도 않고 마혼은 그것을 덥석덥석 삼켜댔다. 마혼은 감히 한제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손유재는 겁에 질려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발을 굴러 땅속으로 숨어들었다. 흔적도 남지 않았다.
마혼은 시선을 홱 돌리며 삼키는 속도를 천천히 늦추어 갔다.
“따라와.”
한제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훌쩍 날려 극의 신식을 펼치며 서북쪽 방향으로 향했다. 마혼은 한제에게서 벗어나려는 듯 뒤로 물러나지도 앞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하지만 곧 마혼의 몸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깜짝 놀란 마혼은 얼른 한제를 뒤따랐고 더 이상 뒤처지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한제는 마혼을 벌하던 신식을 거두고 손유재를 뒤쫓는 데 집중했다. 그는 손유재의 속도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사실 이틀 전 마주쳤던 여인 때문에 자신의 속도에 대한 회의감이 들던 차였다.
그녀는 숨을 몇 번 쉬는 사이에 몇 천 리를 움직였다. 더구나 손유재 역시 아까 자신이 전력으로 달렸건만 손쉽게 따라잡지 않았는가. 그래서 한제는 그를 죽이지 않고 사로잡을 생각이었다.
손유재는 잔뜩 겁을 먹은 상황이었다. 지금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그가 수련한 시간은 30년에 이르렀다. 응기 15단계부터 시작해 다른 사람의 보물을 훔치는 짓을 일삼았지만 수준이 낮은 사람만을 골라 노리며 나름 신중을 기해왔다.
최근 몇 년간 손에 넣은 법보와 재료는 모두 시가 대회에 가지고 가 수준을 높여주는 단약으로 바꾸었고 덕분에 그는 지금의 수준에 이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수준이 높아질수록 일반적인 단약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었고 높은 수준의 단약은 파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거나 가격이 굉장히 비쌌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는 낙하문 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낙하문은 진법과 연단으로 유명한 문파였다. 특히 단약 제조 방면에서는 낙하문의 것을 최고로 쳐주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손유재의 목표는 낙하문 내의 연단 제조 방면에서 일하고 있는 이모완이었다. 그녀에게서 단약이나 단약 제조 방법을 얻어내려 했지만 그녀의 오라버니인 이기경은 손유재를 단박에 압박해왔다.
지금 손유재는 자신이 더 빠르지 못한 것에 한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머릿속에서는 오직 방금 보았던 그 놀라운 장면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방금 한제의 손에 죽은 그 사형은 거의 결단기에 이른 수련자였다. 그런 자를 상대는 단박에 그것도 아주 손쉽게 처리해버렸다.
만약 그 마량이라는 자가 뛰어난 법보를 이용했던 거라면 이렇게까지 겁을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법보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그저 마량이라는 자가 ‘소멸’이라고 말하자마자 사형은 곧장 바닥에 쓰러져 죽어버렸다.
‘그, 그건 대체 무슨 법술일까?’
손유재는 덜덜 떨려오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갈피를 잡기 어려웠고 두려움은 더욱 깊어졌다.
한 마디 말로 거의 결단기에 이른 수련자를 죽일 수 있다면 그 마량이라는 사내는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인가? 심지어 결단기 수준에 이른 사람도 누군가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만 한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저 자는…’
그렇다고 마량이 원영기 수준의 고수일 리도 없었다. 단 한 번이지만 원영기의 고수인 사마종의 시조가 손을 쓰는 걸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배신자를 처형할 때였다. 제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시조는 비검을 날렸고 그 배신자는 도망을 치려다가 죽어버렸다. 반항의 기회조차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손유재가 보기에 마량이 한 마디 말로 축기를 꽉 채운 사형을 죽이는 모습은 무언가 달랐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서, 설마, 화, 화신기?”
손유재는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게가 실리는 추측이었다.
손유재가 입을 열어 더듬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화신기 고수 같은 전설적인 인물이 왜?, 하지만 화신기가 아니라면 어찌 단 한 마디로 사형을 죽일 수 있겠어? 화신기 고수는 천지의 힘을 통제한다고 했어. 한 마디 말로 축기를 꽉 채운 상대를 죽였다면 분명, 나는 지금 화신기 고수에게 뒤쫓기고 있는 거로군.”
★ ★ ★
땅속에서 도망치고 있던 손유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한 두려움에 질식할 듯했다.
그때, 갑자기 그의 앞쪽에 있던 흙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 토둔술(土遁術)은 매우 훌륭한 법술이었지만 곳곳에 화산이 있는 화분국에서는 사용하기가 꽤 까다로웠다.
까딱 잘못해서 화산 속에 들어가게 되면 그야말로 재수 없이 개죽음을 당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손유재가 여태 도망을 칠 수 있었던 것은 방향을 잘 탄 덕분이었었다. 진흙이 좀 뜨겁다 싶으면 곧장 방향을 틀었지만 지금 그는 쫓기는 마음에 어느 방향을 택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돌아가기도 너무 늦었기 때문에 최대한 몸을 위로 떠오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쾅그의 몸은 진흙층을 뚫고 어느 거대한 화산의 동굴 안에 나타났다. 뜨거운 기운이 훅 끼쳐오며 그의 머리카락과 눈썹을 태웠다.
손유재는 얼른 비검을 내던지고 불룩 튀어나온 돌 위에 내려앉았다. 그의 온몸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옷도 재로 변해버렸다. 심지어 그의 발을 받치고 있는 비검도 붉게 달아오르며 점점 더 뜨거워졌다.
손유재의 땀은 흘러나오자마자 증발해버렸다. 지금 그의 온몸은 하얀 연기로 가득 뒤덮인 것처럼 보였다. 옷이 모두 타버려 나체가 된 상태였지만 연기로 뒤덮인 모습이 오히려 더 신선다워 보이기도 했다.
그의 아래쪽에는 용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서는 거대한 기포가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그 기포가 터질 때마다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손유재가 맞은편 벽으로 숨어들려고 하던 그때, 그는 아래쪽의 용암을 바라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